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만화(디지털)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11살 정훈이가 좋은 어른이 되려면

<지금, 만화> 제22호(2024. 7. 22. 발행) ‘Critique’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2025-02-25 홍난지

※ 위 '뷰어로보기'를 클릭하시면 도서 형식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11살 정훈이가 좋은 어른이 되려면

정원 작가의 <똑똑한데 가끔 뭘 몰라>

이제 막 열한 살이 된 정훈이는 벌써 4학년이라는 게 새삼 놀랍다. 새로운 학급의 분위기와 선생님, 친구들이 마음에 들지만 썩 좋지 않은 일도 있는데 바로 짝을 정하는 방법이다. 친한 친구 석진이와 짝이 되고 싶었던 정훈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생님이 숙제검사 명목으로 읽어보실 것이 틀림없는 일기장에 내용을 적기로 한다. 정훈이의 전략은 통해서 원하는 친구와 짝이 될 수 있도록 방법이 바뀌었지만 아쉽게도 석진이와 짝이 되진 못했다. 그래도 새로운 친구와 친해지면 되니까 이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다.

<똑똑한데 가끔 뭘 몰라> 속 정훈이는 불편함을 인지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변화를 도모할 줄 아는 예민하고 적극적인 어린이다. 정훈이어린이가 오늘의 주인공이 되려면, 창비어린이17권 제1(통권 제64), 2019, 37-47쪽는 어른들이 정한 이상적인 어린이는 아닐지도 모른다. 이상적인 어린이란 그런 것이다. 무해하게 귀엽고 돌봄 없이도 잘 자라서 얼마든지 통제 가능하며 가끔은 어른스러운 말로 어른을 위로할 줄 아는 어린이. 그런데 정훈이는 어른의 기준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정한 기준으로 바꾸려 하니 말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정훈이와 석진이, 준서, 하리와 민진이는 다양하고 개성적인 성격을 가진 주체로서의 어린이다. 그래서 이들이 등장하는 <똑똑한데 가끔 뭘 몰라>에는 내일의 주인공으로만 여겨왔던 어린이들이 오늘의 주인공(*1)’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1: ‘내일의 주인공오늘의 주인공이란 표현은 이신애의 글에서 빌려왔다

 


<똑똑한데 가끔 뭘 몰라> 청원(도판제공:미디어창비)

 

어린이는 없는 어린이 만화

만화와 여러 미디어 속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은 내일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주변인이자 타자이며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깨끗하게 다듬어져 바람직한 모습으로 재현된다. 그래서 어린이가 주인공인 만화에는 어린이의 삶이 다양하지 않다. 물론 모든 이야기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야 하는 건 아니며 위안과 해소의 카타르시스를 충족시키는 것도 중요한 기능이다. 어린이의 무해한 귀여움과 돌봄 없이 잘 자라는 어른스러움, 타고난 능력으로 어른의 책임을 나눠 갖는 면모는 팍팍한 삶의 위안이 되어준다. 만들고 소비하는 주체가 대개 어른인 탓에 어린이는 주인공으로 등장할 때조차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으로는 존재하지 못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파악할 겨를 없이 바람직한 상에 압도된다. 이를 지키지 않을 때 바로 혐오와 징벌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잘 다듬어진 어린이상은 오히려 어린이의 행동반경을 제한시킨다. 김원영이 이미지는 있되 물적 존재로서 몸은 마주치기 어려운 시대(*2)”라 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린이 만화 속 어린이들도 이러한 한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2: 김원영(2019), <낭만적 예찬을 넘어서>, 창비어린이17권 제1(통권 제64), p.34.

