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의 휴식을 위한 상상
웹툰 연재중 휴재권 문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가 생각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자.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일을 한 다음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잠에 든다. 이렇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을 일하면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을 쉰다. 다른 휴일이 끼어 있다면 연휴를 맞아 푹 쉴 수 있다. 일반적인 직장인의 일상이다. 이렇게 일하는 직장인은 일반적으로 5일간 8시간, 주 40시간의 일을 하도록 되어 있다. 주 52시간이 일반적으로 법적으로 허용하는 최대 노동시간이다.
웹툰작가는 어떨까? 스튜디오에 고용된 작가가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개인 창작자를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개인 창작자는 고용되지 않은 대신 자신의 작품으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의 대가는 꽤 크다. 하루 평균 10시간 반, 일주일 평균 5.9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1 웹툰작가 실태조사〉를 통해 발표한 웹툰 작가의 평균 작업시간이다. 일주일 평균은 61.95시간. 주 62시간에 육박한다. 최대가 아니라 평균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웹툰작가의 작업시간 문제에 대한 논의는 2010년대 중반 이후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제기됐다. 오래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디가 문제인지 다시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림1>〈2021 웹툰작가 실태조사〉, ‘창작 활동 및 환경’, Ⓒ 한국콘텐츠진흥원
마감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가?
충분히 쉬는 건 작품의 질과 연관되어 있다. 좋은 작품은 창조성과 그걸 그려내는 시간을 버티는 체력에서 나온다. 좋은 아이디어는 여유로움에서 나온다. 여유로움이 창조성의 바탕이라면, 여유로움은 질 좋은 휴식에 기인한다. 또한 체력 역시 휴식과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툰작가는 충분히 쉴 수 없다.
작가는 왜 충분히 쉬기 어려울까?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앞서 말한 하루 10.5시간, 주 5.9 일의 작업량 때문이다. 긴 시간 작업을 하고 방전되면 일단 잠을 자야 한다. 여기에서 잠을 자는 건, 질 좋은 휴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원 종료에 가깝다. 그렇게 사용한 배터리를 잠으로 재충전하고 나면 다시 배터리를 바닥이 날 때까지 사용하는 셈이다.
잠을 자는 것이 휴식이 아니라면, 휴식은 무엇일까? 심리학에서 휴식은 분노, 불안, 공포 등으로 인한 각성이 없는 낮은 긴장상태를 유지하는 정서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에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자극을 낮은 긴장상태에서 받아들이는 여행, 바캉스 등이 휴식에 포함될 수 있다. 이들 모두 충분한 시간은 물론, ‘낮은 긴장상태’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연재중인 웹툰 작가가 낮은 긴장상태를 갖기는 어렵다. 그저 일하는 시간이 그냥 힘들겠거니 생각하고 쉽게 간과해선 안 된다. 마감을 하나 쳐 내도, 마감은 계속 밀려온다. 마감시간 자체가 주는 압박감은 연재가 지속되는 한 계속해서 이어진다. 더군다나 작가는 연재 중에 독자의 피드백을 댓글을 통해 직접적으로 받는다.
▲<그림2>〈2021 웹툰작가 실태조사〉, ‘창작 활동 및 환경’, Ⓒ 한국콘텐츠진흥원
이런 직접적인 피드백은 불안을 높이는데, 반대로 피드백이 없어도 불안이 높아진다. 아무도 내 작품을 보지 않는 상황만큼 불안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작업 시간만 생각해도 연재중인 개인 창작자는 일주일의 절반 가량을 고도의 긴장상태로 보낸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 역시 다가올 마감과 독자의 평가라는 불안을 안고 일상을 지켜내야 한다. 작가들이 자조적으로 ‘공황장애는 직업병’이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작업량뿐만 아니라, 작업이 끝나도 끝나지 않는 것이 진짜 문제다. 쉬어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 이전에, 정서적으로 연재중인 작가는 고도의 긴장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작업을 하고, 일상을 유지하게 된다. 연재와 일상, 둘 중 하나는 무너지기 쉬운 줄다리기다.
개인 창작자의 ‘휴재’가 정답일까?
그럼 휴재를 선택하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직장인이 휴가를 사용하듯이 휴재를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회사의 일을 수행하는 직장인과 달리, 웹툰작가는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이고,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책임지는 개인창작자는 플랫폼과 고용계약이 아닌 연재계약을 맺게 된다.
