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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이런 만화 : 내 인생 최고의 SF 만화
같이 올라가요, 파스텔톤 디스토피아로!
- 엥비 〈임술년 화요일〉
시간여행이란 SF의 오랜 테마 중 하나다.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던 깐따삐야 별 출신 외계인 도우너의 타임 코스모스도, 영국에서는 수십 년간 계속되어 온 SF 드라마 시리즈 “닥터 후”의 상징같은 푸른 공중전화박스 형태의 타디스도, 모두 타임머신이다. 좀 더 넓게 보면 웹소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회귀, 빙의, 환생의 회귀도 시간여행이다.
그리고 여기, 학술적 목적으로 제한적으로 시간여행이 허가되는 시대, 세 사람의 연구원이 실종된 차현석 실장을 찾아 병인박해 4년 전인 1862년 임술년, 거창으로 향한다. 차 실장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역사의 유지보존을 우선하며, 현시점에서 100년 이내의 타임슬립을 금지하고, 역사가 개변되지 않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들 연구원들에게 있어, 19세기 중반의 데이터가 기존 데이터에서 개변된 흔적은 곧 차 실장이 어딘가에 살아있을 가능성을 뜻했다.
▲ 〈임술년 화요일〉 Ⓒ 엥비
“우리 존재만으로 이미 변화가 시작되는 거야.”
사실 시간여행이라는 테마는 보편적이며, 학술적인 목적의 제한된 시간여행도 코니 윌리스의 ‘옥스퍼드 시간여행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으로 돌아가, 현대인들이 조선의 문화나 신분제, 의식주에 어렵사리 적응하며 임무를 달성하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신선하다. 그리고 엥비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연구원으로서, 그리고 싱글맘으로서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는다. 결혼한 뒤에도 연구를 계속하던 희연은 목표하던 바를 이루기 직전에 남편을 잃고, 어린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 된다. 희연은 필사적으로 노력해 학업을 마치고 연구원이 되고, 종종 시간여행에 나서지만 장기 임무를 맡지 못해 경력에 비해 승진이 늦어졌다. 직장에 서는 아이가 학교에 가면 힘들어지니 모니터링 부서로 갈 것을 권하고, 시어머니는 일이라며 늦게 들어오고, 때로는 몇 주, 몇 달씩 시간여행을 떠나는 희연을 못마땅해한다. 늘 냉랭한 표정으로 일에만 전념하는 듯한 희연이, 조금 기쁜 표정을 보이는 순간은 시간여행을 떠나기 직전뿐이다. 그 순간 희연은 자신이 살던 세계와 완전히 다른 곳,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다른 존재로 변장하며 자신을 둘러싼 현실적인 부담감에서 한순간이나마 해방되는 감각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희연에게도 이번 임무는 쉽지 않다. 자신과 병리학자인 한규는 차실장과 직접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다. 차 실장의 얼굴을 안다는 이유로 팀장이 된 지원은 경력이 짧고 감정적이라 이 시대 사람들과 얽히며 자꾸만 일행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휴대용 키트 오류로 33년 동안 조선에 머물렀다는 차현석 실장은, 이곳에서 족보를 사고 부유한 양 반으로서 노비들을 거느리고 작은 권력을 누리면서도, 자신은 이 시대의 관찰자가 아니라 조난자였다고 변명한다. 사실은 현대에서 남의 연구를 탐냈던 그는 이 시대로 도망쳤다. 하지만 명예욕과 허영심에 사로잡혀 변화를 거부한 그는 노비들에게도 비누를 쓰게 하고, 하나뿐인 손녀 현수에게도 사내와 계집은 평등하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 손녀를 구하기 위해, 그는 자신이 사라졌던 임술년에 다시 나타날 연구원들을 기다리고, 희연을 구금하고, 지원과 한규를 위기에 몰아넣는다.
▲ 〈임술년 화요일〉 Ⓒ 엥비
그들의 선택은 복수가 아니라 “옳은 일”을 향한다. 그들은 역사를 바꾸지 않고, 이 시대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를 현대로 데리고 돌아간다. 징계를 받는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휴대용 키트의 불안정성을 고발한다. 승진보다는 약자를 구하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욕망 때문에 도망치고, 손녀를 위한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차 실장과 달리, 희연은 때때로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과거의 시간에서 깨달음을 얻고,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일지도 모르는 딸이 기다리는, 자신의 인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