귀엽지만 미숙함은 민폐

<마루는 강쥐>의 마루는 어느 날 갑자기 강아지에서 다섯 살 어린이로 변신했다. 본래 강아지였기 때문에 인간 사회의 규범에 익숙하지 않은 마루는 자기중심적이고 제멋대로인 태도를 언니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유머러스하게 돌파한다. 마루가 강아지였다는 설정은 자칫 민폐 캐릭터로 비칠 수 있는 어린이의 미숙함을 귀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 극적 장치다. 미숙함이 민폐라니 과한 표현으로 들릴 수 있으나 웹툰에서 미숙한 존재에게 가혹한 평가를 내리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개같이 탈출>의 주인공 강아지 삐용이는 망해버린 세상에서 탈출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지만 겁이 많은 탓에 도와주려는 동료 개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발을 떼지 못한다. 아직 어리고 작은 체구의 견종인 삐용이는 겁 많은 어린이, 삐용이를 어떻게든 데리고 가려는 개들은 어른의 비유처럼 보인다. 이를 지켜보는 독자들은 삐용이의 미숙함을 민폐라며 탓한다. 마루가 보호와 교육에 의해 사회규범을 준수하는 모습은 삐용이가 어른들의 뜻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편하다. 어린이는 어른의 보호와 교육의 대상이고 가르침에 따라 미숙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시선에서 말이다. 귀여움과 천부적 능력은 미덕로맨스 판타지의 하위 장르인 육아물은 대개 성인 주인공이 아기나 어린이로 회귀나 빙의 또는 환생하여 다양한 욕망을 실현하는 흐름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로또 황녀님>의 주인공은 환생과 회귀를 거듭하여 세 살 슈슈 황녀로 살아간다.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미션을 부여받고 회귀한 슈슈 황녀는 냉혈한 군벌인 외삼촌의 총애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세 살 슈슈 황녀가 외삼촌 눈에 들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다운 귀여움과 예언가의 능력을 인정받은 덕분이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의 주인공은 공작가나 백작가의 영애가 아닌 사용인의 어린 딸 아일렛으로 빙의하여 가족을 돌보는 것에서부터 세계를 구하는 역할까지 종횡무진 활약한다. 아일렛이 살아남고 성장하는 데 있어 아이답지 않은 비범한 능력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 <똑똑한데 가끔 뭘 몰라출처:미디어창비

위안을 주는 어른보다 어른스러운 어린이

미역의 효능 작가가 다음웹툰(*3)에 연재한 <, 지갑 놓고 나왔다>의 아홉 살 노루의 영혼은 죽어서도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한다. 딸을 잃은 슬픔에 사무쳐 식음을 전폐한 엄마가 끼니를 거를까 걱정돼 놀이터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노루. 어른의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에 엄마를 보호하고픈 마음을 품는 노루는 어른보다 어른스러운 어린이다. 그러나 , 지갑 놓고 나왔다결말에 이르러 노루는 평범한 아이들처럼 엄마에 대한 걱정 없이 살고 싶었다고 외친다. 노루의 어른스러운 태도는 노루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노루처럼 어른스러운 면모를 가진 어린이는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자주 목격된다. 영화 <몬스터콜>의 코너는 생사를 오가는 병에 시달리는 엄마의 완쾌를 바라는 동시에 빨리 이 잔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모순적인 마음을 견디지 못하며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것을 택한다. <아이엠 샘>에서는 장애를 가진 아버지보다 어른스러운 일곱 살 딸이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강제로 헤어지는 내용을 다룬다. 숱한 드라마 속에서 어린이는 순수하고 사려 깊으며 다정하면서도 성숙해서 어른들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4)
*3: 현재는 <카카오웹툰>으로 플랫폼명이 바뀜
*4: 김지연은 드라마 속에 재현되는 어른스러운 어린이를 웃자란 어린이로 명명하여 연구했다.(김지연(2022), <미디어에 재현된 웃자란어린이 형상화 연구: 어른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지혜로운 어린이들>, 반영과 재현 3, 영상문화지평연구소, 5-34.

우리는 어린이를 동료 시민으로 여길 수 있을까

어린이로 등장하는 마루, 노루, 슈슈, 아일렛은 어린이만이 아니라 어른에게도 큰 만족감을 주는 존재다. 이들은 미디어에서 재현되어온 어린이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어린이집에 다니는 유아, 초등학생인 아홉 살, 열한살 어린이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돌봄의 어려움과 어린이로 사는 어려움을 일부분이나마 공유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마루, 노루, 슈슈, 아일렛은 여전히 내일의 주인공으로서의 어린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어린이는 보호와 교육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더욱 확고히 한다. 어린이는 약자이므로 보호해야 하고,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명제는 어린이가 어떠한 상황에서든 수직관계의 하위에 위치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므로 어린이는 우리 사회의 동료시민으로 함께 불합리한 것들을 수정하지 못하고 어른이 결정한 대로 따라야 한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시민으로서의 어린이

