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겨울 여행에서 보고 싶은 만화

월헤트의 〈아무튼 로판 맞습니다〉

겨울 여행! 따스한 날씨의 휴양지로 떠나든, 혹은 더욱 추운 곳으로 떠나든, 대개 겨울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비슷할 것이다. 지난 한 해의 후회와 성취감이 뒤섞이는 이 시기에, 가장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곳으로 훌쩍 떠나 위로를 받고 돌아오고 싶다는 마음. 어느 때보다 많은 기대 와 외로움이 넘쳐흐르는 이 계절에 어떤 여행지에서도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웹툰 작품이 있다. 바로 현재 코미코에서 연재되고 있는 〈아무튼 로판 맞습니다〉(이하 ‘암튼로판’)이다.

월헤트 작가의 〈암튼로판〉은 2021년 11월 겨울에 연재를 시작한 웹툰이다. 소위 ‘로판’이라고 부르는 로맨스판 타지 장르의 작품인데, 제목에 걸맞게 로판 장르 특유의 클리셰들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회귀’, ‘빙의’ 등의 소재가 활용되고, 서양풍 가상국가의 귀족들이 등장하며, 화려한 의상과 미형의 인물들 역시 비쥬얼을 뽐낸다. 이제 독자들에게 익숙해진 요소들을 어렵지 않게 조합하여, 처음부터 “아무튼 로맨스 판타지의 정석대로, 아무튼 소설에 빙의 한 번 해주”면서 호쾌하고 시작하는 것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림1> 〈아무튼 로판 맞습니다〉 Ⓒ 월헤트

〈암튼로판〉은 그야말로 로판 장르의 ‘국룰’에 따라 어렵지 않은 설정과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을 낯설지만 익숙한 세계로 이끌어준다. 여자 주인공 ‘리테라 미르토’는 빙의와 회귀를 거쳐 세 번째 삶을 살아가는 인물인데, 이번 삶에서만큼은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북부대공’과 계약 결혼을 진행하고자 한다. 북부대공은 일반적으로 북부 지역을 다스리는 공작을 의미하며, 로판 웹툰에서 주로 예민하고 까칠한 냉미남으로 묘사되는 캐릭터 유형이다. 리테라가 빙의와 회귀 같은 클리셰들을 거쳐, 또다른 클리셰인 북부대공과 첫 대면하게 되는 그때, 예상치 못한 설정이 툭 등장한다. 바로 남자주인공 ‘페루스 테르미네’의 험악한 외모다.

▲<그림2> 〈아무튼 로판 맞습니다〉 Ⓒ 월헤트

로판 남자주인공의 얼굴에 흉터와 수염이 가득하다니! 긴 머리칼에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다니! 〈암튼로판〉에서 가장 독특한 매력포인트는 바로 이 남자주인공 페루스의 설정인 데, 이때 특이한 것은 페루스의 외모뿐만이 아니다. ‘집착 남주’라는 키워드가 세부 장르 키워드로 따로 분류될 만큼, 로판 작품에서는 으레 오만하고 집착적인 남자주인공들이 등장하곤 한다. 특히, 남자주인공이 북부대공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상대와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다소 거칠게 행동하며, 싸늘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북부대공 캐릭터의 클리셰인데……. 페루스는 공손한 자세로 리테라와 다정하게 대화한다. 서로 “당신이 스스로를 좀더 아꼈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하면서.

▲<그림3> 〈아무튼 로판 맞습니다〉 Ⓒ 월헤트

〈암튼로판〉의 주인공들은 서로에게 거짓말하지도 집착하지도 않는다. 오해로 인한 ‘고구마’ 전개 따위는 어림도 없다. 이 작품에서 아름답고 오만한 금발의 황태자는 결코 남자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페루스와 리테라는 늘 서로를 제대로 존중하기 위해 애쓰는데, 가장 진부하고 평범해보이는 이 사랑 방식이 오히려 〈암튼로판〉을 ‘로판 집착남주 로맨스’ 클리셰에서 살짝 벗어나게 만들어준다. 익숙한 장르문법에 기대어 낭만적인 환상을 보여주면서도, 새롭지만 편안한 위로를 선사해주는 것이다.

회귀빙의환생, 즉 ‘회빙환’ 소재에 대한 선호는 현실도피적인 욕망을 반영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암튼로판〉에서 리테르가 겪은 회귀는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마침내 삶에 대한 애착으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에 가깝다. 끊임없이 자신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함께 이겨내면서, 지독한 추위 속에서도 새로운 인간관계와 추억을 쌓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겨울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는 모습과 언뜻 비슷하지 않은가? 그러니, 〈암튼로판〉은 여행 중 가볍게 감상하면서 마음을 따스히 하기에 좋은 작품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