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만화(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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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이 이기는 세계

<지금, 만화> 제23호(2024. 10. 2. 발행) ‘이럴 땐 이런 만화(동기부여)’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2025-06-27 박소해

착한 사람이 이기는 세계

안도 유키 작가의 <마치다 군의 세계>

얼마 전에 주차를 마치고 무거운 책가방을 들다가 오른쪽 어깨가 탈구되는 사고를 겪었다. 그 와중에 핸드백과 스마트폰을 차 바닥에 떨어트렸다. 오른팔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어서 왼팔로 오른팔 팔꿈치를 받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침 열린 차창으로 옆차 운전석에 앉아서 한가롭게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남자분이 보였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그분에게 핸드백과 스마트폰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부탁했다. 남자는 귀찮은 표정으로 핸드백을 던지듯이 건네주었다. 거기까진 좋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혹시 스마트폰도 주워주면 안될까요?”

“아니! 내가 왜 당신을 도와야 합니까?”


남자는 버럭 화를 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남자의 말이 맞았다. 내가 스마트폰이 없어서 119에 전화를 걸지 못하거나, 남편을 부르지 못하는 상황은 그 남자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그 남자와 말을 섞을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왼팔로 오른팔을 붙든 채 근처 편의점에 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편의점 손님이 내 차에 가서 스마트폰을 가져다주었고 그제야 구급차를 부를 수 있었다. 그 동안 그 남자는 차 안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미친 듯이 자신의 궤도를 달린다. 다른 사람의 궤도에서 어떠한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든 자신의 일만 아니면 된다. 이 동정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힘들고, 외롭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자신의 시간과 품을 내어 기꺼이 남을 돕는 사람은 나약한 호구가 아닐까? 이런 호구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만화 시리즈가 있다. 안도 유키의 <마치다 군의 세계>. 그림체는 심심하고 무덤덤하다. 내용도 밋밋하기 짝이 없다. 7권을 독파하는 동안 이렇다 할 만한 임팩트 있는 사건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다.



필진이미지

박소해

추리소설가
2021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