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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 열풍을 다시 짚어보기
-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을 통해 K-콘텐츠가 고민해볼 것들
한국 영화 대신 일본 애니메이션을 택한 관객
올해 상반기 황폐한 한국 극장가에 두 편의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의 흥행 열풍이 화제였다. 2023년 5월 31일까지 KOBIS(영화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누적 관객 수는 3월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이 550만 명을 돌파, 1월의〈더 퍼스트 슬 램덩크〉가 467만 명으로 박스오피스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이 기간 상영된 한국 영화 중 막 개봉한 〈범죄도시3〉을 제외하면 〈교섭〉과 〈드림〉 단 두 작품만 1백만 명의 관객을 넘겼고, 아직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한 편도 없다.
이럴 때 으레 나오는 말, ‘한국 영화의 위기’. 그런데 한국 영화 100년 역사는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매년 몇 편의 영화만 관객을 독식하고 나머지는 조기 종영되는 환경에서 ‘천만’이란 허울을 좇아 스타, 드라마, 웃음, 감동을 뒤섞은 종합 선물 세트식의 기획이 난무했다. 사실 꾸준히 극장을 찾는 관객 수는 한정되어 있는데, 거의 기적이 일어나야만 달성 가능한 손익분기점이 목표인 고예산 영화들끼리의 경쟁은 매번 제로섬 게임으로 치달았다. 관객 점유율은 높아도 흥행 성공작은 없는, 애초 지속 가능성과는 거리가 먼 불안한 시장이 한국 영화다. 팬데믹을 치른 몇 년 사이 한국의 영화, 드라마, 아이돌 음악 등이 국제영화제, OTT, 플랫폼을 통해 ‘K-’로 수식되며 한류 문화의 세계적 위상이 대단해졌다. 그런데 정작 엔데믹이 왔는데도 자국 콘텐츠를 대표한다는 영화시장은 또다시 위기다. 극장 요금 인상과 고물가에 위축된 관객들의 경제적 사정 등은 잠시 탓해볼 변명에 불과하다. 창고엔 아직 개봉을 못 한 영화들이 남아 있는데, 앞으로 투자를 받아 제작에 들어갈 신작의 수는 크게 줄어들 거라는 소문이 들린다. 〈범죄도시3〉이 시장의 기대와 예상대로 흥행해도 상황이 달라질 건 없다.
2023년 한국 영화의 위기는 자칫 ‘K-콘텐츠’ 시장 전반에 드리울 총체적 위기의 전조가 될지 모른다. 관객들은 왜 한국 영화를 선택하지 않는가? 한 마디로 ‘볼 게 없기’ 때문이다. K- 콘텐츠를 세상에서 제일 빨리 판단하고 거르는, 어쩌면 가장 기대하지 않는 소비자가 바로 한국인들이다. 이들이 왜 한국 영화 대신 일본 애니메이션을 선택하고 열광했을까? 흥행 요인과 분석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언론과 전문가가 많이 다루었다. 필자는 업계의 녹으로 연명하는 한낱 작가인 동시에 전능한 소비자의 입장에서, 금번 현상을 나름의 시각으로 해석해 보려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이 당연한 지난 복선들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은 결코 갑작스러운 결과가 아니다. 일본 문화 개방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오리지널 작품들은 100만 명에서 300만 명의 관객을 꾸준히 동원해 왔고, 미국 작품이 점령했던 역대 흥행 애니메이션 TOP 10 순위에도 마침내 오른 것이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2016)이었다. 2017년 개봉 당시 신드롬을 일으키며 2주간 박스오피스 1위, 최종 386만 명의 관객을 기록해 국내 개봉 일본 영화 흥행 1위의 기록까지 세운 전적이 있다. 100만 명을 넘기기도 힘든 일본 영화에 비교하면, 일본 애니메이션은 애초부터 상당한 관객 동원 능력을 갖고 있었다. 꾸준히 증가해 온 관객 수는 곧 그만큼 한국 관객 이 일본 애니메이션에 잘 적응해 왔음을 의미한다.