보통의 계약은 작품 게재, 즉 연재에 대한 책임은 플랫폼이, 창작에 대한 책임은 작가가 지는 방식이다. 따라서 작품 창작을 잠시 멈추고 쉬는 휴재가 권리라면, 작가가 행사하면 된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연재고료와 수익 문제다. 기본적으로 연재계약은 작품이 연재되는 콘텐츠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는다. 때문에 휴재는 연재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 해 원고료나 MG(Minimum Guarantee, 최소 수익 약정금)가 지급되지 않는다. 4주를 기준으로 수입의 25% 가 지급되지 않는 위험을 ‘선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휴재는 작품의 노출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독자들은 휴재에 엄격하다. 독자들의 휴재에 대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냉정한 인식은 작가들이 휴재를 선택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된다. 더군다나 작품의 경쟁은 결국 ‘독자에게 선택받는 것’이기 때문에, 독자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림3>BBC News 코리아, 〈K-웹툰의 그늘, ‘웹툰 공장’의 작가들〉 중 한 장면
그러므로 ‘한 주 쉬어가는’ 휴재로 인한 불안과 긴장이 불가피하다. 그렇기에 휴재는 임계점에 다다르기 전에 압력을 낮추는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완전한 휴식이 되기는 어렵다. 비정기적이고 단발적인 휴재라도 그걸 선택하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점에서 애초에 선택지로 꼽기도 어렵다. 개인 창작자에겐 연재 분량과 독자의 선택 사이에서 거대한 부담감에 짓눌리게 된다. 어느 쪽도 빠져나가기 어려운 외통수다.
스튜디오 시스템과 개인 창작자 사이
플랫폼의 입장에서 작가가 작품을 쉬거나, 연재가 중단되는 것은 리스크에 포함된다. 플랫폼 입장에서도 작가가 아파서 쉬는 것은 원치 않는 일이다. 하지만 플랫폼이 직접 작가에게 휴재를 강요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작품의 책임은 작가에게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람’이라는 위험부담을 제거하고 ‘생산’하기 위한 시스템이 바로 스튜디오 제작 방식이다. 저작권을 회사가 갖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대신, 작가를 고용해 임금을 지급하는 방법이 도입된 것이다. 스튜디오 시스템은 플랫폼의 입장에선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작가의 입장에선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일종의 절충안이다.
개인 창작자가 만드는 작품에 플랫폼이 개입해서 휴재를 요구하거나, 작품 제작을 지원하는 것도 어렵다. ‘작품을 책임지는 주체’의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연재가 아니라 제작에 비용을 지불한다면 그건 플랫폼에 작품이 종속되는 효과를 불러오게 된다. 연재계약에선 작가가 작품을 만들고, 플랫폼이 연재를 위한 온라인 전송권의 대가를 지불하는 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작품 제작 계약을 하게 되면, ‘넷플릭스 오리지널’식의 종속된 콘텐츠 제작 용역으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주간연재를 바꿀 수 없다면
결국 주간 마감이라는 시스템이 모든 문제의 원흉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간 연재가 주는 이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매주 꾸준히 독자가 플랫폼을 찾고, 작품을 감상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은 독자가 꾸준히 작품을 찾아보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최근 연재작의 수가 늘어나면서 독자들에게 작품을 효율적으로 보여줄 방법이 제시됐지만 작가들에겐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건 본질적인 문제, 주간 마감 안에서 점점 분량이 늘어나기만 했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플랫폼 입장에선 제작사가 제작하는 작품은 일정 수준 이상을 맞춰 주길 기대하고 일부 제작사는 그에 따라 기계적으로 분량을 늘린다. 하지만 웹툰에서 기계적으로 분량이 늘어나면 개인 창작자들의 연출과 전개, 표현방식 등의 고민이 시작된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일각에서는 작가가 플랫폼에 종속되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플랫폼에 사실상 종속되었기 때문에, 플랫폼이 작가에게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웹툰계 에서 대형 플랫폼이 가지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일리 있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책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협상과 합의를 통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전송권 이상의 책임을 플랫폼에게 요구했다가 자칫하면 플랫폼이 모든 영역을 다 관장하게 될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도래할 수 있다. 