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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속 살인의 현상학 - 만화 〈타인은 지옥이다〉 vs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지금, 만화> 제19호(2023. 9. 5. 발행) ‘만화 VS 드라마’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2024-04-13 백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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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속 살인의 현상학

- 만화 타인은 지옥이다vs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영상 창작물-영화, 드라마-에서 다른 분야의 원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은 영상의 역사가 시작한 이래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영상 창작은 고전적 창작물인 문학에 많은 빚을 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만화(웹툰)에 기대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단순히 각 분야의 역사만으로도 영상 창작물은 다른 분야보다 일천(日淺)하고, 창작자 와 창작물의 절대 물량에서도 문학과 만화에 비해 매우 적다.

  특히 자본의 입장에서 영상 창작물은 투자비용이 커서 그만큼 위험 부담도 커지므로 검증된 창작물인 문학과 만화의 원작을 활용하려는 의지가 작동한다. ‘베스트셀러소설이나 조회 수가 수백 만, 수천 만이 되는 만화(웹툰)는 이미 널리 알려져서 영상 창작물로 만들었을 때, 관객을 확보하기 쉬운 장점과 함께 이미 알려진 내용이라 식상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를 영화로 만들어 천만 관객을 넘긴 것과 스티븐 킹 의 원작 소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이 세계 최고의 인기 영화라는 사실은 원작이 존재해도 영상(영화, 드라마) 창작은 또 다른 새로운 창작의 영역임을 증명하고 있다.

 

▲ 〈타인은 지옥이다〉 Ⓒ 김용키

  〈타인은 지옥이다는 인기 웹툰으로, 수많은 인기 웹툰이 영화, 드라마로 다시 만들어진 것처럼,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모두 10부작이며, 만화 원작의 주제는 가져오되 세부 내용에서는 원작과 거리가 있다. 원작이 주인공의 주관적 1인칭 관점으로만 그려졌다면, 드라마는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원작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서사를보다 풍성하게 만들었다.

  작품은 주인공 윤종우가 일자리를 얻어 서울로 올라오고, 가장 적은 돈으로 머물 수 있는 고시원을 찾아 생활하면서, 고시원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인간관계와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주인공 윤종우의 1인칭 주관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내용이다.

  미스터리 스릴러로 분류할 수 있으며, 만화보다 드라마에서 더 끔찍한 장면 이많이 보인다. 작품에서 에덴고시원은 현대판 백정이 사는 곳이며, 살육과 식인이 벌어지는 끔찍한 공간이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살인의 현상을 사회학, 심리학, 경제학 등의 도구로 풀어보면, 이 작품은 한국(심지어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구조적 모순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고시원으로 상징 되는 새로운 도시빈민의 삶

  주인공 종우의 삶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그가 서울로 오는 건, 과거의 삶과 결별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희망과 기대를 보여준다. 그의 집은 가난하고, 평생 일하며 힘겹게 살아온 엄마와 지체장애가 있는 형이 있는 집을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꿈꾼다. 종우에게 지금까지의 과거-가족, 군대-는 지옥 같았다. 종우는 지옥을 벗어나 사람이 사는 세상, 모든것이 정상인 세상에서 살고픈 욕망이 있다.

  하지만 그가 서울에 도착하면서 당장 묵어야 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 종우는 최대한 값이 싼 숙박시설을 찾아야 하고, 쾌적한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는 상상도 할 수 없었으며, 많은 고시원 가운데서도 깨끗한 곳은 월세가 비싸 낡고 허름한 고시원으로 올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과거의 도시빈민은 도시 재개발과 지방에서 도시로 이주하면서 도시 변두리에 무허가 판잣집을 형성하며 살았지만, 현대의 도시빈민은 고시원과 쪽방, 반지하, 옥탑방 등으로 대표하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살아간다.

  종우가 찾아간 에덴 고시원은 오래된 낡고 지저분한 건물이고, 방은 사람 한 명이 겨우 누울 만한, 관보다 조금 넓은 정도의 공간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현실의 삶에서 낙오된 것으로 보이는, 존재의 의미를 찾기 어려운 인간들이다. 실패한 삶을 붙들고, 불투명한 미래를 바라보며 하루하루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간다. 도시빈민은 사회에서 잉여인간으로 취급당한다. 즉 없어도 되는, 사라져도 아무 흔적 없는, 존재 의미가 없는 사람들로 분류, 취급당한다. 도시빈민의 대부분은 독거노인,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사람들, 지병이 있거나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회 집단의 관점에서 이들 도시빈민의 존재는 사회 비용의 증가, 집단의 효율성 저하, 부의 창출과 분배의 불이익 등 부정적인 요소로 작동한다. 따라서 부 와 권력을 가진 자, 이기적인 중산층은 이런 도시빈민이 없는 세상이길 바란다. 도시빈민이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는 외면하고,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가난, 질병, 실업, 빈민의 겉모습을 보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가진 자들은 이들을 혐오한다.