▲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애니메이션 포스터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2020)의 세계적 흥행도 언급해야 한다. 2020년 당시 확산하던 팬데믹 상황과 일본 내수 비중을 고려하더라도 그해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찍은 〈귀멸의 칼날〉이 다음 해 국내 박스오피스에서도 순위를 차지한 건, 기존 원작의 팬덤을 주요 관객으로 하는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더 이상 마니아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주 요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명탐정 코난〉, 〈원피스〉 등등 일본 만화 IP의 프랜차이즈를 어 릴 때 TV판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으로 소비하고 성인 팬으로 성장해 신규 극장판을 관람하는 방식의 기존 관객층을 넘어,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의 경우 이제 OTT를 통해 더욱 쉽게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접한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이 극장판을 찾게 되었다. 이렇게 신규 팬의 유입은 원작만 화 〈귀멸의 칼날〉의 재소비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세계에서 ‘아니메’라 따로 불리는 일본 애니메이션은 오랫동안 고유한 영역을 차지하며 그 형식과 스타일이 하나의 대중매체 갈래로서 거의 양식적으로 기호화되었다. 통상 애니메이션 관객이란 크게 디즈니/픽사로 대표되는 미국산 3D CG 애니메이션을 선호하는 쪽과 일본산 2D 아니메를 주로 보는 쪽으로 나뉠 것이다. 이 두 영역의 소비층은 때때로 파괴적인 화제성을 갖춘 히트작이나 검증된 IP의 극장판이 등장하면 경계를 넘어 함께 모인다. 〈겨울 왕국〉(2013)이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2023) 등이 그런 작품이다.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의 흥행은 앞으로 만화책 원작 아니메 역시 이런 이벤트가 가능하다는 하나의 예시 다. 아니메를 보는 부류를 ‘오타쿠’로 한정하는 편협한 관점은 곧 무의미해질 것이다. 재밌 는 작품, 성공한 IP엔 팬덤이 아닌 누구나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또한 SNS와 유튜브는 콘 텐츠에 대한 큐레이션을 더욱 용이하게 만든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 시간의 검증을 거친 클래식의 재창조
출판 만화 〈슬램덩크〉는 〈드래곤볼〉과 함께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대표적인 명작만화로 손꼽히는 전설의 ‘클래식’이다. 원작이 연재된 90년대에 걸쳐 10대와 20대를 통과한 이들에겐 더욱 각별한 IP인 〈슬램덩크〉는 당시의 농구 붐과 함께 실시간으로 시작과 끝을 목격했던 청춘의 추억으로 각인되었다. 특히 이 만화는 인기에 의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길을 가는 대신 과감한 미완의 서사로 마무리되었기에 더 오랜 여운으로 남았다. 이제 거의 고유명 사급인 이름의 강백호, 서태웅, 송태섭, 정대만, 채치수 등의 캐릭터는 우리가 그들의 끝을 영영 보지 못했기에 영원한 젊음으로 계속해서 지금을 살고, 명승부마다 남긴 명대사들이 오늘날까지도 회자되곤 한다. 하지만 미완의 서사는 프랜차이즈로서 확장성에 한계가 있었다. 특히 TV판은 도리어 만화책의 정지 그림이 더 역동적으로 보일 정도로 애니메이션화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치부되었다. 이런 탓에 원작을 더욱 신성시하는 경향마저 있었고 작가가 다시 후속 내용을 만화로 그리는 것 외엔 애니메이션이든 실사화든 팬이 인정할 재창조는 불가해 보였다. 역시 TV판을 싫어한다고 알려진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직접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연출을 맡는단 소식에도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 게다가 원작의 마지막 경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고 하니 이전에 못 읽은 새로운 이야기를 보게 될 일은 없어 보였다. 그저 팬들을 위한 ‘추억팔이’에만 머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 〈더 퍼스트 슬램덩크〉 애니메이션 포스터
그러나 결과적으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의심스러운 선택을 모두 성공시켰다. 3D 모델로 구현한 움직임은 농구 경기의 사실성을 재현하면서 그림 자체는 만화의 정제된 톤을 유지했다. 원작에서 개인의 사연이 비교적 덜 전해졌던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중심 관점을 재배치한 것이 전에 못 본 신선함을 더했다. 특히 강백호 의 “왼손은 그저 거 들 뿐”이란 명대사를 묵음으로 처리해 오랜 독자를 일순간 만화책을 읽던 그 시 절로 보내버린 연출은 개인적으로 화룡점정이었다. 수십 년 전부터 결과를 뻔히 알아 온 독자임에도 경기의 마지막 몇 초엔 진심으로 긴장했다. 그 전설의 산왕전이 관객으로선 실제로는 최초로 목격하는 이벤트가 된 것이다.
