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뷰어로보기'를 클릭하시면 도서 형식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구원을 찾은 혐오스런 모미의 일생
- 만화 〈마스크걸〉 vs 드라마 〈마스크걸〉
끝내주게 못생기고 끝내주게 몸매 좋은 여자, 김모미(네이버 웹툰 〈마스크걸〉 작품 소개) 외모가 개인 간 우열을 가르고 심지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고 믿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루키즘(Lookism)’은 외모지상주의 혹은 외모 차별주의로 번역된다. 외모가 하나의 ‘스펙’으로 여겨지는 현실에서 성형이나 다이어트는 그리 멀게 느껴지는 단어가 아니다. 동화나 영화, 만화에서 마법, 성형이나 다이어트, 메이크업 등으로 아름다운 외모를 갖게 된 주인공의 인생 역전극을 그리는 것도 낯설지 않다. 인류는 다양한 방법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해왔다. 이러한 미적 욕망은 예술로 승화 되기도 했지만, 많은 개인, 특히 여성은 아름다운 외모를 갖기 위해 자의로 혹은 타의로 노력해왔다. 〈마스크걸〉은 아름다움에 대한 과도한 욕망과 그러한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와 미디어의 선정성, 익명성에 기댄 폭력 등 다양한 시점에서 비틀린 한국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다.
출구 없는 막장극
웹툰 〈마스크걸〉은 2015년 8월부터 2018년 6월까지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된 웹툰으로 아름다운 외모에 광적 으로 집착하는 주인공 김모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그린다. 모미는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밤이 되면 인터넷 방송 ‘아메리카 TV’의 인기스타로 ‘마스크’를 쓰고 완벽한 몸매와 주체못하는 끼를 발산하는 ‘마스크걸’이 된다. 포털 서비스 연재 웹툰으로는 매우 드물게 18세 이상으로 연령제한이 있는 이 작품은 모미의 낮은 자존감과 삐뚤어진 욕망, 그리고 모미 못지않게 엉망인 주변 인물을 그린다.
▲ 웹툰 〈마스크걸〉 1부 1회
웹툰 〈마스크걸〉 1부의 시 작은 블랙 코미디였다. 첫 회에서 모미의 완벽한 몸매와 매우 못생긴 얼굴의 극단적인 부조화가 웃음의 코드로 작용한다. 완벽해 보이는 직장 상사 박기훈 부장이 실은 자아도취에 빠진 SNS 중독자이고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포장하지만 굉장한 편견 덩어리인 모미의 직장 동료 상순, 여직원에 대한 성희롱이 일상인 남자 직원들, 유부남인 박기훈 부장과 젊고 예쁜 여직원 이아름의 불륜-둘의 불륜을 알게 된 박 부장의 부인이 등장해 회사는 난장판이 된다. 막장 드라마의 클리셰에 다름없는 장면이다-까지 모미의 직장 구성원 모두는 상식의 선을 쉽게 넘나들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범죄자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한심한 구성원 중 진짜 범죄자가 되는 것은 놀랍게도 주인공인 모미이다.
▲ 웹툰 〈마스크걸〉 1부 12회
외모에 대한 무시가 기저에 깔린 차별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모미지만, 밤 이 되면 마스크 뒤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채팅창을 통해 쏟아지는 찬사와 추앙을 한 몸에 받는다. 그러나 모미의 이중생활은 오래가지 못한다. 우연히도 모미와 한 사무실에 있는 남자 직원인 주오남이 마스크걸의 팬이었고 모미의 정체 즉, 마스크걸의 정체를 알아차린다. 주오남은 어머니의 비뚤어진 애정과 열등감으로 생긴 균열을 감추고 있다. 현실의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해소하고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인물로 그에게는 이성에 대한 뒤틀 린 성욕과 편견이 있다. 그리고 주오남의 이러한 일그러진 심리는 이 작품 전체 에서 모미가 저지르는 모든 사건과 범죄의 시작이 된다. 모미를 포함해 모미 주 변의 많은 인물이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상황에서 모미가 저지른 두 건의 살 인과 함께 1부가 마무리된다.
