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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협 만화의 양대 산맥을 거닐다 - 〈용비불패〉와 〈열혈강호〉

〈지금, 만화〉 제18호(2023. 7. 5. 발행) Critique 수록기사

2024-02-01 이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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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협 만화의 양대 산맥을 거닐다

- 〈용비불패〉와 〈열혈강호〉

  역사에 등장한 이후 대중문화에서 가장 트렌디한 장르에 오른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꾸준하게 마니아층을 유지하고, 끊임없이 맥을 이어오는 장르가 있다. 유행의 최전선에서 불꽃처럼 타오른 다음 사그라지기보다, 꾸준히 온도를 유지하며 은은하게 타오르는 숯불 같은 장르다. 이 장르의 이름은 ‘무협’이다.

  무협(武俠)은 ‘무(武)’와 ‘협(俠)’으로 이루어진 강호를 기반으로 하는 일종의 판 타지 장르다. 무협의 틀을 닦은 김용(金庸, 1924~2018)의 작품이 한국에서 유행하던 시기를 지나 1990년대 하이텔을 비롯한 온라인 게시판 문화와 함께 발전한 무협은 점차 ‘한국형’ 무협의 틀을 닦아나가게 된다. 바로 그 시기, 혜성처럼 등 장한 무협 만화가 있었다. 바로 류기운, 문정후 콤비의 〈용비불패〉와 전극진, 양재현 페어의 〈열혈강호〉다.

  〈용비불패〉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 그리고 외전이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연재되어 완결됐다. 그리고 <열혈강호>는 1994년부터 연재를 시작해 내년이면 30주년을 맞는 작품이다. 이미 완결된 작품과 현재까지 연재 중인 작품은 사실 비교의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시대를 풍미한 두 작품을 두고 어떻게 이 이야기를 참을 수 있을까?

▲ 〈용비불패 〉 ⓒ 문정후, 류기운

▲ 〈열혈강호 〉 ⓒ 전극진, 양재현

이런 캐릭터가 주인공?

  〈열혈강호〉와 〈용비불패〉는 일반 독자들이 무협 하면 떠올리는 독자와는 조금 다 른 모습으로 시작한다. ‘무’와 ‘협’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때, 무력은 협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협이란 ‘협의(俠義)’를 뜻한다. 간단하게 줄이자면 불의를 보았을 때 참지 못하는 마음,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를 용서하지 않는 마음, 더 넓게는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자를 벌하고자 하는 마음을 뜻한다.

  이걸 알고 있는 독자라면 당연히 주인공은 약자를 짓밟고 손에 얻고자 하는 ‘강함’을 규탄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정의로운 면모를 갖춘 사람일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열혈강호〉와 〈용비불패〉의 주인공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 물론 사람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어딘가 기대와는 조금 다른(?) 캐릭터들이다.

  먼저 〈용비불패〉의 용비를 보자. 어디 번듯한 정파의 촉망받는 제자 같은 것이 아니라, 용비는 현상금 사냥꾼이다. 변변한 줄이 없어 현상금 사냥꾼으로 나섰지만 ‘엄청난 힘을 얻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리라!’ 하는 생각을 하는 캐릭터도 아니다. 용비가 가장 집착하는 건 단연 돈이다. 용비가 여정을 떠나게 된 이유도 신검인 뢰신청룡 검이 숨겨져 있는 황금성을 찾을 수 있는 열쇠인 금화경을 손에 넣었기 때문인데, 그것도 검이 가진 힘 따윈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 정도 이름이 알려졌다면 엄청 비싸겠지?’라고 생각하며 팔아먹을 생각부터 한다. 또, 용비는 ‘압도적인 강함’을 보여주는 데엔 관심이 없다. 최전방 군부대 출신으로 효율적으로 이길 수 있는 만큼만 힘을 발휘해 이기는, 화려함보단 효율을 중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본인 스스로도, 그리고 작가조차 용비를 ‘정의로운 사람’과는 거리가 먼 ‘악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스스로 악인이라고 부르는 주인공이 바로 용비다.

▲ 〈용비불패 〉 ⓒ 문정후, 류기운

▲ 〈열혈강호 〉 ⓒ 전극진, 양재현

  반면 〈열혈강호〉의 한비광은 중원 무림 최고의 권위자인 천마신군의 여섯 번째 제자다. 한비광의 스승인 천마신군은 정파, 사파를 가리지 않고 모든 파벌에 서 ‘초인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정파가 득세해 사파가 멸망하기 직전 혜성처럼 등장해 무림의 균형을 홀로 맞춰낸, 신의 경지에 다다른 인물이다. 마치 그린 듯 이 ‘압도적인 힘이 곧 정의’라는 명제의 현신과도 같은 스승이 인정한 재능을 가진 한비광은 왠지 무협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맞는 인물인 것 같다. 하지만 한비광은 무공에는 관심이 없다. 품속에 뜻이 아니라 춘화(春畵)를 숨기고 다니는 호색한이기도 하다.

