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만화(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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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이와 향신료, ORKA의 〈어떤 계모님의 메르헨〉: 이세계 가이드북

<지금, 만화> 16호 '이럴 땐 이런 만화/ 이세계(異世界)로 여행을 떠날 때 갖고 갈 만화' 에 실린 글입니다. 〈어떤 계모님의 메르헨〉/글 냥이와 향신료, 그림 ORKA

2023-06-11 최정연

이세계 가이드북

냥이와 향신료, ORKA어떤 계모님의 메르헨


이세계 여행을 위한 가이드북

해외로 여행을 갈 때, 사람들은 그 나라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기도 하고 관련 서적을 찾아 읽어보기도 한다. 방법은 제각기 다르지만, 다들 여행을 갈 땐 그 나라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자료를 참고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 놀러갈 때는 어떤 작품을 가져가야 할까? 현 세계의 향수를 느끼기 위해 현대물 작품을 들고 가는 것도 좋겠지만, 이 세계에 보다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해당 세계에 대해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을 가져가야 한다. 그렇기에 혹시 누군가 이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이 세계 가이드북이라 할 수 있는 어떤 계모님의 메르헨을 추천한다. 어떤 계모님의 메르헨2019년부터 지금까지 카카오페이지 및 네이버시리즈에서 연재 중인 로맨스 판타지 웹툰이다. 냥이와 향신료 작가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소설의 삽화와 웹툰의 그림 모두 ORKA 작가가 맡았다.

▲<그림1>〈어떤 계모님의 메르헨〉 Ⓒ 냥이와 향신료, ORKA


가진 것 없는 시골 소자작의 딸, 슈리는 곡물을 팔아 가축을 사서 먼 훗날에는 멋진 가게를 여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요헤너스 폰 노이반슈타인이 자신의 첫사랑을 닮은 슈리를 후작 부인으로 들이 게 되고 소녀는 14살이란 어린 나이에 자유를 잃고 2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첫째 제레미 등, 네 아이의 엄마가 된다. 후작 부인이 되고 겨우 2년 뒤, 요헤너스는 병으로 세상을 뜨고, 제레미가 무사히 가주가 될 때까지 후작가를 지켜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슈리는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주가 되어야만 했다. 어린 과부라며 무시하는 귀족들과 탐욕스런 방계들, 자신을 어머니라 인정하지 않는 네 아이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녀는 더욱 강인해지고 차가워져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슈리가 가주 자리를 내려놓을 수 있는 제레미의 결혼식 날. 결혼식에 오지 말라는 말을 들은 슈리 는 아무도 모르게 마차를 타고 별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때, 마차는 의문의 자객들에게 습격을 당하게 되고 슈리가 숨을 거둔 순간, 그녀는 다시 7년 전, 요헤너스의 장례식 날로 회귀하게 된다. 과연 슈 리는 다시 얻은 소중한 기회를 어떻게 사용할까? 이번 생에는 자신의 죽음과 얽힌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고 네 아이들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그림2>〈어떤 계모님의 메르헨〉 Ⓒ 냥이와 향신료, ORKA


때로는 영화처럼, 때로는 동화처럼 메르헨은 독일어로 동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떤 계모님의 메르헨, ‘슈리의 동화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작품은 동화로 첫 시작을 알린다. 최대한 많은 독자들의 흥미를 이끌어 내야하는 1화를 전부 동화로 표현한 과감한 연출법은 작품의 주제를 관철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동화 같은 연출은 작품에 미스터리 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처음 읽었을 때 보다 다시 한번 읽었을 때 의미가 더 크게 와 닿는 효과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을 뒷심 있는 작품이라 평하고 싶다. 작품의 색감과 분위기가 밝지만은 않아 초반에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으나, 갈수록 탄탄해지는 인물들의 감정선과 스토리, 영화 같은 연출에 후반부에는 자신도 모르게 이 작품에게 매료당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회귀 전, 슈리의 죽음과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157화부터 63화는 마치 중세 서양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색감을 사용해 작품의 깊이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어떤 계모님의 메르헨은 때로는 정신없이 몰입하게 만드는 영화처럼, 때로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동화처럼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작품의 다채로운 매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많고 많은 이 세계물 작품 중 어떤 계모님의 메르헨을 눈에 띄게 해주는 것은 여주가 어린 계모라는 독특한 소재이다. 이 작품은 네 아이들을 지키는 어머니로서의 강인함과, 부담감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는 어린 소녀로서의 여린 모습을 다루고 있다. 어머니와 아이들의 따뜻한 가족 이야기와, 네 아이들의 어머니가 아닌, 평범한 소녀의 두근거리는 사랑 이야기. 한 작품에서 가족물과 로맨스를 둘 다 맛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이 작품의 중요한 감상 포인트이다. 현재, 잠시 재정비의 시간을 갖고 있는 이 작품은 이번 11월에 연재가 재개될 예정이다. 원작 결말이 이미 나와 있음에도 흥미진진하고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작품, 어떤 계모님의 메르헨를 주목하자.



필진이미지

최정연

만화평론가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신인부문 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