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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 웃음의 묠니르를 든 ‘질서’의 파괴자 - 〈아기공룡 둘리〉

<지금, 만화> 제20호(2023. 11. 15. 발행) ‘Critique’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2024-05-25 장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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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 웃음의 묠니르를 든 질서의 파괴자

-아기공룡 둘리

세상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겹겹의 질서로 이루어져 있다. 시인 황지우는 자유롭게 창공을 나는 듯 보이는 새들조차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 일렬 이 열 삼 열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우리의 대열을 이루며”(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그들만이 아는 목적지로 날아간다고 쓰지 않았는가.

  만화 아기공룡 둘리가 태어난 1980년대 초는 폭력적 질서(만화가 김수정은 이를 어떤 보이지 않는 물리적 힘이라고 표현)의 위세가 극에 달했고, 개인을 숨 막히게 하다못해 수족까지 꽁꽁 묶어놓는 시대였다. 만화의 앞에 세워진 검열의 장벽은 높기만 했다.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19834보물섬에 첫 등장한 김수정의 만화 아기공룡 둘리는 웃음의 구름을 타고 두둥실, 누구도 올려다보지 못하던 질서의 장벽을 넘어버렸다. 빙하 타고 왔다는 맹랑한 아기공룡의 말 한 마디, 몸짓 하나에 아이는 물론, 어른까지도 깔깔거렸다. 반항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질서가 웃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여기저기서 독자가 터뜨린 웃음 뭉치는 토르의 묠니르처럼 날아가 질서의 장벽을 때려댔고, 철옹성 같던 그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둘리의 수상한 신분

  〈아기공룡 둘리는 첫 탄생(보물섬19834월호 연재 시작)으로부터 40년 세월이 지난 지금 보아도 웃음을 준다. 거두절미하고, 이 작품을 개그 만화라 부른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

  그런데 이 만화의 웃음은 오묘하다. 아기공룡 둘리는 웃기면서 슬프고, 슬프면서 웃기다. 요즘 말로 웃픈만화다. 반쪽을 딱 잘라서 이쪽은 웃기고, 저쪽은 슬프다라고 규정할 수 없다. 이에 대해 김수정은 희극성은 의도된 것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실생활)에서 형성되거나 표출되는 것 같다. 희극과 비극도 동전의 양면과 같아 다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아기공룡 둘리가 유발하는 희극성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탐색의 출발점은 바로 초능력을 가진 아기공룡의 수상한 신분이다. 이 희한한 공룡은 사람 도 아니면서 정식으로 대한민국 주민등록증까지 발급받았다. 경기도가 발급한 주민등록증에는 둘리(杜里) 830422-1185600’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만화 속 둘리는 그것으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여러 가지 신분 사이를 왔다 갔다 넘나든다. 우선, 북극 빙하 속에 갇힌 채 쌍문동에 흘러든 둘리가 개천에서 마주친 영희를 따라 고길동 집에 숨어드는 역사적인 보물섬연재 첫 회를 떠올려 보자. 아무도 초청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둘리는 불청객이다. 게다가 밥을 얻어먹으면서도 하숙세나 월세를 낸 적도 없다. 고길동의 용어로는 군식구. 매정하게 들리지만 그게 현실이다.

 

▲ 〈아기공룡 둘리원고 ▲▲ 〈아기공룡 둘리표지의 보물섬(사진출처: 아기공룡 둘리 공식 블로그)

  다음으로는 고아 신분이다. 아마 이것이 둘리의 가장 분명한 정체성 아닐까? 원시 공룡 시대에 외계인들에게 붙잡혀 엄마와 생이별한 슬픈 과거는 둘리의 처지와 행동을 이해하게 해주는 핵심 단서다. 돌봐줄 부모도, 추위를 피할 집도 없는 고아이므로 고길동 집에 껌딱지처럼 붙는다. 온갖 눈칫밥을 먹으면서 도.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악독한 여관집 부부에게 벗어나기 전까지의 가엾은 소녀 코제트를 슬며시 떠오르게 한다(그렇다고 고길동이 여관집 부부와 동급이라는 뜻은 아니다). 눈치가 말짱한 둘리는 가출해도 여기보다 더 나은 곳 이 없음을 안다. 한 때 엄마를 찾아 떠나기도 하는데, 아프리카에 도착한 둘리는 마음씨 좋은 수컷 하마와 만난다. 하마는 저런, 고아구나.”라고 혀를 차며 둘리를 양아들로 삼는다. 아프리카 어느 구석에서 피어오른 작은 감정의 스파크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 한 사건을 만들어 낸다. 이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에서 둘리는 양 아빠하마와 아프리카 동물들을 떼로 몰고 와 고길동에게 소개한다. 쌍문동 집 주인이 더 불쌍해지는 기막힌 반전에 독자는 크크웃을 수밖에.

