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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몸값 - 와야마 야마의 〈여학교의 별〉

<지금, 만화> 제18호(2023. 7. 5. 발행) 평론가 Pick평! 수록기사

2024-02-06 문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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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몸값

- 와야마 야마의 〈여학교의 별〉

와야마 야마(和山やま)의 작품은 ‘학원물’이다. 학원물이라는 용어가 낯설게 느껴진다고 어려워할 필요는 없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를 담은 장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일부의 독자들은 지독한 입시나 학교 폭력 또는 젊은 학생들 간의 소나기 같은 사랑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또다시 질문할 수 있다. 이렇게 예측 가능한 작품을 굳이 선별해 언급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이다. 무엇보다도 ‘평론가 pick평!’ 코너에서는 동시대의 특별한 작품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 같은데, 와야마 야마 작품이 이런 조건에 부합하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와야마 야마의 작품은 기존의 상식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 〈여학교의 별〉 ⓒ 와야마 야마

독특한 웃음으로 발상의 전환을 꾀하다

  최근에 읽은 박선우의 웹툰 〈효정의 발화점〉(2023)도 학원물의 흐름에 차별화를 두며 코미디나 판타지 미스터리 등을 응축해 표현했지만, 와야마 야마의 작품은 학원물에 대한 고정된 시선을 보다 더 과감하고 집중도 있게 무너뜨린다. 장르의 변형이나 변주의 차원이 아니라 독특한 ‘웃음’으로 발상 자체를 뒤흔든다. 이런 맥락에서 이 작품은 기존 작품과 차별화된다. 중요한 것은 이 ‘차이’가 독자들로부터 주목받고 있으니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다. 작가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작품 자체의 사후적인 ‘의도’가 독자들을 설득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 대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국내 출판 만화가 사실상 전멸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그래픽노블로 명명되는 일부의 작품들이 입소문의 형식으로 팔리거나 정해나 작가의 〈요나단의 목소리〉처럼 펀딩(funding)과 같은 루트로 인기를 얻게 된다. 그 후, 출판사의 선택을 받아 새롭게 선보일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출판 만화들은 의미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쓸쓸히 퇴장하게 된다. 그런데 국내에 번역된 와야마 야마의 작품이 이러한 편견(웹툰으로 인해 국내에서 만화책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다)을 깨 주고 있으니 웹툰으로 경사된 우리 만화계가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와야마 야마의 작품에 주목하는 것보다도 와야마 야마 ‘현상’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하는지 모른다. 그러니 만화가가 했던 작업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어떤 형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지 진단해야 한다. 그럴 때 텍스트를 단순히 즐기는 차원을 넘어 먼 나라이자 이웃 나라인 이곳의 만화를 보다 냉정히 평가할 수 있다.

  《지금, 만화》 15호에 글을 발표한 만화 기획자 이현석은 일본의 인지도 있는 연출자들이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을 애니메이션‘화’하는 작업이 일본과 국내의 웹툰 문화에 새로운 흐름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일본의 와야마 야마의 작품이 국내의 출판 만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올 수 있다면 이현석 기획자의 말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나의 이런 몽상이 다소 감각적일 수 있고 보다 진득한 공부가 필요함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와야마 야마의 작품을 번역한 문학동네가 이 작가의 작품이 많이 팔렸다고 광고를 하고 있으니 이러한 진단은 무모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략과 전술을 이용해 책을 팔 수 있겠지만 잘 팔리는 책은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그 이유가 허무할 수 있지만 이러한 징조가 국내 만화 출판계에 한 ‘징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읽은 와야마 야마의 작품은 〈빠졌어, 너에게〉, 〈가라오케가자!〉, 〈여학교의 별〉 세 작품으로 국내에 번역된 책을 모두 읽은 것이다. 이 텍스트를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 작가는 〈원펀맨〉의 사이타마처럼 참 엉뚱한 지점에서 웃음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즉, 엉뚱함을 그려내는 과정에서 “숨겨져 있던 어떤 결함”(참고 블라지미르 쁘로쁘(2010), 〈희극성과 웃음〉, 정막래 옮김, 나남출판사)을 들춰내는 방식이 수준급이다. 엉뚱하다는 말이 평론가가 쓰기에는 부적절할 수 있으나, 이 모국어처럼 그의 유머를 잘 표현한 단어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 들춰낸 결함이 우울하거나 침울하거나 안타깝거나 안쓰럽거나 통쾌한 감정이 아니라 무엇인가 장난기가 가득 담긴 흐뭇한 느낌을 유발시킨다. 무엇이라고 명명하기 참 힘들지만, 슬며시 미소 짓게 한다고 말해도 될까. 이런 나의 문장이 다소 추상적이라면 이런 예는 어떨까. 자신이 존경하거나 따랐던 어려운 상대의 비밀을 뜻하지 않게 알게 된 직후, 뭔가 야릇한 웃음만으로도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쉽지 않다. 〈여학교의 별〉 3권 13교시 시험시간에 대한 내용을 예로 들어 보자. 이 만화의 주인공이자 학교 선생님인 호시는 감독을 진행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상념을 말풍선 속에 혼잣말로 풀어놓는다.

