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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만화를 완성하기 위해 그은 주먹같은 선 하나 – 배민기 작가 인터뷰

<지금, 만화> 제18호(2023. 7. 5. 발행) Interview 수록기사

2024-02-02 지금,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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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만화를 완성하기 위해 그은 주먹같은 선 하나

- 배민기 작가 인터뷰


먼저 인터뷰를 수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네이버웹툰에서 매주 목요일에 무사만리행이라는 무협 사극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 배민기입니다.

작가님께서 만화를 그리시게 된 계기가 고등학교 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라고 들었는데 원래 만화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계속 그림은 그려왔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들어오니까 만화부와 미술부 두 개가 있었던 거예요. 둘 중에 어디를 들어갈까 고민했는데, 미술부는 아침 7시까지 등교해야 했고 만화부는 방과 후 수업이었어요.(웃음) 그래서 아주 당연하게도 만화부로 갔지요.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의 선택으로 지금 이렇게 직업으로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작가님께서는 만화를 그리는 재미라든지 재능을 언제 스스로 깨달으셨나요?

늘 자각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중학생 때 열리는 사생대회나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서 항상 상을 받았었고 전교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리는 친구가 2~3명 있다면 그 안에는 꼭 있었지요. 그런데 고등학생 때 만화부에서 활동하고 문하생 생활로 만화인들 사이에서 지내다 보니까 중학생 이후로는 그림을 제일 잘 그리는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문하생 생활을 어느 작가님한테 시작하셨나요?

레드데블스를 그리신 정기철 작가님과 세이 러브, 스쿨라이프를 그리신 문석배 작가님이 부산 초량동에 다 같이 모이는 사무실이 있었어요. 2 때부터 학교 마치면 그곳으로 가서 오늘은 집중선 10개를 그려서 검사받는 식으로 그리면서 작가님들 작업도 함께 하게 됐습니다. 사실 형, 누나들처럼 지낸 셈이라서 문하생이라고 할 수도 없었지요.

그러다가 조금씩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습니다. 사실 거기서는 그분들이 시키는 대로만 해야 했었거든요. 그래서 만화와 관련된 대학을 가야겠다고 고3 때 마음먹고 부산예술대 만화예술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문하생 생활을 하니까 작업실 안 문하생들의 그림이 비슷해지고 화풍이나 그림체를 닮아가는 걸 보고 나만이 그릴 수 있는 다른 그림을 그리기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좀 다른 그림을 그리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그때의 제 실력으로는 작업실의 선배들이 그리는 정통파스러운 그림을 따라가기가 어려웠었거든요. 그래서 저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서 치열하게 노력했습니다.


제일 처음 만화를 연재했던 건 언제, 어디서였나요?

2008년 초반에 하나포스라는 포털사이트에서 시작했고 메신저로 유명했던 MSN 사이트에서도 활동했었습니다.


예전에는 무명 만화가들이 그런 인터넷 사이트에서 비주류 계열의 만화를 발표하다가 상업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는데 돌아보시니까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전달 방식이 굉장히 공격적이고 정제되지 못했다는 느낌에 조금은 쑥스럽습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그때는 많이 어렸구나하고 느껴지고요. 하지만 반대로 20대의 그 시절이었으니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누구의 손과 입도 거치지 않고 오로지 100퍼센트 내 만화를 그릴 수 있지 않았나합니다. 지금은 아무리 원해도 100퍼센트의 내 만화를 그리기 어려운 상황이니까요.

나만의 선으로 완성할 수 있는 만화를 그리다

작가님의 작품은 무사만리행이전에 스포츠만화 등 다양하게 작업하셨는데 지금의 작화 스 타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 주시겠어요?

데뷔작인 모스키토 신드롬부터 보시면 그 때까지만 해도 배민기만의 그림이 아직 완 성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내용은 좀 그로테스크하게 그리기도 하고, 어떤 건 아주 간략화시켜서 SD(2~3등신의 귀여운 캐릭터 디자인)스럽게 그리기도 했지요. 그렇게 해오다 보니까 요령 같은 게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걸 본 지금 투유드림의 유택근 대표님께서 민기 너는 너무 영리해서 이렇게 요령부리는 쪽으로 가면 좋은 작가가 되기 어렵다. 그러니까 네 몸이 조금 힘들더라도 남들보다 선 하나 더 그어서 공들인 그림을 그려야 훨씬 더 경쟁력이 있지 않겠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인상 깊게 남았어요. 왜냐하면 그때가 여자 야구만화인 내 어깨보다 높이를 들어가기 직전이었거든요. 그전에 했던 몽당분교 올림픽은 이틀에 한 회 차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간략하게 그린 그림이었어요. 너무 편했었죠. 그런데 대표님의 말씀을 듣고 이제 조금 더 어려운 것,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것을 해 보자고 결심한 거지요. 그래서 원래는 대표님과 함께 무협만화를 준비할 계획이었는데 제가 대표님을 설득해서 내 어깨보다 높이를 저 혼자 3화 분량까지 만들었더니 결국 카카오페이지에 연재가 된 거예요.

