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뷰어로보기'를 클릭하시면 도서 형식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여성향 개그 만화에서 드러나는 유머 코드
- 〈모죠의 일지〉, 〈여탕보고서〉, 〈냐한남자〉를 중심으로
한국 웹툰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르는 바로 개그 만화이다. ‘만년삼’ 캐릭터로 웹툰계를 이끌었던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 한 세대의 ‘밈’으로 자리잡았던 〈이말년씨리즈〉,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꾸준한 인기를 얻은 〈마음의 소리〉까지 개그 웹툰은 2000년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초창기 개그 웹툰은 소위 ‘엽기’로 통칭되는 코드를 주로 차용하며 클리셰를 비틀거나 돌발적인, 혹은 과격한 리액션을 통해 웃음을 이끌어냈다. 한편 그보다 더 이전 세대 웹툰, 즉 웹툰의 원조격인 〈마린블루스〉, 그리고 엽기토끼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플래시 애니메이션 〈마시마로〉 등은 개그 만화와 캐릭터 산업의 결합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보다 시간이 흐른 현재, 여성 독자의 목소리가 더욱 가시화되는 만큼 개그 웹툰에서도 여성 독자를 위시한 작품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 최근 〈냐한남자〉와 〈마루는 강쥐〉의 팝업 스토어가 한 백화점에 열리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는 캐릭터의 상품성이 아직도 인기 요인으로 크게 작용함을 시사한다.
또한 ‘엽기’ 문화의 유행이 지나면서 점차 개그 웹툰의 양상도 변화했다. 과격함보다는 부드러운 힘을 통해 독자를 이끌게 된 것이다.
이렇듯 여성 독자의 기호가 반영되면서 인기를 얻는 작품들은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여기서 어떠한 이유로 개그 웹툰이 변화했으며 이 새로운 유머 코드는 무엇인지 알아볼 것이다.
공감과 직관적 웃음으로 여성 독자를 공략하다
여성 독자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을 대략적으로 언급하자면 〈마루는 강쥐〉, 〈극한견주〉, 〈모죠의 일지〉 등이 있다. 이들은 이전 세대 작품보다 완화된 톤을 사용하고 있으며 독자와 간격을 좁히는 ‘공감툰’ 형식, 혹은 이입이 쉬운 스토리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전 세대의 개그 만화는 주로,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폭력성을 표방하고 있다. 인물들이 치고받거나 기발하고 거친 욕설을 주고받으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주된 방식 중 하나였다. 간혹 이러한 폭력적 표현은 뉴스 기사에 오르내리며 문제시되기도 하였다. 이에서 한발 더 나아가 페미니즘과 PC(정치적 올바름)가 보편적인 개념으로서 퍼지게 된 현재, 여성 독자들은 비하적인 표현에 반감을 표하는 경향이 강해졌고 이는 작품의 트렌드에도 반영된다.
한편 한국에서 전반적인 개그의 트렌드 자체가 바뀐 것 또한 한가지 요인으로 볼 수 있다. 한때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개그콘서트〉를 비롯한 개그 프로그램들이 하나둘 폐지되면서 코미디언들은 유튜브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원초적이고 직관적인 웃음코드에 명확한 컨셉을 더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도모한다. 특히 ‘빠더너스’로 알려진 문상훈은 인터넷 강의 포맷의 콩트로 유명하며, 여 타 채널에서도 색다른 컨셉을 어필하고 있다. 이는 웹툰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특색이 명확한 노선을 선택하거나 캐릭터의 개성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또한 여성을 하나의 개별적인 독자층으로서 타겟팅하는 개그 웹툰이 많아지는 추세이기도 하다.
독특하고 호감있는 캐릭터로 눈길을 사로잡다
이러한 여성 타겟 만화들이 공유하고 있는 유머 코드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첫 번째 코드는 누차 강조했던 캐릭터 위주의 전개이다. 이미 한국 애니메이션에서는 ‘뿌까’와 ‘뽀로로’를 통해 캐릭터 IP의 중요성이 합의된 지 오래다. 이는 웹툰계에서도 꾸준히 시도되어 왔는데, MD샵이 꾸준히 열리기도 하였으며 광고계 또한 웹툰 캐릭터를 모델로 세우는 경우는 이전부터 매우 흔한 시도였다. 현재의 개그 웹툰도 이러한 흐름을 잇고 있다. 특히 2030 여성층의 캐릭터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일상화되면서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 최근 ‘다꾸(다이어리 꾸미기)’가 유행을 넘어 하나의 취미로 자리잡으며 스티커와 각종 문구류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였다. 이러한 수요에 응해 캐릭터 굿즈는 아마추어 판매자를 비롯한 많은 기업에서 뛰어들고 있는 분야이며 캐릭터 관련 팝업스토어에 긴 대시기 간이 발생하는 것은 예사가 된 지 오래다.
