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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로어 올림푸스〉 vs 뮤지컬 〈하데스타운〉: 결말을 알아도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지금, 만화> 17호 '만화 vs 뮤지컬' 에 실린 글입니다. <로어 올림푸스>/글, 그림 레이첼스마이스

2023-07-26 김희경

결말을 알아도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만화 〈로어 올림푸스〉 vs 뮤지컬 〈하데스타운〉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각색하는 일은 어렵다. 이미 결론까지 나와 있고, 그 결말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결말 스포일러가 콘텐츠 감상을 방해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임을 고려하면 위험 부담이 크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좋은 이야기를 발굴해 재창조하는 일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뿌리 내린 이야기들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창작자들은 여기에 참신하고 기발한 설정을 더하고 섞는 스토리 리부트(story reboot)’ 과정을 더해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다. 이를 통해 해당 이야기는 보다 큰 파급력을 갖추고 생동하게 된다.

레이첼 스마이스 작가가 만든 네이버웹툰 로어 올림푸스와 뮤지컬 하데스 타운은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두 작품은 이야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신화를 소재로 가져온다. 여러 지역의 신화 가운데서도 전 세계 사람들이 잘 알고 사랑하는 그리스 신화가 대상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사랑받는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로어 올림푸스죽음의 신하데스와 풍요의 여신페르세포네의 사랑을 그린다. 하데스타운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커플을 비롯해 또 다른 커플인 음유 시인오르페우스, 그의 아내 에우리디케의 사랑 이야기가 함께 흐른다.

두 커플 이야기는 유독 결말 스포일러가 많이 퍼져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하데 스와 페르세포네가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뛰어넘어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는 점, 오 르페우스를 따라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오다 그가 금기를 깨고 뒤를 돌아봐 사라져 버리고 만 에우리디케의 비극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럼에도 로어 올림푸스하데스타운은 이들의 이야기를 가져와 과감히 재창조한다. 하데스타운에서 헤르메스가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노래를 시작한다라고 말하듯, 모두가 결말을 알지만 다시 듣고 싶은 이야기가 이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림1> 〈로어 올림푸스〉 Ⓒ 레이첼 스마이스



낯설고도 익숙한 신, 그리고 인간의 이야기

로어 올림푸스가 소환한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사랑 이야기는 전 세계를 들썩이 게 하고 있다. 이 작품은 2018년 네이버웹툰의 영어 서비스를 통해 처음 공개됐으며, 2020년부턴 국내에서도 정식 연재되고 있다. 글로벌 누적 조회수는 12억뷰를 돌파했으며 미국 만화계 주요 상인 하비상, 아이스너상, 링고상을 휩쓸었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가 이토록 강력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로어 올림푸스를 처음 보면 그 비결을 쉽게 이해하긴 어렵다. 국내 독자들 중 다수는 익숙함보다 오히려 큰 이질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한국 작가의 웹툰에선 보기 힘든 생소한 작화가 주요 원인이다. 이 작품에선 하 데스와 페르세포네를 비롯해 각 인물마다 하나의 상징색을 갖고 있다. 단색을 활용 한 인물 표현 자체도 독특하지만, 색채도 매우 강렬하다. 하데스는 파란색, 페르세 포네는 진한 핑크, 아폴로는 보라색 등이다. 그리스 신화가 가진 우아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강조하기 보다, 각 신들의 개성과 상징성을 부각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인물들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묘사하지 않고, 단순하고 간결하게 그린 것도 이와 연결된다.

회차를 거듭하면서 작화가 익숙해질 때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도 낯 설게 다가온다. 웹툰은 두 인물의 만남에서부터 시작, 서로를 알아가며 사랑하는 과 정을 담아낸다. 이 과정에서 작품은 신화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차별화를 시도한다. 하데스는 차분하지만 냉정한 신, 페르세포네는 경쾌하고 활발한 어린 여신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런 겉모습과 달리 남모를 불안과 고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림2〈로어 올림푸스〉 Ⓒ 레이첼 스마이스


페르세포네가 가진 힘과 그에 따른 부작용, 딸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더욱 구속했던 그녀의 어머니 데메테르, 페르세포네와 인간들 사이에 벌어진 커다란 사건과 이로 인한 트라우마가 여러 회차에 걸쳐 펼쳐지는 식이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의 고통을 어루만져주고 포용한다. 그리고 하데스 역시 어렸을 때 겪은 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를 고백하고, 두 인물은 이 과정을 거쳐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작품은 여기에 재판이라는 극적 갈등과 설정을 더해 두 인물의 고난을 가중시킨다. 그리스 신화 속 다양한 인물과 사건에 담겼던 일종의 영웅 서사, 두 인물의 사랑 이야기에도 접목한 것이다. 웹툰은 이를 통해 위기감을 극대화하고 인물들의 근원적 고통에 다가간다. 또한 고난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상대와 솔직하게 마주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방식을 제시한다.

