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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을 영리하게 이용하는 방법
- 윤홍 〈마왕까지 한 걸음〉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떤 면에서 신과 같다. 특히, 세계관을 정립한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안에선 작가는 정말 신이 된다. 작가의 선택으로만 생명이 탄생하고, 죽고, 종족이 생기고, 사라진다. 물론, 오늘날 아예 새로운 세계관을 기대하긴 힘들다. 과거 정립되었던 세계관을 조금씩 다듬고, 변주를 주어 익숙한 듯 새롭게 느껴지게 할 뿐이다. 하지만 사실 그것이 핵심이다. 오히려 너무 새로운 시도는 독자로 흥미를 잃게 만들기 쉽다.
▲ 〈마왕까지 한 걸음〉 Ⓒ 윤홍
오늘 이야기할 작품 윤홍 작가의 〈마왕까지 한 걸음〉은 그런 의미에서 참 영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가장 밑바닥에는 흔히 말하는 서양 판타지. 그러니까. 북유럽이나 그리스로마 신화 등의 유럽 신화와 기독교 문화로부터 파생되어 정립되어 온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 인간과 다양한 이종족, 요정 등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마법과 특수한 능력을 지닌 물건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가장 익숙한 이야기 구조 중 하나인 용사와 마왕의 관계성까지 이용한다. 너무나도 많은 작품에서 쓰이고, 이용한 세계관이다. 그렇기에 그냥 본다면 특별한 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작품은 그리 단순하지도, 또 깊게 보면 익숙하지도 않다. 오히려 흔히 인식하는 익숙함을 작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풀어냄으로써 전반적인 작품의 신선함과 매력을 배가되게 만든다.
핸디캡, 오히려 좋아.
이야기는 주인공 ‘유리아’가 물밑에서 육지로 발을 딛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바다의 왕’. 그녀는 마왕을 쓰러뜨려 자신이 최강임을 증명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본래 인어인 그녀가 육지로 나오기 위해 대가가 필요했고, 그 결과 모든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단 세 번, 힘을 쓸 기회를 남겨 두고 말이다. 여기서 주인공에게는 핸디캡이 생긴다. 세계관 최강자이지만, 그 힘을 함부로 쓸 수 없다. 보통 ‘힘숨찐’의 경우, 힘은 온전하나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자 혹은 별 이유 없이 힘을 숨기곤 한다.
▲ 〈마왕까지 한 걸음〉 Ⓒ 윤홍
하지만 이 작품에선 실질적인 핸디캡을 지닌다. 이후 만난 마족 ‘라글라드’도 마찬가지다. 세 번의 기회 중 한 번의 기회를 이용해 라글라드를 제압한 유리아는 그와 일종의 계약을 맺어 라글라드가 힘을 함부로 쓸 수 없게 만든다. 여기서부터 재밌는 상황이 펼쳐진다. 한 명은 세계관 최강자이고 또 한 명은 마족 중에서도 강한 힘의 소유자인데 저마다의 핸디캡을 지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연출된다. 이러한 부분은 이 작품에서 크게 두 가지의 매력적인 특징을 지니게 만든다. 하나는 ‘비예측성’이다. 일반적인 ‘힘숨찐’의 느낌이 아닌 다 이유가 있는 제약을 설정함으로써 독자는 이들이 매번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나갈지 쉽게 예측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 기조는 파티원이 늘어도 동일하게 이어진다. 뒤이어 합류한 요정이 세계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덕분에 예기치 못한 전개가 펼쳐져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코미디적 요소의 강화이다. 힘이 있음에도 핸디캡 때문에 힘을 쓰지 못한다. 그럼에도 먹고 자고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유리아 일행은 돈을 벌어야 한다. 제한된 힘을 이용해서. 유리아 일행이 돈을 벌기 위해 약하디 약한 마수를 잡거나, 한푼이라도 벌겠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웃프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러한 부분은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코미디로 톡톡히 역할을 해낸다. 파티원들 하나하나가 쟁쟁한데 비해 결과적으로 쓸모없는 파티라는 댓글들이 눈에 띄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다. 코미디는 진입장벽을 낮춘다. 사실 〈마왕까지 한 걸음〉의 경우, 깊게 보면 쉬운 작품이 아니다. 조금 복잡한 세계관과 시간선이 뒤죽박죽한 면까지 있다. 하지만 초반부에 쌓아온 유리아의 명확한 목적의식과 작품 전반 은은하게 깔린 코미디적인 분위기가 이를 중화시킨다.
