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 콘텐츠로서의 만화는 승산이 있을까
어린이 만화 시장의 현황
만화 시장의 중심이 웹툰으로 이동한 지 오래지만, 어린이 독자에 관해서는 웹툰을 포함한 만화 시장의 현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유튜브 키즈’처럼 어린이용으로 파생된 앱이 따로 있지 않고, 플랫폼이 정확한 연령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정보가 제공되더라도 대개 10대부터 측정되기 때문에 6세부터 13세 사이 어린이들의 소비 현황은 명확히 알 수 없다. 더듬더듬 짚어나가는 꼴이라도 간접적으로나마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어린이 만화 시장을 엿볼 우회로를 찾은 이유다.
먼저 어린이 전용 웹툰 플랫폼인 <아이나무툰>의 사례를 통해 웹툰 시장을 살폈다. 단일 사례지만 해당 플랫폼이 국내 유일 어린이 웹툰 플랫폼을 표방하는 만큼 유의미한 사례라 생각됐다. 특별히 눈에 띈 것은 장르를 나누는 방식이다. 아이나무툰의 장르는 학습, 어드벤처, 개그, 일상, 드라마, 액션, 일상, 판타지로 구성된다. 일반적인 인기 장르인 로맨스가 없고 로맨스에 해당할 만한 작품이 드라마 장르에 포함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어린이 만화가 자주 모험극 형태인 것을 고려했는지 액션과 판타지 외에 ‘어드벤처’ 장르가 추가된 것 역시 눈에 띈다. 가장 주목되는 특징은 ‘학습’을 웹툰 장르로 구분해 배치한 것이다. 학습은 연재 작품 177개 중 71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장르이기도 한데, 출판된 학습만화 중심의 어린이 만화 시장이 웹툰 플랫폼을 구성하는 과정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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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 동요 아기상어를 활용한 놀이 학습 앱 <아기상어 키즈월드> ⓒ핑크퐁
웹툰 사례로 논의를 시작했으나 사실 어린이 만화 시장의 중심은 줄곧 출판만화였다. 2000년에 연재를 시작한 <만화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폭발적인 흥행을 이끌어내며 우후죽순 다양한 학습만화가 출판되었고 다수의 히트작을 내놓으며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웹툰이 상업적 가치를 확보하면서 만화 시장의 중심이 이동했으나, 어린이 만화의 경우 여전히 출판 형태의 학습만화가 절대적인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6세부터 13세의 2023년 전국 도서관 대출 기록을 보면, 1위부터 30위 중 스물여섯 권이 유튜브발 어린이 만화인 <흔한남매> 시리즈다. 오리지널 시리즈인 <흔한남매>는 학습만화가 아닌 개그 만화로 출발했지만 인기에 힘입어 줄줄이 학습만화 시리즈가 출간됐다(<흔한남매 별난 세계 여행>, <흔한남매 과학 탐험대>등). 30위권 바깥에서 눈에 띄는 만화들 역시 <에그박사>나 <설민석시리즈> 등 유명인을 활용한 학습만화였다.[*주 https://data4library.kr/loanDataL (국립중앙도서관 도서관 정보나루 ‘인기대출도서’ 2024.06.05.)]
가지고 있는 꿍꿍이라고는 장난기밖에 없는 천진난만한 얼굴과 이등신 몸, 다양한 상식의 제공과 익살러운 개그. 오랜 기간 학습만화의 문법으로 공고하게 자리 잡혀온 이 특징들은 출판된 학습만화는 물론 아이나무툰의 학습 웹툰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그런데 문제는 전체 만화 장르 중 학습만화의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다. 또한 학습만화를 포함한 어린이 만화 전반이 보호와 교육 효과를 의도하며 깎이고 다듬어진 모습이었는데, 그 정제의 정도가 과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어린이 만화가 너무 한정적인 형태로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좋게 본다면 안전하고 친근한 것이겠지만 나쁘게 본다면 단조롭고 유치하게 읽힐 수 있었다. 정말 이 학습만화들만으로 어린이들의 감상 욕구가 충족될까? 지나치게 편중된 시장의 풍경을 보니, 현재의 만화 시장이 어린이 독자를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는지 질문하고 싶어졌다.
