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만화(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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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을 헤엄치는 법 - 이연의 〈매일을 헤엄치는 법〉

<지금, 만화> 제19호(2023. 9. 5. 발행) ‘만화속 인생 명대사 명장면’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2024-04-06 김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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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을 헤엄치는 법

이연의 매일을 헤엄치는 법

  업무에 필요한 자료 찾기 위해 유튜브에서 검색하다 꽤 차분하고 정갈한 드로잉 강좌 영상을 발견했다. 이 영상을 만들어 업로드하는 이는 단지 그림을 그리는 작법만 영상으로 공개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림을 그려가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차분히 얹어서 구독자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집중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구독과 좋아요버튼을 누르고 알림도 설정했다. 이때도 이미 80만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의 주인이었으니 내가 몰라뵈어도 한참을 몰라뵌 분이다.

  그림을 매개로 생각을 전하는 크리에이터, 이연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작가라고 불러드려야 할지, 아니면 유튜버라 불러드려야 할지 크리에이터라고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내가 무어라 칭하든지, 멋진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예술가임엔 틀림없다.

  이연 작가가 만화의 형식을 빌려 에세이집을 냈다는 것을 듣고 바로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매했다. 책의 표지를 보고 유튜브에서 보았던, 쓱쓱 그려내던 그림과 너무 다른 그림체라서 놀랐다. 그리고 놀라움은 금세 궁금함과 더 짙은 흥미로 다가왔다.

  이연 그림 에세이 매일을 헤엄치는 법.

  책을 펼치니 3단 만화와 짤막한 글로 이루어진 구성이 꽤 간명하다. 그래서 한 장 한 장 책을 넘기는 속도가 더디다. 빠르게 읽어 내리는 세로 스크롤 웹툰에 익숙한 지금, 이렇게 짧은 3단 만화 구성에 단순한 선과 면으로 표현된 만화를 읽어내리는 속도가 오히려 느리다는 것. 이건 분명 기묘한 경험이다.

  얼핏 보면 볼링핀처럼 묘사된 작가의 캐릭터는 실상, 백열전구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디자인됐다고 한다. 단순해 보이는 캐릭터, 특히 마스크 대부분을 차지하는 커다란 눈동자는 어찌 그리 명료하게 시선 처리를 잘 해내는지. 그 덕분에 이연 작가의 삶의 방향을 함께 쳐다보는 기분마저 든다.

 

▲ 〈매일을 헤엄치는 법〉 Ⓒ 이연

  어느 날,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공황을 느끼고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만화는 가난해질 것이 분명한 시절의 두려움과 각오부터 그때보다 훨씬 더 단단해지고 반듯해진 작가 이연으로 성장할 때까지의 내면과 성찰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기껏해야 가난해질 뿐이지만 그 두려움의 크기가 매우 컸음이 페이지를 넘기며 함께 헤엄치는 내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지질했던 시간, 치열했던 시간, 허투루 보냈던 바보 같은 시간이다. 가진 것 없이 살아갈 날이 너무 많아서 중압감에 시달리는 나이에 이연 작가는 기록해온 것들을 되새긴다. ‘매일이라는 삶의 연속선에서 매몰되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헤엄치는 방법을 체득하는 과정에 독자로서 함께 하는 기분은 위로이며 응원이다.

  ‘매일을 헤엄친다?’ 두 팔은 쉬지 않고 계속 시간을 앞당기며 움직이고 두 발도 쉬지 않고 물장구를 친다. 숨을 내쉬기 위해 고개도 좌우로 끊임없이 물 밖으로 내밀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매일이라는 시공간에 빠져 익사하고 말 테니자기 다움을 살리면서 밥벌이하는 것의 무게감이 고스란히 전해오는 메타포이기도 하다.

  명확한 것이 보이지 않는 모호함 속에 던져진 작가의 실업자 라이프. 온기 없는 차가운 수영장 물에 준비 운동 없이 몸을 담글 때의 낯선 느낌. 그러나 곧, 매일을 헤엄쳐 나가는 지난한 굴레에 서서히 무언가 모습을 드러낸다. 온기 없는 차가운 수영장의 물에 맨살이 점차 적응해나가는 기록을 읽어내리며, ‘만화라는 수단을 선택한 작가의 탁월한 효능감에 절로 손뼉도 쳐진다. 이제 가시 돋친 매일은 뒤로 흘려보내며 앞으로 나아갈 뿐. 평생 수영을 하는 할머니가 되는 것. 그러기 위해서 매일을 헤엄치며, 아주 멀리 헤엄치는 것. 작가 이연의 꿈이 온전히 이루어지길

필진이미지

김현국

소미미디어 SBA웹툰파트너스 운영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