마스크 뒤, 모두의 민낯
특정 성별에 대한 차별과 혐오, 자기중심적 우월감, 도덕적 해이… 모미 주변 인물의 위선에 독자들은 어쩌면 기시감을 느꼈을 것이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웃음을 섞어 가볍게 묘사하고 있지만, 웹툰 〈마스크걸〉이 던지는 화두는 꽤 심각한 것들이다. 성차별과 혐오, 외모지상주의, 이기주의, 성적 대상화에 온라인의 익명성에 기댄 언어폭력과 미디어의 선정성까지 현대사회의 많은 모순이 이 작품에 담겨있다. 이 다양한 모순을 투영하는 인물들 또한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을 만큼 이기적인 존재들이다. 모미는 자신이 저지르는 크고 작은 범죄에 크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주인공인 모미에게조차 최소한의 측은함과 동정을 보낼 수 없는 상황에 독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2부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주오남의 어머니 김경자는 아들을 향한 비틀린 애정으로 오직 복수에 매달린다. 그리고 그 복수는 모미뿐 아니라 모미의 딸에게 향한다. 내가 느낀 아픔을 너도 느껴야 한다는 이유이다. 모미는 원하던 미모를 얻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큰 것을 욕망한다. 작가는 권선징악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않으며 모미에게는 범죄에 대한 참회도 없다. 악행의 폭주 끝에 있어야 할 마땅한 반성이나 회한 그리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는 보여주지 않는다. 이처럼 이 작품이 단순한 막장극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악역의 섣부 른 뉘우침을 그리지 않는 데에 있다.
구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상당히 잔인한 스토리임에도 독자들이 부담 없이 작품에 접근할 수 있는 이유는 과장된 작화 스타일에 있다. 흑백을 기본을 1부에서는 노란색을 2부는 오렌지색, 3부는 청록색을 사용한 단순한 컬러 배합과 희화된 인물 스타일은 이 이야기가 분명한 허구임을 강조한다.
비틀린 애정과 구원
웹툰 연재가 끝나고 5년 후 〈마스크걸〉은 2023년 8월 18일 넷플릭스 드라마로 공개되었다.
웹툰은 1부 29회, 2부 48회, 3부 48회 총 125회로 구성된 장편이지만 드라마는 7회로 분량이 대폭 줄었다. 주인공인 김모미 역할을 세 여배우가 나눠 맡았다는 부분도 화제였다. 원작 웹툰의 1부와 2부, 3부에 해당하는 부분을 각각 다른 배우가 연기한 것이다. 작품 속의 시대상과 인물의 서사를 반영하는 음악과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은 류성희 미술감독 특유의 스타일로 표현한 다양한 공간, 기괴한 음악과 현란한 그래픽의 감각적인 오프닝 시퀀스는 영상매체의 장점을 극대화했고 웹툰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여기에 배우들의 훌륭한 연 기가 더해져 드라마 〈마스크걸〉은 흥행은 물론 비평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 드라마 〈마스크걸〉 포스터
웹툰과 드라마라는 근본적인 차이 이외에 원작 웹툰과 드라마의 가장 큰 차이는 서사에 있다. 긴 분량의 웹툰을 7회로 압축하면서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축약되거나 사라졌다. 1부의 모미 회사 사람들의 촘촘한 인물 설정과 2부에서 성형으로 다른 사람이 된 모미가 보여주는 기행과 범죄가 드라마에서는 거의 생략되었다. 무엇보다 드라마는 모미의 범행에 나름의 당위성을 만들어준다. 모미의 첫 범죄는 조력자에 의한 간접적인 범죄로 희석되었고 두 번째 살인(드라마에서는 첫 살인)은 어쩌면 정당방위와 사적 복수로도 설명할 수 있게 각색되었다. 초라 한 도망자로 살던 모미는 이야기 후반부에서 눈물겨운 모성애도 보여준다. 멈출 줄 모르던 모미의 폭주와 여러 인물이 벌이는 쉴 틈 없는 배신과 기만이 엷어지면서 드라마 속의 모미에게는 동정의 여지가 생긴다.
▲ 드라마 〈마스크걸〉 오프닝
이러한 서사와 캐릭터성의 변화는 125화의 웹툰을 7회 분량의 드라마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상당 부분 덜어내면서 생긴 틈이기도 하지만, 웹툰과 드라마라는 매체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연령제한 없는 작품이 보편적인 포털 웹툰 서비스에서 18세로 연령제한이 있었던 원작이기에 서사는 상당히 과격하고도 파격적이었다. OTT로 서비스된 드라마도 18세의 연령제한이 있지만, 드라마와 웹툰 묘사는 다를 수밖에 없다. 웹툰과 드라마의 장단점이 분명하기에 이러한 차이점이 작품의 평가 기준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웹툰의 장점과 영상물의 매체적 특성을 잘 살린 드라마 〈마스크걸〉은 드물게 원작 팬과 드라마 팬 모두를 만족시킨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