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 33회에 예고와 에필로그까지 합치면 서른다섯 편. 넉 달 가까이 연재되는 동안 <샤먼>이 받은 독자반응은 상당수가 ‘높은 작화 퀄리티’ ‘영상을 보는 듯한’ 구성에 놀라워하는 모습들이었다.
시종일관 로모 카메라로 찍은 스틸샷을 보는 듯한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색채, 그리고 마지막까지 힘 조절을 잘 한 작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 이거 어떻게 움직이게 할 수 없을까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곤 했다.
실제로 연재 중 여기저기서 팬들이 직접 만들어 올린 영상들에는 그런 욕구들이 잘 묻어나 있다. 어느 작품이라고 열성팬이 없을까만, 적어도 멋스런 비주얼을 제대로 소화하는 만화를 찾던 이들에게 <샤먼>은 상당한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한 작품이었으리라.
물론 이러한 멋은 비단 화면에서만 그치는 건 아니었다. 장자의 제물론(齊物論) 한 구절로 시작한 <샤먼>은 내친김에 장자의 비유 가운데 가장 유명한 호접지몽의 나비 이미지까지 끌어들이며 독자들을 몽환적이면서 다층적인 이야기 속으로 몰고 간다.
彼出於是 是亦因彼(피출어시 시역인피)
是亦彼也 彼亦是也(시역피야 피역시야)
저것은 이것에서 나왔으며 이것 또한 저것에서 나왔다.
이것이 또한 저것이요 저것 역시 이것이다.
예고편에서부터 이 작품이 독자에게 보여주겠다 선언한 화두는 무(巫)와 신(神)과 사람(人)과 싸움(戰) 그리고 도(道)였다. 무와 신과 사람과 싸움이 소재를 드러내기 위한 여러 장치를 반영한다면 도는 이 작품이 이야기를 끌고 가 마무리 짓기 위한 키워드다.
본래 장자에게 도(道)란 ‘이것’과 ‘저것’의 대립이 사라진 상태로, 작품은 이를 분열과 대립, 해결 과정에 대입해 끌고 간다. 이를테면 이야기를 끌어가는 ‘휘’와 의붓 형 ‘시후’가 동생 ‘향이’를 두고 벌이는 갈등은 의도적이다 싶을 정도로 초중반까지 모호하게 처리돼 있는 한편, 빙의를 임의로 끌어내는 역할을 하는 약 이름 ‘오드아이’는 그 이름 자체가 양쪽 눈동자의 색깔이 다름을 뜻하는 표현으로 중반까지 휘 안에 자리하게 된 또 다른 휘의 존재를 드러내는 시각적 장치로 작용하기도 하며 결국 정신분열증세로 누워 있다던 향이를 치료하는 역할로 ‘완성’된다.
기승전결이라는 일반적인 방식을 넘어 시작점에 찔러둔 꼬챙이를 끝까지 잘 꿰어 넣은 솜씨는 비쥬얼적인 멋스러움만큼이나 눈높이 높은 독자들을 즐겁게 하는 요소였을 터이다. 게다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원흉인 요양원장(아버지)과 박사, ‘만들어진’ 시후는 오리엔탈 미스터리 팬터지라는 장르명을 붙인 작품답게 작품이 단순한 ‘영능력 배틀’에서 투닥대다 끝나지 않게 하는 중요한 면면을 제공한다.
이렇듯 <샤먼>은 출중한 비주얼을 소재를 잘 살려 버무려낸 작품이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달리한다면, 약간은 눈에 밟히는 부분이 있었다.
독자들이 <샤먼>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 ‘마치 애니메이션 스틸컷 같다’는 찬사는 그만큼 이 작품의 외적 면모가 만화보다는 영상에 가까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2차원 애니메이션도 각종 영상 기술을 동원해 3D 못지않은 정교함과 화려함을 극단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한 터라 이런 데 익숙해진 이들이 만화에서도 ‘애니메이션 수준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 한 화면 안의 시각적 밀도가 상당히 높으면서도 작화가 깔끔하고 질적 수준을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여기서 두 갈래 감상이 들고 만다. 첫 번째는, 그건 어디까지나 ‘영상미’란 점이다. 만화 연출이 영상 연출의 그것과 상당히 닮아 있음은 분명하지만 ‘프레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만화는 컷이 한 프레임이고 시선을 어떻게 제어할지에 따라 프레임의 크기와 모양과 위치를 달리하지만 영상은 한 화면 자체가 프레임이다. <샤먼>은 그런 점에선 뛰어난 작화와 재미를 지니고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조금 호흡이 짧은 1쿠르짜리 TV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이 강하게 묻어난다. 전개를 끌고 나가는 힘이 워낙 세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어떨 땐 만화라기보다도 그 자체로 잘 편집되어 수려한 뮤직비디오의 스틸컷을 보는 기분도 든다. 이야기의 짜임새가 다소 급하게 흐를 때가 있는 건 이 작품이 영상의 호흡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조금 닳은 만화 독자로서는 조금만 더 원초적으로 ‘만화다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조금 고루하기까지 한 아쉬움을 품게 된다. 이는 프레임 안의 밀도와 퀄리티와는 별개로 만화를 만화답게 하는 부분에 느끼는 아쉬움이다. 물론 이는 ‘영상 스틸컷 같다’라는 평가를 받는 만화 장르가 출현하기 시작한 최근 몇 년 사이의 웹툰씬에서 <샤먼>이 질적인 측면에서 정점을 찍은 것이기도 하며, 영상화로 연결하기에 한층 더 용이하면서 내러티브적인 면에서도 뒤떨어지지 않는 만화 콘텐트가 나왔다는 이야기기도 하니 괜한 아쉬움이기도 하겠다.
분명한 건 일말의 아쉬움들이 <샤먼>이란 작품이 지니고 있는 매력이 크기 때문이라는 사실일 터이다. 쉽지 않은 여정을 마친 ‘담풍’ 여러분에게 축하를 전하며 이들이 이후 내놓을 ‘만화’에도 기대를 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