연대와 협업의 과정도 상세히 보여준다. 웹툰은 신화와 다르게 페르세포네와 아폴로가 잘못된 관계를 맺는 설정을 넣는다. 아폴로의 만행으로 인해 페르세포네는 성적 트라우마를 겪게 되고, 이 고통은 여러 회차에 걸쳐 반복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후 헤라와 에로스 등 페르세포네의 주변 인물들의 연대와 우정으로 진실이 차차 드러나고 페르세포네도 이를 극복해 가게 된다.

로어 올림푸스는 결국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지만, 그 사랑의 결과보다 위로와 치유라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이를 통해 작품은 신화가 신의 이야기인 동시에 곧 인간의 이야기라는 것을 깊이 각인시킨다. 


동일한 소재, 다른 이야기

하데스타운로어 올림푸스와 같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 다. 우선 배경이 되는 공간 설정부터 다르다. 로어 올림푸스가 하데스가 있는 지하 세계인 언더월드와 제우스 등이 있는 올림푸스를 오가며 이뤄진다면, 하데스타운은 지상에서 시작돼 지하 세계로 공간이 전환된다. 극 초반에 지상에 있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만남과 사랑이 중점적으로 다뤄진 다음, 극 중반에 이르러 분위기가 크게 바뀌며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있는 지하 세계가 그려지는 식이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관계를 다루는 시기도 다르다. 로어 올림푸스가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첫 만남부터 사랑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반면, 하데스타운은 두 인물이 이미 결혼을 한 후 관계가 악화된 상황을 보여준다. 하데스의 성격도 두 작품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로어 올림푸스에서도 하데스의 부유함이 부각되긴 하지만, 웹툰에서 그는 커다란 지하 세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경영자 정도로만 그려진다. 경영자로서도 그의 성격은 합리적이고 온화하다.

반면 하데스타운에서 하데스는 자본주의적 탐욕에 사로잡힌 인물로, 지하 세계에 있는 영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광산 개발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페르세포네는 그런 하데스를 보며 괴로워하고 지하 세계에 염증을 느낀다. 그리고 술과 약에 의존하며 버틴다.

이를 통해 뮤지컬은 지상에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을, 지하에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갈등 이면에 있는 노동 문제를 다룬다. 신화 속 이야기에서 단지 사랑이라는 감정적인 부분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와 지역에서나 발생하고 있는 노동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면서도 뮤지컬은 신화 고유의 내용을 충실히 담아낸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깊은 사랑을 오르페우스의 노래로 되살리는 것이다. 두 인물은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들으며 과거 사랑에 빠진 순간을 떠올리게 되고, 다시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림3뮤지컬 〈하데스타운〉


뮤지컬인만큼 음악을 통해서도 신화적 특성을 강조한다. 이 작품은 다른 뮤지컬에 비해서도 음악에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일반 대사는 없고 노래로만 이어지는 성스루 뮤지컬(sung-through musical)’로 구성했다. 또한 재즈를 포함해 포크, 블루스 등 감미롭고도 몽환적인 음악들을 들려주며, 관객들에게 신화 속 세상에 초대된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null)

 

독자와 관객이 최종 수용자이자 생산자

이처럼 동일한 소재, 캐릭터 등을 활용했음에도 로어 올림푸스하데스타운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신화가 오랜 시간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소환되고, 다양한 이야기로 재탄생되는 이유를 두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시도는 최종적인 수용자인 동시에 생산자가 되는 독자와 관객 덕분에 더욱 빛난다. 로어 올림푸스의 독자들은 매 회차마다 댓글을 통해 그리스 신화 원작과 웹툰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소개한다. 그중 변형된 부분을 발견하면 작가의 의도를 분석하고, 그에 따라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해 보기도 한다. 하 데스타운의 관객들 또한 공연이 끝난 후 무대 밖에서 다시 신화 원작과 비교해 보 며 새로운 재미를 느낀다. 이처럼 독자와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로 작품의 마지막은 완성되고 장식된다.

누구나 사랑하고 결말까지 잘 아는 이야기를 불러온다는 것. 그것을 다시 그리거나 노래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두 작품을 통해 깨닫게 된다. 그리고 기대하게 된다. 언젠가 재탄생하게 될 또 다른 멋진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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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