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AI로 네트워크와 메타버스 속으로 날아오르다!
만화가 이현세, ㈜재담미디어 전략사업본부 이사 박석환
▲만화가 이현세, 재담미디어 전략사업본부 이사 박석환(좌로부터)
먼저 바쁘신 와중에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만화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현세 선생님을 모를 리 없겠지만 그래도 어린 친구들에게는 낯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두 분 모두 소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현세 만화가(이하 이현세): 대한민국에서 43년째 만화 그리고 있는 만화가 이현세입니다.
박석환 이사(이하 박석환): 안녕하세요. 재담미디어의 전략사업본부 이사 박석환입니다.
Q. 2022년에 웹툰협회에서 만화의 날을 맞아서 이현세 선생님의 ‘표현 자유 수호 공로상’ 수상 기념으로 ‘까치 따라 그리기 천하제일 대회-불후의 까치 챌린지’라는 이벤트를 열만큼 선생님과 까치를 기억하고 즐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요금 근황은 어떠신가요?
이현세: 그 까치 챌린지가 재밌더라고. 그걸 보면서 “내가 하나씩 사야 되겠다.”했어요.(웃음) 너무 재미있어서 출력해서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지금은 세종대에서 정년퇴직하고 석좌교수로 있고, 네이버웹툰에 가족을 잃은 늙은 늑대같은 노인의 이야기인 〈늑대처럼 홀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석정현 작가의 까치 챌린지 일러스트
Q. 이현세 선생님의 만화를 AI로 그리자는 제안을 처음 들으셨을 때 어떤 느낌이셨나요?
이현세: 부정적인 것, 긍정적인 것 두 마음이 충돌했습니다. 일단 부정적이었던 것은 나도 날 잘 모르는데 AI가 날 어떻게 학습한다는 건지 의아했습니다. 그래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라고 여겼던 것은 무한대의 시공간인 온라인 네트워크에 내가 존재한다는 게 굉장히 끌렸습니다. 내가 〈황금의 꽃〉에서 사이버 공간에 존재하는 영혼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내가 죽은 뒤에도 그 무한대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내가 여전히 존재하고, 공명하고, 소통한다는 게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현세 만화가
박석환 이사님께서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박석환: 몇 해 전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라는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여러 시간대의 스파이더맨이 등장했습니다. 기발하다는 생각과 함께 역사성을 지닌 콘텐츠의 힘에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는 ‘까치’와 이현세 선생님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세대가 기억하고 공유하고 있는 정서를 담은 주인공, 서로 다른 시공간과 작품에서 역할을 했던 등장인물들이 한 작품에 모일 수 있다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죠. 마침 제가 한국영상대학교에 있을 때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웹툰 AI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해서 조금 거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여건들을 조사 검토한 후 선생님께 제안을 드렸습니다. 팬으로서 소비했던 콘텐츠를 제작자로서 되살려보고 싶다는 욕망도 컸습니다.
▲박석환 ㈜재담미디어 전략사업본부 이사
선생님께서 왕성하게 활동하셨던 1980~90년대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됐던 시대도 아니고 만화도 디지털 도구로 그리던 때가 아니었는데 이제는 선생님의 SF 만화에서 그렸던 세상이 왔다는 점에서 감회가 어떠신가요?
이현세: 그때는 8비트 컴퓨터와 PC통신을 썼던 시대였잖아요. 이제는 상상도 못한 세상이 왔으니 끔찍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아찔합니다. 하지만 〈천국의 신화〉에서의 구현하고자 했던 판타지, 〈아마게돈〉의 거대한 우주 속에서 수많은 우주선과 별들이 명멸해가는 이야기, 〈남벌〉과 같은 전쟁 대서사시를 AI 기술을 이용해서 그린다면 상상 이상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할 수 있겠지요.
▲이현세 만화가
과학 기술 발달로 지금 만화는 펜 타블렛 도구와 스케치업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그리지만 예전 종이 원고를 그렸던 시절의 연출과 테크닉이 사라지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작가님들도 있는데 이런 문제를 어떤 관점으로 봐야 할까요?
