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란 천대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다
홍실과 지페리의 〈99강화나무몽둥이〉
이세계물. 말 그대로 다른 세계를 다룬 이야기들을 일컫는 말이다. 지금은 나로우계(なろう系)와 같이 일본의 라이트 노벨이 다루는 이세계물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이세계물은 말 그대로 다른 세계로 이동한 인물의 여정을 그리는 이야기에 가깝다. 그만큼 깊은 역사를 지닌 장르로서,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단테의 《신곡》이나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와 같은 고전도 이세계물이라는 주장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만큼 이세계물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중의 깊은 곳에 잠재한 본연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무엇이 있다.
▲<그림1>〈99강화나무몽둥이〉 Ⓒ 홍실, 지페리
이세계물이 자극하는 판타지 중 하나는 우월해지는 것에 대한 판타지다. 우월해지는 것에 대한 판타지는 성장에 대한 판타지와는 그 방향이 다르다. 성장이 노력과 극복의 산물로 주어지는 성과에 대한 판타지이지만, 우월함에 대한 판타지는 말 그대로 그냥 주어지는 재능에 대한 판타지, 정확히 말하면 어떤 노력도 없이 주어진 책임 없는 권력 등에 대한 동경에 가깝다. 이세계물은 바로 이 우월해지는 것에 대한 환상을 자극한다.
가령, 일본 작가 Miku의 라이트 노벨, 〈진화의 열매 ~모르는 사이에 성공한 인생〉은 이세계물이 가진 양산형 판타지의 전형을 보여준다. 총체적인 무능력과 끝을 모르는 열등감으로 인해 반에서 왕따를 당하던 주인공은 이세계로 이동한 뒤, 진화의 열매를 먹고 능력자가 되어 하렘을 만들어간다는 내용, 무제한적으로 능력을 획득하며 배설에 가까운 권력을 휘두르고 다니는 주인공, 그리고 그를 무작정 동경하는 초절정 미녀 등은 이세계물이 보여줄 수 있는 포르노그래피를 충실히 재현한다.
이러한 이세계물의 판타지 깊은 곳에는 주인공을 신과 동급으로 설정하는 묘한 주인공의 지정학이 있다. 무능과 개차반 인격으로 인해 학대에 가까운 천대와 멸시를 받던 주인공이, 학대의 세계를 벗어나고 동시에 종교에 가까운 수준으로 추앙받는 모습은 마르크스가 종교에 대해 해설했던 언급들을 떠 올리게 만든다.
약육강식 세계의 비정한 냉소
“종교는 현실의 고통을 표현할 뿐 아니라 현실의 고통에 항의하기도 한다. 종교는 천 대받는 피조물의 한숨이고,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고, 영혼 없는 세계의 영혼이다.” 마르크스의 관점으로 보면, 이세계의 포르노그래피가 가진 종교성은 단순한 배설의 산물이 아닌, 저항과 절규의 하모니에 가깝다. 따지고 보면 억압과 천대에 둘러싸인 사람들이 ‘절대적 힘’의 배설을 관람하며 그 안에서 안식과 위안을 찾는 현상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올 초 연재를 시작하여 단 5화만에 토요일 웹툰 1위를 차지한 홍실과 지페리의 〈99강화나무몽둥이〉 또한 이세계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천대받는 피조물의 한숨과 무정한 세계의 감정들을 드러낸다.
〈99강화나무몽둥이〉의 주인공 이지우는 편 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나가며 미래 없는 일상을 ‘크로노 라이프’라는 게임에서 위로받는다. 그야말로 무산계급이었던 그의 삶이 바뀐 것은 기본 무기 ‘나무몽둥이’를 한 번에 99까지 강화하면서다. 그는 ‘99강화나 무몽둥이’를 들고 크로노 라이프를 완전히 박 살낸다. 이를 계기로 이지우는 마치 왕년의 리니지 성주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지우의 삶이 바뀌었을 뿐, 이지우 자체는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그림2>〈99강화나무몽둥이〉 Ⓒ 홍실, 지페리
그는 크로노 라이프의 보스를 혼자 사냥하며 얻은 무기들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복층 오피스텔과 스포츠카를 구매했다. 그러나 그가 백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99강화나무몽둥이〉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 내려간다. 이지우의 반대편에는 연예활동을 통해 말그대로 부르주아의 삶을 사는 철없는 17세 아이돌 한사람이 있다. 그는 사실상 오너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위치를 자각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이지우와 한사랑은 크로노 라이프라는 이세계에서, 이세계의 룰을 비웃으며 레벨업을 해나간다. 여기서 독자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지점은 주인공의 성장이 수치화된 레벨과 같은 요소들이 아니다. 세계의 바른 흐름을 위해 만들어진 룰은 우발과 절대적인 힘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지고, 우발을 등에 업고 절대적인 힘을 얻은 무산계급 이지우는 사회적 합의와 규범을 포함한 거의 모든 룰을 비웃는다. 〈99강화나무몽둥이〉의 카타르시스는 그 비웃음과 냉소에 있다. 그 냉소란 천대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고, 냉혹한 약육강식의 영혼 없는 세계가 낳은 영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