그래서 유택근 대표님이 전문 시나리오 작가에게 스토리를 맡기고 넌 그림만 그리는 건 어때?”라고 하셔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조기 완결이 됐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재미있었던 작업이었어요. 그렇지만 결과가 안 좋으니까 그냥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나 혼자서 할 걸 후회가 남아서 방황 같은 걸 했지요. 그 작품이 끝나고 1년 넘게 슬럼프처럼 작업을 오래 쉬다가 무사만리행을 만나게 됐습니다. 사실 내 어깨보다 높이를 끝내 고 만화를 그만둘까하는 생각까지도 했었거든요. 만화가 아닌 다른 일을 할 나이도 애매했고 시간이 더 지나면 그마저도 못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무사만리행을 만났는데, 어쩌면 내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내 쪼 대로 마음껏 그려 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운이 좋게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내 어깨보다 높이수라전기처럼 다양한 작업을 하시다가 무협물을 작업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악전고투라는 무협만화를 한 적도 있었고 독가비의 나라라는 사극 액션만화도 하면서 도포자락 휘날리는 그림을 계속 그려왔었습니다. 어쩌면 내 어깨보다 높이몽당분교 올림픽이 저에겐 조금 다른 결이었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면 사극 액션만화와 무협만화를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쌈닭이라는 작품을 하게 되면서 자료 조사나 관련 작업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당시 야후만화에 연재를 하다 보니 여러 곳에서 섭외가 들어왔었고요. 그래서 치우 천왕의 후손이 한반도로 넘어와 나라를 건국한다는 판타지 역사물인 독가비의 나라직도단혼이라는 작품도 하게 됐습니다. 그전에는 역사물에 액션이 가미된 작품이었다 면 이제는 정통 무협에 대한 이해를 해야겠다 싶어서 자료를 엄청 찾아봤어요. 열혈강 호, 용비불패는 물론이고 중국 무협소설인 영웅문시리즈와 소오강호도 봤고요. 그렇게 무협의 표현방법도 배우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서 검기나 장풍 같은 기술을 번쩍 번쩍하게 화려한 액션으로 표현하는 건 박성우 작가님이 대표적인 것 같고요. 또 격투기처럼 오로지 치고받는 합으로 파워풀하게 표현하는 건 박중기 작가님이나 고진호 작가님이 대표적이신 것 같습니다.


무사만리행을 만 3년 동안 연재 중이신데 감회가 어떠신가요?

말씀하신 것처럼 3년을 했다는 건 일단 독자들이 이 작품을 많이 사랑해 주신다는 것의 반증이니까 너무 영광이고요. 그리고 우리나라 최대 웹툰 사이트 중 하나인 네이버웹툰에서 3년 동안 연재를 한다는 것도 저에겐 큰 의미로 남다르게 여겨집니다. 얼마 전에 딸을 낳아서 지금 22개월인데요. 가능하다면 우리 딸이 초등학교 갈 때까지 한 6~7년 정도 더 연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웃음)


무사만리행의 스토리를 쓰시는 운 작가님과는 어떻게 만나셨나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요. 서울에서 작가들 몇 명이랑 소주 한잔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운 작가님도 계셨습니다. 그때 운 작가님이 무사만리행이라는 제목으로 한반도의 무사가 고대 로마 시대로 가서 검투사들과 싸우는 스토리를 구상한 상태였습니다. 스케일도 상당하고 설정도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기록에 따르면 나르시수스라는 콜로세움 소속의 교관이 있었는데 작은 체구의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동양인일수도 있겠다 싶어서 재미있겠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렇게 신인 작가님과 이 작품을 먼저 시작하셨는데 부담감이 심하셨는지 중간에 포기하시게 됐습니다. 그래서 운 작가님한테 같이 해보자고 연락이 왔지요. 처음엔 내가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었는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마저 안 되면 마지막으로 진짜 깔끔하게 손 떼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잘 된 것 같아서 기쁩니다.


무사만리행은 고대 동양과 서양의 서로 다른 문화권과 세계관 설정이 특징인데 운 작가님 이나 배 작가님이 중점적으로 그리고자 하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사실 운 작가님과 만나서 제일 처음 이야기할 때에는 동양과 서양의 무술 차이를 우리 가 만화로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회의감이 들었지만 작업을 진행하면서 각 캐릭터의 출신과 개성을 살려서 표현하게 됐습니다. 최근에 나루와 슈자가 대결을 벌이는데 북아프리카에서 살아왔던 슈자는 사냥에 관련된 무술일 것이고 나루는 검술과 봉술을 쓰는 차이를 그리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세계와 충돌하면서 생기는 재미를 표현하려고 합니다.

