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7회째인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 9월 28일 부터 10월 3일까지 ‘책에 취하다’라는 주제로 홍대 앞 주차장 거리에서 열렸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은 2005년에 ‘책으로 즐거워지는 세상’이라는 주제로 시작했다. 당시 55개 출판사와 연인원 25만여 명이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페스티벌은 6년 후 페스티벌은 100여개의 출판사가 참여하고, 매년 30여만 명의 시민들이 찾는 국내 유일의 거리 도서전으로 성장했다. 특히, 올해는 한국 만화에 대한 다양한 이벤트들이 준비되었다. 세미콜론, 길찾기, 거북이북스, 청강문화산업대학교가 참가한 만화거리 도서전과 만화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네트워크파티, 웹툰 작가들의 웹툰 캐스트 공개방송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후원한 자료로 시민 만화방이 열렸다. 그리고 한국의 만화독서를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리는 등 특별행사가 준비되어 다양성을 더했다.
한국의 만화독서를 논하다
첫째 날인 9월 28일 저녁 6시부터 홍대 앞의 복합 문화 공간 클럽 500에서 한 시간 반 동안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만화출판의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국 만화 출판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다.
이날 세미나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박인하 교수의 사회로 열렸다. 도서출판 길찾기의 원종우 대표는 ‘한국에서 새로운 만화 읽기’에 대해 세미콜론의 강병한 편집장은 ‘한국에서 그래픽 노블 읽기의 어려움’에 대해 발표 했다. 그리고 휴머니스트의 위원석 편집장은 ‘한국에서 다큐만화 읽기와 만들기’를 서승택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는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과 만화읽기’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한국 만화 출판의 과거와 현재
한국의 만화 출판에 대한 구체적인 현실과 문제점 등을 짚어 준 것은 도서출판 길찾기의 원종우 대표였다. 길찾기는 ‘만화’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쉽게 떠올리는 코믹스나 일본상업 만화의 번역본이 아닌 “소장하고 감상할 수 있는 값어치 있는 만화”를 출간 하겠다는 취지하에 2002년 설립된 만화전문 출판사이다.
길찾기의 대표가 말하는 한국 만화 출판의 현실은 일반 독자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원대표는 만화 시장이 서점이 아니라 도서 대여점을 중심으로 형성 되었던 때에 비해 현재는 서점 판매를 목적으로 출판되는 만화가 많아졌으며, 코믹스 이외의 진지한 만화출판이 증가 했다는 것이 큰 변화라고 말했다. 즉, 독자들에게는 한국과 일본의 대중 만화가 아닌 좀 더 다양한 장르와 제3세계의 만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좋은 만화 독서 환경이 갖추어진 것이다. 최근에 한국의 주요 만화 매체로 자리 잡은 웹툰이 활발하게 단행본으로 출판 되는 등 출판 만화의 수가 늘어났다. 그러나 ‘만화’를 소비하는 독자의 수는 별로 증가하지 않았다. 이것은 만화 출판업계가 안고 있는 과제다. 진지한 만화 단행본을 고정적으로 구매하는 독자의 수는 10년 전과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하니 한국에서 만화를 출판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원대표는 이러한 현실의 타개책으로 ‘인문만화’의 출판을 택했으며, 다양한 관점에서의 만화 출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시대와 독자가 요구하는 것이 일치 했을 때 만화 출판은 성공할 수 있으며 이러한 독자의 요구와 흐름에 대한 고민은 출판사 관계자 모두가 안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만화는 서브 컬쳐 로서의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가능성을 가진” 매체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새로운 장르, 새로운 독자층의 개척
만화라는 장르가 상업적으로 뚜렷하게 성립되어 있고 자국 작가에 의해서 일정량 이상의 만화책이 꾸준히 창작되고 출판되는 나라는 많지 않다. 만화잡지가 존재하고 만화책을 서점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서도 연재만화를 볼 수 있는 한국의 만화출판 환경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메이저 장르가 아닌 장르의 만화라면 이야기는 달라질지도 모른다. 강병한 세미콜론 편집장의 발제인 ‘한국에서의 그래픽 노블 읽기의 어려움’을 통해 한국 만화장르의 다양성 확대와 새로운 시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강편집장은 만화 출판에 있어서 팬덤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며 웹툰을 예로 들었다. 그는 웹툰이 인터넷을 통해 누구에게나 무료로 공개되는 만화이지만 단행본으로 출판 되어서도 높은 판매고를 보일 수 있는 이면에는 작가에 대한 팬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래픽 노블 장르의 경우 팬덤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마케팅과 판매의 어려움으로도 연결 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또한 강병한 편집장의 발제에서는 편집자로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고민에 대해 들어 볼 수 있었다. 이는 여타 만화와 관련된 학술행사에서는 좀처럼 들을 기회가 없었던 내용이기도 했다. 그래픽 노블이 라이선스로 번역 출판 될 때 현실적인 문제점들과 숙제에 관한 것이 그것이다.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는 그래픽 노블은 원작들이 자국에서 출간될 때와는 다른 출판 환경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책의 판형과 알파벳 문자를 한글로 바꿀 때 글자체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와 같은 문제점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래픽 노블은 그림을 가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문장을 표현해야 하는 등 소설에 비해 문장 길이의 제약이 큰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것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소하지만 한권의 책이 출판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필요한가를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강병한 편집장은 “어느 출판사에서 출판되는가에 따라 독자층이 달라진다.” 