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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그 만화의 시작과 변화 : 명랑 만화에서 병맛 만화까지
개그 만화는 공감 가능한 아이러니컬한 웃음을 통해 독자에게 카타르시스의 쾌감을 선사한다. 한국 개그 만화는 근현대사의 궤적과 함께 변화하고 발전해 왔다. 근대만화의 등장 시기였던 일제강점기 세태를 풍자하고 고단한 식민지 대중을 위로하는 우스개 만화로 시작하여, 당대 어린이 독자의 일상성을 담는 명랑 만화로 발전한다. 명랑 만화는 변화된 독자층과 사회를 반영한 부조리 개그 만 화를 통해 가학적 웃음으로 금기에 도전하는 컬트문화의 저항과 냉소를 담았다. 2010년대 이후 웹툰 시대의 확장은 가치 전복적인 날카로운 풍자보다는 해학적 웃음을 담은 일상툰으로 한국 개그 만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한국 근대만화의 확장 우스개 만화
1924년 10월 13일 《조선일보》에 한국 신문 최초의 본격적인 네 칸짜리 만화 〈멍텅구리 헛물켜기〉가 게재된다. 한국의 본격적 ‘우스개(개그) 만화’의 등장이다. 줄거리는 이상협과 안재홍(安在鴻)이 짜고 그림은 노수현(盧壽鉉)이 그린 4칸 만 화 〈멍텅구리 헛물켜기〉는 최멍텅, 윤바람, 신옥매 등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모던보이의 허세와 말썽을 에피소드로 담아 연재한 만화였고, ‘우습고 자미있는 그림 리야기’로 소개되었다. 당시 〈멍텅구리 헛물켜기〉는 경성 최대의 자산가이지만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최멍텅과 ‘밀당’의 귀재 기생 신옥매,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절묘하게 이용하며 최멍텅을 농락하는 윤바람까지 등장인물의 캐릭터성을 부여한 최초의 만화였고, 슬랩스틱 코미디와 세태풍자로 일제강점기 고단한 대 중에게 위로와 웃음을 주는 코믹 오락 만화였다.
한국의 근대만화는 서구열강과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며 게재된 《대한민보》 이도영의 만화(삽화)에서 시작되었다. 이도영의 풍자만화를 싣던 《대한민보》는 일제의 조선병탄 이후 폐간되었고, 1919년 3.1운동 이전까지 조선은 독자적인 언론을 금지당했다. 3.1운동 이후 회유책으로 일부 언론활동이 재게되면서 《조선일보》(1920), 《동아일보》(1920), 《시대일보》(1924) 등의 신문이 창간되었고, 신 문사는 대중의 관심을 위해 우스개 만화를 연재했다. 1924년 창간된 《시대일보》는 후발주자로 창간부터 미국 만화를 번안한 〈엉석바지〉를 연재하였고, 이에 영향을 받아 창작된 〈멍텅구리 헛물켜기〉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뒤이어 《동아일보》는 안석주의 〈허풍선이 모험기담〉을 1925년 1월 23일부터 연재했다. ‘텬하에 둘도 업는 거짓말쟁이-허풍선이 모험긔담을 소개함니다’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이, 허세와 허풍으로 가득한 주인공 허풍선이 세계 곳곳의 풍물을 경험한 에피소드를 담았다. 세태를 풍자하고, 모던보이에 냉소를 보내는 우스개 만화는 식민지 근대사회의 씁쓸한 현실을 담았지만, 독자들은 등장인물들의 좌충우돌 유머와 해학적 웃음을 통해 고단한 삶의 시름을 잊는 위로를 받기도 했다.
▲ 〈엉석바지〉 1회 시대일보(1924.03.31.)
