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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만화에서 역사 만화는 어떻게 발전되었나?
-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역사 만화의 흐름과 현황
사람들은 왜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우리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풀어낸 옛날이야기를 흥미롭게 즐긴다. 영웅호걸의 활약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짓밟히고 상처입지만 다시 일어나 저항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의기에 박수를 보낸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현재적 삶에 이정표가 되는 역사는 무겁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과거 이야기의 이면을 들춰 새로운 해석을 담고, 허위의식으로 포장된 부조리의 죄를 묻는 이야기는 현재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재미를 발견하게 한다.
역사 만화는 역사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창작되거나, 역사적인 소재를 각색하여 스토리화 한 만화 장르다. 한 시대의 역사를 만화로 기록한 작가의 창작은 그 자체로 역사서다. 키케로는 “역사란 시대의 증인이고, 진리의 빛이며, 기억의 되살림이고, 삶의 스승이며, 옛 세계의 소식 전달자”라고 정의했고, E. 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현재의 눈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역사 만화는 작가의 시선으로 새롭게 이야기를 엮어 독자와 교감한다. 역사를 보는 관점에 따라 역사적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역사물의 다양성은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작가의 태도로 나뉜다. 그래서 작가 가 ‘무엇을 담고자 했는가? 어떻게 담았는가?’가 중요하다.
1950~60년대 이야기만화를 꽃피운 대표적 장르 역사 만화
1950~60년대는 한국 장르 만화가 시작된 시기다. 1957년 서울총판이 설립되는 등 전국 규모의 만화 유통망이 구축되면서 대여 시장은 만화방으로 상업화되었고, 유통망을 통해 만화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되자 만화출판사도 급증했다. 1950년대 전쟁 이후 서서히 확장되던 이야기만화는 1960년대 만화 독자의 확대를 기반으로 창작이 활성화되고, 확대된 독자들의 차별화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장르의 만화가 창작되기 시작한다. 1950년대의 만화가 감 성과 시대극 등을 중심으로 창작되었다면, 1960년대는 만화의 전성기로 SF, 명랑, 순정, 모험, 시대극, 스포츠 등 장르 만화를 꽃피운 만화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였다.
1950년대 김용환의 〈토끼와 원숭이〉를 시작으로 박광현, 박기당, 김종래 등의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역사 만화를 창작했다. 이 시기 역사 만화 장르는 ‘전통 극화’, ‘사극’이라 통칭되며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 군상들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 전후(戰後) 힘겨웠던 국민들의 일상에 큰 위로를 주었다.
▲ <토끼와 원숭이> ⓒ 김용환 ▲▲ <엄마 찾아 삼만리> ⓒ 김종래
▲▲▲ <바다의 독수리> ⓒ 박기당 ▲▲▲▲ <폭탄아> ⓒ 박기정
김용환은 해방 후 한국 만화의 대표적 작가로, 일제의 부당한 침략행위와 식민 통치를 날카롭게 풍자한 〈토끼와 원숭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각색한 〈코주부 삼국지〉 등을 창작하였고, 이 작품들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한국 만화사의 중요한 작품이다. 사실적인 그림체로 역사 만화를 그린 김종래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흑두건〉, 〈백가면〉, 〈엄마찾아 삼만리〉를, 해방 후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눈물의 별밤〉, 〈파도〉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헤쳐 나간 인물들의 비극적 삶을 그렸다. 박광현은 1950년 청나라 시대를 무대로 한 〈최후의 밀사〉를 시작으로 〈임꺽정〉, 〈징기스칸〉을,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조국의 누나〉 등을 발표하였고, 박기당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왜구와 맞서 싸우는 형제들의 이야기를 담은 〈바다의 독수리〉,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내 고향 저 산 넘어〉 등의 작품으로 당시 독자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얻었다. 정한기의 〈조랑어사〉, 유세종의 〈결사대〉, 박기정의 〈폭탄아〉까지 조선시대에서 항일 독립군, 해방 이후 한국 전쟁과 전후 한국의 역사까지 수많은 역사 만화가 이 시기에 창작되었다.
1970년대 역사 만화
1970년대는 한국 만화사에서 힘겨운 시기였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심의·검 열은 한층 강화되었다. 판잣집에서 누더기 옷을 걸친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은 ‘사회에 불만있느냐’는 질타를 받았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장면은 ‘불량하다’는 이유로 불가 판정을 받았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 작가들의 상상력은 힘을 잃었다. 이 시기 어린이들은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 등의 교양 잡지를 통해 만화를 봤고, 잡지는 어린이들의 일상을 담은 ‘명랑만화’ 장르의 작품을 주로 연재했다. 역사 만화 소재도 다양성을 잃고, 출판 시장도 침체되었다. 60년대 역사 만화의 대표 작가였던 김종래의 〈암행어사〉·〈일지매〉, 김원빈의 〈주먹대장〉, 허영만의 〈각시탈〉 등 소수의 작품만이 창작되었다.