동양의 무사와 서양의 검투사라는 개념이 서로 다른데 어떻게 접근하셨고 중점적으로 표현하려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평소에도 무술 액션에 관심이 있어서 자료 조사는 꾸준히 했었습니다. 덕분에 조금 쉽게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지요.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할 때는 주변에서 전문적으로 격투기 훈련장을 운영하는 지인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자문도 구합니다. 좀 더 깊은 내용은 운 작가님의 머릿속에 있겠지요.(웃음)

지금 무사만리행의 배경이 고대 로마 시대이지만 좀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돼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면 신밧드의 모험처럼 페르시아에서 다시 한반도로 넘어오는 이야기도 운 작가님과 함께 구상 중입니다. 그러면 아마 어드벤처 액션물에 가까운 이야기가 될 듯해서 저도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콤모두스 황제나 슈자처럼 개성 넘치는 조연 캐릭터 조형에 대해 좀 더 말씀해 주세요.

이 질문은 저보다는 운 작가님께서 잘 답변해 주실 것 같은데요. 작화가로서 그림을 그릴 때, 슈자 캐릭터는 제가 볼 때 완벽한 왕이었습니다. 아주 밸런스가 좋은 왕의 특징을 갖고 있어서 콤모두스 황제와 상반되는 지점을 그리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감 정적인 표정 묘사보다는 근엄하고 고귀한 느낌을 주려고 했습니다. 나루 캐릭터는 영화 군도에서 강동원 배우가 머리를 흩날리면서 연기하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게 동양 무사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지요. 원래 운 작가님은 영화 무사의 정우성 배우의 거뭇거뭇한 수염에 듬직한 남성을 생각하셨는데 그런 인물은 서양인 캐릭터에서 주로 쓰일 것 같아서 동양인은 조금 작더라도 예쁘장한 형태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무사만리행의 게임이나 아니면 2차적 콘텐츠 사업에 대한 계획이나 염두에 두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그 당시 운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눈 결과, 무사만리행은 게임 캐릭터로도 그 수가 부족 하고 서사의 방향도 단순해서 게임으로 개발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2차적 사업으로 진행한다면 그런 점들을 보완할 수 있도록 더 다양한 스토리와 연출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루가 한반도에서 있었던 거대한 전투를 회상하는 장면도 꽤 중요하게 다뤘었고요. 사담이지만, 전 출판 만화 시절의 작법을 먼저 익혔기 때문에 지금의 세로 스크롤 웹툰에서 대규모의 전쟁 장면을 표현하는 게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여유가 생기면 동료들이랑 함께 세로 스크롤 연출로 대규모의 급박한 장면 연출을 연구하고 싶습니다.


무사만리행의 캐릭터 설정이나 공간 배경에 대한 설명을 보여주는 내용도 재미있는데 어떻게 올리시게 됐나요?

처음에는 팬 서비스 차원으로 극 중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을 그냥 스케치로라도 조금 보여주자는 생각이 제일 컸고요. 근데 이제는 어쩌면 독자분들이 등장인물들이 내용상 어디서 어디로 옮겨가고 있고 콜로세움 어디쯤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이해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순수하게 정보전달을 위해서 올렸고요. 왜냐하면 스마트폰 특성상 그림이 작아지고 보기가 어려워지면서 적어도 이런 형태에 서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 정도는 보여줘야 연출 의도나 숨은 재미를 알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무사만리행의 독자 반응은 어떠하고 댓글을 챙겨보시는 편인가요?

, 댓글은 꽤 많이 챙겨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댓글로 전체 스토리나 그림의 작풍 자체를 수정하지는 않습니다. 운 작가님도 댓글로 인해서 스토리의 방향을 바꾼 적은 없다고 하셨고요. 저는 댓글에서 나루가 너무 잘생겼다.”, “나루가 너무 예쁘다.”고 하니까 자꾸 예쁘게 그리게 됐어요. 그걸 보고 너무 여자처럼 예쁘기만 하다며 반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잽싸게 수정한 기억이 있어요. 또 황제의 인기가 너무 좋아서 댓글끼리 서로 농담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즐겁습니다. 가끔 악플이 달리면 아무리 칭찬이 많아도 그것만 기억에 남는 데 지금은 잘 되고 있어서 크게 영향을 받진 않아요. (웃음)

재능 있는 만화가들이 넘치는 부산경남의 만화잔치를 꿈꾸다

부산경남만화연대의 전 회장님으로서 어떻게 만화 단체를 만드시고 운영하시게 됐나요?