▲▲ 〈허풍선이 모험기담〉 1회 동아일보(1925.01.23)
▲▲▲ 〈멍텅구리 헛물켜기〉 1회 조선일보(1924.10.13)
일제강점기 세태를 풍자한 우스개 만화는 해방 이후 ‘명랑만화’라는 명칭으로 창작되었다. 명랑 만화는 1953년 《학원》에 연재된 김성환의 〈꺼꾸리군 장다리군〉에서 시작되었다. 1955년 〈꺼꾸리군 장다리군〉 단행본을 출판하며 “학원에 연재되어 만천하에 대인기이던 학생명랑 만화”라고 광고를 실었다. 이 광고를 중심으로 유추해 볼 때 1950년대 중반부터 개그 만화에 명랑 만화라는 명칭 이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꺼꾸리군과 장다리군〉, 연희출판사, 1979
▲▲ 〈꺼꾸리군과 장다리군〉(경향 1955.12.24 1면 광고)
고교 시절의 낭만과 유머, 우정을 다룬 〈꺼꾸리군 장다리군〉은 명랑 만화 장르 컨벤션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명랑 만화의 특징은 인물을 선을 중심으로 단순화하고 2~3등신 내외의 희화체 캐릭터로 구성하며, 만화적 기호를 다양하게 사용한다. 또한 이야기 구조는 과장된 연출과 일상의 소소한 해프닝을 통한 웃음을 담는다. 주인공들은 실수를 연발하고, 말썽을 부리다 엉뚱한 소동을 일으킨다. 비범하고 똑똑한 인물이 아닌 평범하고 어리숙한 주인공에게 독자들 과 공감했고, 작품은 큰 인기를 끌었다.
명랑 만화장르는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하여 1960년대, 1970년대까지 대표적 만화장르로 사랑받았다. 박인하는 명랑 만화의 장르적 특징으로 웃음의 일상성을 제기한다. “명랑 만화에서 웃음이 발생하는 이유는 만화가 갖는 인간과의 유사성이다. 명랑 만화의 상징은 다른 여러 스타일의 만화에 비해 독자와의 깊은 동질성을 주된 특징으로 한다. 간단한 선으로 이루어진 명랑 만화의 캐릭터들은 간단하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독자들과 동질성을 갖는다.”고 밝혔다. 1960년대 김경언의 〈칠성이 시리즈〉·〈의사 까불이〉, 박기준의 〈두통이〉, 방영진의 〈약동이 와 영팔이〉, 임창의 〈땡이 시리즈〉, 1970년대 길창덕의 〈꺼벙이〉, 신문수의 〈로봇 찌빠〉, 윤승운의 〈요철 발명왕〉·〈말썽대장 한심이〉, 박수동의 〈번데기 야구단〉, 이 정문의 〈심똘이〉, 1980년대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 이희재의 〈악동이〉, 배금 택의 〈영심이〉 등 명랑 만화는 오랜 시간 만화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명랑 만화는 어린이들이 일상적으로 대면하는 학교생활, 놀이 공간인 골목, 가족 관계 등 독자들이 ‘지금-여기’라고 공감할 수 있는 당대성을 공유하며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 1980년대 명랑 만화 사이에는 일정한 간극이 존재한다. 한국 만화의 융성기였던 1960년대는 만화방을 통한 단행본 만화로 도시인의 일상생활을 배경으로 지역사회와 가정, 학교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1970년대는 국가주도의 심의가 강화되면서 만화방은 축소되고, 어린이잡지를 통해 만화가 유통되었고, 명랑 만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1970년대 명랑 만화는 경직되고 억압적인 규율사회에서 해프닝과 웃음으로 어린이들의 위로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건강한 국민정신’을 창출하기 위한 정권 주도의 규율담론으로 대중의 감성 자체를 규율하고 훈육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다. 1980년대는 여전히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였지만, 민주화 운동 등 국민적 저항도 강화되는 시기였다. 이 시기 명랑 만화는 권위적인 어른의 세계에 대항하고, 어린이의 삶을 진지하게 드러내는 악동들이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시대에 따른 변화는 독자의 일상과 호흡하는 명랑 만화의 장르적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명랑 만화의 일상성은 정치·사회적 변화에 따르는 사회변동의 내적 변화뿐만 아니라 공간적 성격과 도 관계가 있다.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구조의 변화 속에서 명랑 만화는 도시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며, 도시 중산층의 평균적 삶이 영위되는 공간에서 발생한다. 동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의 공간은 아니었지만, 독자들의 생활 공간과 유사한 동네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공간 구성은 작품에 대한 공감도를 높였다.