  이 주인공들로 무와 협을 논해야 한다니 가슴이 갑갑해진다. 하지만 무협 좀 읽어 본 사람은 안다. 이런 사람이 주인공일 때 진짜 재미있는 작품이 나온다는 걸. 무나 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이 무와 협에 눈을 뜨게 되는 것만큼 가슴 뛰는 순간이 또 어디 있겠는가?

무협이라는 장르 안에서 개인의 서사와 무림의 서사

  국내 만화를 대표하는 무협 장르에 비뚤어진(?) 주인공, 이렇게만 보면 〈용비불패〉와 〈열혈강호〉는 비슷한 작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두 작품 은 완전히 다른 무협의 두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일단 제목부터 살펴보면 그 차이가 눈에 보인다.

  〈용비불패〉는 제목 그대로 ‘용비’의 이야기다. 초반부에는 돈 밝히는 수전노처럼 보이는 용비가 왜 돈을 쫓게 되었는지, 그리고 저마다의 생각과 의지가 있는 존재들이 부딪혀 오는 무림에서 용비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성장하고, 또 한 사람의 인간으로 완성되어 가는지를 그린다. 그 과정에서 저마다의 정의, 무림에 서는 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정파와 사파라는 거대한 집단의 대결 과 거대 서사 안에서 서로 다른 입장과 오해가 개인에게 어떤 괴로움을 주는지, 용비라는 개인의 고민과 분노, 그리고 슬픔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용비불패〉에선 거대 서사는 그저 개인을 위해 예비된 허들일 뿐, 그 자체에 숭고한 가치는 찾기 힘들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용비는 어떤 문파에도 소속되지 않은 현상금 사냥꾼이어야 했다.

▲ 〈용비불패 〉 ⓒ 문정후, 류기운

  그러나 〈열혈강호〉는 말 그대로 ‘강호(江湖)’에 대한 이야기다. 강호에서 펼쳐지는 일들이 한비광의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발현된 한비광이 의지와 행동이 다시 강호에 영향을 미치는, 무림과 강호에 서 살아가는 한비광과 그 일행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 이다. 말하자면 〈열혈강호〉는 이런 이야기를 담아야 했기 때문에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성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캐릭터인 한비광을 주인공으로 담아야 했다.

  때로 무협이라는 장르는 당연히 무림을 배경으로 하고, 또 그 안에서 무림의 일원으로 성장하고 패배하고 승리하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비불패〉와 〈열혈강호〉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무림을 바라보며, 그 차이를 통해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장르란 이야기의 구조가 반복되면서 만들어진 일종의 법칙이다. 때문에 장르 문법이라는 말로 풀어서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무협이라면 정파, 사파와 마교, 구파일방과 각 문파별 권법이나 검법 등 특징이 정해져 있다. 이런 법칙은 때로 제약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독자와 작품들이 이루어 낸 합의이므로, 이러한 틀 안에서는 무엇이든 바꿔도 되고, 때론 그 틀조차 바꿀 수 있다.

  두 이야기의 결정적 차이는 ‘점’과 ‘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이야기가 아니다. 〈용비불패〉의 이야기는 외전을 포함해 이미 완결이 났다. 하지만 그 세계관의 이야기는 <고수>를 통해 한번 더 되살아났다. 그리고 이제 <고수>는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으로 다시 한번 독자들을 찾아가고 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점으로, 그러나 끊이지 않는 신호처럼 캐릭터의 힘으로 세계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열혈강호〉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연재 중인데, 이건 작품 자체가 한비 광의 시점에서 본 세계관의 이야기를 풀고 있어서다. 점이 아니라 선으로 이어지는 〈열혈강호〉의 이야기는 바로 그래서 작가들의 노련미가 더해지며 장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막힘없이 풀어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용비불패〉와 〈열혈강호〉는 무협이라는 장르 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시점을 중심으로 장르의 틀을 자유자재로 비틀었다. 주인공이 협을 행하기 위해 무를 갈고 닦는 정의로운 인물일 당위성도 없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아무 문파의 간판을 깨부수는 무법자도 아니다. 거대 서사 속에서 개인을 조명해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용비불패〉와 개인을 통해 거대 서사를 조망하는 〈열혈강호〉는 모두 협이란 무엇인가, 즉 정의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각자의 입장’이 있음을 작품 전체를 통해 이야기 한다. 정파에는 정파의 입장이, 사파에는 사파의 입장이, 그리고 강자에게는 강자의, 약자에게는 약자의 입장이 있고, 그것을 ‘힘’ 하나만으로 정하는 것도 정의가 아니라는, 어쩌면 무협에서는 물을 수 없는 질문까지 이어가기도 한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이 장르를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까.

필진이미지

이재민

만화평론가
한국만화가협회 만화문화연구소장, 팟캐스트 ‘웹투니스타’ 운영자
2017 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 2019 만화평론공모전 기성 부문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