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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미스 만화 장르의 흐름과 특징

<지금, 만화> 17호에 커버스토리로 실린 글입니다.

2023-07-07 김성훈

장르문학은 이른바 순수문학과 구분되는 일련의 대중소설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주 선택되고는 한다. 대표적으로 SF소설이 여기에 속하고, 추리물이나 무협물 혹은 판타지 등이 장르문학을 대표하는 작품군으로 거론된다. 이들 장르 문학은 대중들의 취향에 밀접하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담론의 대상으로 크게 다뤄지지 못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창작과 소비는 꾸준하게 이어져 왔으며, 특히 종이를 대신한 웹이 문화소비의 핵심 창구로 자리 잡으면서 주요한 문화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과정에서 추미스(추리, 미스터리, 스릴러)는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고 있는 요즘이다. 가령, 로맨스에 추리가 더해져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거나 액션에 스릴러가 결합 되어 독자들의 기대감을 높이는 작품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웹소설과 웹툰의 동반성장이 두드러지는 최근의 흐름에서 콘텐츠 산업 전반에 걸쳐 추미스 장르의 역할 또한 커지고 있다. 이에 이 글에서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한국 만화에서 추미스 장르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알아보고, 앞으로의 전개 방향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과거로부터의 여정

사실, 한국만화에서 추미스에 관한 장르적 발전에 대해 해당 부분의 직접적인 발자취만으로 따져보는 것은 그리 용이하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만화가 지니는 산업적문화적 가치에 관한 본격적인 시선이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나타나기 시작했고, 따라서 그보다 더욱 미시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장르에 관한 논의는 그 이후의 일이 되기 때문이다. , 2000년 이전 시기의 한국만 화에서는 추미스라는 장르에 대해 논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되는 셈이다. 게 다가 장르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도 추미스 보다는 대중적인 범위에 있는 갈래, 이를테면 스포츠, 순정, 역사, 학원물 등에서부터 시작되었기에 우리 만화에서 추미스에 대한 인식 자체가 매우 최근의 일임을 직시해야 하겠다.

그러므로 추미스 장르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보다는 추미스와의 근접 분야로 그 논의를 확장 시켜 최근의 흐름에 다가가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가령, ‘추리에 대한 근접 분야로 우리는 탐정혹은 수사물에 접근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개념에서 출발하여 1960년대 일군의 탐정만화로부터 추미스의 시작점을 삼을 수도 있겠다.

일례로 1950, 60년대 액션 만화의 대가로 손꼽히는 손의성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저주가 깃든 거울과 연관된 복수극 두 소경(1965), 미국을 배경으로 한국 정보원의 활약상을 그리면서 사이비종교나 고대 금화 등을 다루는 첩보극 함 정(1966) 등을 통해 추미스의 장르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역사극을 주로 그린 것으로 널리 알려진 박기당의 경우도 모험, 신비로움 등과 같은 키워드가 담긴 작품들을 발표한 바 있어서 추미스의 면모를 찾을 수 있다. 가령, 파고다의 비밀(1961)은 중공군의 티벳 침공 후 티벳 공주가 위험을 피해 신비한 나라 파고다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리면서 모험과 스릴을 담아낸다. 묘구 공길 이(1966) 역시 특정 인물의 죽음 뒤에 나타나는 괴기스러운 현상 속에서 거대한 음모를 파헤쳐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 추리물 특징을 읽어낼 수 있다.


