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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협 만화 장르적 특징과 영웅 캐릭터 서사의 변화

〈지금, 만화〉 제18호(2023. 7. 5. 발행) Cover Story 수록기사

2024-01-31 김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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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협 만화 장르적 특징과 영웅 캐릭터 서사의 변화

1. 한국 무협 만화의 장르적 특징

  무협 장르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 문화권에만 존재하는 장르이다. 하지만 종종 장풍, 검기, 경공술 같은 신묘한 무공을 뽐내는 장면 때문에 무협 장르가 판타지 장르로 분류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협과 판타지는 엄연히 다른 장르이다. 판타지(Fantasy)가 공상 혹은 상상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협 장르와 일정 부분 겹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모든 장르는 크건 작건 상상력이 들어간다. 상상력이라는 잣대로 장르를 재단 한다면 SF와 무협을 판타지 장르로 포함시키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무협 장르는 무협 장르만이 갖는 독특한 특징들이 존재하고, 이 특징들이 무협 장르를 규정한다. 통상 무협은 협객(俠客)이나 의사(義士)들의 이야기를 제재로 하는 무타’(武打)를 삽입한 장르의 총칭을 말한다. 여기서 무타란 중국 전통 극에서의 격투를 이루는 말이다. 담천은 무협의 4대요소를 , , , 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란 생애를 바꾸는 만남이고 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말한다. ‘는 폭력, 무공, 쌈질, 전쟁을, ‘은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김재국(2003), 한국무협 소설의 존재 양상에 관한 고찰, 한국문예비평연) 이중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협()이라는 개념이다. 협은 무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협객으로서의 협과 협의(俠義) 혹은 협기(俠氣) 등으로서의 협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협객으로서의 협은 무협에서 주인공이 지녀야 할 소양이다. 그러므로 무협에서의 주인공은 모두 협객이다. 협객이란 일차적으로 주인공이며 무협에서의 주제와 이념적 지향을 지니고 있다.

  한국 무협 만화의 시초로 불리는 신동우의 날쌘돌이(오현리(2001), 한국 무협 만화의 어제와 오늘, 대중서사학회, 대중서사연구, 6)에서는 인술이 등장하고, 특이한 기합을 사용하고, 중국 정통 무협 소설과 마찬가지로 무() 보다는 협이나 의를 중시하는 점이 나타난다. 하지만 날쌘돌이의 서사를 보면 강호를 배경으로 하지 않고 한국이 배경이라는 점에서 본격적인 무협 만화의 특징을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 〈날쌘돌이〉 ⓒ 신동우

  이후 <외팔이 왕우> 등으로 대변되는 홍콩 무협 영화들이 국내에서 히트를 치면서 만화계에서도 무협 만화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됐지만 이 시기 무협 만화들 역시 정통적인 무협 장르의 서사보다는 공중제비를 한다든가 상대를 멋지게 벤다든가 하는 동작을 위주로 묘사한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한국 무협 만화들은 홍콩 무협 영화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했고, 김용 소설이 공전의 히트를 하면서 차츰 중국을 무대로 기, , , 협의 정통 무협 장르의 특징을 갖춰가게 된다.

  앞서 살펴봤듯이 한국 무협 만화의 특징은 첫 번째 홍콩과 대만 무협 영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는 점이다. 무협 장르 자체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던 만큼 그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왕우의 외팔이 시리즈에서부터 서극의 촉산, 용문객잔, 동방불패까지 그 시대에 유행하는 영화의 영향을 받아 무협 만화를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공장체제를 통한 대량 생산 유통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제작되었던 공장제 무협 만화는 일정한 퀄리티로 대량으로 유통되어서 질적으로 큰 호평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무협 만화의 독자층을 탄탄하게 형성하게 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2. 무협 영웅 캐릭터의 시대별 변화

  무협 만화가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한 건 1980년대 이후부터이다. 그리고 그 주축이 되었던 것은 공장체제에서 대량 생산 유통된 대본소 만화였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창작 무협 소설들이 출판사의 지나친 상업성에 의해 인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인기 있는 몇 명의 무협 작가들에게만 의존해서 신인작가를 기르지 못한 결과였다. 창작 무협 소설들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무협 만화가 무협 독자들을 흡수하였다.

  이 시기를 주도했던 작가들은 황재, 하승남, 이재학, 천제황 등이다. 황재는 극화적인 그림체에 코가 뾰족한 만화적 얼굴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주요작품으로는 흑나비시리즈, 소림사 108대협시리즈가 유명하다.

▲ 〈경천동지〉 ⓒ 황재

▲ 〈검신검귀〉 ⓒ 이재학

▲ 〈열혈강호〉ⓒ 전극진, 양재현

▲ 〈해와 달〉 ⓒ 권가야

▲ 〈화산귀환〉ⓒ LICO, 비가

▲ 〈아비무쌍〉 ⓒ 노경찬, 이현석

  하승남은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정교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대표작으로는 목림방, 대마, 대가등이 있다. 주인공 추공과 검신검귀로 유명한 이재학은 독특한 그림체와 현실적 액션으로 큰 호평을 받았고, 영웅탑, 천마혈경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천제황도 이 시대를 대표하는 무협 작가이다.

  이 시절 무협의 영웅 캐릭터들은 전형적인 영웅 서사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영웅은 고귀한 혈통을 타고 나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어린 시절 시련을 겪는다. 하지만 시련을 통해 조력자를 만나고 어려움을 이겨내고 결국 승리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권선징악적 영웅 서사는 협을 중시하는 무협의 세계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서사이기도 했다.

