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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 사건의 경과와 향후 과제 - 제2의 〈검정고무신〉 사건을 막기 위한 제언

<지금, 만화> 제18호(2023. 7. 5. 발행) Issue 수록기사

2024-02-02 김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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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사건의 경과와 향후 과제

- 2검정고무신사건을 막기 위한 제언

  2023년 상반기, 만화계는 검정고무신의 비극으로 많은 충격을 받았다. 검정고무신을 그 린 이우영 작가가 지난 3월 별세하면서, 그 원인으로 검정고무신을 둘러싼 저작권 분 쟁이 지목되었다. 검정고무신사업자들이 작가들을 상대로 벌인 민사 소송은 현재 제1심 만 약 4년이 넘도록 진행 중이다. 고인은 이 소송의 1심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부당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많은 언론들이 앞다투어 이를 취재하고 보도했다. 국회의원들도 이러한 비극에 대한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며 관련 법률안의 제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부는 예술인 권리 보장법상 불공정 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불공정 계약 방지를 위한 저작권법률 지원센터를 개소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는 검정고무신캐릭터의 공동저작권 허위 등록 사실을 조사하면서 직권말소 여부를 검토 중이다. 만화계에서는 이우영작가 사건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사건의 수습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고인이 만화계와 세상을 향해 던진 메시지는 여전히 적잖은 여파를 낳고 있다.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 지도 벌써 3개월여가 지나고 있다. 이제는 이 사건의 경과를 반추해서 정리해 보고, 무엇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 지 그 방향을 모색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저작권법률 지원센터 개소식, (사진출처; 문화관광부)

검정고무신분쟁의 배경

  만화 검정고무신1992년부터 2006년까지 소년챔프에서 연재되면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단행본으로 45권까지 출판되었을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도 네 차례나 제작되 었다. 이우영 작가는 이 작품으로 1995년 제5회 한국만화문화상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 〈검정고무신〉 ⓒ 도래미, 이우영

  만화 검정고무신의 연재가 종료된 후, 현재 분쟁의 상대방인 사업자 장 모 대표(이하, ‘사업자라고만 함)가 작가들에게 접근해 왔다. 사업자는 작가들에게 검정고무신의 주요 캐릭터 들을 가지고 사업화를 해 보겠다는 취지로 제안했다. 그러면서 원활한 사업을 위해서 캐릭터에 대한 지분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작가들을 설득했다. 작가들은 사업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사업자는 2008년경 만화 검정고무신의 주요 9개 캐릭터에 대하여 34%의 지분을 가진 공동저작자로 등록된다.

  사업자는 이 과정에서 작가들과 사업권 설정 계약서를 작성했다. 1차로 2007910일 사업자의 개인 사업체인 홍진P&M과 이우진 작가가 작품활동을 통해 파생된 모든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및 그로부터 파생된 2차적 사업권을 포함한 사업권 일체를 설정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2차로 2007101, 역시 사업자와 이우영 작가, 그리고 글작가 이영일 작가가 1차 내용과 같은 취지의 사업권 설정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사업자는 2008626, 이우영, 이우진, 이영일 작가와 다시 3차 사업권 설정 계약을 체결한다. 3차 사업권 설정 계약서의 내용 자체는 1차와 2차 계약서 내용과 비슷했다. 그런데 이 계약서에는 향후 분쟁의 씨앗이 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표현 내지 조항들이 추가되었다.

  우선 첫째로 3차 사업권 설정계약서에 계약 당사자로 사업자의 이름이 등장했다. 1, 2차 계약서의 경우 사업자의 개인 사업체인 홍진P&M만 계약 당사자였는데, 3차 계약서에서는 홍진 P&M에게 사업권을 설정해 주는 상대방으로 작가들뿐 아니라 사업자가 기재되었다.

  둘째로 계약서 전문에 사업자가 검정고무신원저작권의 권리를 보유하고있음을 명시 했다. 기존 1, 2차 계약서에서는 원저작권자가 이우영, 이우진, 이영일 작가임을 전제하고 있었는데, 3차 계약서에서 사업자도 만화의 원저작권자가 된 것이다. 사업자는 위 3차 계약 체 결 시점에 캐릭터 지분의 공동저작자로 등록된 사실을 명분으로 삼고, 만화 저작물 자체의 권리자임을 전제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로 이렇게 검정고무신원저작권자의 지위를 득한 사업자가 검정고무신의 모든 사업 에 대한 권리를 위임받는다고 명시했다. 사업자는 단계적·순차적 계약을 통해 사실상 만화 검정고무신의 사업화 관련 권리를 포괄적으로 모두 양도받았을 뿐 아니라, 그 권리를 당사자들 중 사업자만이 행사할 수 있도록 설정해 두었다.