1970, 80년대 역시 독립적인 서사 장르로서 추미스의 발자취를 헤아리기 보다는, 대중적인 카테고리, 이를테면 당대 가장 사랑받았다고 할 수 있는 개그, 명 랑 등과 같은 작품군으로부터 추미스의 측면들을 찾아낼 수 있겠다. 여기에 대 표적인 작품으로 방학기 다모가 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시피, 이 작품은 1975년에 선데이서울을 통해 최초 발표되었기 때문에 당대 성인잡지의 대표작으로 꼽히기도 하고,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시대물로 평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의 주요 내용이 여성 수사관을 등장시켜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에 족히 추리 극화로서의 면모가 갖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허영만의 초기 대표작 각시탈역시 마찬가지다. 일제 강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면서 민족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지만, 한편으로 경시청이 주요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고 주인공이 탈을 쓰고 자신의 존재를 감춘 채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추리 수사물의 특징을 읽을 수도 있다. 한편, 강철수의 내일뉴스역시 1980년대 발표된 대표적인 추미스 작품이라 하겠다.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 소년이 우연히 얻게 된 라디오에서 미래를 예언하는 뉴스가 흘러나오는 것이 핵심적인 소재로 다뤄진다. 발표 직후 영상화(TV 단막극)까지 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특징은 작품 속에서 미스터리 및 스릴러로서의 장르적 특징이 효과적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와 잡지, 신문 등 새로운 만화발표 매체들이 등장했고, 그러한 가운데 아마게돈이나 열혈강호처럼 판타지, 무협 등 이른바 장르만 화 작품들이 크게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러한 작품들의 상업적인 성공은 인디 만화까지 등장할 수 있게 하는 토대로 작용하면서 만화산업 내에서 다양성까지 확보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특히 공포만화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아디(ODDY)와 같은 장르만화 전문잡지까지 등장했음을 기억할 수 있다.

 

이후 2000년대 들어와 작품발표 및 소비 공간이 온라인으로 옮겨간다. 서사 웹툰이 자리매김하는 초기에 강풀, 윤태호 등이 발표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대표작 속에서 추미스의 발자취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강풀의 경우 아예 미스터리심리썰렁물이라는 테마 아래 아파트, 타이밍, 이웃 사람, 어게인, 조명가게등을 차례로 선보이면서 추미스의 대중적 가능성을 증명 해 보였다. 윤태호는 이끼를 통해 본격 스릴러 장르의 대표작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만큼 서사적 긴장감을 구현한 바 있다. 요컨대, 서사웹툰 초기에 등장한 대표적인 작품들이 추미스의 장르적 특징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 웹툰에서 추미스 장르의 부흥을 예고했던 셈이다.

<그림1>카카오웹툰의 강풀 작가 대표작: 강풀의 대표작들은 웹툰에서 추미스의 가능성을 증명해 보였다


현재 그리고 미래

과거로부터 한국만화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추미스의 모습을 살펴보긴 했으나, 여전히 하나의 장르로서 추미스의 존재는 명확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한 사실은 몇 가지 사례로부터 확인된다. 가령, 국내 대표적인 웹툰 플랫폼 네이버웹툰의 경우 서비스 화면 상단에 장르별 카테고리를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서 나열되는 장르 기준으로 에피소드, 옴니버스, 스토리 등을 비롯해 일상, 개그, 판타지, 액션, 드라마, 순정, 감성, 스릴러, 무협/사극, 스포츠 등이 범주화되어 있다. , 여기에서 추미스 가운데 이름을 올린 것은 스릴러뿐이며, 추리와 미스터리는 보이지 않는다. , 현재 가장 많은 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웹툰 플랫폼에서 조차 추미스를 하나로 묶는 기준은 제시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림2>네이버웹툰의 장르별 구분 화면: 웹툰에서 추미스 자체의 장르적 안정성은 여전히 명확해 보이지는 않는다. 