이현세: 아직도 그런 작가들이 많죠. 저 또한 어느 한 부분은 아쉽게 생각하고 있고요. 그러니까 난 이야기꾼이고 이야기 전달자로서 더 재미있고 좋은 이야기를 더 효율적으로 밀도있게 그릴 수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생각하면 약간 부정적인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이런 생각들을 분리하면 AI 기술 자체를 접근할 때 훨씬 덜 불편하지 않을까 합니다. 곧 AI 기술과 대자본을 보유한 기획 제작사가 만드는 작품들이 쏟아질 텐데 외로운 한 마리의 늑대처럼 혼자서 작업해온 작가들만의 영역과 사유의 세계를 고수한다면 그건 선택의 문제라고 봅니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데 대중화, 상용화가 될 AI 기술을 쓴다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니까요. 다만 혼자서 여전히 만화 원고 종이에 먹을 갈아서 붓바람을 휘날리는 작업 방식을 할지는 스스로가 선택해야겠지요. 하지만 서로가 윈윈 하듯 병행할 수도 있잖아요. 영화로 치자면 마블 히어로 영화와 독립영화가 공존하듯 가장 좋은 방법을 양자택일하거나 충돌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한국의 웹툰이 일본의 망가처럼 진지한 문제를 아주 깊숙이 다뤄야할 필요도 없고, 마블 히어로 코믹스나 그래픽 노블처럼 예술적으로 밀도 있게 그릴 필요도 없습니다. 웹툰이라는 분야를 이제 한국이 선점하려는 지금, 대자본으로 움직이는 시장과는 별개로 외로운 늑대같은 작가들 또한 함께 갈 수 있도록 연구해야 합니다.
▲이현세 만화가
만화가 이현세의 세계관과 철학을 학습한 ‘이현세 AI’가 그린 영원한 까치!
이전 인터뷰에서 “내가 죽어서도 내 작품이 계속 창작되겠구나.”라고 말씀하셨는데 AI 기술로 창작 활동이 영원히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현세: 예전에는 포스트 이현세에 대해 말이 많았었는데 이제는 그게 아무 소용없겠구나 싶어요. 인공지능 기술은 통계학과 관련 있다고 하더군요. 이현세가 가지고 있던 세계관과 철학, 사상으로 만든 작품을 인공지능이 학습한 후 특정값으로서 이미지와 스토리를 생성해 내는 것이라면 그건 여전히 이현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의외로 쉽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은데요?
이현세: 그게 그렇더라고요. 전통적인 예술관, 작가관을 고집하면 이런 현실이 어렵지만 그걸 분리해버리니까 너무 쉽더라구요.
▲종이원고 원본과 데이타 저장용 CD들
그럼 현재 AI 기술로 작업하고 있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이현세: 현재 차기 작업 프로젝트로 〈남벌〉, 〈천국의 신화〉같은 작품은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남벌〉을 지금의 그림체로 더 디테일하고 확장된 스케일로 다시 작업할 수도 있지요. 〈천국의 신화〉 같은 경우는 6부에서 위만이 고조선으로 들어가는 데서 끝났는데 AI 가 앞의 그림을 학습해서 그 뒤를 이을 수도 있고요. 스토리도 AI 기술로 만화가 이현세가 가졌던 역사관과 세계관을 다 집어넣어서 새롭게 짤 수도 있습니다. 작업 형태도 여러 작가들과 다 함께 쓸 수도 있고요. 그렇게 제가 미처 완성하지 못했던 발해까지의 긴 이야기를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한번 해보고 싶은 숙제로 남은 거지요.
그러다가 생전에 못 보시고 가시면요?
이현세: 오히려 아무 관계없다 하고 다 내던졌을 때 순조로울 수도 있죠. 자꾸 내 눈으로 확인하려고 하니까 세상이 망가지는 겁니다.(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이 작품만을 AI로 보고 가고 싶다는 작품이 있다면요?
박석환: 아직 특정해서 작품을 말씀드리기는 그렇지만 전작집을 여러 기술과 형식을 적용해 재제작하고자 합니다.
이현세: 여러 가지 워낙 많은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니까요.
이현세 선생님의 작품을 모델링으로 삼았을 때, 어떤 연구와 작업이 진행됐나요?
박석환: 각종 서지정보 등을 종합해보면 이현세 선생님 명의로 발행된 만화도서는 4천여권 규모입니다. 다수의 작품이 여러 출판사에서 새로운 판본으로 출간됐기 때문에 동일한 제목의 작품을 제외하면 약 1600여권 분량이 됩니다. 현재 만화도서로 출간된 작품의 디지털 파일과 웹툰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 파일을 확보했고 이를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는 형태의 데이터셋으로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과거 작품부터 꼼꼼하게 디지털라이징 작업을 해두셨기 때문에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현세: “선생님, 이거는 미리 하셔야 돼요. 이건 가지고 있는 게 좋습니다.”라고 주변에서 그랬거든.
