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한 재즈와 닮은
고우영의 〈고우영 삼국지〉
그 겨울의 〈고우영 삼국지〉
아주 오래전 이야기인데 내가 초등학교 6학년쯤 되던 겨울방학이었다. 확실히 그 시절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춥고 눈도 많이 내렸다. 어린 나이라 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구멍가게라도 가려고 집밖에 나갔다가는 매서운 바람에 볼살이 트고 머리가 띵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그때가 춥지만은 않게 기억되는 건 우리 가족이 가장 촘촘히 모여 살았던 시 절이기 때문이리라.
서울 변두리의 작은 단층주택에서 부모님과 두 살 터울의 형과 나, 강아지가 함께 살았다. 별이 총총한 밤, 안방에서는 아버지의 전축에서 레코드판이 돌아갔고 문틈으로 새어나오던 그 소리들은 알게 모르게 나의 감각으로 스며들었다(그랬을 것 같다).
아버지가 듣던 음악들이 딱히 고상한 건 아니었다. 소위 뽕짝가요가 대부분이었지만 자글자글 레코드판이 긁히는 소리는 왠지 아늑했고 마당과 장독대를 솜이불처럼 덮은 눈은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그 속에서 형과 나는 작은 온돌방에 엎드려 만화책을 보았다. 주로 《소년중앙》이나 《어깨동무》와 같은 어린이 만화잡지였다. 만화책 보는 게 유일한 재밋거리였던 시절, 동네 책방에서 문고판이나 신간잡지를 사오는 날이면 새벽녘까지 이불 위에서 뒹굴었다.
〈고우영 삼국지〉를 처음 본 것도 그때였다. 그건 아버지가 보는 스포츠신문에 연재되던 만화였다. “신문에도 만화가 있네!” 신기해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전에도 만화로 그려진 삼국지를 어디에선가 보긴 했지만 좀체 관심이 가지 않았는데(아이들은 사극을 안 좋아한다) 고우영의 만화는 달랐다. 너무 재미가 있어서 요즘 말로 완전히 꽂혀버렸다고 할까? 돌이켜보면 어린 나이에 그게 왜 재미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글도 많고 복잡한 서사에 누가 주인공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등장인물들…. 야구 잘하는 독고탁이나 축구 잘하는 까목이, 태권도 잘하는 각시탈을 좋아하던 꼬맹이가 빠져들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더구나 등급으로 치자면 야시시한 비유가 난무하는 성인판이다(그래서 더 재미있었던 건지도!). “《삼국지》가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였구나!” 유레카를 외치면서, 난로 위에 구워진 고구마와 귤을 먹어가며 감칠맛 나게 보던 만화. 〈고우영 삼국지〉를 생각하면 그 겨울이 떠오른다.
▲<그림1>〈고우영 삼국지〉 Ⓒ 고우영
자유롭고 신선한 재즈를 닮은 〈고우영 삼국지〉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것. 그때 레코드판을 돌리던 아버지보다 더 나이를 먹고, 만화작가까지 된 지금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만화책이 무엇이냐?”고 물어온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우영 삼국지〉를 꼽을 수 있다. 실제로 몇 차례 인터뷰에서 그렇게 대답하기도 했다. 본래 재즈평론가라는 호칭을 달고 살다보니 좋아하는 재즈음악을 묻는 질문을 받게 되고 영화를 만들었을 때는 좋아하는 영화를 묻는 질문을 받았다. 손재주가 있어서 만화책을 그려내니 (부끄럽게도) 만화가라는 타이틀이 더해졌다. 음악과 영화는 한 가지만 꼽는다는 게 무의미하다싶어 사전에 그런 질문은 빼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만화는 절대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그린 만화책들은 모두 고우 영 화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특히 《삼국지》의 방식을 어떻게든 흉내내보려 고 애를 쓴 결과물이다. 