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만화(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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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심의 〈환생동물학교〉: 마무리로 처음을 지으며

<지금, 만화> 17호 '이럴 땐 이런 만화 l 겨울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가져가고 싶은 만화'에 실린 글입니다. <환생동물학교>/글, 그림 엘렌 심

2023-07-19 김민서

마무리로 처음을 지으며

엘렌 심의 〈환생동물학교〉

간단한 문항으로 인지기능과 치매 여부를 평가하는 간이정신상태검사(MMSE-K)에서는 자신이 놓인 환경을 잘 인식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지남력파트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제일 먼저 묻게 되어있는 것은 시간 지남력으로 총 다섯 문항이 있다. 나이 많은 환자들에게 MMSE-K 검사를 시행해보면, , , 요일은 물론 오늘이 몇 년도인지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반면 연도를 모르는 분들도 가장 잘 맞추는 마지막 문항이 바로 계절이다. 오랜 시간 병원 생활을 지속하며 흐려진 시간 감각 속에서도 계절만큼은 잊기 어려운 감각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계절로 시간을 센다. 가을이 저묾이라면 겨울은 끝이면서 시작이다. 겨울 여행을 떠난다면 올해의 마무리와 새해의 처음을 짓는 여행으로 만들어 보자고, 끝과 시작을 살펴보는 작품을 가져왔다. 엘렌 심의 환생동물학교.

<그림1> 〈환생동물학교〉 Ⓒ 엘렌 심


이번 생을 끝내고 다른 동물로 환생하기 위해 교육 과정을 거치는 환생 센터. 환생을 보류한 한 인 간이 인간으로 환생할 준비를 하는 동물들이 모인 AH 27반의 담임이 된다. 얌전하고 쉬운 반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AH 27반은 각자의 사연으로 지난 생에 미련이 남아 인간이 되질 못하고 있는 친구들이 모인 반이다. 작품은 AH 27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자신을 붙잡아두는 미련을 딛고 일어나 꼬리를 떼고 인간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동물의 얼굴을 한 예비 인간 친구들은 동물과 인간 어린이 사이 어딘가의 자아로 표현되어 귀여 움을 더한다. 귀여움을 극대화해주는 그림체와 표정 묘사, 틈새마다 끼워진 귀여운 개그만으로도 감상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지만, 환생동물학교에게는 심지어 뭔가 더 있다.

<그림2〈환생동물학교〉 Ⓒ 엘렌 심


작가는 반려동물이 아팠을 때의 기억을 계기로 반려동물과의 이별에 대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나, 작품 속 동물 친구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주인과 이별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인생의 전환점에 놓인 인간의 이야기로도 읽힌다. 강아지 맷이 주인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 슬퍼 환생하는 주인을 따라가려 하자 담임 선생님이 물론 이번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머물고 싶은 것도 이해해. 하지만 그대로 멈춰버리면 앞으로 펼쳐질 멋진 이야기들이 궁금하지 않니?”라며 맷을 달래는 장면 은 작가가 독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챕터가 너무 좋았을 때도,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을 때도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야만 다음 챕터의 이야기로 갈 수 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문구는 대개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늘 올해의 챕터가 끝나는 것이 아쉽고 새로운 시작이 두렵다. 그러나 원하든 아니든 겨울은 가고 봄은 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은 겨울을 잘 놓아주고 봄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다만 멈춰버리지 않고, 어쩔 수 없었던 일에 자책하지 않고, 때때로 내 곁의 사람에게 기대기도 하면서, 이번의 겨울을 보내주기로 해본다. 시간의 흐름이 가슴에 스미는 계절, 올해의 겨울나기를 함께할 작품 환생동물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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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서

만화평론가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신인부문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