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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세계가 한 권의 이야기로 만난다면,
- 송송이 〈남산도서관 환생 북클럽〉
몸무게의 앞자리가 바뀌던 해의 내 생활 습관은 엉망이었고 스트레스성 폭식은 계속됐다. 그때는 먹음으로써 내 육신의 피로와 정신적 고통을 덜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모든 순간이 지나고 드디어 나를 돌볼 수 있게 됐을 때, 내 영혼은 내전을 겪은 뒤처럼 황폐했고 척박했다. 이때 폭식 외에도 글자만 있으면 숨이 벅차게 읽어대는 습관도 생겼다. 새벽 4시까지 일을 하고 침대에 누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계속 읽을거리를 찾아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을 때는 스크롤이 끝없이 내려가는 나무 위키를 읽은 적도 많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꽤 여러 주제를 읽었던 것 같다. 처음 시작은 궁금함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목적은 사라지고 읽는 행위만 남아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에는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던 내용도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는 궁금증을 해소해야지만 잘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낭비했던 것 같다. 그랬던 시간이 멈추지 않고 모두 흘러가자, 단 한 달 만에 쪘던 살이 모두 빠지고 읽기에 대한 광기도 함께 사라졌다.
〈남산도서관 환생 북클럽〉을 읽으며 나는 무차별적으로 글자를 읽던 행위가 내 영혼의 생존에 대한 집착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당시 나는 외적으로는 비만이었으나 영혼은 심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었든 듯싶다. 비가시적인 영혼은 스스로 존재를 위해 심히 애썼던 게 아닐까? 〈남산도서관 환생 북클럽〉은 책 읽음이 영혼을 살찌울 수 있는 세계이다. 그곳에서 각각의 주인공은 영혼의 충만과 결핍을 오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책 밥’이라는 독특한 설정과 이 설정을 근간 위에 발을 디딘 캐릭터들을 조금 더 세세하게 짚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한 장 만큼 포슬하고 따뜻한
‘썸머’는 네 명의 주요 인물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메인캐릭터다. 썸머는 1999년 1월 남산도서관에서 의문의 사고로 생을 달리한다. 생에 남은 미련이 많았던 탓인지 썸머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미완의 존재로 생전의 기억 대부분을 잃은 채 남산도서관에서 다시 눈을 뜬다. 데뷔 직전에 유명을 달리했다는 기억만이 남은 썸머는 우연히 알게 된 책 읽기를 양분 삼아 끊어졌던 삶을 연결해 나가고자 한다. 썸머라는 이름은 캐릭터 자체를 한 단어로 보여준다. 여름이 가져오는 생생함, 선명함, 생동감의 느낌뿐만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변화까지 모두 썸머라는 캐릭터에 그대로 녹아나 있다. 현재 이런 색색깔의 썸머를 유지해 주는 힘은 독서이다. 일정량의 책 밥을 먹지 않으면 썸머는 일종의 코마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이때 썸머의 그림은 빛을 잃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작품 설명에는‘인간 꼴을 유지’하게 해 준다고 표현돼 있다.
▲ 〈남산도서관 환생 북클럽〉 Ⓒ 송송이
한편, ‘썸머’의 대척점에 있는 다른 주인공은 신규 사서로 부임한 ‘준하’이다. 준하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바로잡고자 썸머의 북클럽 제안을 수락한다. 사서로 출근을 막 시작했을 때의 준하는 살아있지만, 죽은 것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첫 출근에 동료 사서 쌤과의 대화로 직접적으로, 준하가 유일하게 마시는 음료가 선호도가 낮은 음료라는 것과 준하 집 냉장고가 비어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을 통해 간접적으로 삶의 태도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런 준하는 썸머와 도서관을 벗어나는 에피소드에서 책을 읽은 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후 책 밥이 떨어질 썸머를 염두에 둬서 지극히 싫어하는 본가에 들려 챙겨온 책이 ‘1996년 논문 모음집’, 정확히는 ‘허혈성 심장질환환자에서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의 임상학적 비교 보고’였던 것은 설정을 더욱 견고히 하면서도 재미까지 챙길 수 있던 장면이었다. 그랬던 준하는 썸머와의 에피소드를 거듭할수록 후퇴와 진보를 반복하며 성장하는데 썸머와 만남을 기점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곧 북클럽에 들어와 책을 읽기 시작한 시점이다. 즉, 준하 역시 독서를 통해 삶에 갖가지 색을 입히기 시작하게 된다.
