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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풀어내는 특별한 가게 - 만화 〈연옥당〉 vs 드라마 〈쌍갑포차〉

<지금, 만화> 제21호(2024. 1. 10. 발행) ‘만화 VS 드라마’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2024-08-17 김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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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풀어내는 특별한 가게

- 만화 연옥당vs 드라마 쌍갑포차

  최근 특별한 장소가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편의점, 베이커리, 백화점, 도서관 등 현실에서는 일상적인 장소이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 곳으로 변모한다. 그중에서도 이계세계와 관련한 특별한 가게 들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인간의 삶의 내면을 보여준다. 만화 연옥당과 드라마 쌍갑 포차를 통해 이 가게들의 특별 함을 만나보자.

이승과 저승이 공존하는 공간, 이중성의 하모니

  케이크를 만들어 판매하는 연옥당과 술과 안주를 즐기는 포장마차인 쌍갑포차는 여느 가게와 다르지 않은 간판을 달고 손님들을 기다린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이 가게들이 손님을 대하는 목적은 평범하지 않다.

  ‘연옥당은 망자가 저승에서 49일에 걸쳐 연옥의 벌판을 지나는 동안 먹는 케이크를 만드는 가게다. 연옥당의 세계에서 망자는 연옥의 벌판을 건너 환생 문으로 나아간다. 이 벌판을 지나는 시간이 망자에게 유혹의 길이자 고통의 길이다. 그 시간을 연옥의 입구에서 저승사자가 준 케이크를 먹으며 견딘다. 이 사실이 이승 사람들에게 알려져 망자를 위해 장례식에 달콤한 음식을 올리는 문화가 생겼다는 설정이다. 연옥당은 다른 어느 가게 보다 특별한 장례식 케이크를 만든다.

 

▲ 〈연옥당〉 Ⓒ 산호

  쌍갑포차는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연을 듣고 쌓여있는 한을 풀어 주는 포장마차다. 저승의 염라대왕이 월주에게 십만 명의 사람들을 구제하라는 과제를 주었고, 이를 위해 이승에서 오백 년 동안 운영된 곳이다. 월주는 살아있는 자들의 세계인 이승, 망자의 세계인 저승과는 다른 그승이라고 설정된 사연자의 꿈의 세계로 들어가 회피하고 있는 문제를 마주하게 한다. 상사의 갑질, 권력의 비리 같은 사회적 문제부터 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자신의 실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 등 혼자만의 고민들을 털어놓게 한다. 때로는 상담가로, 때 로는 해결사로 문제의 원인을 처리해 주면서 트라우마의 상황을 극복하게 하는 곳이다.

 

드라마 쌍갑포차포스터

  연옥당과 쌍갑포차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이승의 공간이지만 그 근원은 저승에 뿌리를 둔 이중적 장소이다. 이런 이중성은 두 가게의 특별함을 부각시킨다. 케이크는 일반적으로 축하를 위한 날에 준비하는 선물이지만 연옥 당은 장례식과 케이크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소를 연결한다. 죽음과 달콤함의 결합이 현실의 케이크 가게와 다른 연옥당만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꿈과 현실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꿈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리 실제 같아도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쌍갑포차에서는 꿈속 세계인 그승에서의 행동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면서 사연자의 고민이 해결된다. 현실과 꿈이 공존하는 쌍갑포차만의 고유한 장소성이다. 두 가게의 이중성은 평범함 속의 특별함을, 익숙함 속의 낯섬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이를 통해 일상 속 공간에서 특별한 경험을 기대하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두 가게의 기억을 다루는 방식

  〈연옥당쌍갑포차는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연옥 당에서 케이크를 만드는 재료는 특이하게도 망자에 대한 기억이다. 망자에 대한 기억들을 장례식 케이크의 의뢰인을 통해 수집한다. 의뢰인들은 망자와 운명 같은 인연이 닿은 이들이다. 그들이 기억하는 망자가 좋아했던 물건, 맛있게 먹 은 음식, 즐겨 찾던 곳, 자주하던 취미를 비롯해 망자에게 전하고 싶은 글이나, 들려주고 싶은 노래도 재료가 된다. 연옥에서 자라는 기이한 재료들을 더하고, 음향반죽기와 케이커세트 플레이어 같은 특별히 개발한 장치들로 케이크를 완성한다.

 

▲ 〈연옥당〉 Ⓒ 산호

  케이크를 만드는 과정은 망자와 의뢰인의 함께 지내온 시간에 대한 기억의 재생 과정이다. 의뢰인은 기억을 풀어내는 과정을 통해 망자와의 추억을 회상하고 망자가 자신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되새기게 된다. 그러므로 장례식 케이크는 망자를 위한 것이지만, 또한 이승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결과물인 케이크는 망자와 의뢰인 사이의 추억의 결정체이자 사후 에도 둘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의뢰인은 망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과정을 통해, 망자는 연옥의 벌판에서 케이크를 먹으면서 서로의 기억을 공유한다.

