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그냥 성장하지 않는다
- 원동 〈타락도시〉
서기 21XX년 가상의 대한민국, 타락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곳에는 인간에게 압도적 힘을 부여하는 미지의 물질 ‘파츠’를 신체에 장착한 채 폭력조직 ‘대정회’의 ‘사냥개’로 살아가도록 세뇌당한 다섯 명의 아이들이 있다. 다섯 아이들 중 하나인 길자는 여느 때처럼 대정회의 명령에 따라 사람들을 해치다가 생각한다. 누구보다 강한 자신과 아이들이 “왜 저런 머저리들 말을 고분고분 따르고 있는지.”
▲ 〈타락도시〉 ⓒ 원동
비정한 서울에도 아이는 자란다
원동 작가의 웹툰 〈타락도시〉(카카오웹툰, 2022년 7월 19일~연재중)가 그려내는 21XX년의 서울특별시는 비정하다. 정부 기관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강남’이라는 일부 지역 외에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며, 그 외의 지역은 힘이 있는 자가 권력을 휘두른다. 사람들은 각자의 욕망과 생존에 충실하다. 철저하게 힘의 논리에 따른 디스토피아적 미래라고 할 수 있겠다. 길자는 이러한 도시의 질서에 순응하고 대정회의 사냥개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자신과 아이들이 대정회의 그 누구보다 강하다는 것을 의식한다. 그리고 압도적인 폭력으로 대정회를 쑥대밭으로 만든 뒤 아이들과 함께 자유를 찾아 떠난다. 나라 실세들의 모임 ‘클랜’이 대정회 회장과 손을 잡고 아이들을 잡아들여 파츠를 회수하면서 아이들과 헤어지게 된 길자는 홀로 도시의 뒷 세계로 도망친다.
주어진 자리를 스스로의 의지로 벗어난 길자에게 도시는 가혹하다. 클랜에 잡혀간 아이들을 되찾고 대정회 회장과 클랜에게 복수할 기회는 요원하다. 인간 이상의 힘을 내게 해주는 파츠가 있어도 대정회 외의 세상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던 길자가 홀로 뚫어내기에는 사회의 틀은 너무 견고하다. 그러나 도시에서의 상실과 새로운 만남은 처음으로 길자에게 무력감과 분노, 그리고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알려준다.
▲ 〈타락도시〉 ⓒ 원동
그런 의미에서 〈타락도시〉는 성장담이다. 이 이야기의 서사적 배경을 의식한다면 견고한 수직 체계의 사회적 틀이 바닥으로부터 일어나는 균열로 인해 전복되어 가는 혁명 서사일 것이다. 그리고 서사의 중심에 길자의 대정회 회장과 클랜에 대한 복수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복수극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과거 전쟁의 유산인 파츠와, 신체적으로 파츠와 높은 호응을 보이는 다섯 아이들의 정체 등이 아직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감춰진 비밀을 파헤쳐 나가는 미스터리 서사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원래는 사냥개 생활 외에는 아무 것도 몰랐던, 백지와 같은 아이 길자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단연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성장’일 것이다. 길자는 도시의 뒷 세계에서 도시의 중심 강남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을 만난다. 길자의 손에 아버지가 죽은 또래의 아이부터 한때 자신을 세뇌시켰던 김 박사, 클랜의 소속이었으나 탈퇴하고 길자를 돕게 된 에바 초이, 등. 이들의 원한과 참회, 조력 등으로 길자가 몰랐던 일상의 행복과 이미 잃어버린 목숨의 무게를 알게 해준다.
어른으로 성장하는 길자
길자의 성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길자가 겪는 ‘성장통’이다. 클랜과의 한차례 결전 이후 파츠를 몸에서 분리해 낸 길자가 김 박사와 에바 초이의 돌봄 속에서 평범한 생활을 만끽할 때, 길자는 문득 무릎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쓰러진다. 성장통이 무엇인지 모르는 길자에게 의사인 순이는 그 무릎의 통증이 성장통이며, 키가 자란다는 뜻이라고 말해준다. 길자가 가시적으로 스스로의 성장을 체감하는 명장면이다. 길자의 성장은 돌봐줄 어른을 가지지 못했던 아이가 힘의 논리가 곧 질서였던 유아기적 세계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선택한 방식으로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딛었다는 상징이라는 점에서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역동적인 액션 연출과 서슴없는 서사 진행은 〈타락도시〉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인물이 처한 상황이 열악한 만큼 소위 ‘고구마’라 불리는, 전개를 위해 후퇴하거나 멈추어 가는 구간이 길 수도 있었겠으나 오히려 그 구간이 짧게 연출되었고 시간의 흐름도 거침없이 넘나든다. 막힘없는 속도감 있는 연출이 성장한 길자와 아이들이 그 비정한 도시에서 어떠한 결말을 맞을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