작업 중에 집중력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느낌표를 퉁기며 《삼국지》를 떠올렸고 책장에서 꺼내 펼치곤 했다. 나름의 비책이었던 셈이다. 과연 그런가? 재즈와 록음악의 역사를 만화로 그린 내 책들과 〈고우영 삼국지〉가 무슨 연관성이 있겠나 싶겠지만 내가 그토록 닮고 싶었던 건 복잡하고 어려운 걸 재미있고 쉽게 풀어내는 그 참신한 방법론이었다. 그건 마치 재즈음악의 자유로움 같은 거랄까? 빤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의외성, 똑같은 이야기도 새로운 맛으로 풀어내는 해석. 그 결과 여타의 《삼국지》와 차별되는 독창적인 리듬과 템포를 가지는 것. 지금 다시 봐도 고우영의 필력은 가히 접신의 경지라고 생각한다. 관우의 비극적 죽음에서는 정말 많이 슬펐고 복수의 칼을 가는 장비가 만년필로 휘갈겨 쓰는 욕지거리에서는 이내 빵 터진다. 황건적이 군 가로 “노오란~ 샤쓰 입은~”을 부르고 다니는 센스는 무시무시한 감각이다. 물론 그런 자유로운 서술방식에는 호불호가 있다. 동서고금의 고전을 함부로 비틀어 댄다는 비난거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우영 삼국지〉는 만화적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도 인문학적인 깊이까지 절묘한 균형감을 보여준다. 이 균형감이야말로 작품의 백미인 것이다.
▲<그림2>〈고우영 삼국지〉 Ⓒ 고우영
나의 음악만화들도 그런 균형감을 머릿속에 대뇌이며 그려간 작업이었다. 뭐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은 못되지만 대중들에게 재즈는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는 부합한 책이 되었다. 만화를 그려보겠다고 생각한 것도 재즈잡지의 편집장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음악을 쉽게 알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었다. 아니, 따지고 보면 더 오래전 부터였을지 모른다. 그 겨울밤 나는 연습장을 펼쳐 관우와 장비와 조자룡을 베껴 그리기 시작했다. 만화 속 인물들이 너무 멋져보였기 때문이다. 휙 휙 휙~ 날렵하게 그려낸 고우영의 그림체는 속도감이 있었지만 그게 거저 될 리가 없었다. 안방의 레코드판은 멈춘 지 오래고 형은 옆에서 코를 골았다.
음악과 별과 커피와 〈고우영 삼국지〉
신문에 연재되던 만화 〈고우영 삼국지〉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1980~81년에 책으로도 한 권씩 출판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여러 버전을 거쳐 10권짜리 전집(김영사 발행)을 소장하고 있지만 그땐 아마 8권짜리 시리즈였던 것 같다. 동네를 벗어나 찻길 건너편에 있는 책방으로 〈고우영 삼국지〉 만화 단행본을 사러 다녔다. 그때도 추운 겨울이었다. 육교 하나를 건너야 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길이었는데도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지. 가마솥 같은 입김이 앞을 가리고 볼따구가 얼얼한 칼바람을 맞으며 만화책을 품고 돌아오는 길. 가로등 골목길을 돌아 집에 들어섰을 때 보았던 눈 덮인 마당의 푸르스름한 빛, 그 색감은 내 마음속 어딘가에 그대로 세이브 되었다. 안방 전축에서 흐르던 소리와 별밤, 달달한 맥스웰 커피향이 스치던 정경은 내 감성의 근원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우영 삼국지〉로부터 인생의 낙관(樂觀)을 배웠다. 어디에서도 사소한 웃음을 찾아내고픈 욕심이 고스란히 내 책들에 있다. 그런데 독자의 반응이 그리 신통한 편은 못 된다. 썰렁한 아재 개그가 고역이라는 어린 독자도 있는걸 보면, ‘준비된 자만이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경지까지는 아직도 한참 먼 것 같다. 그건 재즈연주자들의 좌우명이긴 한데… 문득 드는 생각은, 그때 마당에 있던 강아지는 얼마나 추웠을까! 깨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