 

▲ 〈아기공룡 둘리 〉 Ⓒ 김수정

  둘리가 인간들 틈에 끼어 사는 극소수의 비인간적 존재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인간도 아니고, 심지어 애완동물도 아닌 이방인 신분이다. 강아지라는 오해를 받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드물게는 너구리로 보는 이도 있다. 둘리는 능청스럽게 너구리 걸음을 해 보인 다. 둘리에게 피해를 당한 잡지사 기자들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고길동에게 강아지 교육 좀 잘 시켜요라고 항의한다. 그래서 이러한 질서속에서 소외감은 둘리에게 일상일 수밖에 없다. 둘리로서는 동병상련인 외계인 형제인 도우너와 코로깨, 서커스단을 탈출한 타조 또치 등을 만난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고길동으로서는 극도의 불행이지만) 이다. 인간도, 애완동물도 아닌 이방인 셋이 연대해 소시민적 기성 질서를 상징하는 고길동에 맞서는 것은 생존의 문제다.

  둘리는 더 떨어질 데가 없을지도 모른다. 고길동의 집에서 강요되는 신분은 보모. 고모네 아기 희동이를 돌보는 일은 고길동 가족 중 누구도 기꺼워하지 않는 일이다. ‘무전취식중인 둘리에게 희동이를 떠맡기는 것에 대해 고길 동 가족은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이 지점에서 둘리의 편은 없다. 그래서 밥값 해야지?”라는 고길동의 압박은 꽤나 힘을 발휘한다.

  둘리가 주체적으로 만든 신분은 정의의 사도와 악동이다. 고철더미로 개조한 자동차 번쩍호를 몰고 다니는가 하면, “우리나라 여객기를 쏘아 떨어뜨린 악당을 찾아서”(19839KAL기 피격사건 소재)라며 히어로 커스튬을 갖춘 둘리는 소련 전투기 조종사 코를 깨지게 한다. 온갖 사고에 대한 청구서는 고길동 에게 날아든다. 고길동으로선 의문의 1. 정의의 사도로 시작해서 악동으로 끝나는 둘리의 활약은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의 구절을 뒤집어 버린다.

티키타카의 승자는?

  둘리의 다양한 신분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을 둘러싼 질서 속에서 둘리는 언제나 상대적 약자다. 질서의 편에 있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둘리는 자신에게 강요되는 질서를 순순히 따를 의향이 없다. 20세기의 문명질서, 유교사상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의 사회 질서, 고길동의 가부장적 가정 질서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도 없지만 둘리에게도 그에 맞설 수 있는 무기가 있다. 바로 외계인이 남겨 준 초능력이다. 둘리는 때때로 20세기라는 시간을 뛰어넘고, 사회 질서를 뒤바꾸고, 고길동에게 카운터펀치를 날 린다. 둘리는 자신을 추종하는 도우너, 또치, 마이콜 등과 함께, 질서의 편에 선 고길동에게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 〈아기공룡 둘리 〉 Ⓒ 김수정

  그리하여 우리는 아기공룡 둘리라는 만화를 흥미진진하게 관전할 수 있게 된다. 둘리 vs 고길동의 티키타카, 이것이 시종일관, 한 치의 양보 없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둘리는 호이!”(초능력 구호), 고길동은 !”(생계)이란 외침으로 맞선다.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지만 양측은 보물섬연재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싸웠고, 승부를 내지 못했다.

  둘리는 운명이랄 수도 있는 불리한 신분 속에서도 끝까지 전세 역전을 도모한다. 둘리가 고길동에게 굴복한 것 같은 순간조차,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을 뿐이다. 굳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던 신분이, 관계가 뜻밖에 역전되는 것이 웃음의 공식이다. 도둑맞은 도둑을 연상해보라. 둘리의 굳건한 지지자 도우너는 고길동을 가리키며 너네 애완동물(고길동)은 항상 저렇게 소리를 지르니?”라고 묻는다. 문학에서는 낯설게 하기라고 부르는 수법인데, 시점은 깐따삐야 별 외계인의 것으로 급전환된다. 비지구생명체의 시점에서는 둘 리가 고길동에게 당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상하다? 왜 지구에서는 주인(둘리)이 동물들(고길동 가족)에게 꼼짝을 못하니?”라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아기공룡 둘리의 텍스트 속에서는 약자에 대한 질서의 폭력적 시선이 종 종 드러난다. 상처받는 것은 둘리뿐이 아니다. 둘리의 이웃사촌이자 가수 지망생 마이콜은 내 재산은 아무도 흉내내지 못하는 아름다운 내 목소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친구들은 이 말을 비웃는다. 자신감을 잃은 마이콜은 가수에 서 개그맨, 배우 등등을 전전한다. 사실상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둘리와 친구들은 기존의 질서 앞에서 누구도 완전히 좌절하지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둘리가 초능력으로 만 든 도우너의 수많은 생일 케이크들은 고길동의 분신이 되어 형님(고길동), 사랑을 주세요!”라고 외친다.

  둘리와 고길동의 일진일퇴 공방전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어느 한쪽으로 무게 중심이 기울지 않았다. 서로 너무 강적을 만난 것이다. 둘리는 무거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 고길동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그들은 서로를 이해했다. ‘40년 만에 전하는 고길동 아저씨의 편지’(2023년 발표)에서 고길동은 인생이란 그런 것입니다. 이해하지 못한 상대를 이해해 나가는 것, 내가 그 입장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썼다. 짠하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영원한 언더독(Underdog)’ 둘리에게 경의를!


필진이미지

장상용

작가, 만화평론가
초이락컨텐츠컴퍼니 웹툰사업팀장, 前 부천국제만화축제 사무국장, 前 일간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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