이렇게 처음 본, ‘첫 번째’ 슬램덩크는 예전 독자들을 위한 완벽한 팬 서비스 정도로만 소비되지 않고 새로운 팬까지 유입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었다. 그동안 익히 들어 명성은 알았지만, 막상 전 31권의 원작 만화책을 시작하기는 부담스러워했던 ‘뉴비’들에게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오랜 시간의 검증을 이겨낸 캐릭터와 원작의 매력을 전해준 강력한 미끼였다. 팝업 스토어는 굿 즈를 사기 위한 신구 팬들의 줄로 장사진을 이루었고, 스테디셀러였던 출판 만화 〈슬램덩크〉 단행본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간만에 출판 만화계의 커다란 활력이 되었다. 이 현상에서 특히 주지할 만한 점은 한일 관계가 첨예한 이슈로 정치적인 대립을 하는 중임에도, 양국 팬들이 문화는 완전히 분리 시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문화의 힘은 국적을 쉽게 초월한다.
〈스즈메의 문단속〉 - 젊은 세대가 스스로 선택한 거장의 귀환
이렇게 문화와 국가 이슈를 분리해서 대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국 문화에 대한 자신감 이 반영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검열과 탄압과 불법 해적판 등을 거쳐야만 대중문화를 겨우 누릴 수 있었던 지난 세대에 비해 정식 라이센스 상품들로 길러져 15년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보며 자란 지금 세대는 분명히 다른 성격을 지녔다. 미디어나 언론을 통해 기성세대가 폭력적일 정도로 깊이 없이 뭉뚱그려 호출하는 소위 ‘MZ’ 세대는 속된 말로 ‘국뽕’에는 호응하나 ‘애국심’으로 자국 작품을 택해주지 않는다. 마음이 꽂힌 작품에는 n차 관람을 마다않지만, 기본적으로 문화 상품에까지 가성비를 추구하기에 ‘망작’에는 소비할 돈도, 시간도 없다.

▲ 〈스즈메의 문단속〉 애니메이션 포스터
이렇게 현 세대가 ‘믿고 보는’ 작가 중에 신카이 마코토가 있다. 그의 작품은 일관된 테마와 함께 매 작품마다 퀄리티와 작품성이 꾸준히 보장되어왔다. 1세대 오타쿠가 경외한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젊은 관객에겐 아니메 할아버지일 뿐이다.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아키마저 세기말 오타쿠에게만 아이콘일 뿐 이젠 낡았다. 더구나 이들에 비해 신카이는 커리어의 최고작을 거치며 한국 관객과 실시간으로 공명해온 엄청난 차별점이 있다. 2014년에 세월호 참사를 목격하고 2017년 〈너의 이름은.〉을 보았던 10대 관객들이 〈날씨의 아이〉(2019)와 팬데믹을 거쳐 이제 성인이 되어 2022년 〈스즈메의 문단속〉을 본다. 이 흐름을 통해 신카이 마코토는 기성세대가 아닌, 젊은 세대가 직접 발견하고 스스로 세워 올린 현대의 거장으로 등극했다.