▲ 〈마왕까지 한 걸음〉 Ⓒ 윤홍
변주, 용어의 재정의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는 캐릭터와 코미디는 우리에게 익숙한 요소들이다. 이러한 부분을 이용해 자칫 복잡할 수 있는 세계관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듯이 익숙함은 잘만 이용하면 이해를 돕는다. 작품 속 등장하는 ‘용사’라는 요소 또한 그렇다. 용사가 마왕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해냈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다. 그런데 이 작품 안에서 용사는 묘하게 다르다. 이 작품 속 용사는 운명적인 존재와도 같다. 절대 죽일 수 없는 마왕을 고정값으로 둔 채 무수히 생겨나고, 죽고, 또다시 생겨나는 ‘용사’라는 존재. 이러한 운명의 굴레를 뒤집어쓴 용사는 작품 안에서 강함을 표현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일단 ‘용사’란 타이틀을 달면 그 시대에 가장 강한 존재일 확률이 높다. 혹은 ‘용사 후보’, 또 다르게 ‘용사와 가장 가까운 후보’ 등. 이렇게 ‘용사’를 기준점으로 그 주변 표현을 통해 어떠한 인물의 강함 등을 인식하게 만든다.
환댕 작가의 〈애늙은이〉와 〈잔불의 기사〉에서도 이러한 지점을 엿볼 수 있다. 두 작품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그 안에서의 ‘기사’가 바로 〈마왕까지 한 걸음〉에서의 ‘용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흔히 우리가 여타 판타지 세계관에서 인식하는 기사는 일종의 직업적인 명칭에 가까웠다. 하지만 환댕 작가의 세계관에서는 인간의 힘을 벗어나, 그 이상의 존재로 그려진다. 쉽게 말해 아주 강한 인간들을 총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용어는 앞서 ‘용사’가 그렇듯 강함의 척도를 표현하는 지표로 작용하여 이해를 돕는다. 게다가 ‘용사’와 ‘기사’라는 이러한 익숙한 표현을 작가만의 해석으로 이해시키는 그 자체가 묘한 매력을 준다. 더불어 ‘용사’라는 용어를 보강하는 구성 요소로 일종의 초능력이 등장하는데 액션물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이러한 이능력도 이 작품에선 단순히 초능력이라 표현하지 않는다. ‘은혜’. 여러 다른 말로 바꿔 말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초능력에 가까운 이러한 이능력들은 보는 것 자체도 재밌지만, 익숙한 용어가 주는 신선함으로 인해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 준다.
▲ 〈마왕까지 한 걸음〉 Ⓒ 윤홍
촘촘한 세계관이 주는 재미
초반부를 넘어서는 순간, 작품의 깊이는 상당해진다. 웹툰이라는 포맷은 휘발성이 강하다. 빠르게 보고,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더 선호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마왕까지 한 걸음〉이라는 작품은 쉽게 소화 시키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어떻게 보면 어렵다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보자면 그만큼 세계관을 촘촘하게 구성했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 판타지 장르의 재미는 바로 이러한 촘촘한 세계관에 있다. 마치 하나의 역사서를 펼쳐보듯이 누군가 언제 어떤 행위를 했고, 그게 지금의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줘서 현재 이러한 결과가 되었다. 전부를 짤 수 없더라도, 이러한 면모들이 보이는 순간, 이러한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용사를 메인으로 삼지 않고, 바다의 왕인 유리아를 중심으로 파티가 구성되었을 뿐. 파티를 구성해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은 전통적인 방식의 판타지 장르에 가까워 보인다. 또한, 주인공이 본래 인어라는 점에서 바로 ‘인어공주’가 떠오르지 않는가.
이렇듯 작품 곳곳에 작가 나름의 차용과 활용 등이 드러날 때, 얼마나 많은 고민이 들어간 작품인지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점점 복잡해지는 이야기에 어려워하기보다는 점점 쌓여가는 비밀 속에서 서서히 밝혀지는 진실들이 어떤 건지 알아가는 것이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이지 않을까 싶다. 유리아의 명대사 “내가 걷는 길이 곧 정답일 테니”처럼 차근차근 쌓아가는 독자적인 행보의 〈마왕까지 한 걸음〉. 그 서사가 앞으로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