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까!
만화 창작의 자동화 현황
‘인간 시대의 끝이 도래했다.’ 인기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의 챔피언인 블리츠크랭크를 선택하면 나오는 대사다. 최근 몇 년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기술 발전 속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면서 인간은 전에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인간 문명’이라는 말이 ‘인공 지능 문명’으로 대체될까 하는 두려움이다. 산업혁명기에는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 중 일부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다면, 2022년에는 인간의 존재 이유를 부정할 인공지능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일고 있다.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삶 여러 곳에 쓰이고 있다. 가까이는 구글의 광고와 넷플릭스의 작품 추천, 그리고 멀게는 빅데이터 활용과 분석, 생물학 연구, 신약 개발 등 분야를 넘나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질’에 해당하는 분야, 그 중에서도 예술 분야는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오픈AI의 달리2(Dall-e2), 엔비디아(nVIDIA)의 고갱2(GAUGAN2), 미드저니 연구소에서 공개한 미드저니(Midjourney)와 같은 인공지능 기반 디지털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이 주목받았다. 또한 앤라탄(Anlatan)의 노벨AI(NovelAI)가 해킹으로 인해 오픈소스로 풀려 엄청난 발전속도를 보여주면서 적어도 이미지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상당하고 실 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공포는 무지에서 온다. 한번, 인공지능 그림의 현주소를 짚어보도록 하자.
‘창작’은 인간 고유의 것이냐는 질문
인공지능은 ‘창작’을 할 수 있을까. 국어사전에서 창작은 ‘예술작품을 독창적으로 지어냄, 또는 그 예술작품’을 의미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문학비평용어사전에서 창작은 ‘예술가가 미적 체험을 통해 예술작품을 구상하고 생산하는 활동을 뜻한다. 예술 제작이나 예술창조와 같은 뜻이다. 창작은 독창성과 개성을 중요시하므로 기계 등에 의한 유사물품의 대량생산이나 그 제조과정과는 구별된다. 또한 원작이 있는 모작(模作)이나 모사(模寫), 번안이나 개작 등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미적 대상으로부터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내적 이미지를 객관적인 형식으로 정착시켜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상상의 성격에 따라 예술의 여러 갈래가 나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창작’이란, 인간이 넣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해 별도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미드저니가 생산한 이미지를 보고 충격을 받은 것 역시 이런 창작의 정의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텍스트로 된 지시어를 입력하면 인간이 머릿속에서 그리던 것과 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완성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달리2, 고갱2, 미드저니, 노벨AI등은 다르겠지만 ‘기계가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기계 등에 의한 유사물품의 대량생산’이라는 점은 창작의 정의에서 벗어나지만, ‘독창성과 개성’이라는 점에서는 창작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상업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효율성’을 생각하면, 인공지능이 가지고 있는 효율성은 인간이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다. 우리의 공포는 여기서 기인한다. 창작은 아직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고 굳게 믿어왔던 신념이 흔들리는 순간을 마주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림1>어도비의 ‘코믹 블라스트’ 화면
상용화 눈앞에 둔 인공지능 기술
네이버웹툰은 지난해 인공지능을 활용한 ‘웹툰 AI 페인터’를 공개했다. 선화를 넣고 기준색을 설정하면 자동으로 눈, 머리카락, 입, 옷 등을 모두 구분해 색을 칠해준다. 일부 명암도 스스로 설정한다. 이에 앞서 2019년 셀시스의 클립스튜디오 페인트 역시 비슷한 인공지능 채색을 선보인 바 있지만, 네이버웹툰의 인공지능이 ‘더 웹툰스러운’ 색감을 표현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2021년 ‘스토리테크’ 플랫폼을 천명하면서 ‘오토드로잉’을 지향하겠다고 말했다. 오토드로잉은 작가의 스케치 등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콘티 단계에서 채색까지 완성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별도의 AI 전담팀을 운영하면서 WEBTOONME 등 이미지 합성기술 등을 공개하고 있다.
포토샵으로 유명한 어도비 역시 ‘코믹 블라스트(Comic Blast)’라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프로그램 도입을 예고한 바 있다. 코믹 블라스트는 출판만화를 중심으로 텍스트를 입력하면 칸을 설정해주고, 이야기의 인터랙션을 통한 분기점을 설정할 수 있다. 또한 그림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칸에 맞추어 조정하는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웹툰 분야에서 지금 당장 상업적 용도로 이용이 가능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아직 없다. 다양한 기술을 활용한 프로그램들은 아직 인간의 보조도구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수준일 뿐, ‘창작’의 주체가 되지는 못했다.