▲ 〈너의 이름은.〉 애니메이션 포스터
신카이 마코토는 이제 브랜드다. 감독의 이름이 곧 작품을 택하는 이유다. 2023년 상반기 국내 박스오피스 1위이자 역대 일본 영화 흥행 1위인 〈스즈메의 문단속〉은 신카이 브랜드의 최종 완성 형태다. 그에게서 기대한 것들을 기대한 대로 알차게 보여준다. 익숙한 그림체와 성격의 캐릭터가 초자연적 재난으로부터 실제 세계와 소중한 인연을 구하는 이야기는 문제 해결 방식과 과정이 이전 두 작품과 너무 비슷해 동어 반복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이 지점이다 싶을 때 타이틀이 뜨고, 여기 바로 이곳에서라는 생각이 들 때 보컬이 부르는 주제곡이 흐르며, 감정을 고양시킨 절정에는 어김없이 눈물이 흐른다. 원하는 것을 얻은 관객은 만족한다.
한국관객에게 ‘신카이 마코토’라는 브랜드가 제공하는 것
최근 신카이의 ‘재난 3부작’이 한국에서 총합 관객 천만 명에 도달했다. 굉장한 기록이다. 각각 동일본 대지진과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면서 관리하는 정부와 책임지는 어른의 부재를 목격한 한일 양국 젊은이들은 팬데믹이라는 전 지구적 이벤트를 거쳐 신카이의 애니메이션에서 어떤 위로를 받는다. 현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신카이의 작품은 결국 판타지다. 실재하는 재난과 불가해한 재앙을 판타지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매번 지극히 단순하게도 두 사람이 서로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요즘 이렇게도 이성애적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작가가 또 있을까?
그런데 한국 영화에서 이런 식의 문제 해결을 보여주면 어떻게 될까? 정의가 상실된 세계에 서 덜 나쁜 자가 더 나쁜 자에게 받은 원한을 갚으려 그 어떤 방법이든 동원하는 일이 익숙한 한국 영화의 세계관에서 이런 식의 판타지적 해결은 납득되기 어렵다. 한국 영화는 한국이라는 세상의 현실과 거리를 두지 못하며 관객이나 작가도 마찬가지다. 반면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일본이 배경이며 실사도 아닌 애니메이션이다. 한국 관객 입장에서는 그의 애니메이션이 주는 재미와 감동을 똑같이 느끼는 동시에 일정한 거리두기가 가능한 것이다. 신카이의 애니메이션 속 일본은 한국 관객에겐 현실 문제를 공유하되 감정적 도피를 할 수 있는 장소로 기능하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유독 민감한 부분일 수 있지만 그래도 논해야 한다. MZ만큼이나 깊이 없이 성찰 없이 폭력적으로 쓰이는 개념인 ‘PC’, 즉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에서 신카이의 애니메이션이 여전히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캐릭터에 다른 인종, 추함, 악인 표현이 거의 없고 아니메에서 흔한 성별 고정된 상투적인 표현들을 굳이 바꾸지 않는 신카이의 작품에서 이성애적 인연이 세상을 구원하는 테마가 반복되는 점을 지지하거나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 관객에게 인종이나 젠더 문제가 SNS에서 이슈인 작품을 본다는 것은 곧 논란에 직접 뛰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도 인종과 젠더 논쟁은 서로 반대하는 주장자들의 혐오 섞인 민낯만 드러낼 뿐 건설적인 결론으로 잘 향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분명한 피로감이 존재한다. 신카이의 작품에는 다수가 익숙한 기존의 일상 세계를 무너트리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있다. 이성애자가 다수인 대중이 그의 작품에서 일종의 안정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인연을 구하기 위해 세상의 재난마저 과감히 내버려 뒀던 〈날씨의 아이〉는 신카이가 가장 멀리 나아갔던 지점이다. 〈스즈메의 문단속〉는 한 발짝 뒤로 후퇴하여 지극히 안전한 결말을 선택했다.