박석환: 그렇게 데이터화해서 CD로 약 400여 장 정도 갖고 계세요. 그래서 저희도 이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습니다.
창작이 중단된 원고도 완성이 가능하다는 건가요?
박석환: 이론적으로는 가능하고 당장 재연할 수도 있습니다. 그 수준이 당장 만족할만하냐 는 것은 고민해봐야 합니다만. AI 기술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과학입니다. 축적된 데이 터로 결론을 추정해서 이미지 컷과 스토리를 생성해 낼 수 있습니다. 축적된 데이터를 기 반으로 적정 값을 추출하거나 추론하는 것이니까요. 예컨대 1980년대의 이현세 선생님은 굵고 강한 펜터치를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재작품에서는 연필선 느낌이 나는 얇고 균일한 굵기의 선을 사용합니다. 변화가 있죠. 인공지능이 그 변화를 추적하고 학습할 겁니 다. 그래서 몇몇 제시어를 부여하면 그에 적합한 결과를 생성하도록 할 겁니다. 변화의 패 턴을 학습한 만큼 그 뒤의 변화도 패턴에 맞춰 추론해 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결과값을 도 출하는 일이 효율적인 수준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분명히 AI 기술을 만화 창작에 잘 활용하면 엄청난 퀄리티를 가진 결과물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기술을 추천하시고픈 동료 작가분이나 기술을 도입해서 보고 싶은 만화 작품이 있으신가요?
이현세: 당연히 있죠. 어떤 작가들은 내 작품이 옛날 그 모습 그대로 남기를 원하기도 해요. 그래서 새롭게 단장하는 걸 싫어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만화는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작업인 만큼 자료수집 측면뿐만 아니라 철학이나 관점이 달라지면서 다시 새롭게 해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 작가들도 분명히 있거든요. 이두호 선생님 같은 경우 〈임꺽정〉을 연재할 당시 신문연재였기 때문에 마감을 어기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포기한 부분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책으로 묶을 때 그런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을 테지요. 아마 이두호 선생님은 채색뿐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부분을 보강하고 싶어 할 거라고 봅니다. 그 외에 권가야 작가의 특징이 완결을 못 낸다는 거잖아요.(일동 웃음) 아마 이제는 그 끝을 내고 싶을 수도 있을 거예요. 옛날에는 본인이 엄두도 안 났겠지만 그림을 가지고 타협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 작가인 내 눈에는 권가야가 표현했던 그 많은 부분들이 얼마나 애를 쓰고 공을 들여서 그렸는지 환히 보이거든. 또 김준범 작가도 지금 기회만 된다면 〈기계전사 109〉와 같은 작품을 그리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해요. 아직은 여러 면에서 시기상조일 수 있지만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재 이 ‘이현세 AI’라는 기술은 어디까지 진행이 됐나요?
박석환: 지금 단계는 선생님의 디지털화된 작품들을 가지고 정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작업은 전체 작품의 이미지를 페이지 단위로 분류해서 각 페이지마다 어떤 요소들이 있는지 데이터적으로 분리하는 작업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그림 컷 속 까치의 얼굴, 까치가 입은 옷, 까치가 운전하는 자동차와 그 배경인 잠실 운동장 등등의 이미지 요소에 이름을 붙이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마치 창고에 쌓인 물건을 크기별, 색깔별로 나눠서 쌓아놓는 듯 이렇게 이름을 붙인 이미지들을 분류해서 나중에 원하는 데이터를 찾을 수 있도록 정제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현세 만화가, 박석환 이사
연구 개발을 위한 기간을 얼마나 잡고 있나요?
박석환: 선생님하고는 5년을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 샘플 작품이 나오는 건 올해부터 나 올 예정입니다. 그런데 그 완성도면에서 기대감이 꺾일 수 있기 때문에 순수하게 AI 기술 로만 작업한 작품보다 AI 기술과 함께 제작팀, 혹은 이현세 선생님과 다 함께 작업한 작품 을 먼저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까지 연구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전혀 예측하지 못한 점은 무엇인가요?