  한편, 사업자는 이러한 3차 계약까지 체결한 후 작가들과 다시 손해배상청구권 등 양도각서라는 이름의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 계약서의 핵심은 작가가 사업자에게 일체의 작품활동과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에 대한 권리를 양도하고, “추후 검정고무신작품 활동과 관련된 모든 업무는 홍진P&M을 통해서 진행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이우영 작가에 따르면, 사업자는 작가들에게 자신이 검정고무신9개 캐릭터만을 통해 사업을 진행할 것이고, 만화 창작 활동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며 위 계약에 서명하도록 설득했다.

  그러나 위 계약서의 구체적인 기재 내용에서 확인되다시피, 실제로는 캐릭터뿐 아니라 만화 저작물 전체는 물론 2차적 저작물에 대해서까지 포괄적으로 사업화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양도각서를 통해서는 검정고무신과 관련한 모든 창작, 사업활동은 사업자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지 못하게 묶어 두었다. 그렇게 검정고무신작품은 작가들의 의도와는 전혀 관련 없는 방향으로 모든 사업화권리가 사업자에게 위임되었던 것이다.

불공정 계약과 계약자유의 원칙 사이

  이러한 검정고무신계약이 불공정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현재 이 사건을 심리 중인 법원과, 예술인 권리 보장법에 따른 불공정 행위를 조사하고 있는 정부의 몫일 것이다. 참고로 필자는 이 계약들의 불공정성이 상당하다고 본다. 계약서에 검정고무신의 저작재산권을 활용한 사업의 종류와 조건이 구체적으로 명기되지 않았고, 이러한 포괄적 권리가 사업자에게 영구적으로 사실상 양도되면서도 그에 따른 금전적 대가가 지급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업자는 캐릭터 창작 사실이 없음에도 캐릭터의 공동저작자로 허위 등록 후, 이를 명분으로 삼아 만화 저작물 자체의 권리자임을 전제로 사업화 계약을 체결했다. 불공정한 계약서를 통해 작가들의 창작행위를 막고, 작가들의 동의 없이 캐릭터 사업의 범위를 넘어서 만화 저작물을 이용하여 무분별하게 사업화를 하는 과정에서 창작자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사정도 고려되어야 한다. 물론 법적으로는 작가들이 계약서에 서명한 이상, 이 계약은 일단 유효하게 성립한 것으로 본다. 당사자가 자유롭게 선택한 상대방과 그 법률관계의 내용을 자유롭게 합의한 것으로 보고, 법은 그 합의를 함부로 무효로 선언하지 않는다. 이른바 계약 자유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검정고무신사건에도 과연 계약 자유의 원칙을 우선하여 적용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업자와 작가 간 계약 정보 불균형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을 구성하는 법적 용어 자체는 작가들이 보기에 매우 생소하다. 저작자, 저작권자, 사업권, 2차적 저작물 작성권, 양도, 부여, 행사, 이의 등 각양각색의 법률적 용어가 들어간다. 작가입장에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 유불리를 따진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러한 계약서의 초안을 만들고 상대방에 제시하는 쪽은 대부분 사업자다. 때문에 사업자는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 사업을 위해 권리를 양도받을 것인지 내지 이용 허락을 받을 것인지, 어떻게 매출을 발생시키고 2차 사업화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계약서에 반영시킨다. 이미 계약서에 나온 용어의 의미와 권리 변동의 효과가 무엇인지 등을 알고 작가와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반면 작가가 사업자처럼 계약상 용어 등을 다 파악해 이의를 제기하고, 수정 조항을 제시하고 협상까지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사업자가 만화 검정고무신의 저작재산권을 양도받은 사실이 없음에도 3차 사업권 설정 계약서 전문에 자신을 원저작권의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기재하였을 때, 해당 표현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분쟁 가능성을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제도적 개선뿐 아니라 계약 문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

  이 비극적인 사건 이후 법·제도적인 개선 방안에 대한 많은 제 안들이 나오고 있다. 저작물에 대한 포괄적 양도 금지와 저작 물 이용에 따른 추가 보상 청구권 등을 담 은 저작권법개정안이 발의되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공정한 콘텐츠 유통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금지행위 유형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문화산업 공정유통법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한 후 법제 사법위원회에서 심의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만화·웹툰 분야 표준계약서를 전면 개정 중이고, 불공정 계약 방지를 위한 저작권법률지원센터를 개소하여 창작자들에 대한 법률지원을 시작했다.