어린이는 만화로부터 무엇을 원할까
이런 의심을 하게 된 것은 최근 주변인들과 어린이를 위한 만화 추천작을 주고받으면서였다. 누구는 익숙한 <안녕, 자두야> 시리즈를 언급했고, 누구는 동화 느낌이 물씬 나는 착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작품 다수를 추천했다. 조금이라도 선정성이 있을 법한 작품들은 당연히 배제되었고 아이들이 무서워할 수 있으니 공포 장르 역시 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왜 빼, 어린이가 그런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라고 속으로 반대하던 나조차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녕 나의 모모로>를 추천하고 있었다.
<안녕 나의 모모로>는 전쟁과 애도에 관한 이야기를 한 편의 동화처럼 은유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정말 좋은 작품이니 기회가 될 때마다 호시탐탐 추천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와 ‘안전하고 유익한 이야기’를 동일시하고 있는 나 자신이 섬뜩했다. 안전과 유익을 강요하며 재미있는 것만 골라 싹둑싹둑 가지 쳐내던 무심한 어른의 얼굴을 나 자신이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돌이켜보면 만화를 즐기던 어린 시절, 내 읽기 취향은 그다지 고상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아이들들을 위해 공포 수위까지도 조절하려는 정성을 보이지만, 내가 살면서 괴담을 제일 좋아했던 시기가 어린이 때였다. 문구점에서 파는 500원짜리 괴담집을 친구들과 돌려 보거나 예능의 납량특집을 손꼽아 기다리고는 했다. 그런 취향이었으니 공포 만화집 <무서운 게 딱! 좋아!> 시리즈를 몇 번씩이나 읽었을 것이다. 네이버웹툰에서 ‘90년대생 모이라’며 리메이크 연재를 시작했을 때에 내 또래의 독자들이 헐레벌떡 달려 나와 잔뜩 댓글을 달며 반가워했다. 괴담에 진심이었던 어린이들이 그렇게 나 많았다. 온갖 교훈과 과학 지식으로 가득한 학습만화는 줄 수 없는 이야기 그 자체가 주는 흥분과 재미를 흠뻑 즐겼다.
그렇다면 학습만화 시대를 불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화로 읽는 그리스로마 신화>는 왜 좋아했나. 예뻐서 좋아했다. 작화가 아름다워서 보는 재미가 출중했던 것이다. ‘살아남기’ 시리즈처럼 이등신 학습만화 역시 즐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보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쪽은 아니었다. 분류상으로는 양쪽 다 학습만화에 해당하지만 감상의 목적이 엄연히 달랐다. 기억의 수장고 ‘나무위키’를 참고하면 비슷한 증언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만화의 아이덴티티(상징)이자 아동도서계의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라서게 한, 매력적이었던 그림체”[*주 https://namu.wik (나무위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2024. 06. 05)]라는 말이 굵은 글씨로 쓰여 있다. 엄격한 심미안으로 작품을 감상한 것이 나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19권부터 작가가 교체되면서 독자가 대거 이탈되었단 사실은 당시 어린이 독자들에게 이 만화가 어떤 이유에서 소비되었는지, 어린이들이 이 만화로부터 무엇을 원했던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해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한없이 단순하고 귀여운 모습으로만 수렴해가는 어린이 만화들을 보고 있으면, 어른들이 어린이가 탐미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인가 싶다. 초등학생들에게 걸 그룹 ‘아이브’가 괜히 인기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들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좋아한다. 심지어 때로는 어른들 이상으로 좋아한다고, 어른인 나 역시 또 잊어버리기 전에 내 유년의 목소리를 빌려 외쳐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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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출처 :미래엔아이세움
▲ (우) <흔한남매> 출처:미래엔아이세움
더욱이 한정된 작화는 스토리적 재미를 전달하는데에도 제약으로 작용한다. 물론 학습보다 재미를 위한 장르가 지금도 어느 정도는 제공되고 있다. <흔한남매> 시리즈는 학습만화 이전에 개그 만화로 출발했고, 아이나무툰의 연재작 절반 이상은 드라마나 액션 장르 등 비학습 장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작화의 경우 출판만화는 대다수가 2-3등신 안팎의 단순화된 인물로 그려져 있으며, 웹툰 역시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다등신으로 그려진 인물들조차 전반적으로 형이 단순화되어 있거나 색감의 사용이 단조롭다. 작화는 만화의 다른 요소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기능한다. 당연하게도 특정 형태로 고정된 작화 안에서 빚어질 수 있는 이야기의 폭이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어린이 독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흔한남매> 시리즈가 그만의 특장점을 가지고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그림체로 밤중에 화장실 가길 주저하게 할 만한 괴담을 전달하긴 어려우며, 신화 속 전설적인 미인들인 나르키소스와 프시케를 향한 어린이들의 탐미 욕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이 글을 읽는 어른들이라면 정교하면서도 진중한 작화에 매료돼 무협을 즐기거나, 형형색색의 수려한 그림이 즐거워 로판을 읽는 감각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 만화를 표방하는 작품들이 어린이의 감상 욕구를 얼마나 부분적으로 충족하고 있는지 다시금 되묻게 되는 지점이다.