1970년대 어린이 대상의 역사 만화가 소극적으로 출판되는 상황 속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잡지나 스포츠 신문을 중심으로 역사 만화가 연재되었다. 《새소년》에 무도인 최배달의 일대기를 그린 〈대야망〉을 연재한 고우영은 본격적인 역사 만화 창작으로 《일간스포츠》에 〈임꺽정〉을 시작으로 〈수호지〉, 〈삼국지〉, 〈일지매〉 등을 연재했다. 고우영은 스포츠 신문을 중심으로 중국 고전을 각색한 만화를 연재하면서 해학을 담은 현실 비틀기로 작가만의 풍자적 웃음을 담아냈다. 고우영의 문하에서 작품을 시작한 방학기도 1970년대 중요한 역사 만화가다. 《새소년》에 기찰포교를 주인공으로 한 〈초립동이〉를 연재했고, 성인만화 〈애사당 홍도〉, 〈바리데기〉, 〈조선여형사 다모〉 등을 창작하였다. 방학기는 무당·도적·사당패·백정 등 밑바닥 인생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조선시대 하층민들의 치열했던 삶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방학기는 치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탄탄한 스토리를 엮어내고, 리얼하고 세밀한 장면 묘사로 역동적인 연출을 구현하며 역사 만화에 액션활극의 특징을 함께 담았다.
1980~90년대 역사 만화, 시대의 아픔과 민초들의 저항을 담다.
1980년대는 정치·사회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20년의 군부 통치가 종식되자마자 다시 등장한 신군부 정치권력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거세 저항에 직면했다. 이 시기 창작된 역사 만화는 시대적 열망과 국민적 저항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담았다. 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권력에 저항하는 민초들의 삶을 담은 작품은 변혁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 <덩더꿍> ⓒ 이두호 ▲▲ <장길산> ⓒ 백성민, 황석영
▲▲▲ <북해의 별> ⓒ 김혜린 ▲▲▲▲ <황색탄환> ⓒ 김형배
▲▲▲▲▲ <오! 한강> ⓒ 허영만
1980년대 역사 만화의 대표적 작가였던 이두호, 백성민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난세를 살아가는 백성들의 삶과 저항을 담은 만화를 창작했고, 등장인물들은 전통적 영웅에서 벗어나 백성·천민 속에서 성장하는 저항적 인물이었다. 이두호의 〈바람소리〉, 〈덩더꿍〉, 〈임꺽정〉, 〈객주〉 등과 백성민의 〈장길산〉, 〈삐리〉, 〈상자하자〉 등은 지배 권력과 당대의 부조리에 저항한 백성들의 이야기다. 반정공신 홍윤성의 패악에 저항한 독대의 복수, 천민으로 지배계층에 저항한 의적 임꺽정, 의적 장길산의 이야기 등 이 시기 역사 만화는 실존 인물(사건)에 허구적 캐릭터를 덧붙이고, 작가적 상상력으로 민중들의 삶과 저항을 담아냈기에, 독자들이 살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은유로 읽히며 동시대적 공감대를 높였다.
1980년대 한국 역사 만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여성 만화의 변화이다. 김혜린은 절대군주제에서 시민 중심 정치 체제변혁을 추구한 시민혁명 시기를, 가상왕국을 배경으로 담은 〈북해의 별〉과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한 〈테르미도르〉를 통해 1980년대 격동하는 한국 정치를 은유적으로 담았다. 〈북해의 별〉은 새로운 시대를 꿈꿨던 많은 청년들에게 바이블처럼 읽혔다.
당시의 역사 만화가 과거의 역사만을 배경으로 창작된 것은 아니었다. 만화는 조선시대를 넘어 한국의 근현대사를 소재로 창작되기 시작했다. 전쟁영웅이 아니라 전쟁의 참상 속에 고뇌하는 인간을 베트남전쟁에 담아 풀어낸 김형배의 〈투이호아 블루스〉, 〈황색탄환〉, 〈사이공에서 하노이까지〉는 베트남 참전의 역사를 다시 보게 하는 의미 있는 작품이었고, 일제강점기에서 현대까지 한국 사회의 굴곡을 한 가족의 역사를 통해 담아낸 허영만의 〈오! 한강〉도 한국 현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중요한 작품이었다. 1985년 5공 시절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 시기까지를 배경으로 한 윤태호의 〈야후〉는 SF액션물이지만 그 시기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삼풍백화점 붕괴’ 등의 국가적 재난을 배경으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날카롭게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2000년대 이후 역사 만화, ‘부조리한 한국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다.