마일로 작가의 〈극한견주〉는 작가의 반려견 ‘솜이’의 일상을 그려낸 만화로, 개성 넘치고 톡톡 튀는 솜이의 성격이 작품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귀여운 작화로 표현되는 솜이의 모습이 인기를 얻어 인터넷 서점 등지에서 〈극한견주〉와 관련된 굿즈를 적극 프로모션하고 카카오톡 이모티콘이 출시되는 등 캐릭터 사업에 있어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상기한 〈마루는 강쥐〉와 〈냐한남자〉의 콜라보 팝업스토어 또한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작품의 성공이 비단 작품성 자체에서 그치지 않고 캐릭터의 경쟁력까지 확장된 경우로 볼 수 있다. 이는 곧 세 작품이 극에 일관성을 부여하면서도 호감가는 이미지를 주는 캐릭터를 묘사하는데 공을 들였음을 의미한다.
공감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유대감 형성
두 번째 코드는 공감과 관련된다. 일상툰을 포맷으로 하는 개그 만화는 긴 시간 인기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일상툰에도 ‘여성향’ 장르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모죠의 일지〉를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인터넷 문화와 서브컬처에 대한 여성층의 관심이 지대해졌고, 소위 ‘집순이’라는 표현처럼 개인의 시간을 중시하는 경향이 광범위하게 퍼지게 되면서 일반적인 일상과 다른 방향성을 가지는 일상툰이 등장한 것이다. 주인공 ‘모죠’는 주변과 시끌벅적 어울리기보다 자신의 방에서 SNS나 영화 스트리밍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매니악한 음악 장르와 다소 ‘오타쿠’스러운 작품에 대한 기호는 ‘덕후 세대’를 대변하는 모습으로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슬랩스틱 요소에서도 기존의 경향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상대에게 딴죽을 걸기 위해 주먹을 날리거나 하는 행동적인 리액션보다 비교적 현실적인 반응을 코믹하게 과장하여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즉 〈모죠의 일지〉는 섬세한 관찰력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우리로부터 익살스러운 면모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작품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밈’에 대한 적극적인 패러디가 눈에 띈다. 주로 여성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밈을 차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밈은 고전 여성향 애니메이션 등을 출처로 두고 있다. 밈의 적절한 사용이 공감대를 형성하여 개그 웹툰으로서의 속성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 〈마루는 강쥐〉 Ⓒ 모죠 ▲▲ 〈모죠의 일지〉 Ⓒ 모죠
공감을 통해 친밀감을 형성하는 다른 작품으로는 〈여탕보고서〉가 있다. 특히, 제목부터 ‘여탕보고서’인 만큼 여성층에게 큰 공감을 얻었는데, 여탕에서 일어나는 각종 해프닝과 여탕의 주요 ‘컨텐츠’를 소개하며 호응을 유발하고 나아가 여성층의 공중목욕탕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과 수요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상술한 바와 같이 〈여탕보고서〉 또한 여성향 개그 웹툰의 트렌드를 따르고 있는데, 목욕탕에서 일어나는 불쾌한 경험들을 ‘응징’하는 뉘앙스는 거의 배제되고 황당함의 정서를 강조하여 독자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경 험에 더욱 집중한다. 또한 댓글을 통해 독자들이 생각을 공유하도록 유도하면서 공감툰을 작품 바깥의 영역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이렇듯 새로운 유머코드를 적용하여 커뮤니케이션 위주의 작업을 진행하면서 여성향 개그 장르는 그만의 특색을 갖춰 나가고 있다.
▲ 〈여탕보고서 〉 Ⓒ 마일로
로맨스 장르를 기반으로 스토리
세 번째 코드는 스토리와의 결합이다. 이 중 대표격의 작품은 〈냐한 남자〉로, 사람과 고양이의 모습을 넘나드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작품은 여주인공이 우연히 구조한 고양이가 고양이들의 나라인 ‘냥국’의 왕자임을 스스로 밝히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특이한 점은, 개그 장르의 특성을 지니면서도 로맨스 문법의 스토리라인을 따른다는 점이다. 또한 인물들의 심리를 깊고 섬세하게 묘사한 면에서도 호평을 얻었는데, 이렇듯 복합적이며 장르를 넘나드는 표현들이 개그 웹툰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냐한남자〉 Ⓒ 올소
지금까지 나열한 여성향 개그 만화의 코드를 살펴봤을 때,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한가지 특성은 그것이 확장성의 측면에서 매우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캐릭터를 강조하여 사업적 확장을 도모할 수 있으며,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여 작품 바깥으로 작품이 연장될 수 있도록 하며 다른 장르와의 결합이 용이하다는 부분에서 그러하다. 다른 여성 서사 작품들과 같이 여성향 개그 만화 또한 독립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히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 만화계 전체에도 고무적인 작업이 될 것이며 장르가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되는 데 크게 기여하리란 기대를 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