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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酒)을 즐기는 방법 : 도시의 술꾼 혹은 술꾼이 되고픈 이들을 위하여 - 미깡의 〈술꾼도시처녀들〉

<지금, 만화> 제20호(2023. 11. 15. 발행) ‘Essay’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2024-06-08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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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즐기는 방법

: 도시의 술꾼 혹은 술꾼이 되고픈 이들을 위하여 - 미깡의 술꾼도시처녀들

  필자가 미깡 작가의 술꾼도시처녀들를 만난 것은 웹툰이 아닌 만화책이 먼저였다. 우연히 서점에서 술꾼으로 시작되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 그게 첫 만남이었다. 이 작품에는 뚱이, 꾸미, 리우 세 명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35세 술친구다.

  뚱이(본명 정진아)는 매사에 뚱해서 뚱이다. 출판기획자로 술집 메뉴판을 들고나오는가 하면 술집 화장실 열쇠나 마시던 소주병을 가방에 넣고 오는 술버릇이 있다. 알코올 의존증을 의심하는 친구들에게 뚱이는 말한다. “난 알코올에 의존하지 않아 사랑하지!” 하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연인은 술을 알지 못하고 결국 헤어진다. 좋아하는 것을 같이 즐기지 못하는 것만큼 연인들에게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연히 재회하며 그녀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 〈술꾼도시처녀들〉 Ⓒ 미깡

  꾸미(본명 고명)는 프리랜서 작가다마시던 술이 떨어지자 호기심에 맛술을 마시기도 하는 진정한(?) 술꾼이다. 뚱이가 담당하는 마작가(본명 마신남)와 연애를 하고 있다. 이 커플은 서로에게 외모가 취향은 아니나 술에는 진심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리우(본명 심미한)는 웹디자이너다. 소주 6병을 마셔서 리우(). 그녀의 술버릇은 지금까지 누구도 본 적이 없다.(그만큼 강하다는 뜻) 그녀 또한 을 통해 만난 이홍식과 연애 중이다. 이 커플에게도 위기는 있었지만 계속 사랑을 이어간다.

  많은 에피소드 중 마지막으로 그녀들의 아지트였던 단골 술집이 7년의 영업을 뒤로하고 문을 닫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꾸미는 마치 그녀들의 한 시절이 함께 끝나버린 느낌을 받으며 이 만남이 계속될 것인지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 것인지 헛헛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즐겁게 보내야 한다고 말하며 10년간의 긴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지금 필자가 들고 있는 것은 술꾼도시처녀들(2022, 위즈덤하우스) 완전판으로 작년 출간된 책이다. 20144월 카카오웹툰에서 술꾼도시처녀들이란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해서 20173월에 완결되었고, 2022년에 그림을 전부 새로 그려 완전판으로 술꾼도시처녀들단행본을 출간했다. 만약 웹툰과 출판만화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새롭게 출간된 완전판 책을 보기를 추천한다. 하지만 웹툰과 함께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으니 같이 봐도 좋다. 조금은 날것 그대로의 그림과 이야기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이 웹툰은 20212022년에 술꾼도시여자들이란 제목으로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술꾼도시처녀들은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이 말 그대로 진창으로 마셔대는 이야기다. 그녀들은 페미니즘이나 여성주의를 외치지 않는다. 비혼주의자이거나 비연애주의자도 아니다. 백마탄 왕자를 기다리는 신데렐라는 더욱더 아니다. 그냥 우리 주변에 흔히 있을법한 술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 〈술꾼도시처녀들〉 Ⓒ 미깡

  그녀들에게 술이란 신성 한 것이다. 그것에 다른 의미를 둔다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느껴질 만큼 술에 진심인 그녀들의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마치 어떤 종교적 깨달음을 위한 순례자처럼 그녀들의 발걸음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단골 술집으로 향하고, 그리고 함께 술을 마신다.