어린이들은 보호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보호자와 생산자가 합의해 제공한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는 존재도 아니다. 어린이 역시 자기만의 취향과 심미안 등 독자적인 감상 기준을 가진 능동적인 향유자다. 개그 장르를 좋아하는 어린이가 있다면 로맨스나 호러가 좋은 어린이가 있을 수 있고, 스토리보다 작화가 중요한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인 어린이도 존재할 수 있다. 혹은 그 모든 종류의 콘텐츠를 섭렵해가며 더 많이, 더 새로운 것을 원하는 어린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린이의 취향은 어른의 기대와 요구 바깥에 존재한다. 어린이가 더 나은 환경에서 만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애쓰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은 요구를 저버리고 기대를 초과하며 어른의 상상력 사각지대에서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읽어나갈 것이라는 각오 역시 필요하다. 어른이 알든 모르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읽고 싶은 만화를 읽던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키즈 콘텐츠로서의 만화는 승산이 있을까
스스로를 포함해서 어른들을 향해 다소 냉정한 글을 적어나간 것은, 어쩌면 비좁게 형성된 어린이 만화 시장이 어른들의 불안과 안일함의 결과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안전한 학습만화들로 점철된 지금의 어린이 만화 시장이 되기까지 그 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만화 시장이 열악했던 상황에서 판매가 보장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우선됐을 수 있고, 보호자의 우려와 불만을 사전에 예방해야 하는 부담도 불가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만화의 생산자와 실구매자인 보호자를 만족시키려 애쓰는 과정에서 그 만화의 실제 독자인 어린이의 존재가 지나치게 간과되었음을 느낀다. 너무 안전한 길만을 걸어오는 동안 어린이 독자의 자리가 한없이 비좁아졌다는 사실이 어쩔 수 없이 아쉽다.
그런데 이제 공익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상업적 승산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태도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최근 수년간 키즈 콘텐츠 시장이 날로 커짐에 따라, 어린이 소비자를 위해 콘텐츠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각 분야에서 시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나 넷플릭스처럼 어린이 유저를 위한 전용 창구를 개발하거나 어린이를 만족시킬 만한 소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며 빠르게 발전하는 추세다.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돌 등 직접적으로 어린이를 타깃삼지 않는 콘텐츠들이 적극적으로 소비되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린이 소비자에게 만화가 얼마나 매력적인 콘텐츠일지 의구심이 든다. 어린이를 위해 제공된다는 만화들을 보며 가장 놀랐던 점은, 내가 어린이 만화를 보던 2000년대와 거의 달라지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물론 구체적인 소재나 감성 같은 것이 크고 작게 변하긴 했지만, 학습만화 특유의 투박함이 여전했다. 아이나무툰 역시도, 학습과 비학습 장르를 가리지 않고 솔직히 2020년대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 상대는 ‘넷플릭스’와 ‘아이브’인데 말이다. 콘텐츠 전반의 그래픽 수준이 상향평준화된 시장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들에게 이 만화들이 얼마나 매력적일지 나는 모르겠다.
물론 어떤 어린이들은 자유롭게 일반 웹툰 플랫폼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많은 어린이들이 <흔한남매>를 비롯해 학습만화를 즐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멀리 본다면 콘텐츠를 즐기는 새로운 세대의 감각을 알기 위해서라도 어린이 독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만화 시장의 중심이 출판만화에서 웹툰으로 이동하고, 완전히 신세대 문화였던 웹툰이 순식간에 익숙한 콘텐츠가 돼버린 것처럼, 새로운 감각의 콘텐츠가 다음 세대와 함께 밀물처럼 밀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다음 세대인 어린이를 까맣게 잊고 있는 만화가 과연 언제까지 매력적인 콘텐츠일 수 있을지 결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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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첫 신문 어린이 만화 <뺑덕이와 섭섭이>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