명랑 만화의 쇠퇴와 소년 만화의 변신
1990년대 이후 명랑 만화는 몇몇 작품이 명맥을 유지했지만, 독자들의 관심에 서 멀어지며 퇴조를 보인다. 이 현상의 바탕에는 명랑 만화장르가 갖는 내적 한 계와 함께 일본 잡지 시스템의 도입과 일본 만화 연재를 기점으로 변화한 한국 만화 생태계를 들 수 있다.
첫째는 만화 환경의 변화가 있다. 《아이큐점프》(1988), 《소년 챔프》(1991) 등 일 본 만화 잡지 시스템을 도입하고 일본 만화를 연재했다. 특히 〈드래곤볼〉, 〈슬램덩크〉 등의 연재는 장편 만화 창작 및 소년 만화 장르에 새로운 흐름을 가져왔고, 이러한 서사 구조의 변화 속에서 일상의 생활 체험을 소재로 한 명랑 만화는 독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둘째는 명랑 만화가 1990년대 격변하는 한국사회를 담아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1990년대는 30년 이상을 권위주의 체제에 억눌려 왔던 다양한 시민들의 욕구가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시기였으며, 특히 기득권에 대한 저 항, 권위에 대한 도전과 해체 등의 전복적 웃음이 카타르시스를 주는 시기였다. 일 상성을 바탕으로 한 잔잔한 웃음은 격변하는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이 시기 이후 개그 만화는 부조리 개그 만화를 중심으로 명랑 만화의 웃음과는 전혀 결이 다른 엽기 만화, 병맛 만화의 가치 전복적 웃음을 담았다.
부조리 개그 만화-엽기에서 병맛까지
부조리 개그 만화의 시작은 ‘엽기(猟奇)’였다. 엽기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열풍을 일으킨 문화코드였다. 기존 가치를 전복하며 일탈의 쾌감을 제공하는 엽기의 핵심은 바로 ‘금기에 대한 도전’이다. 억압된 현실에서 일탈을 원하는 대중들의 욕구는 비정상적이고 비현실적이며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표현되었다.
엽기 만화는 ‘키치문화’, ‘B급 만화’, ‘화장실 만화’로 불리는 등 부정적 인식이 강했고, 소수 매니아 중심으로 소비되었다. ‘디씨 폐인’의 일상을 담은 김풍의 〈폐인의 세계〉, 루리웹에 연재되며 엽기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말년의 초기작 〈도깨비로 산다는 것〉, ‘똥’을 소재로 일상의 에피소드를 풀어낸 강풀의 〈일쌍다반사〉, 현란한 언어유희가 돋보이는 메가쇼킹의 〈쾌변만화 알타리써비스〉, ‘엉덩이’, ‘방귀’, ‘똥’을 주 소재로 한 컷부의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등은 엽기 코드를 담은 대표적 작품이다.
▲ 〈일쌍다반사〉 Ⓒ 강풀
▲▲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 컷부
2000년대 중반 이후 이 문화 코드는 ‘병맛’으로 이동한다. 엽기 만화가 일탈을 통해 금기에 도전하며 원초적인 감정과 욕망을 걸러 내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했다면, 병맛 만화는 자기비하적 조롱과 냉소를 담고 있다. ‘병맛’은 인터넷 신조어로 만화뿐 아니라 대중문화 코드로 유행했던 용어다. 당시의 언론은 병맛이라는 개념이 유행하게 된 이유를 “‘완전무결함만 살아남는 답답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와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의 증가’했고, 잘 만들어진 완벽함과는 동떨어진 어설픈 낙서나 그림을 보며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경기침체로 자기 비하에 빠진 청년층이 스스로를 ‘병맛’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병맛은 청년들의 패배의식과 ‘N포 세대’로 청년들을 내모는 사회에 대한 냉소적 유희를 공유하는 코드로 작동한 것이다. 전형화된 웰메이드의 ‘무언가’에 대한 반항과 냉소는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에 내몰린 청년 세대의 피해의식과 자존감을 지키려는 욕구의 표상이며, 현실을 비판하는 전복의 힘이었다.