박석환: 한국영상대학교에서 학생들 지도할 때도 같은 고민이었습니다. 과정과 절차를 명확히 하는 것이죠. 과정과 절차가 명확해야 이른바 훈련을 할 수 있고 훈련의 성과로서 기술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예술 분야, 특히 창작의 영역은 그 과정과 절차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거나 보편적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천재들의 영역이기도 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습니다. 지금이라면 작업 공정을 세분화하고 공정별 결과물들을 따로 관리하기 때문에 사용성이 높죠. 반면에 과거의 작업 방식이나 천재들의 작업은 하나의 덩어리, 완성체로 묶여져 있습니다. 스스로도 과정과 절차가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 이를 훈련이나 기술전수의 영역으로까지 이끌어내지 못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인공지능 기술 역시도 유사한 것 같습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이는 그림 AI들은 디퓨전 모델이라고 해서 이미지를 완성형으로 자동 생성하는 방식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중간 과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시어를 입력하면 완성된 컬러 그림을 생성시켜줍니다. 이를 제어하기 위한 사용자 환경이 여러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인공지능도 천재적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터라 과정과 절차를 통제할 수 없고 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이 했을 때 동일한 결과값을 유지하 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극복될 문제이기는 합니다.
▲이현세 만화가, 박석환 이사
이번 AI 기술 개발에 참여하시면서 기술팀이나 엔지니어에게 아까 언급하신 외로운 늑대 스타일의 창작과 함께 하시고픈 말씀이 있으신가요?
이현세: 굉장히 복잡한 문제인데요. 예컨대 연필의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볼펜과 샤프가 발명됐듯이 인공지능 기술이 예술을 집어삼키는 시대가 올 겁니다. 그리고 대자본 중심으로 AI 기술을 활성화하겠지요. 개인이 혼자서 쓰는 기술적 측면과 100명의 기술자가 쓰는 면에서 속도나 밀도에서 분명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대자본으로 만들어진 콘텐츠와 그렇지 않은 창작물이 공존해야 합니다. 수백 명이 만든 영화 〈아바타〉 시리즈가 인기를 얻듯이 〈지옥〉, 〈DP〉, 〈타인은 지옥이다〉도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합니다. 〈슬램덩크〉도 처음엔 편집부가 축구만화로 해보라는 걸 작가가 농구만 화로 밀어붙여서 만든 거잖아요. 그런 작가만의 고집으로 만들어낸 작품도 독자들이 즐길 수 있도록 뒷받침되어야 된다고 봅니다.
박석환: 외로운 늑대가 극강의 기술력을 투입해서 만든 것이 〈아바타〉아닙니까?(웃음)
▲이현세 만화가, 박석환 이사, 박세현 평론가
빅데이터로 AI 창작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IP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다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필요한 작품의 아카이브 기술 개발도 아주 중요할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어떻게 작업하고 계시나요?
박석환: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죠. 그 이름은 책이 되어서 도서관에 꽂혔죠. 그런데 이제는 사람 그 자체가 데이터화 되어서 보존될 수 있습니다. 데이터라는 형태로 네트워크나 메타버스 상에 존재할 수 있지요. 저희는 선생님이 보여주신 ‘이현세 만화 스타일’을 현재의 인공지능 또는 미래의 신기술이 학습하고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변경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현세 AI 모델을 만들기 위한 데이터셋을 구축하는 겁니다. 이현세 선생님이 영향을 받았거나 영향을 준 선후배 만화가들의 데이터셋도 구축하려 합니다. 이현세 만화 스타일 화계도가 데이터 상태로 만들어지고 이를 학습한 모델이 만들어지면 만화나 웹툰 작업은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게 될 것입니다. 저작권에 대한 이슈도 있습니다만 그림 AI 기술은 궁극적으로 캐릭터 IP비즈니스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학습된 모델 자체는 저작권을 지니지 않지만 모델을 통해 도출된 작품의 결과물이 사전에 인지됐거나 등록되어 있다면 당연히 저작권으로 보호받아야겠죠. 보호와 등록을 위해서라도 기존의 자료수집 중심 만화 아카이브 사업은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열람 가능한 자료가 아니라 활용이나 재연이 가능한 형태의 데이터셋 수집이 요구됩니다.
마지막으로 후배 작가들이나 제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이현세: 제자들에게는 그냥 오늘 하루를 즐기라고 하고 싶은데 그걸 즐기는 게 이왕이면 만화였으면 좋겠어요. “당신한테 만화는 뭡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밥이라고 얘기해요. 먹기 싫을 때도 있고, 같은 반찬에 질릴 때도 있고, 건너뛸 때도 있지만 하루 자고 일어나서 아침이 되면 또 배고파서 해 먹어야 하니까. 아마 그렇게 40년 넘도록 재미있게 그리고 있는 비결이기도 하겠죠. 그러니까 즐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결국은 삶을 찾아가는 거니까, 그걸로 충분하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