  1990년대로 넘어오면 무협 만화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누어진다. 대본소 만화와 잡지 만화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대본소 만화는 기존의 무협 만화 작가 이외에 무협 소설을 쓰던 사마달, 야설록들이 만화 프로덕션을 만들어 무협 만화를 양산하기 시작했고, 기존의 영웅 서사의 문법을 답습하는 차원에 머물렀다.

  또 하나의 흐름은 잡지 만화에서 무협 장르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전극진, 양재현의 열혈강호와 문정후, 류기운의 용비불패그리고 권가야의 해와 달등은 잡지만화 시대에 무협 만화의 전성기도 열었던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은 기존의 영웅 캐릭터들과는 다른 서사를 보이기 시작했다. 기존의 무협 독자층과는 다른 잡지 독자층에 어필하기 위해 다양한 영웅서사들을 보여주었다. 열혈강호의 경우 기존에는 보기 힘든 19금 코믹 영웅 캐릭터를 보여주었고, 해와 달의 경우 심리 묘사를 통한 철학적 주제를 이야기에 녹여내면서 색다른 영웅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2000년 이후 웹툰 시대 특히 노블 코믹스체제 안에서의 무협 웹툰은 전성기라 할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제작되고 있다. 이런 노블코믹스의 유행은 무협 서사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첫 번째는 비슷한 성향을 가진 영웅 캐릭터들이 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블코믹스 체제 안에 제작되는 무협 웹툰에서 가장 많이는 쓰이는 서사의 소재는 환생과 빙의, 차원 이동일 것이다. 화산귀환은 천마를 물리친 주인공이 죽은 후 백 년의 시간을 넘어 아이의 몸으로 환생을 하여 활약을 펼친 이야기이고, 일타강사 백사부는 주인공이 혈교 최고의 무공 교관으로 4명의 스승과 함께 탈출을 위해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 이후 천음절맥이라는 특이 체질의 시골 무관의 사부로 환생하는 이야기이다. 이 밖에도 광마회귀, 신마경천기, 무당기협, 화산전생, 망나니 소교주로 환생했다등 수많은 노블코믹스 무협 웹툰들이 환생과 빙의, 차원 이동 등의 코드들을 따르고 있다. 이런 빙의나 환생의 서사에서 영웅 캐릭터들은 전생을 기억하는 것을 기본 모티브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적대자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고, 이야기 전개의 모든 과정을 알고 있는 주인공은 전지적 시점을 바탕으로 한 먼치킨적 영웅 서사를 만들었다.

  두 번째는 장르 혼종을 통한 다양한 영웅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비무쌍은 낭인으로 지내던 노가장이 한 여인을 만나 사랑을 하지만 몸이 약했던 부인이 쌍둥이를 낳고 죽은 후 홀로 그 아이들을 키우는 서사로 무협과 육아물을 혼합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노가장은 아이들의 육아에 쩔쩔매는 부성애를 보여주면서 기존의 영웅 캐릭터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세 번째는 무협 로맨스 장르의 출현이다. 무협지 악당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무협지 남주들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방법, 무협지 악녀인데 내가 제일 쎄!작품 등은 로맨스 판타지 장르로 분류될 수 있지만 외형은 무협의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에 무협의 장르로 볼 수 있냐는 점에서 논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비록 작품 수는 적지만 남성 영웅 캐릭터가 주를 이루고 있는 무협 만화에 여성 영웅 캐릭터가 그려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3. 맺는 말

  지금까지 한국 무협 장르의 특징과 영웅 캐릭터의 서사 변화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았다. 무협은 기, , , 협의 요소가 들어가야 성립이 되는 장르이다.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한 개념은 주인공이 지녀야 할 기본 소양인 협과 배경이 되는 강호이다. 협과 강호는 무협 장르를 다른 장르와 구분 짓게 하는 필수 요소이다.

  한국 무협 만화는 중국 무협 소설과 홍콩과 대만의 영화를 영향을 받아가면 서 발전을 해왔다. 또한 공장제 만화를 통해 대량의 무협 만화들을 생산해 냈고, 이를 통해 무협 만화를 하나의 장르로 한국 만화계에 안착을 시킬 수 있었다. 이 런 흐름은 무협 만화 영웅 캐릭터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이후 발 전한 무협 만화의 영웅서사는 고귀한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인물이 갖은 고난 을 극복하고 영웅으로 등극하는 전형적인 영웅서사를 기반으로 한 영웅 캐릭터 를 많이 사용하였다. 하지만 잡지 시대와 웹툰 시대를 걸치면서 이런 전형적 영 웅 캐릭터들은 다양한 시각을 가진 영웅 캐릭터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노블코믹 스가 활성화 되면서 환생, 빙의, 차원 이동 같은 소재를 가진 무협 웹툰들이 제 작되면서 획일한 된 영웅 캐릭터가 제작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 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아비무쌍을 위주로 한 작품들에서는 장르 혼종을 통해 기존에 보여주지 못했던 영웅 캐릭터들도 등장하고 있다는 점, 로맨스 무 협이라는 장르를 통해 여성 영웅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측 면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김재국(2003), 한국무협 소설의 존재 양상에 관한 고찰, 한국문예비평연구

왕몽경, 김용 소설의 인물형상과 유형분석, 대진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우강식, 김용 무협 소설에 나타난 강호의 유형과 특징에 관한 고찰, 중국어문학

오현리(2001), 한국 무협 만화의 어제와 오늘, 대중서사연구

문피아 웹사이트(http://square.munpia.com/boPds_1/1348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