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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일’
- 라마의 〈내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이들에 관한 뉴스가 범람하는 요즘, ‘극단적 선택’이라 는 용어를 명확히 쓸 필요가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벼랑 끝까지 내몰린 이들의 죽음을 ‘선택’이라고 할 수 없음을 피력한 문제 제기였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갖는 영향을 고려해 극단적 선택이라는 우회로를 사용해 왔지만, 자살을 자살로 더욱 명료하게 드러내야 문제를 명확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더 이상 회피할 수도 없이, 자살은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거나 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한다는 뉴스 기사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한국 사회의 자살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를 만큼 만성 문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자살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자살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우울’이라는 감정을 줄여보기 위해 사회, 문화, 경제, 의학 등 각 분야의 연구자들이 매달려 연구하고 있음에도 해답은 여전히 깜깜하다. 개인이 겪는 우울의 감정은 100이면 100, 다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을 파악할 수 없기에 결과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자살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으니,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은 주변인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이다.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면, 자살 하고자 하는 이들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징후. 그것을 ‘자살 징후’라고 한다. 평소와는 다른 행동과 말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던 메시지. 웹툰 〈내일〉은 이런 징후를 포착하는 존재들의 이야기이다.
내일 없는 자들의 ‘내일’
2017년부터 네이버웹툰에 연재되기 시작한 라마 작가의 〈내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승’과 죽음 이후의 공간인 ‘저승’, 그리고 ‘환생’에 이르는 불교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다. 여기에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독점기업인 ‘주마등’이 삶의 순환을 운영한다.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균형을 유지하던 이 세계에, 자신의 수명을 다 태우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자의 수가 늘어나면서 문제가 생긴다. 이승을 살던 이들이 저승으로 왔다가 다시 환생해야 하는데, 자살자들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인원을 수용해야 하는 지옥에도, 그리고 혼령을 인도하는 환생 시스템에도 문제가 생긴 것이다. 자살자들은 운명적으로 다음 생에도 자살할 확률이 높아지고,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마등은 ‘위기관리팀’(이하 ‘위관팀’)을 꾸린다. 저승사자로 이루어진 위관팀의 목표는 자살 예정자의 자살을 막는 것. 이들은 어플 ‘레드라이트’를 통해 자살 예정자를 감지한다. 주마등의 연구팀에 의해 개발된 어플 ‘레드라이트’는 우울 수치가 높아진 사람을 찾아내고, 이때 위관팀이 이들 인생에 개입해 자살을 막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 〈내일〉 ⓒ 라마
그러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자살 예정자’에게 ‘내일’의 희망을 되찾아 주는 존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저승사자’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저승사자(혹은 차사)는 망자의 혼을 저승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대개는 이승 사람들의 내일을 뺏는 존재이기에 공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들은 다르다. 사람을 살리는 일. 내일을 찾아주는 일. 그것이 사람 기준으로 내일이 없는 위관팀 저승사자들이 하는 일이다.
나와 너의 ‘오늘’
이야기는 취업준비생 최준웅이 예기치 못 한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시작된다. 위관팀이 자살 예정자를 구조하는 과정에 최준웅이 개입하게 되고, 한강 다리에서 추락하면서 혼수상태에 들어선 것이다. 사고로 인한 수명 단축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대로 두면 그대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을 터. 이에 위관팀 팀장인 구련은 주마등의 사장인 염라와 타협점을 찾고 최준웅을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하기로 한다. 위관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도 한 상황이었다.
자살을 막는 일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자살하려는 순간 등장해 영웅처럼 자살 예정자를 구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의 기운을 감지하고 오래도록 주변에 머물러야 한다. 자살 예정자가 있는 곳 주변인으로 잠입해 우울 수치가 치솟은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학교 친구나 회사 동료, 혹은 이웃이 되어 자살 예정자 주변을 맴돈다.
▲ 〈내일〉 ⓒ 라마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이 작품에서 자살은 타고난 운명과 상관없는 것으로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타고난 수명이나 운명과 상관없기에 우울의 원인을 해결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자살을 자살 예정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 방법은 결국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의 말을 건네줄 수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래서 위관팀의 작전은 늘 성공했다. 현대 사회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는 최준웅과 오랜 시간을 버텨오며 ‘내일’의 희망이 절실한 구련과 임륭구의 바람이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따라가면 학교폭력, 입시 지옥, 외모지상주의, 성폭력 피해, 악플, 성 소수자 등 사회 구석구석에 자리한 문제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이야기는 ‘자살 예정자를 발견→해결 방법 모색→ 해결’이라는 간단한 구조를 반복하지만, 그럼에도 연재 시작 이후 6년이 넘는 시 간 동안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 있다. 즉, ‘나 혹은 너’와 같은 ‘우리’의 단면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고작 몇 마디 말
자살 예정자의 마음을 돌리는 일 자체도 쉽지 않은데, 사실 더 큰 걸림돌은 주마등 내 위관팀을 탐탁지 않아 하는 이들이다. 오랜 기간 저승에서 시간을 보낸 이들에게 자살은 죄이기에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인도관리팀 팀장 최중길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관팀의 실패를 기다리며 자살자의 영혼을 거두기 위해 늘 주변을 맴도는 최중길에게 옥황은 자살하려는 이들을 그토록 증오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물었다.
“고작 말 몇 마디로 살아갈 힘을 얻을 거면서, 어찌 쉽게 죽음을 선택하는 것 인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명을 다 살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최중길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자살을 선택했다고 여기는 사회의 인식이 반영된 부분이기도 하다.
“그 간단한 몇 마디를 듣지 못해 죽음을 선택하는 자의 심정은 어떻겠느냐.”
옥황은 되묻는다. 사람을 죽음으로 모는 이유가 고작 몇 마디 말 때문이라면, 반대로 그 몇 마디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 아닐까. 작품 속 위관팀이 하는 역할이 그것이다. 자살 예정자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의 말 몇 마디를 건네는 일. 그들의 주변에서 귀를 기울이고, 징후를 포착하여,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는 일.
물론 세대를 가로지르는 자살 문제를 당장 몇 마디 말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줄어들지 않는 자살률의 수치가 이를 답해준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사소하게 여겨지는 우리의 이야기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어플 ‘레드라이트’가 없이도 내 주변인의 징후를 알아챌 수 있다면, 우리가 모두 위관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인간만이 그들의 ‘내일’을 희망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나’이자 ‘너’이기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 〈내일〉은, 그래서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고작 몇 마디 말로도 충분히 알아챌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