플랫폼의 지원이 종속을 만들고, 그 종속이 ‘고용’으로 해석된다면 작가의 창작물이 업무상 저작물로 해석될 여지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 차라리 정부가 개입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가 개입해 컷 수를 제한하거나, 제작 방식에 참여하도록 강제한다면 계약에 정부가 개입하는 꼴이 된다. 계약은 기본적으로 사인(私人)과 사인 간의 합의에 의한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개입한다면 계약의 본질을 해치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또, 정부의 개입은 시행령이나 법과 같은 제도로 이루어지는데, 그걸 따르지 않고 악용될 사례가 등장하리란 건 불 보듯 뻔하다. 그렇기에 정보 비대칭으로 인 한 계약 합의에 있어 불균형한 저울의 수평을 맞추기 위한 교육과 정보 제공이 꾸준히 이루어져 작가들이 계약을 할 때 자문을 받거나, 나아가 작가가 직접 협상에 나설 수 있는 여지를 더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휴재가 가능한 선택지가 되려면
다시, 개인 창작자에게 초점을 맞춰보자. 개인 창작자가 정기적인 휴재를 선택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휴식의 부담이 연재를 지속할 때 감수해야 할 위험보다 크기 때문이다. 연재 경력을 불문하고, 개인 창작자가 휴재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개인 창작자의 권리를 행사하면서 주간마감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분량을 줄이는 것이다.
웹툰에서 컷은 숫자가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하는 구성하는가, 그리고 그 이야기가 얼마나 효과적인가가 우선이다. 편집자 역시, 단순히 컷의 숫자가 아니라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편집자만의 안목과 시각으로 내부 데이터를 통해서 작품으로 작가와 설득할 때, 비로소 분량을 논의할 수 있다. 일을 쉽게 만들기 위해 일방적으로 많은 분량을 요구한다면, 이건 웹툰을 예술이 아니라 공산품으로 보는 시각을 드러내는 셈이다.
앞서 개인 창작자에게 휴재가 선택이 되려면,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여기엔 경제적인 부담이 포함된다. 이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막 진입해 최저 수준의 원고료나 MG를 받게 되는 작가들의 최저선을 올릴 필요가 있다. 물론 플랫폼이나 제작사가 일방적으로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인 창작자에게 일방적으로 부담을 지웠다면, 이제는 그 대가를 플랫폼을 포함한 기업들이 져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에도 부작용이 따른다. 개인에게 지급되는 원고료가 늘어나는 것은 언뜻 적은 액수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신인 작가들의 최저선을 모두 끌어올리면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이 안에서 합의점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그리고 일방적으로 한쪽이 부담을 지지 않게 협상하고 합의할 수 있는 테이블이 만들어지는지가 관건이다. 이건 지금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는 웹툰상생협의체의 투명하고 활발한 운영이 중요한 이유기도 하다.
우리에겐 더 많은 상상과 대화가 필요하다
웹툰작가의 휴재문제는 ‘더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은’ 욕망과 ‘더 많이 일을 시키고 적게 주고 싶은’ 욕망 사이의 대결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웹툰계의 과제다.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상상이 요구될 것이다. 단적인 예로 일반적인 노동자와 다르게 저작권을 다루는 만큼, 수익이 따르는 저작재산권을 마치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는 방법도 상상해볼 수 있다.
또 연재를 시작할 때 계약에 제한된 숫자의 유급 휴재권을 미리 지급하고 사용하도록 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상시적으로 고도의 긴장상태에 놓인 작가를 위한 심리상담 지원이나 일정기간 이상 연재하면 의무적으로 상담을 받게 하는 등 우회적인 지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처럼 상상은 무한하다. 다만, 문제는 협상의 과정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웹툰계가 협상할 준비가 되었는지다. 상상을 현실화하는 이유는, 결국 협상과 합의이기 때문이다.
쉬는 문제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지속적으로 늘어온 작가들의 작업량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개인 창작자가 나오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맞춰 트레이닝할 수 있 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더 많이, 더 빠르게!’를 외치는 것은 언뜻 긍정적인 구호지만, 그 안에서 달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웹툰이 말뿐이 아닌 진짜 문화로 자리 잡으려면,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은 쉬어야 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