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았지만, 멀어지는 모녀의 계보
이담의 〈똑 닮은 딸〉
네이버웹툰 〈똑 닮은 딸〉은 섬뜩하고도 맹목적인 사랑을 하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다. 여기 완벽해 보이는 엄마와 딸이 있다. 똑똑하고 부유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똑 부러지게 수행한다. 엄마는 딸의 요구를 수용해주며 오히려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미리 챙긴다. 딸 역시 마찬가지다. 엄마가 들어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요구하고 모범적인 생활을 영위한다.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능력있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어떻게든’ 살아내는 딸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불신한다. 나의 눈에 비친 엄마는 세상에서 재단하고 있는 모습으로서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명이는 어떻게든 엄마의 실수나 결손을 찾는 것에 집중하며, 자신이 결격사유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엄마의 기준에 못 미칠 때, 자신 또한 제거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1> 〈똑 닮은 딸〉 Ⓒ 이담
상실의 역설
엄마의 연구실 안, 큰 액자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은 웹툰 전반을 관통한다. 완벽해 보이는 멋진 여교수가 유일하게 상실한 ‘완전한’ 가족의 모습을 상실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가족사진은 ‘완벽한 모습으로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단편적인 장면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소명의 엄마가 내리는 가치판단의 기준점이다. 완벽한 가족을 연출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제거하여 새로운 완벽함을 만드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남편의 실종과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획득한 상실은 오히려 자신을 더욱 완벽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한다. 가장 소중한 가족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맡은 교수의 직책도, 하나 남은 딸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기준값의 재설정
엄마의 기준값은 언제나 ‘완벽함’에 있다. 웹툰 초반에도 이미 언급했듯, 아들 명진이는 자신의 남편을 닮아 이기적이라고 표현한다. 즉, 자신의 남편과 아들은 본인의 기준점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딸 소명이는 다르다. 언제나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소명이는 자신 이 소망하는 착한 자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명이가 지닌 치명적인 결점은 어찌보면 동생보다 더 큰 결격사유일테지만, 자신과 닮았다는 이유로 참작된다.
엄마와 달리 소명이가 지키고자 한 기준점은 언제나 동생에게 맞춰져 있다. 사고뭉치 였지만 마음만은 착했던 동생의 죽음으로 소명이는 엄마와 다른 존재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엄마와 멀어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친구로 인해 꼬여버린 학교생활도 참아낸다. 특히 친구였던 남수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고, 동생과는 달리 ‘살리기 위해서’ 불합리한 상황도 이겨낸다. 하지만 결국 남수는 죽고 만다. 엄마의 블랙박스 속 메시지를 보고, 자신이 원하던 고등학교에 떨어진 후 소명이는 달라진다.
▲<그림2> 〈똑 닮은 딸〉 Ⓒ 이담
돌고 도는 굴레
동네 친구이자 학교 친구인 솔이를 만나면서 소명이는 완벽하게 엄마의 모습을 답습한다. 솔이의 모든 것들을 어떻게든 조정하려고 한다.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신의 기분을 속상하게 만들기 때문에. 엄마가 늘 강조하던 완벽함의 기준을 솔이에게 적용한다. 자신의 마음대로 솔이를 재단하여 판단하고 문제점을 교정하려고 한다. 소명이는 이 모든 과정에서 솔이의 마음을 배제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너무나도 미숙한 솔이는 동생 명진이처럼 ‘배운 적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엄마에게 복수하고 갚아주겠다던 딸은 어느새 완벽하게 ‘엄마’의 존재로 환원되고 만다. 엄마가 딸을 위해서 하는 모든 일들이 사실은 엄마를 위한 일인 것처럼, 솔이를 위해 하는 소명이의 모든 행동은 소명이를 위한 일이다. 모녀는 결국 이렇게나 닮았다.
니체는 말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볼 때,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라고. 소명이는 알지 못한다. 지금 자신이 벗어나고 싶었던 엄마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아직 연재 중인 〈똑 닮은 딸〉에서 소명이와 엄마의 행보는 알 수 없다. 다만 끝까지는 닮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