▲ 〈남산도서관 환생 북클럽〉 Ⓒ 송송이
마지막으로 서브 여자주인공처럼 묘사되는 ‘리오’와 세 명의 캐릭터를 연결해 주는 역할의 ‘창봉’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고자 한다. 상대적으로 개인 서사가 많이 풀리지 않은 창봉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듯싶다. 창봉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랐다. 18살 갑작스럽게 치른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모든 친인척에게 외면당하지만 처음 얼굴을 본 아버지의 여자친구(?)에게 거둬져 자랐다. 새어머니는 혼인신청서에 도장을 찍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고 처음 보는 친인척에게 자신이 창봉의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음을 소리치는 여성이었다. 사서인 새어머니의 손에 길러지며 창봉은 처음으로 어른의 보호를 받게 됐고 타인의 상처를 감싸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
리오는 부족한 노래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가수 데뷔를 준비하는 연예인 지망생이다. 가수 데뷔 직전 사망한 썸머와 가수 데뷔를 앞둔 리오 사이의 사건이 이 웹툰의 메인 갈등인데, 갈등이 해소돼 가며 리오가 어머니의 꿈을 대신 이뤄주기 위해 엄마의 대역으로서 가수를 준비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작중 리오는 썸머에게 빌린 책을 읽느라 새벽까지 잠을 못 자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과거 회상 장면에서는 문학에 큰 관심이 있으며 영문학사나 문학사 공부를 위해 대학 입학을 준비했던 때를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기도 한다. 자신의 진짜 꿈을 억누른 채 살아온 리오의 내면은 여전히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 마음 밑바닥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 밑바닥 마음은 수천 권의 책이 빽빽이 꽂힌 책장이 즐비한 공간인데 리오가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 〈남산도서관 환생 북클럽〉 Ⓒ 송송이
지금까지 웹툰의 주요 콘셉인 독서가 각 인물과 얽혀있는 지점들을 짚어보았다. 〈남산도서관 환생 북클럽〉에서는 하나의 주요 소재를 중심으로 인물과 크고 작은 사건이 유기적으로 연관돼 있어 웹툰을 보면서 그 요소들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 책을 읽는 인물의 경우 여러 감정선을 보여주며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져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고 리오의 엄마나 이야기 초반의 준하처럼 책과 거리를 두고 있는 인물의 경우 약간은 히스테리적인 면모를 보이며 일관되게 부정적인 감정을 풀어내는 인물로 그려졌다. 전체 글의 흐름이나 분량 등을 고려해 위 이야기에 미처 다 담지 못한 세세한 요소가 아직 웹툰 속에 많이 남아있다. 이번 글이 읽는 이로 하여금 웹툰을 읽어볼 동기로 작용했으면 한다.
독서와 영혼의 비옥함을 웹툰 전체를 관통하는 컨셉이라 할 때, 한 가지 더 가볍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썸머의 삶을 유지하는 책과 삶을 종결하려는 ‘컴퓨터’의 대립이다. 이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대립까지도 생각하게 만든다. 가장 처음 다뤘던 맥락에서 다채로운 감성의 소유자인 썸머가 책 밥을 먹으며 삶을 영유하고 삶에 가까워진다는 것과 책 밥을 먹지 못해 죽음에 가까워지면 컴퓨터와 대면하게 된다. 코마에 빠진 썸머는 마치 배터리가 분리된 로봇 같은 모습으로 컴퓨터와 정신세계에서 (혹은 서버에서) 대화를 나눈다. 컴퓨터는 썸머가 접촉한 인물에 대한 지난 기억을 정보로써 제공하기도 하지만 진짜 목적은 ‘버그’를 수정함으로써 불완의 존재인 썸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컴퓨터의 특성은 ‘신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생각에 기반한 것처럼 보인다. 이 생각에 근간을 둔 여타 웹툰에서는 신적인 존재를 아이의 모습으로 많이 그려왔다. 그러나 〈남산도서관 환생 북클럽〉에서는 기존의 관행과는 다르게 컴퓨터의 모습으로 그려낸 것인데 선과 악이 없는 단지 판단만을 내릴 뿐인 성질을 잘 보여주는 선택이었단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독자는 시스템 관리자인 컴퓨터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다. 주인공인 썸머의 삶을 끝내려는 ‘악당’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전체 웹툰을 놓고 보았을 때, 송송이 작가는 독서에 긍정의 이미지를 많이 부여하고 있기에 아마 이 대립은 아날로그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남산도서관 환생 북클럽〉은 이제 썸머가 죽음 당시로 회귀해 성공적으로 가수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그 결말을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 어쩌면 이 글이 발행됐을 때는 이미 결말이 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또 다른 형태의 삶을 이어 나가기 시작한 썸머가 새로운 사건을 직면하고 있을 수도 있다. 여름을 좋아하는 개인으로서 썸머가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길 바란다. 더불어 웹툰에선 흔히 보기 어려운 종이 만화 시절의 그림체와 Y2K 옷 스타일 등 리뷰의 주제 외에도 읽는 즐거움이 많으니, 종이 만화를 좋아했던 분들께는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