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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찬, 이현석의 〈아비무쌍〉: 아버지가 되는 길

<지금, 만화> 17호 '이런 만화는 밀어줘야 해' 에 실린 글입니다. <아비무쌍>/글 노경찬, 그림 이현석

2023-07-28 한기호

아버지가 되는 길

노경찬, 이현석의 〈아비무쌍〉

가혹한 운명 앞에 내던져진 아버지가 자식들을 기르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그린 무협 웹툰이다. 우리는 어떻게 아버지가 되는가? 그것이 노가장이 보여주는 길이다. 아비무쌍은 구조나 내용적인 면에서 무협 웹툰의 장점들을 적절히 취사선택하고 있다. 북검전기앵무살수등 묵직한 무협의 구조를 따르면서 화산권마등 자기 성장형 무협과 허약선생등 제자 교육형 무협의 구조를 활용하며, 사상최강같은 유머도 놓치지 않는다.

무협 웹툰 주인공은 자신의 욕망 실현을 위해 무공을 활용한다. 노가장의 욕망은 세쌍둥이를 키우는 일, 그들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그는 자식들을 위해 자신이 운영하던 중소기업을 버리고 안정적인 보수와 복지 혜택이 보장된 대기업 사원으로 입사하듯 천회 무사로 취업한다. 화산귀환의 청명이나 나 노마신의 천여운이 자신의 무리를 가르치듯 쌍둥이와 백동이와 천회 무사 들을 훈련한다. 욕망이 자신과 아이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점점 확대되며 그 과정에서 따르는 무리가 생긴다는 점에서 낙향문사전의 손빈이나 불패검선의 송우문과도 닮았다.

무협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다. 비현실 세계의 비현실적 사람들이 비현실적 무공으로 그들의 욕망을 실현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협에 열광한다. 그것은 무협의 욕망이 지금 우리의 욕망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실은 곧 무협의 세계이다. 우리는 대륙을 넘어서는 인터넷 세계에서 경공술을 펼치며 살아간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분야에서 고수가 되려고 자신만의 무공을 연마하는 고난의 과정을 겪는다. 날마다 격전의 현장을 살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협에 열광한다. 무협의 비현실이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고 그들의 무공이 우리의 생계 수단과 다르지 않으며 그 들의 욕망이 곧 우리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무협의 주인공처럼 고수가 되고 싶다.

<그림1> 〈아비무쌍〉 Ⓒ 노경찬, 이현석


광마회귀망나니 소교주로 환생했다등의 주인공처럼 회귀하든 환생하든 고수가 되어 이 물질 만능 시대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다. 그래서 주머니를 털어 로또를 산다. 하지만 아비무쌍의 노가장은 편하게 무공을 얻지 않으며 안락한 현실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그는 날마다 혹독하게 자신을 수련한다. 그는 마존이나 관존이 아니다. 평범한 아버지일 뿐이다. 그래서 그의 고뇌와 갈등과 한계 인식은 우리의 일상과 닮아있다. 그는 날마다 자신을 연마한다. 그래도 마존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대기업 총수가 될 수 없듯이. 노가장의 말처럼 출신 자체가 능력이 되는 세상이기 때문에. 아비무쌍은 지극히 비현실적인 시공간에서 지독하게 현실적인 우리의 초상화를 그린다. 그 초상화는 아버지의 것이다.

아비무쌍은 가족 중 외인으로 밀려나기 쉬운 아버지를 주인공의 자리로 데려온다. 노가장은 모범적인 아버지에 대해 배운 바가 없으나 그런 아버지가 되려 애쓰는 인물이다. 아이들을 위해 침대에 다리를 묶고 잠드는 그에게서 우리는 아버지가 자신의 위치를 견고하게 만드는 방법을 점검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아버지는 아버지. 아버지로 살기 위해 새벽마다 몸을 학대하듯 단련하고, 그 강해진 몸으로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집에 올 때는 활짝 웃는 얼굴로 아빠가 왔다고 외칠 수 있는, 가장 힘겹지만 평범한 아버지. 그것은 박목월이 <가정>이라는 시를 통해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세상에서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반드시 돌아와야만 하는 자리, 여전히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으로 존재하는 자리이다. 그 자리에 아버지로 서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무협으로 그려내는 아비무쌍.

<그림2〈아비무쌍〉 Ⓒ 노경찬, 이현석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에 기초한 세상을 산다. 그것은 자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의 애정이나 헌신을 그리는 이야기는 자칫 길을 잃기 쉽다. 구체적인 그림을 만들기도 부담스럽다. 아비무쌍은 그 힘든 길을 꿋꿋하게 걷는다. 노가장이 이루어낼 성취의 끝이 어떻게 묘사될지 궁금하다. 그를 사랑하는 여쌍화는 감정보다는 의리가 더 중하다며 조모의 말을 빌려 남자의 정이란 그다지 믿을 게 못되지만 남자의 의리는 믿을 만하그건 시작한 순간부터 끝까지가기 때문이라 말한다. 이제 노가장은 의리를 바탕으로 한 애정까지 짊어지게 되었다. 그가 감당할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부디 노가장의 성실한 땀과 정직한 근육이 끝까지 옳은 것임을 확인하고 싶다. 모범이 되는 아버지의 모습을 찾기 어렵고, 아버지가 되기조차 두려워하고 꺼리는 이 세상에서 아빠가 왔다고 외치는 노가장의 천진한 얼굴이 마지막까지 환하게 빛나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