긴장과 불안 속 진지하게 문제를 푸는 학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게 이 시간은 살짝 숨을 돌릴 수 있는 힐링의 시간이다.

  그런데 호시가 내뱉기 시작한 말들이 ‘웃음’을 길어 올리기 시작한다. 딸아이의 요구르트를 살지 말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비싼 요구르트를 사주고 난 이후 싼 것을 먹지 않는 아이의 상태를 심각하게 몽상하거나, 시험이 끝난 후 면담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기 싫은 티를 내지 않으면서도 속마음으로는 티를 확실히 내는 호시의 모습, 시험 감독으로서 엄격함을 가장한 채 교실 주변을 돌다가 어느 학생의 물건으로 보이는 빛나는 돌고래 전등을 만지며 시험 감독 현장을 익살스럽게 만드는 행위, 무엇보다 시험 시간에 충실히 시험을 이행하지 못한 채 잠들어 있는 한 학생이 떨어트린 연필통에 적힌 문구(“여름방학에 할머니랑 오키나와 여행 힘내라, 나님”)를 보고 비웃는 호시 선생의 모습은 무엇인가 ‘선생님’이라는 호칭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어린아이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실제로 이런 처지에 놓여 있는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선생님’이라는 직함과 어울리는 마음이 사회적 관성과 통념이라면 와야마 야마는 익살맞게 웃으며 ‘웃기지 마.’, ‘선생도 다 똑같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한마디로 말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표정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 〈여학교의 별〉 ⓒ 와야마 야마

진지한 그림과 엉뚱한 웃음의 간극, 그리고 재미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만화를 그리는 ‘형식’에서도 반영된다. 이 지점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오래전에 이야기한 것이기도 하다. 즉, 와야마 야마가 사용하는 그림체는 ‘극화체’다. 이런 그림체는 사랑을 담아내는 순정만화나 이토 준지처럼 호러 형식에 어울리는 그림체로 다소 진지한 소재와 어울린다. 그런데 와야마 야마는 진지성을 덜어내고 웃음과 배려와 익살과 이해심을 이 형식에 녹여낸다. 그러니 내용과 형식 모두 기존의 방식과는 조금 다른 만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그의 만화가 전면적으로 새롭다는 것은 아니다. 불문율처럼 여겨졌던 ‘믿음’에 틈을 내는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을 운용하고 있으니 ‘위트’ 있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다행히 독자들은 작가의 이런 실험(의도)을 읽는 행위를 통해 지지하고 있으니 일정 부분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와야마 야마가 살아왔던 인생의 경험이 만화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겠지만, ‘나’의 전면적인 재현이라기보다는 상황과 연출과 철학이 빛을 발한 만화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와야마 야마의 작품은 만화 같은 ‘만화’라고 볼 수 있고 이러한 형식에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나의 이런 이야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미 짐작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벌써 와야마 야마의 독특한 형식을 자신의 만화에 투영하는 작가도 있겠다. 좋은 만화가는 동시대에 어떤 방식이든지 자신과 닮은 복제물(?)을 낳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작업이 정말로 이행되고 있다면 와야마 야마는 우리 만화사에 하나의 기준점이 된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발언을 평론의 언어가 아닌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따져 물을 필요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감각적인 나의 느낌은 그렇다.

한국 만화계의 ‘와야마 현상’이 요원하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국내의 출판 만화 현장으로 눈을 돌리자. 무슨 이유로 국내 종이 만화책 만화가들의 작품은 잘 팔리지 않고, 뜬금없이 번역된 종이책 만화가 좋은 만화라며 국내에 입소문을 타고 팔리는 것일까. 대형 출판사인 문학동네의 마케팅이 성공했다고 봐야 하는 걸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눈치 빠른 독자들이 뻔한 광고에 현혹되었을까. 일본 문화를 주시하고 있었던 대형 출판사의 촉일 수도 있으나, 우리는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와야마 야마 ‘현상’에 대해 한번 정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 또한 출판 만화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가져왔고 무수히 많은 출판 만화가 존재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최근에는 동료들과 특정 장르를 갈무리한 적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작품(번역서 포함)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작품 중 일부는 상을 수상하거나 입소문의 형식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호평받았다. 그런데 이들 만화는 대부분은 진지하고 솔직했으며 절박한 그림으로 이뤄졌다. 그렇다면 우리 만화계에는 ‘웃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젊은 종이책 만화가들이 모두 다 어디로 갔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젊은 작가들이 웹툰으로 모두 옮겨갔다는 가정하에 웃음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있어서도 억지웃음이 아닌 세련된 웃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지적토대가 예비 만화가들에게 커리큘럼 형식으로 제공되었는지 따져 물을 필요가 있다. 누차 강조하지만 만화는 이제 더 이상 질 낮은 텍스트가 아니다. 보다더 의미 있는 작품들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인문학이 만화가들에게도 내장되어야 한다. 그럴 때 한국의 만화계도 와야마 야마와 같은 독특한 작가를 탄생시킬 수 있다. 이처럼 와야마 야마의 ‘현상’은 여러 질문거리를 독자들에게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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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

글쓴이 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을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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