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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서나래, 필냉이의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여행으로 발견하는 ‘또 다른 세상’

<지금, 만화> 16호 '이럴 땐 이런 만화/ 이세계(異世界)로 여행을 떠날 때 갖고 갈 만화' 에 실린 글입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글, 그림 김진, 서나래, 필냉이

2023-06-17 윤정선

여행으로 발견하는 ‘또 다른 세상’

김진, 서나래, 필냉이의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웹툰 한 살이라도 어릴 때는 날마다 밤샘과 마감으로 지친 김진, 서나래, 필냉이, 이 세 명의 만화가들이 떠난 좌충우돌 여행의 기록이다. 출퇴근 안 한다고 남들은 부러워 하지만, 휴가도 없이 날마다 일로 소진되어가는 것을 절감한 그들. 언젠가 셋이 같이 여행을 가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다가 그럼, 진짜로 갈까? ‘급 결단을 내린다. 세 사람의 평균 나이 31,67세를 넘기지 말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여행을 가야 한다고 의견을 모은 것이다.

처음부터 여행지로 몽골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각자 여행하고 싶은 곳이 넓은 초원이 끝없이 펼쳐진 곳’, ‘밤이면 별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곳’, ‘귀여운 동물을 실컷 볼 수 있는 곳이었고, 이 세 곳의 교집합(交集合)이 된 여행지가 자연스럽게 몽골로 낙점된 까닭이다.

▲<그림1>〈한 살이라도 어릴 때〉 Ⓒ 김진, 서나래, 필냉이


낯선 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자아

주위 지인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부정적이다. 한 달 동안 휴양지도 아닌 몽골 초원을 자동차로 횡단하다니! ‘나이를 생각하라는 우려 섞인 조언을 할 뿐. 그리고, 그런 주위의 걱정은 안타깝게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낮엔 덥고 밤에는 추운 몽골 초원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자연인으로 보내야 했던 한 달은 극기 훈련과도 유사했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용기 있게 몽골로 떠났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만나는 낯선 세상 몽골에서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해 갔다는 점이다. 몽골의 3대 불교사원 중 하나인 아마르바야스갈랑트 사원의 에피소드는, 이러한 발견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사원의 돌탑에 들어가 세 바퀴를 돌고 나오면, 새사람이 되어 새롭게 태어난다.’는 전설을 들은 주 인공이, 새롭게 태어나 새사람이 된다.’는 말이 내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를 내려친듯 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돌탑의 내부가 비좁아서 움직이기조차 힘들었지만, 그는 기어코 돌탑에 들어가 세 바퀴를 돌고 나와 말한다.

돌탑 안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새사람이 됐을 리는 없지만, 과거의 흐트러짐을 바로잡고 새롭게 시작하고픈 마음이 좀 더 단단해진 것 같다.

▲<그림2>〈한 살이라도 어릴 때〉 Ⓒ 김진, 서나래, 필냉이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여행, 시각의 새로운 변화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웹툰 한 살이라도 어릴 때을 보다 보면 프로스트의 이 말이 아주 깊이 공감된다. 뭔가 재충전이 절실히 필요한 세 명의 만화가가 몽골이라는 낯선 곳을 여행하며, 삶을 다시 새롭게 바라보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그렇다. 마치 릴레이 달리기 경주를 하듯, 세 명의 작가들이 매회 돌아가며 동글동글 귀여운 그림체로 여행 이야기를 풀어내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몽골이란 세상 속으로 짧은 여행을 갔다 온 느낌이다.

우리가 산에 가면 호쾌하게 외쳐대는 야호라는 말이 몽골 말로 어떡하냐?’ 란 뜻이란 것도 재미있고, 몽골에서는 산을 신성한 존재로 여겨 산 근처에 있을 때는 그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곱씹을수록 웅숭깊다. 또 초원에서 만나는 낙타와 말의 이야 기 같은, 몽골의 다채로운 깨알 정보들이 매회 유쾌한 스토리에 얹어져 풍성하게 펼쳐진다. 실제 여행하면서 찍은 현장감 넘치는 사진들도 함께 보여주면서 말이다.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도 그들의 현지 몽골 가이드가 들려준 이야기가 유독 마음 깊이 남았다. 초원에 사는 수많은 야생 동물들 중에, 어떤 동물들은 죽을 때가 되면 산꼭대기에 올라가 잘 살았다.’ 생각하며 스스로 떨어져 생을 마감한다는 이야기.

▲<그림3>〈한 살이라도 어릴 때〉 Ⓒ 김진, 서나래, 필냉이


삶이란 여행을 마쳤을 때, 나도 몽골 초원의 동물들처럼, 삶에 만족하며 감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은, 날마다 똑같아 보이고 익숙한 일상에서는 떠올리기 힘든 생각은 아닐는지. 낯선 공간이야말로 뇌에 자극을 주어 그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더 나아 가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웹툰 한 살이라도 어릴 때는 정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환경과는 또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을 떠나고픈 마음을 흠씬 심어준다. 그것이 꼭 물리적인 여행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게 다 웹툰 한 살이라도 어릴 때의 작가이자, 주인공인 세 명의 만화가가 보여준 용기 있는 여행 덕분이다.


필진이미지

윤정선

만화평론가
<2021 만화평론공모전> 신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