예상외로 부산은 수도권을 비롯한 다른 지역보다 아주 훌륭한 만화적 재원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1990년대 당시에는 아마추어 만화 동호회가 아주 많아서 합동 전시회를 열면 서울문화사, 학산출판사, 대원씨아이 같은 3대 출판사가 내려와서 지원금을 줄 정도였지요. 만화방 시절부터 부산에서 활동하셨던 선배 작가님들도 계셨고 부산예술대학 만화학과의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있어서 부산 경남 지역에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우리 지역만의 만화 단체를 생각하게 됐고 남정훈 선생님, 김태현 선생님 등 선배 작가님들이 리더처럼 활동하셨지요. 그래서 그분들을 따라서 단체를 꾸리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희가 준비한 행사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만화가 단체의 이사분들이라도 참석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단 한 분도 오지 않으셨습니다. 만화가협회 산하 부산 지부도 있었지만 유명무실한 상태여서 더욱더 우리 지역만의 만화가 단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렇게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지자체와 업체의 관심도 받게 됐고 다른 지역의 만화관련 단체들도 우리를 벤치마킹하고 있어서 자부심도 있습니다.

부산웹툰페스티벌도 사실 첫 회 때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못할 줄 알았어요. 누가 보러 오겠냐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한번 열심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의자도 직접 옮기고 무대 설치 옆에서 보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요.


웹툰 작가로 활동하시면서 가장 즐거웠던 점과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진짜 즐거웠던 것도 너무 많고 힘든 것도 많아서 뭐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웃음) 전 어렸을 때 꿈이 되게 많았거든요. 선생님도 되고 싶었고 TV에 나오는 연예인도 되고 싶었고 국회의원도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쩌다가 웹툰 작가가 되면서 그런 경험들을 다 해 보고 살아요. TV에도 출연하고 라디오에도 나가고 강의도 하게 됐습니다. 이런 경험을 계속 하다보니까 웹툰 작가가 되길 정말 잘했구나, 내가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걸 다 해보고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갑자기 탁 들더라고요. 그런 것 들이 제일 즐거운 것 같아요. 힘든 점은 너무 오랫동안 돈을 못 벌었던 거요. 그래서 제가 아이를 늦게 낳았고 아내한테도 너무 미안해요. 또 거의 30대 중후반까지 제대로 된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못 살아서 인맥 관계도 끊기고 삶의 구멍들 같은 게 막 파여 있더라고요. 지금은 조금 괜찮아져서 구멍들을 좀 메우려고 노력하지만 그런 것들이 힘들었습니다. 작가로서의 삶이 엄청 즐겁다고 말하면서도, 작가로서의 삶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한다는 게 아이러니하네요.


비수도권에서 만화가이자 만화 단체장으로 활동하시면서 정부나 관련 기관에서 꼭 해줬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부산경남만화연대의 대표로 활동했을 때는 아주 단순했어요. 우리가 워낙 가진 게 없다 보니까 그냥 우리가 모일만한 장소, 일종의 베이스캠프 하나만이라도 만들어주면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입주 작업실 정도만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게 시작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20대의 작가님들의 고민은 또 다를 테지만요.

이제 만화·웹툰으로 창작 지원금이나 그와 관련된 지원 제도가 여러 지역에 마련됐습니다. 그런데 요즘 몇몇 작가들이 이 지원금만 얌체처럼 노리고 지원하는 겁니다. 그래서 기관들이 이런 지원자들을 걸러내기 위해서 서류작업이나 심사과정을 복잡하고 까다롭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이 지원금이 절실한 실력 있는 작가들은 지원 자체를 포기하더라구요. 그 때문에 부산정보산업진흥원에서 간담회를 할 때도 지원제도가 필요한 훌륭한 작가들을 위해서 지원 서류의 간소화 같은 의견을 꾸준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지원제도의 정보에 항상 귀 기울일 만큼 만화가들이 적 극적이지 않아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각 지역마다 만화단체들과 함께 지원제도의 설명회를 자주 열어 준다면 더 많은 작가들이 더 오랫동안 만화를 그릴 수 있 지 않을까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일단 작가로서의 계획은 가능한 오랫동안 연재활동을 하고 싶고요. 진짜 대박 안쳐도 되니까 오랫동안 행복하게 만화 그리면서 살고 싶은 게 제 꿈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계획은 점점 나이가 들다보니까 웹툰 플랫폼이나 업체에서 절 어려워하는 게 보이더라구요. 그러면 이제 나도 작가생활을 오래 못하겠구나 싶어서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생각했던 스토리들을 다 정리해서 내가 아닌 다른 작가님들을 섭외해서라도 더 많은 작품들을 오랫동안 만들 수 있는 웹툰계의 JYP를 만들고 싶어요. 나도 작품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작품을 프로듀싱하며 함께 만화를 그릴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꼭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마크 러팔로가 했던 역할처럼요. 그런 행복한 만화가로 오랫동안 만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필진이미지

지금, 만화

만화 전문 비평지 <지금, 만화> 의 편집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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