▲ 〈검정고무신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의 장례집회

  법·제도의 개선을 위한 행동과 시도들은 분명 유의미하다. 그러나 개선의 방향이 사업자들 에 대한 금지와 제재에 맞추어지는 것 역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 이용 허락만이 옳고 저작권 양도는 틀리다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 사업자는 악()이고 창작자는 선()이라는 이분법적 시각도 경계해야 한다. 사건 일방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만 중심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대립 구도를 고착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창작 환경까지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만화·웹툰 콘텐츠 종사자들은 그간의 분쟁과 시행착오들을 거치면서 나름의 자정 노력들을 경주해 오고 있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가 되고, 지각비라는 이름으로 작가에게 부당한 페널티를 부과하던 계약문화가 사라졌다.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대가 없이 포괄적으로 양도하는 계약 유형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번 표준계약서 개정을 통해서는 작가의 휴재권 보장, 정산 내역에 대한 근거자료 제공 의무화, 2차적 저작물 사업화 과정에서도 작가에게 사전 고지 또는 동의를 구하도록 하는 조항 등이 신설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요컨대 콘텐츠 업계 종사자들 간에 공정하고 상생할 수 있는 계약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추세는 분명히 있다.

  ‘2의 검정고무신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만화·웹툰 업계 종사자들 간 사회적 합의라고 본다. 적어도 만화·웹툰 저작권 계약에서 이런 방식과 조건으로 계약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공통의 인식과 합의 말이다. 우리 모두 이러한 비극을 막지 못한 데에 대하여 같이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하는 데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웹툰 콘텐츠 업계의 사회적 합의안으로 다음의 세 가지 방안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첫째, 저작재산권을 포괄적으로 양도한 계약은 분쟁 가능성이 높으므로 창작자와 사업자 모두 계약 조건이 지나치게 불공정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포괄적으로 양도하면서, 별도의 대가 지급과 구체적인 행사 조건도 설정하지 아니한 형태의 계약은 불공정성이 높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미 관련하여 공정거래위원회도 20183월에 콘텐츠의 2차적 저작물 사용권을 포함한 권리까지 설정한 것은 불공정하여 효력이 없으므로, 사용 권리를 설정할 땐 별도 계약을 체결하도록 시정한 사실이 있음을 참 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콘텐츠 사업화에 따른 구체적인 내역과 조건을 작가에게 고지하고, 이에 따른 수익 정산 내역 및 근거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저작자의 알 권리 측면에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그간 계약서에 관련 근거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또는 사업자 측의 영업비밀이라는 등의 이유로 공개가 거부되거나, 일부 공개하더라도 그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아서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업화가 되면 저작물 권리를 가진 저작권자들과 이윤을 분배하는 것이 기본이다. 때문에 저작권자에게 어떤 식으로 사업화를 하고, 얼마의 매출이 발생한 것인지 등의 전반적 절차를 알려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절차다. 계약서에 이와 관련한 문구가 있든 없든 당연한 과정이고, 이는 저작권자가 가지는 정당한 권리라고 본다.

  셋째, 예술인 권리 보장법에 따른 권리침해 조사 권한과 절차에 실효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예술인 권리 보장법은 제13조를 통해 불공정 행위의 유형을 제시하고 예술인의 권리에 대한 보호를 시작하였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그리고 같은 법 제29조 및 제34조에서 정부로 하여금 예술인 권리침해에 대한 조사와 시정명령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다만 현행 조항만으로는 정부의 권리침해 조사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고, 조사의 세부 절차와 수단도 구체화 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가령 피조사자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거나 자료 제출 등을 거부할 때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수단 등이 마땅치 않다는 한계가 있다. 예술인 권리침해 행위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 및 권리구제 수단을 마련하여 법령 및 시행령 개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필진이미지

김성주

- 법무법인 덕수 파트너 변호사
-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저작재산권법 전문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