 

드라마 쌍갑포차3

  이에 반해 쌍갑포차는 사연자 스스로가 내밀한 기억을 드러내는 과정을 거친다. 쌍갑포차에서는 쌍갑주를 마시는 것으로 그승의 문을 연다. 하지만 그 조건은 사연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마음이 생겨야 한다는 점이다. 무턱대고 쌍갑주를 마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이 되었을 때 월주는 쌍갑주를 건넨다. 쌍갑주는 마시는 순간 사연자는 정신을 잃고 잠에 빠진다. 그 후의 과정은 월주 일행이 그승에 들어가 사연자의 기억을 들여다 보고 트라우마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한다. 영화 인셉션에서 꿈으로 들어가 비밀을 알아내려는 것처럼 사연자가 심연에 숨겨놓은 비밀의 기억을 꺼낸다.

  그 과정은 부정적 기억의 치유와 극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상사에 성희롱을 당한 것, 친구의 딸에게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엄마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말 하지 못하는 것, 치매에 걸려 기억을 상실되고 있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등 숨겨야 했던 기억들 때문에 사연자들은 타인 앞에서는 가면을 쓰고 다니는 외면 의 자아만을 보여주고, 진실을 알고 있는 내면의 자아는 숨긴다. 월주가 만들어 낸 꿈속에서 사연자는 조력을 받으면서 피하기만 했던 내면의 자아의 트라우마를 스스로 마주하고 극복한다. 그 결과 내면의 자아와 외면의 자아가 동일시 되면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회복한다.

특별한 가게 주인들

  〈연옥당쌍갑포차는 특별한 가게 만큼이나 주인들도 특별한 사연을 갖고 있다. 연옥당의 주인은 저승사자인 까마귀신이다. 케이크를 만드는 기술을 발명하고, 망자들에게 줄 케이크를 연구하고 있는 존재다. 원래는 연옥의 입구에 케 이크 공장을 만들고 망자들에게 줄 케이크를 만들었지만 케이크를 얻지 못해 배곯는 영혼들을 보기가 괴로워 현재는 휴가를 내고 이승으로 내려와 연옥당을 열었다. 그 이유는 연옥에서 다음 세계로 가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이다. 까마귀신은 온전히 망자들의 문제가 천착하는 이타적인 캐릭터다. 이승에까지 내려와 연옥의 케이크를 만들고, 케이크를 받지 못하는 망자들을 위한 케이크를 마련하는 등 한 명의 망자도 포기하지 않고, 모든 망 자들을 환생문으로 보내기 전까지는 저승으로 돌아가지 않을 태세다. 모든 중생을 구원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의 모습이 엿보인다.

  쌍갑포차의 주인 월주는 자신이 비극적 사연을 갖고 있는 존재이다. 전생에 무당의 딸이었던 월주는 세자의 꿈자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임무를 맡게 되고, 세자와의 사랑이 싹튼다. 하지만 이 일로 월주의 어머니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게 되고, 세자에게 버림받았다고 오해한 월주는 스스로 신목에 목을 맨다. 그런데 월주는 세자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결국 신목의 죽음과 태중의 아이의 영혼의 죽음에 대한 죗값으로 십만 명의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쌍갑포차를 운영하게 된 동기는 개인적인 사연에서 출발했지만 오백 년 동 안 그 일을 하면서 월주는 어느 누구보다 사람들의 고민과 아픔을 이해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마지막 십만 번째의 사연자는 자신이 된다. , 쌍갑포차의 운영은 월주가 자신의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는 여정이었던 것이다.

  까마귀신과 월주가 귀 기울인 기억들은 우리가 점점 잃어가고 있는 기억 들이다. 소중한 사람과의 기억들, 그리고 진정한 자신의 내면의 기억들을 지나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연옥당쌍갑포차는 특별한 케이크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꿈속에서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과정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과의 인연을 소홀히 하는 오늘날의 풍토와 내면의 자아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결국 기억이란 것을 잃게 되면 소중한 인연도, 진정한 자아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연옥당과 쌍갑포차는 상상 속의 가게이지만 현실의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가게일 수도 있다. 오늘도 어디에 선가 연옥당과 쌍갑포차는 불을 밝히고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낼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필진이미지

김진철

동화작가, 만화평론가
《낭이와 타니의 시간여행》, 《잔소리 주머니》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