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만화(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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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진의 〈도박중독자의 가족〉: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깔려 있다. 그러나……

<지금, 만화> 17호 '만화 속 인생 l 명대사 명장면'에 실린 글입니다. <도박중독자의 가족>/글, 그림 이하진

2023-07-25 윤지혜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깔려 있다. 그러나……

이하진의 〈도박중독자의 가족〉

지극히 평범하게 자라왔다고 자신하는 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유난한 점이 있었다. 특유의 결벽성이랄지,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것이 없으면 안 된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집요하게 제거하는 습관이 있었다. 맘에 드는 물건이나 입에 맞는 음식 같은 것이 생겨도 몇 번 반복해서 즐기나 싶으면 이내 그런 적 없다는 듯이 딱 끊어 버리는 것이었다.

가족이나 친구들은 별난 성미 탓이라며 웃어넘겼지만 내 안에서는 이유가 분명한 행동이었다. 비교적 가까운 친족 가운데 중독자가 있었으며, 그로 인해 부모님이 곤란해지는 것을 몇 번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내 기묘한 습관은 나름대로 스스로가 중독에 빠질지 아닐지를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이 습관은 그 친족이 세상을 떠나고서야 차츰 없앨 수 있었다.

그런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이하진의 작품 도박중독자의 가족이 눈에 들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실화를 토대로 각색된 이 작품은 중독자 자체가 아닌 중독자의 가족과 가까운 친족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의 가족 내에서의 위치인데, 홀어머니를 둔 네 명의 형제 중 맏이의 아내이다. 중독자는 형제들 가운데서 셋째로 성실하고 마음씨 착하며 형제들과 우애가 좋던 사람이었다. 그가 도박중독에 빠지게 된 것도 가족들의 자산을 불려주겠다고 대리로 주식에 투자하다가, 큰 손실을 본 것이 계기였다. 화자이자 맏이의 아내인 셋째와 거리감 있는 위치 때문에 객관적 시선이 담보된 때문인지 그의 중독을 가장 먼저 알아채지만, 가장 고통 받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한국 특유의 가족 관계 내에서 며느리는 약한 고리이기 때문이다.

<그림1> 〈도박중독자의 가족〉 Ⓒ 이하진


때문에 도박중독자의 가족에서는 공동의존(co-dependency, 共同依存)’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에서 셋째의 도박중독으로 인해 가족 전체가 고통에 빠지지만, 그 중에서도 형제들의 홀어머니와 맏이의 아내인 의 고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인 는 한국 가정에서 일반적인 여성이 그렇듯이 삶이 가족구성원에게 깊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으로, 스스로의 행복에 가족관계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셋째의 도박중독으로 인한 가족관계의 파탄에 특히 고통 받는다. 여기서 도박중독자의 가족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깔려있다는 영국 속담을 인용하며, 중독자의 가족이 중독자를 더욱 깊은 중독의 나락으로 빠트리게 되는 공동의존의 위험성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어머니가 셋째의 빚을 변제하기 위해 주변에서 계속 돈을 구해오자 셋째는 주식에서 부동산, 명의도용에서 장기매매까지 손을 대가며 도박중독에 더욱 깊이 빠져들고, 셋째의 빚을 하소연하는 시어머니로 인해 며느리인 의 불안 증세는 심해져간다.

<그림2〈도박중독자의 가족〉 Ⓒ 이하진


도박중독으로 인해 파탄난 가족을 보여주는 것에서 끝났다면 도박중독자의 가족은 중독을 경계하기 위한 상투적이면서 교훈적인 작품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켜보는 독자들도 괴로울 만큼의 수렁 한가운데에서 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가족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을 즈음, 19화에서 를 독려하는 아버지의 말은 서사에 주제의식과 함께 묵직한 힘을 더한다. “너는 네가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내가 못한다 불행해졌다 말하지 말고 너 자신에게 물어보거라.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결국 가 셋째의 중독을 그렇게 경계하며 이성적인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공동의존증세로 고통받은 것은, 스스로의 삶에서 주체로 서 있지 못했기 때문임을 깨우치는 말이었다.


작중에서 가 셋째의 도박중독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 린 것으로 보인다. 영웅서사와 같은 악인에 대한 통쾌한 징벌도 없다. 아픈 사람과 그의 가족들이 있었을 뿐, 악인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혹자에게는 고구마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꿋꿋이 견뎌내는 것도 승리의 한 방법이리라. 나를 나로써 살 수 없게 하는 갖은 고통 속에 길을 잃은 누군가의 마음에, 이 작품이 가닿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