그리고 “2~3천명의 독자가 존재 하며 이들은 코믹스 만화 이외에도 좀 더 다양한 다른 작가들을 소개 받고 싶어 하는 독자들”이라고 이야기 했다. 대중적인 만화 이외의 새롭고 다양한 장르의 만화를 소비 하는 독자들은 2~3천명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휴머니스트의 위원석 편집장은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시리즈의 성공을 통해 독자층의 확대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 했다. <조선왕조실록>은 어린이 독자도 염두에 두고 출판 했지만, 실제로 독자들은 만화를 읽지 않던 40대의 성인 남녀가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결과는 “새로운 독자들을 발굴 하게 된 것”이고, 만화책의 내용만 충실 하다면 만화책을 구입할 독자들이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위원석 편집장은 여러 가지 개념을 함께 엮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 만화에 대한 출간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다큐멘터리 만화는 어떤 장르나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성의 문제”임을 들어 새로운 장르의 만화와 독자 확대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인터넷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진정성에 목말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큐멘터리 만화의 원칙인 “진성성”과 “현장성”을 통해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데 “진정성”은 작가를 통해 풀어 낼 수 있을 것이며 “현장성”은 우리 만화에서 많이 취약했던 취재와 원안 작가들과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 풀어야 할 과제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성공 한다면 만화 독자층의 확대와 만화 시장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강조했다.
디지털 시대, 만화의 미래
새로운 장르의 확대만큼이나 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 할 수 있는 것이 만화매체의 변화 이다. 종이가 아닌 디지털 만화의 대두가 그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열람할 수 있는 웹툰이 하나의 만화 장르로 정착된 것은 그다지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스마트폰, 타블렛PC등 새로운 디지털 기기의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기기에 적합하게 만화도 진화하고 있다.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과 만화읽기’에 대해 청강문화산업대학교의 서승택 교수의 발제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만화의 미래를 읽을 수 있다. 서승택 교수는 “<스파이더 맨> 시리즈 만화는 종이 보다는 iPad 만화가 더 많이 팔리고 있다” 즉, “독자들에게 만화를 전달하는 방식이 변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디지털 만화는 “종이와 유통 과정 없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일 뿐 아니라” “숨어 있는 만화 독자들을 끌어내고, 작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채널이 되어 줄 것이며 이는 이미 진행 중에 있다고 했다.
이날 서승택 교수가 직접 보여 준 디지털 만화는 이른 바 ‘모션 코믹스’ 의 사례였다. 모션 코믹스는 웹툰처럼 컴퓨터 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스크롤 하면서 만화를 읽는 것과는 다른 연출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모션 코믹스는 화면을 상하로 움직이는 스크롤 대신에 클릭을 통해 만화의 페이지를 넘기는 방식이다. 그리고 간단한 움직임과 효과음을 넣은 연출을 시도 해 종이 만화와는 다른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만화에 대해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박인하 교수도 “iPad의 코믹 솔로지 앱은 미국의 오프라인 출판물 시장을 잠식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창출 한다”라며 디지털 만화가 가진 새로운 시장 개척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이날의 세미나가 특히 의미 깊었던 것은 ‘만화’ 혹은 ‘만화책’을 이야기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 올리는 코믹스나 일본만화의 번역본 같은 상업 만화 이외의 만화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 행사는 출판사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만화 출판 현장에 대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는 서울와우북패스티벌의 일부로 기획된 세미나였기에 가능했다.
발제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한국 만화 출판의 현실은 “한계성”도 있지만 그만큼 “가능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만화는 한정적인 독자층을 가지고 있지만, 좋은 만화 새로운 만화에 대한 독자의 요구는 항상 존재하고 있다. 그러한 요구에 부합하는 만화가 나왔을 때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공을 통해 만화 출판 규모가 성장하고 독자층이 확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세미나의 사회자 박인하 교수는 “중요한 것은 독서이고, 좋은 책을 만들고 좋은 책을 읽을 때 한국 만화는 우리가 보고 싶은 만화를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한다. 좋은 만화책을 만들어 내려는 출판 관계자들의 노력이 계속 되고, 그러한 좋은 책들을 구입 하는 독자가 존재 하는 한 한국 만화는 발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