관계의 불협화음

  혐오는 빈민 내부에서도 발생한다. 종우는 고시원에 들어온 첫날부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선입견을 갖고 바라본다. 종우가 다른 사람을 혐오하는 시각은 나는 저들과 다르다는 심리에서 시작한다. 그는 인턴이긴 해도 IT기업에 취업했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기생충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깊이 종우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자신도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처럼, 쓸모없고, 별 볼 일 없는 인간으로 전락할 거라는 두려움과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종우가 서울에 있는 IT기업에 인턴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도 자기의 실력보다는 대표가 대학 선배이기 때문이고, 직원 서너 명의 작은 회사는 늘 미래가 불투명한데, 정직원도 아니고 인턴이라는 점에서 종우의 불안은 지속된다. 그는 고향에서도 가난한 집에서 군 복무를 한 이후에도 적당한 돈벌이를 하지 못하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학교 선배이자 벤처기업의 대표가 자기를 부르자 종우는 한편으로 자부심과 자신감이 생기면서도, 회사 생활을 잘 견딜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다.

  원작에서 종우 중심의 시각으로 고시원과 회사를 바라보면, 종우에게 친절 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고시원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며, 종우에게 적대적 태도를 보인다. 종우의 눈에 그들은 덜떨어진 인간이거나 변태거나 인간쓰레기 같은 사람들이다. 회사에서도 종우의 사수는 무뚝뚝하고 성질도 더러운 변태 인간이다. 종우가 만나는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상하게 보이는 건, 독자가 종우의 시각으로 상대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만화와 드라마에서 종우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환상과 현실의 차이만큼 크고 중요하다. , 만화에서는 고시원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이 종우의 상상과 환상의 여지가 있는 반면, 드라마에서는 그런 여지가 없고, 모든 사건은 실제 벌어진 걸로 드러난다.

만화와 드라마의 차이

  작품의 외형은 값싼 숙박시설을 찾던 종우가 들어간 에덴 고시원이 알고 보니 살인마 집단이 점거한 건물이었고, 이 고시원에 들어왔던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죽임을 당했으며, 종우는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다. 원작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드라마에서는 이들 범죄자들 관계를 보육원의 보모와 고아들로 설정하고 있다. 다만, 이들이 왜 인간 백정이 되었는가에 관한 합리적 설명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포스터

  만화에서 종우가 맞닥뜨리는 고시원의 현실은 실제와 상상(환상)이 겹치는 걸로 해석할 수 있다. 종우의 불안은 이미 오래되었으며, 그는 군대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트라우마가 있다. 여기에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고향인 지방에서 서울로, 백수에서 인턴으로)로 마음이 불안한데, 낯선 공간인 고시원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의 불안은 증폭된다. 고시원 사람들이 사라지고, 203호가 내놓은 고기가 인육이라는 설정은 어디까지나 종우의 상상이며, 불안으로 인한 공포의 환상이라고 볼 수 있다.

  스티븐 킹의 샤이닝에서 잭의 가족이 겨울 동안 오버룩 호텔을 관리하며 텅 빈 넓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잭이 서서히 미쳐가는 과정처럼, 종우가 스트레스와 불안이 증폭되면서 서서히 미쳐가고 있다는 걸 독자는 나중에 눈치챈다. 고시원 사람들을 모두 살해하는 건 203호일까, 종우일까. 드라마에서 보여준 대로, 203호와 종우는 같은 인물 즉 종우일 가능성이 높다. 203호는 종우의 상상 속 인물이며, 종우를 가스라이팅하고, 종우가 사람들을 살해하도록 만드는 내 면의 악을 의인화한 것일 수 있다.

  독자나 관객은 종우의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종우의 내면을 읽지 못한다. 하지만 종우가 보여준 몇몇 사건을 통해 종우가 결코 선량하거나 착 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종우는 시비가 붙은 고등학생들을 거의 죽기 직전까지 폭행하고, 군대에서도 말을 듣지 않는 후임병을 잔인하게 폭행한 전력이 있다. 언뜻 종우는 예의 바르고, 선량한 학생처럼 보이지만, 그가 끊임없이 불만에 가득한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고, 모르는 상대에게 선의를 갖기 전에 먼저 적의와 불신을 품고 바라본다는 걸 알 수 있다.

  주인공이 악당이거나 범죄자이고, 주인공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독자(관객)는 그 시각에 속거나, 불편함을 느낀다. 대개의 경우 주인공은 옳다고 믿는데, 주인공의 말과 행동이 상식적이지 않을 때, 독자(관객)는 인지부조화에 빠진다. 이 작품 역시 종우를 평범한 청년으로 바라본 독자(관객)는 그의 짜증, 불만, 불평, 불안을 통해 '종우'라는 인물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할 때, '타인'은 바로 자기 자신일 수 있다는 걸 생각할 수 있다. ‘이외의 사람이 타인이겠지만, ‘역시 다른 사람에게는 타인이다. 그래서 타인이 지옥인 건, 바로 의 내면이 지옥인 것과 같다.

필진이미지

백건우

만화평론가
만화규장각 지식총서 「만화, 영화 상상력의 원형」 저자
2019 만화평론 공모전 가작 당선
1997 〈문학사상〉 신인상
1988 제1회 전태일문학상 중편소설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