  술이 언제 나타나서 어떻게 사람들이 마시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신화 속에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 곁에 있어 온 것은 분명하다. 술은 바쁜 일상과 고단한 하루를 보낸 이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하고, 또 각종 모임이나 어떤 집단의 단결을 위한 의례적인 수단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작품 속에서 또한 그러하다. 술을 좋아하는 연대의식이 있는 이들이 모여 진창 술을 함께 마신다는 행위는 삶의 고단함을 승화시키는 수단이며 다시 삶으로 돌아가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한 일상적인 의례다. 마치 술과 밥을 구분하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녀들에게는 술은 먹고 마시는 삶 그 자체다.

  이 작품이 연재를 시작하고 끝났던 2010년대는 우리 사회 전반에 큰 변화가 있던 시기다. 10년이란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10년이란 세월은 강산도 변할 수 있는 긴 시간이란 뜻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SNS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온 지난 2010년대는 10년의 강산보다 더욱 빠르게 변했다.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증가하고 나홀로족이 등장했으며, 소비생활의 패턴이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고, 지속되는 저성장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인생은 한번 뿐이라는 욜로(You only Live Once)라 는 신조어로 등장했다. 지금이라고 해서 더 나아진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희망적인 미래보다는 절망적인 미래가 더 그럴듯해 보이던 그런 시기였다. 웹툰 술꾼도시처녀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위안과 위로,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작은 힘을 주고자 했다. 그녀들은 오래된 가게들은 사라지고 프랜차이즈만 늘어가는 가운데 자신들의 단골집이 올라가는 월세와 유지비로 당장 버티는 게 관건인 사장님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또 지금, 이 순간 저마다 고된 하루를 보낸 세상의 모든 혼자들에게 건배를 외치며 말을 건넨다. 힘든 일이 있었다면 이 한잔하고 털어버리고 다시 내일 또 씩씩하게 힘찬 하루를 보내 보자고. “오늘도 애썼어요.” 독자들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위안을 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게 된다.

 

▲ 〈술꾼도시처녀들〉 Ⓒ 미깡

  지금 밝히자면 필자는 술을 못한다. 술을 좋아하지만, 즐기는 방법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필자에게 술꾼이란 여러 의미에서 21세기 현대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판타지 세계 속 영웅처럼 생각되곤 했다. 하지만 결국 해답은 찾기 마련이다. 리우와 술을 즐기는 방법을 모르는 그녀의 연인과 대화에서 작가가 필자를 포함한 독자에게 건네고 싶었던 말에서 말이다.

 

  “어떻게 하면 술이 좋아지고 맛있어질까요? 저 좀 가르쳐 주세요

  “술이 맛있어지는 법일단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있으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에요. 홍식씨 술친구는 이제부터 제가 할 거니까

 

  만약 술에 얽힌 삶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원한다면 칵테일 한잔에 인생이 야기를 담은 김양수 작가의 한잔의 맛을 추천한다. 현직 바텐더가 감수하여 술에 대한 지식까지 얻을 수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면 2012년 국내에 책이 출간된 이후 많은 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마스다 미리 작가의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시작으로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아무래도 싫은 사람, 수짱의 연애, 그리고 2020년도에 국내 출간되며 이야기를 마무리한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를 읽어보는 것도 좋다. 현란한 색이나 장식이 없는 단순한 선으로 된 작가의 그림체와 잔잔한 이야기는 독자에게 편안함과 작은 위안을 줄 것이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내 삶의 풍요로움을 위해서는 그것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문득 작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때, 부산 한 술집에서 마셨던 오뎅탕과 뜨거운 술 한잔이 생각난다. 그날은 유독 술이 달고 달았다. 함께한 사람이 좋았고 인심 좋은 주인장과 편안한 분위기 탓이었을까? 날씨도 딱 좋다. 오랜만에 술 한 잔 마시자고 연락해 봐야겠다.

필진이미지

김현지

서일대학교 웹툰스토리텔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