<똑똑한데 가끔 뭘 몰라>의 정훈이와 친구들은 아이들이 바깥에서 놀 수 있도록 놀이터를 만들어달라는 시위를 하는 민진이의 할아버지를 발견한다. 정훈이 일행은 추위 속에 서 계신 할아버지께 편의점에서 사 온 따뜻한 유자차를 드리며 한 가지 부탁을 한다. 맛있는 크림빵을 사 먹고 싶지만 빵을 판매하는 카페는 “No Kids” 문구가 붙여진 곳이라 들어가지 못하니 대신 사다 달라는 부탁이다. 크림빵을 사던 할아버지는 추위에 떠는 아이들을 들어오게 해달라며 카페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보다 못한 정훈이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나온다. “다신 안 올게요. 그래도 빵은 맛있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정훈이는 카페가 정한 규칙은 어겼지만 ‘No Kids’ 문구가 적힌 이상 다시 오진 않을 것이다. 그동안 정훈이는 동등한 권리를 지닌 시민으로서 인정받지 못했지만 규칙을 존중하며 지키려고 노력했다. 아마 부탁드린 할아버지가 난처한 상황에 놓이지 않았다면 규칙을 어기고 카페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만화 속 에피소드지만 현실을 핍진하게 반영하고 있어 씁쓸한 대목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소동이 있고 난 이후 카페는 어린이 고객을 환영한다는 문구로 바꿔 붙였다.

어른이 정한 규칙만을 강요당할 때 어린이는 수동적이 된다. 불합리하거나 불공평할 때도 스스로 변화를 일으킨 경험이 없다면 쉽게 체념한다. <똑똑한데 가끔 뭘 몰라>는 어린이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짝을 정하는 방법에서부터 노키즈 존을 어린이의 환대 공간으로 뒤바꾸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전달한다. 당사자의 시선으로 어린이의 일상을 따라가며 썩 좋지 않은 문제가 생겨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다. 현시대의 어린이는 어른들의 말에 고분고분하고 위안을 주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내일의 주인공으로 살기 위해서라도 오늘의 주인공으로 살아야 하는 주체적으로 사는 법을 익혀야 하는 존재다.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친구와 협력하고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할 줄 알며 적극적인 행동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체득해야 한다. 자신의 한계를 알면서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어린이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해도 배려와 존중을 견지하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시민이자 동료가 될 것이며 함께 내일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똑똑한데 가끔 뭘 몰라> 청원(도판제공:미디어창비)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정원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옆에서 기다려주는 어른, 쉽게 단정 짓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좋은 일도 일어난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하고 밝혔다. 정원 작가가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똑똑한데 가끔 뭘 몰라> 속의 어린이의 재현을 통해 드러난다. 그 나이대의 아이를 총칭하는 어린이가 아니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열한 살 어린이들의 생활과 문제, 고민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동시대에 거주하는 정훈이, 석진이, 준서, 하리, 민진이, 지혜가 단단하게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낮추어 볼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인이라는 감각은 어린이에 대한 통념에서 벗어나게 하고 존중의 마음을 품게 만든다. 틀림없이 <똑똑한데 가끔 뭘 몰라>의 정훈이는 이 사회를 바꿀 힘을 지닌 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존중받은 것처럼 기다려주고, 쉽게 단정 짓지 않으며 나아가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단 희망을 갖는 어른이 될 것이다. 정훈이가 희망을 아는 내일의 주인공이 된다는 건, 오늘의 주인공인 덕분에 가능하다. 덧붙여, 정훈이의 이야기가 바람직한 어린이의 지표로 작용하진 않길 바란다. <똑똑한데 가끔 뭘 몰라>의 사례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욕망을 지닌 11살의 개인이 드러나도록 참고가 되는 것이 더 옳다. ‘어린이’, ‘아동과 같은 추상적인 집단의 상징이 아니라 구체적인 개별성을 지닌 개인임을 인정해야만 동료 시민으로 환대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진이미지

홍난지

만화평론가, 정책연구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웹툰만화콘텐츠전공 교수
웹툰자율규제위원회 위원장, 前 한국만화가협회 만화문화연구소장
 『웹툰 퍼포먼스와 독자의 즐거움』, 『이말년』 등 도서 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