반복되는 위기 속에서 K-콘텐츠가 고민해 볼 것들
앞서 본 바와 같이 올해 일본 애니메이션이 흥행한 현상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콘텐츠의 지속에 있어 곱씹어 볼 것은 일본 만화/애니메이션/게임 IP가 기존의 원작 팬덤을 유지하고 신규 유입을 확장하는 부분이다. 미국이든 일본이든 시장에 소 비자가 끊임없이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프랜차이즈다. 이들은 프랜차이즈를 만들고 지속하는 일을 수십 년씩 해오며 안정적인 기틀을 만든 반면, K-콘텐츠는 미디어믹스 자체가 활발하지 못하다가 웹툰 원작 영화의 붐과 OTT 드라마의 후속 시즌 등으로 이제 막 본격적으로 시작한 셈이다.
지난 시절의 고예산 한국 영화는 흥행에 성공해도 프랜차이즈가 되어 꾸준히 이어지는 일이 드물었다. 처음 기획부터가 일회성 오리지널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범죄 도시3〉가 올해 최초의 한국 영화 흥행작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만 봐도 프랜차이즈의 힘을 간과할 수 없다. 〈존 윅〉처럼 캐릭터의 힘은 세계관 확장과 속편을 가능케 하고, 관객은 마음에 드는 캐릭터의 서사와 맥락을 지속적으로 보길 원한다. 이런 프랜차이즈들이 기본적 으로 시장을 지속시켜 주는 동안, 새로운 가능성과 다양성을 품은 작품들도 관객을 만날 기 반이 조성될 수 있다.
국내 웹툰/웹소설 원작 IP의 영상화 대호황에도 정작 프랜차이즈는 부재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IP 확장의 이유를 찾기 힘든 각색이 비판받는 경우도 있지만 소비자가 원작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알아도 굳이 다시 찾아보려 하지 않기에 매체 사이 시너지가 일어나지 않고, 원작이나 영상물이나 서로를 일회성으로 소비하는 것에 그친다. 원작 풀은 넘치지만 영상화는 소수의 성공일 뿐, 대부분 너무 많은 작품들 속에 몰개성하게 머물다 완결 후엔 곧바로 잊히는 경우가 대다수다. 인스턴트로 반짝 소비되고 끝나버리는 원인에는 웹툰/웹소설의 소재나 연출부터 한국 영화/드라마 등 기존 테마와 서사 문법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범람하는 작품의 양만큼 과연 질적인 향상도 있는지, 제작사든 작가든 모두가 플랫폼의 하청 노동자로만 기능하는 시스템의 이면을 계속 들여다봐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역시 소재와 장르의 다양성이다. 현재 국산 SF소설이 유래없이 발전하고 있는데 영상화 기획은 잘 이어지지 않는 듯해 개인적으로 아쉽다. 웹툰/웹소설 미디어믹스로 드라마/영화 말고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볼 때도 된 것 같다. 결국은 흐름을 읽고 시류에 영 합하기보다 앞서나가려는 영민한 기획자의 의지가 필요한 영역이다. 관객은 이미 세분화 되었다. 한국 영화의 위기는 오직 천만의 꿈만 좇던 기획 영화의 오랜 거품이 걷히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지금의 관객은 겉만 그럴듯한 종합 선물 세트를 원하지 않는다.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한, 가성비가 명확한 개성적인 장르에서 프랜차이즈의 기운을 품은 작품과 거장의 싹수를 지닌 작가가 새롭게 탄생할 것이다. 뻔한 말로 글을 맺는다. 위기는 늘 기회의 다른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