인공지능, 그래픽도 스토리도 ‘아직’
현재 주목받고 있는 인공지능은 ‘스토리’ 보다는 ‘그래픽’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스토리 분야에서는 GPT-3을 활용한 3분 40초짜리 단편영화 ‘상품 판매원(Solicitors)’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문 앞에 찾아온 상품판매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흡입력 은 있지만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킹 사건으로 이슈가 된 노벨AI 역시 일종의 스토리를 만드는 인공지능으로 주목을 받았다. 마치 TRPG 게임을 하듯 상황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다음 이야기를 써 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요원하다. 스토리는 개연성과 맥락이 가장 중요한데, 인공지능은 이 맥락과 개연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픽 부분도 충격을 주긴 했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아직까지 완성도는 떨어진다. 특히 최근 주목받은 노벨 AI의 경우 다양한 시도가 쏟아졌다. 특히 ‘소녀를 그려줘’ 시리즈는 ‘바다를 배경으로 소녀가 낚싯대를 던지는 모습’, ‘소녀가 젓가락으로 라면을 먹는 모습’을 그려달라는 요청이 모두 기괴한 모습으로 표현되면서 실용성이 생각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기술의 발전으로 보완될 수 있겠지만, 결국 인간의 리터칭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엘비스 딘(Elvis Deane)이 만든 <GOATS>가 네이버웹툰 북미 서비스의 ‘베스트 도전’과 같은 서비스인 캔바스에 연재됐다. 이 작품 역시 손가락 표현이나 전화 받는 장면, 컷 연출 등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충격을 준 건, 컨셉아트나 일러스트, 그리고 광고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초기 컨셉을 만들 때 인공지능을 활용해 수많은 예시를 만들고 인간이 리터칭해 사용한다면? 인간은 인공지능의 손길이 닿은 그림을 구분할 수 있나? 이런 질문들은 일러스트레이터와 광고분야 종사자들에겐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웹툰을 포함한 만화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만화에서의 창작이란 연속적인 칸과 말풍선을 통해 만들어지는 의미에 있다. 인공지능은 이 연속적인 칸, 그리고 맥락을 통한 의미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아직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반론도 가능하지만, 인공지능을 만화, 그림 분야에서 실질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림2>미드저니 사의 이머지 머징 설명
산적한 과제들: 저작권과 현행법
인공지능이 해결해야 할 첫번째 문제는 바로 저작권자 문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인공지능이 만든 산출물은 저작권 등록이 불가능하다. 다만 인공지능 프로그램 자체를 저작권 등록할 수 있다. 실제로 ‘인공지능 프로그램’ 을 저작권자로 등록하려는 시도는 지금까지 모두 반려 처리되고 있다. 인간이 명령어를 입력해서 만들었다고 해도, 인간은 ‘명령어’에 대한 저작권을 가지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산출물의 저작권을 인정받기 어려울 가능성이 충분하다.
다만 만화의 경우는 꽤나 흥미로운 시도들이 나오고 있다. 카시타노바(Kashtanova)와 미드저니가 만든 만화 〈새벽의 자리야(Zarya of the Dawn)〉의 사례가 그것이다. 원작자인 카시타노바는 미드저니가 그린 작품인 〈새벽의 자리야〉를 자신의 이름으로 저작권을 등록했다. 이 작품의 저작권 등록이 가능했던 건, 원천이 되는 스토리와 컷 연출을 저작권자인 카시타노바가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인간이 인공지능을 도구로 사용한 것이니 ‘인공지능이 완전히 점령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기에 학습 데이터의 문제도 있다. 인공지능이 학습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필수적인데, 이 과정에서 저작권자가 허가하지 않은 이미지가 사용되었을 경우 저작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 비상업적 연구라면 연구를 위해 사용할 수 있겠지만, 인공지능이 상업용 산출물을 내놓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인간의 ‘창작’과 인공지능의 ‘창작’을 가르는 핵심이다. 인간은 여러 작품을 감상하고 훈련을 통해 새로운 창작물을 내놓는다. 인간의 역사에서 이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영향을 받은 것도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는다. 단순히 작품만이 아니라 작가의 다양한 경험이 창작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제작’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오로지 결과물을 만들어낼 목적으로만 학습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만화 창작’의 현주소
이런 실질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만화 창작은 대부분 효율성을 위한 도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데즈카 프로덕션이 2020년 선보인 〈파이돈〉 역시 그렇다. 이 작품은 데즈카 프로덕션과 기오쿠시아, 게이오대 AI연구진 등이 협업해 만든 이 작품은 인공지능이 학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플롯과 캐릭터를 만들고, 인간 스태프가 스토리와 작화를 완성했다. 사 실상 인공지능이 도구의 역할을 했던 셈이다.
지난 10월에는 재담미디어와 이현세 작가가 협업을 맺고 인공지능을 이용한 구작 리뉴얼, 그리고 신규 창작 연구를 함께하기로 했다. 이현세 작가가 그동안 만든 4천여 권의 작품을 인공지능이 학습하고, 구작의 그림체를 현재의 그림체로 바꾸고 채색하는 작업, 그리고 신작 창작에 도움을 받는 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시도다.
▲<그림3>이현세 AI 공동 기술 협약 체결식
이런 시도는 모두 방대한 학습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거장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특징이 있다. 앞서 언급한 저작권 문제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별도의 학습 데이터가 될 만큼 충분한 ‘만화 원작’이 있는 작가의 경우에 가능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현세 작가 역시 이번 업무 협약을 두고 “종이만화 시절에 배경 효과를 오려 붙이는 스크린톤이라는 게 나왔고 디지털 만화 시절에는 각종 3D 도구들이 등 장했다. 그때마다 작가들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었지만 다 극복했다”며, “AI도 결국 작가를 위한 창작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웹툰 분야에서 미래의 인공지능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웹툰에서의 창작은 결국 그림이 아니라, 연속된 그림을 통해 만들어내는 의미, 즉 이야기에 있기 때문이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인공지능이 사용된다면 낙관적으론 과한 작업량에 시달리는 작가를 돕고, 작가는 서사에 더 집중해 훌륭한 작품들이 늘어나는 미래를 그려 볼 수 있다.
하지만 낙관론만이 능사는 아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창작 분야의 도구로 접목된다면 경계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플랫폼에 의한 기술 독점과 효율성의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지는 것이다. 네이버웹툰은 최근 52억원을 토론토 대학교에 투자해 인공지능 공동연구에 나섰다. 구글이나 어도비 역시 압도적인 자금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런 시도들이 결국 플랫폼 종속을 낳게 된다면, 인공지능 기술은 작가의 구원이 아니라 또다른 족쇄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 발전을 종말론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 발전으로 인한 한계를 명확히 알고, ‘인간의 창작’이란 무엇인지 탐구하며 여기에 집중하는 자세, 그리고 인간의 탐욕이 또 다른 인간의 지옥을 열지 않도록 준비하는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