1990년대까지 역사 만화가 조선시대 역사를 배경으로 하여 은유적으로 현재의 억압을 그려냈다면, 2000년대 이후 달라진 시대 상황과 역사 자료 발굴 확대 등으로 보다 다양하게 한국의 근현대사를 담아낸 만화가 창작되었다.
▲ <만화 조선왕조실록> ⓒ 박시백 ▲▲ <삼별초> ⓒ 형민우
▲▲▲ <정가네 소사> ⓒ 정용연 ▲▲▲▲ <빗창> ⓒ 김홍모
▲▲▲▲▲ <노근리 이야기> ⓒ 박건웅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역사 자료 연구의 기반 위에 창작된 수작(秀作)이다. 《조선왕조실록》은 1993년 번역을 완료하고, CD-ROM으로 발매되었다. 검색 기능을 갖춘 매체의 발매는 조선시대 역사를 대중문화로 창작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박시백은 만화 <조선왕조실록>을 완간한 이후 〈35년〉, 〈친일파 열전〉 등을 연이어 창작하여 조선 왕조 500년 역사와 일제강점기 한국의 역사를, 정사를 바탕으로 담아냈다. 정사(正史) 이외에도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역사거나, 잊혀져 기록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역사적 사건을 발굴하여 창작한 작품도 중요하다. 고려 대몽항쟁 삼별초군의 저항을 그린 형민우의 〈삼별초〉, 원·명의 교체 시기 제주도의 비극을 담은 정용연의 〈목호의 난〉, 이산가족의 아픔을 그린 김금숙의 〈기다림〉은 주류 지배층의 역사에서 소외되고 잊혀져 가는 기억해야 할 역사를 그렸다.
정용연의 〈정가네 소사〉와 김은성의 〈내 어머니 이야기〉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현대사를, 홍라희의 〈건너온 사람들〉·〈사이의 도시〉는 한국 전쟁 시기 흥남 철수 전후의 이야기를, 한 가족의 개인사를 기반으로 풀어낸 역사 만화 다. 역사학자 조한욱은 “단지 역사 속에서 사라져간 무명 인물의 개인적인 역사를 복원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역사를 통해 그들로 대변되는 대다수 민중의 삶과 생각의 방식을 종래와는 다른 시각에서 찾고자 하는 시도”라며 중심부의 거대서사가 아닌 평범한 개인의 삶을 중심으로 한 역사 읽기의 의미를 정의했다. 이 작품들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힘을 지닌 인물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소한 개인의 일상을 통해 우리는 알지 못했던 세밀한 역사적 사건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2000년대 이후 역사 만화에서 의미 있는 창작은 정치적 이유로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불편한 진실’의 역사를 팩트와 작가의 상상력을 담아 독자들과 소통한 작품이다. 박건웅, 김홍모, 김금숙, 윤태호, 최규석 등의 작가들이 한국 근 현대사에 감춰진 부패한 국가 권력과 가진 자 중심 사회에 의해 자행된 모순과 억압을 만화로 창작했다. 해녀들의 항일 시위와 제주 4.3사건까지 이어지는 제 주도의 아픈 역사를 담아낸 김홍모의 〈빗창〉,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의 피난민 학살을 그린 박건웅의 〈노근리 이야기〉,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증언한 김금숙의 〈풀〉, 인권유린과 고문의 실체를 드러낸 박건웅의 〈짐승의 시간〉, 87년 6월 민주항쟁의 역사를 담은 최규석의 〈100℃〉, 정치·경제·언론 등 권력층의 비리와 부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담아낸 윤태호의 〈내부자들〉 등 무수히 많은 작품들이 출판되고 있다.
역사적 기록과 당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삶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우리들이 기억해야 하는 역사이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한국 사회의 단면을 담고 있다. 역사 만화는 풍자와 고발의 날카로운 해석만을 작품에 담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나 역사적 사건이 담고 있는 정치적 메시지를 작품 속에 풀어냄으로써 ‘왜곡된 혹은 잊혀진 역사’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삶에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역사 만화는 과거사를 당대성으로 읽어내고,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인간을 탐구하는 장르이다.
참고문헌
김낙호 외(2010), <한국현대만화사>, 두보CMC
유시민(2018), <역사의 역사>, 돌베개
조한욱(2007),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책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