인간은 자신 안의 그림자를 직시할 수 있는가?
이종범의 <닥터 프로스트> 시즌 3
“인간이란 자신 안의 그림자를 직시하며 양지를 향해 떠나는 여행자와 같다. 그 여행의 끝에서 우리는 또 다른 누군가의 태양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다분히 계몽적으로 느껴지는 위 문장은 작중 스텐리 스킨과 천상원의 《상담자의 마음》의 한 구절이다.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이 문장의 실제 저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반복적으로 소개되어 〈닥터 프로스트〉의 각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을 보여줌과 동시에 각 시즌 및 에피소드가 어떠한 지점을 포착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닥터 프로스트〉는 2011년부터 연재를 시작하여 드라마까지 제작될 정도로 매우 인기를 끌었던 웹툰 작품이다. 마지막 시즌 4가 2021년 11월에 종료되었으니 1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작품이 진행된 것이다. 4개의 시즌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작가는 심리학과 출신으로서 세심한 심리 묘사를 시도하는 동시에 다양한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이야기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그림1>〈닥터 프로스트〉 Ⓒ 이종범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된 각 시즌은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위 문장이 비유하는 것처럼 시즌 1, 2가 누군가의 태양으로서 내담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수행했던 주인공 프로스트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시즌 3에서는 이러한 관계의 전복이 일어난다. 즉 상담자였던 프로스트가 내담자의 위치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며 프로스트를 상담하는 또 다른 의사(페이터)가 등장한다. 즉, 프로스트 본인이 자신 안의 그림자를 직시하는 여행자가 된 것이다. 다만, 페이터를 무조건적인 프로스트의 상담자로 인식할 수는 없다. 작품은 그러한 일대일 관계보다는 내담자인 프로스트 본인이 자신에 대한 상담자가 되어 스스로를 발견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환자가 된 닥터 프로스트, 자신만의 퍼즐을 맞추다
“감정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단호히 주장하던 프로스트는 반복되는 폭발적 분노의 감정을 보이며 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갑자기 병원에 입원한 주인공을 보며 어리둥절하는 독자들에게 작가는 차근차근 시즌 3가 프로스트 본인의 결핍을 치유하기 위한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러한 과정이 전체 시리즈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인지를 짐작하게 만든다. 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부분이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부터 등장하는 같은 방에 입원한 꼬마 환자와 송설(프로스트의 무의식)의 존재이다. 심각한 분노 조절 장애와 주요 우울장애에 노출된 프로스트는 결국 환시와 환청에 시달린다. 그리고 이전 시즌에 등장했던 첫 번째 내담자였던 ‘경계선 성격 장애’를 지니고 있던 송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림2>〈닥터 프로스트〉 Ⓒ 이종범
그녀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러한 환각이 결국 프로스트 자신의 무의식이자 일종의 죄의식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송설의 죽음 이후 그녀를 “꽤나 흥미로운 퍼즐”이라고 비유했던 프로스트의 예전 모습, 타인의 감정에 공명하지 못했던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반성적 사유의 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본래 내담자의 정서, 감정에 공명하여 그들과의 정서적 연 대, 즉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것이 임상 및 심리상담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프로스트는 상담자로서 매우 큰 결핍을 지니고 있던 인물이었던 셈이다.
작가는 친절하게 송설의 모습 이 프로스트의 무의식임을 알려주며 이러한 환각을 통해 스스로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생각들이 정리될 수 있음을 설명한다. 약물치료를 통해 환각증세를 완화할 수 있음에도 프로스트가 끝내 이를 거부한 것은, 그가 이러한 환각 증세를 통해 자신에 대한 연구와 관찰을 시도하고자 함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프로스트의 스승, 천교수는 “상담자에게 있어서 내담자를 돕는 것과 상담자 자기 자신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내담자와 상담자 사이에서 관찰될 수 있는 관계의 동일성과 차이를 동시에 보여주는 비유이다. 같은 현상의 이면을 의미하는 비유이기에 보편적으로 내담자의 특수성이 상담자에게서도 관찰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내담자와 상담자는 동전의 양면처럼 결국 만날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힐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프로스트는 자신이 내담자인 동시에 상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임을 인지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334화: 프로스트 자신이 스스로의 의지로 입원했으며 퇴원을 권유하는 의사에게 자신을 좀 더 지켜보고 싶어함을 밝힌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해서 보자면 시즌 1~2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문제, 즉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를 상담자로 설정하여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역설을 시즌 3의 주요한 소재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3>〈닥터 프로스트〉 Ⓒ 이종범
과거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닥터 프로스트
시즌 3의 마무리는 자신이 입원하여 경험했던 모든 일이 유년 시절의 기억임을 깨닫는 프로스트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작가는 일종의 반전 형식의 전개를 통해 정신적 충격으로부터 마음을 닫게 되었던 프로스트의 기억으로부터 시리즈 전체의 구성(같은 방의 꼬마 환자는 결국 프로스트 본인임)과 주요 인물들과의 관계, 특히 스승이었던 천상원 교수(닥터 페이터)와의 인연을 파악하게 만든다. 시즌 2의 마지막 화와 시즌 3의 마지막 화는 이렇게 조응하며 프로스트가 심리학 연구자가 된 연유가 자신의 그림자를 파악하기 위한 것임을, 시즌 2에서 천상원 교수의 죽음으로부터 터져 나온 슬픔과 두려움의 감정이 시즌 3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의 근원적 힘이었음을 깨닫게 만든다. 프로스트만큼은 아니겠지만 어떤 이라도 자아를 발견하고 찾아가는 과정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라깡(Jacques Lacan)은 주체의 탄생이 자신의 소외를 대가로 지불할 수밖에 없는 과정임을 지적한다. 즉 모든 주체가 세계 내에서의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다만, 인간은 그러한 소외에만 머물지 않으며 자신의 빈자리를 되찾으면서 욕망하는 주체로 태어난다. 이렇게 보자면 〈닥터 프로스트〉라는 작품의 전체 흐름에서 세 번째 시즌의 이야기는 여 타의 시즌과는 조금은 다른 기능과 역할을 수행한다. 다양한 내담자들의 사연과 사건을 관찰해왔던 프로스트에 관한 근본적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내용인 한편, 극 중 매우 중요한 인물인 스승 천상원 교수의 죽음이 프로스트 개인의 서사를 어떻게 이끌어왔는지 보여준다. 또한 자신의 그림자를 직시하게 된 프로스트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집단적 (혐오) 정서를 마주하게 되는지(시즌 4의 주제)에 대한 연결부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다만 이 연결부는 〈닥터 프로스트〉의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매우 필수적이 고 필연적이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심리 상담의 내용, 즉 내담자들이 자신을 (되)찾고 발견하기 위한 과정들을 외부적 시선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닌 매우 내재적인 자기 성찰의 과정으로 치환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