한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매년 발간하는 <만화산업백서>에 이와 유사한 모습이 발견된다. 백서에는 해마다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한 결과가 담겨 있는데, 그러한 결과 가운데 만화 장르 선호도도 포함되어 있다. 헌데 <2018 만 화산업백서>를 살펴보면, 선호 장르 카테고리를 코믹/개그/일상, 순정/로맨스/ 감성, 판타지, 드라마, 액션/무협, 추리/공포, 스포츠, 학습/교양, 성인, BL/GL, 기 타 등으로 나누고 있다. 요컨대, 추리, 미스터리 그리고 스릴러를 하나로 범주화시키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미스터리와 스릴러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하나의 장르로서 특별한 위치에 도달해 있지 않음을 설명하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2021년도에 발간한 만화산업백서에서는 장르 카테고리가 코믹/개그, 판타지/SF, 액션/무협, 일상/감성/힐링물, 순정로맨스, 드라마, 추리/공포/스릴러, 스포츠, 성인, 교양/지식, BL/GL, 기타 등으로 카테고리가 일부 변경되었고, 이중 추리/공포/스릴러가 하나로 묶인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추미스의 장르 안정화가 좀더 강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들은 추미스가 여전히 대중적인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만화 독자 혹은 업계에서도 명확한 기준으로 자리 잡은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다만, 이와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장르로서 추미스에 대한 대중적, 산업적 애정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는 것 또한 요즘이다. 그에 대한 증거로 최근에 잇따르는 추미스 관련 공모전을 거론할 수 있다.


전자책 서비스 플랫폼인 밀리의 서재와 스토리 기반 콘텐츠 전문기업 고즈넉이엔티가 공동 주최한 케이스릴러 작가 공모전은 최근의 추미스에 대한 관심을 반영해 보이는 대표적인 공모전이다. 40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보일 만큼 여러 작품들이 접수되었고, 3편의 당선작을 비롯해 다수의 작가들을 발굴해 냄으로써 스릴러 장르의 붐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학동네가 자신들의 장르소설 브랜드명을 내걸고 진행되는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은 금년에 벌써 여섯 번째를 맞이했다. 이 공모전은 미스터리를 주요 모집 장르로 내세우면서 특히 장편소설뿐만 아니라 단편소설 및 비평 부문까지 모집하는 특징이 있다.

최근에 진행된 창작의 날씨 서치-라이트 공모전역시 응모주제가 추리/ 미스터리, 호러/스릴러, SF요소가 있는 복합장르 소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모은다. 특히, ‘창작의 날씨는 교보문고가 운영하는 신인 작가 발굴육성을 위한 창작 지원 플랫폼인데, 그러한 점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도서 유통브랜드에서도 추미스 장르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추미스 관련 공모전들은 만화가 아닌 텍스트 기반의 스토리를 공모하는 특징을 지닌다. , 추미스 장르에 관한 직접적인 만화 공모를 찾기는 쉽지 않기에 이러한 공모전의 당선작들에 대한 사업화 과정에서 만화와의 접목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림3>제1회 케이스릴러 작가 공모전 포스터. 


그 대표적인 사례로 추미스 소설 공모전을 꼽을 수 있다. 카카오페이지와 CJENM 이 공동으로 주최하여 2016년부터 시작되어 총 5회에 걸쳐 진행된 이 공모전은 공모전 이름에서부터 본격적인 추미스 장르의 대중화를 대변해 보인다. 아 울러, 소설 공모전이긴 하지만, 공모 내용에서 영상화를 포함한 2차 사업 검토를 주요한 내용으로 내세웠다. 무엇보다 기 선정작 가운데 내가 죽였다, 경계인, 블랙아웃등이 이미 웹툰으로 제작되면서, 추미스 장르에서 웹소설-웹툰의 긴밀한 관계를 반영해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최근의 흐름을 통해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추미스 장르에 대한 독자나 업계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 은 시기임을 알 수 있으며, 두 번째로 텍스트 기반으로 창작된 추미스 작품들의 다양한 미디어믹스 경로에서 웹툰과의 접점이 보다 긴밀할 수 있음이 확인된다. 돌이켜 보면, 추미스는 어느 시기라도 독자들 곁에 있어왔다. 다만, 그에 대한 독자들의 지지와 성원이 조금 덜하고 더했던 듯하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더 주목받고 있는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그 경험이 조금 더 쌓인다면 추미스가 하나의 안정적인 장르로 연착륙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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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만화 칼럼니스트
《만화 속 백수이야기》, 《한국 만화비평의 선구자들》 저자
http://blog.naver.com/c_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