2000년대 초반 디씨인사이드 등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시작으로 이미지 합성과 거침없는 언어유희를 통한 풍자와 패러디가 난무했고, 변화된 매체환경 속 병맛 만화는 디씨인사이드 카툰-연재갤러리에서 시작되었다. 병맛의 특성이 ‘해체와 전복의 유희’라면 병맛 만화는 이를 기반으로 예측을 불허하는 비논리적 서사구축, 조악한 그림체, 관습을 파괴하는 저항적 소재, 공감을 위한 패러디의 무한반복 등의 특징을 작품에 담았다.
국중록·이상신의 〈첩보의 별〉, 귀귀의 〈야심작 정열맨〉, 이말년의 〈이말년씨리즈〉, 치삼의 〈치삼만화〉 등이 패러디와 언어유희를 사용하며 서사 전반에 걸쳐 예측 불가능성을 만들어 내며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병맛 만화로 주목받은 이말년 작가의 작품은 이러한 병맛에 담긴 특징을 재현하며 폭발적 호응을 받았다.
▲ 〈불타는 버스〉 Ⓒ 이말년
▲ 〈첩보의별〉 Ⓒ 국중록·이상신
병맛 만화는 온라인 매체로 확장된 만화(웹툰)의 특성을 적극 활용했다. 메시소통하고 때로는 독자의 댓글을 작품에 반영했다. 병맛 만화의 독자는 서브컬처에 익숙한 그들만의 문화 코드를 즐겼고, 아는 사람만 즐길 수 있는 웃음 포인트를 통해 타인과 구별짓기를 즐겼다. 또한 병맛 만화의 독자는 웹상에서 이루어지는 인터넷 밈이라는 형태로 작품을 소비, 확산, 재생산하며, 만화읽기를 넘어 애독자들의 놀이문화로 확장했다. 인터넷 밈으로의 확장은 독자들이 다수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익살, 기괴함, 풍자를 통한 조롱 등의 개그적 요소를 수단으로 활용하지만, 이러한 재생산은 당시 청년 세대가 가지는 사회적 담론을 피력하는 하나의 코드로 작동하기도 했다.
공감을 통한 해학적 웃음, 개그 만화의 변화 일상툰
2000년대 이후 병맛 만화가 서브컬처에 익숙한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청년의 문화를 만들어 간다면, 다른 측면에서는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사회의 피로도 속에 잉여적 감성을 바탕으로 한 일상툰이 독자들에게 주목받는 장르로 부각되었다. 일상툰은 친밀감과 공통의 소재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독자로 하여금 공감의 웃음을 유발하게 한다. 일상툰의 웃음은 유쾌하고 긍정적 웃음이다. 가치 전복적인 날카로운 풍자보다는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해학적 웃음이다.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무언이든 해야 한다는 강박, 세상의 시간과 속도에 자신 역시 맞춰야 한다는 초조함 대신 시간과 재능을 낭비하거나, 나태함·게으름·무위의 삶으로 생산 중심적인 가치관에 균열을 보여주는 해학적 웃음이다.
▲ 〈너는 그냥 개그 만화나 그려라〉 Ⓒ 조석
작가들은 자신의 일상을 발랄한 아이디어로 살려낸다. 그 일상은 조금 ‘미달’된 그래서 곳곳에 ‘찌질함’이 묻어나는 평범한 우리의 삶과 닮았다. 조석의 〈마음의 소리〉, 가스파드의 〈선천적 얼간이들〉, 자까의 〈대학일기〉, 이동건의 〈유미의 세포들〉, 2B의 〈퀴퀴한 일기〉, 솔뱅이의 〈열정 호구〉, 신태훈·나승훈의 〈놓치마 정신줄〉 등 무수히 많은 작품들이 작가의 일상 담아, 이리저리 치이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나의 인생을 위무한다.
참고문헌
박인하(2012), 〈한국 명랑만화 장르의 형성과 발전 연구〉, 애니메이션연구 통권 제23호, 한국애니메이션학회,
김종옥(2017), 〈웹툰시대, 일상툰으로 부활하는 명랑만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규장각
미디어오늘(2010.04.11.), 〈‘막장’ 드라마 이어 ‘병맛’ 만화가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