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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이슈 레이더 #3

만화계의 이슈 흐름을 한 달에 한 차례씩 정리하는 ‘만화 이슈 레이더’가 돌아왔습니다. 11월 중하순에서 12월 중순까지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짚고 무엇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013-12-24 서찬휘
안녕하세요. 만화 칼럼니스트 서찬휘입니다. 만화계의 이슈 흐름을 한 달에 한 차례씩 정리하는 ‘만화 이슈 레이더’가 돌아왔습니다. 11월 중하순에서 12월 중순까지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짚고 무엇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월간희망만화무크 『BOGO』, 만화 토크 콘서트 연이어 개최
 
사단법인 우리만화연대가 준비 중인 월간희망만화무크지 『BOGO』가 창간을 앞두고 다양한 주제로 토크 콘서트를 열며 분위기를 달구고 있습니다.
 
『BOGO』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지난 9월 발표한 만화전문잡지 신 모델 지원사업 선정 아이템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화로 보는 세상, 문화로 보는 만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으며 출판만화와 기사를 통해 만화와 사회·문화를 둘러싼 현상과 담론을 다룰 예정입니다. 제책 및 유통 협업 관계로 휴머니스트가 참여하고 있으며 컴퓨터 그래픽·아트워크를 다루는 월간지 『CA(컴퓨터 아트)』의 디자인을 맡고 있는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이 기존 만화 잡지들에서 쉬 볼 수 없었던 감각적인 디자인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무크지의 창간을 알리는 한편으로 담론 형성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는 만화 토크 콘서트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역시 지난 9월 초 선정해 발표한 수요자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 기획 지원을 통해 진행되고 있는데요. 당시 선정 기준은 "예술인이 예술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예술인에게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계획하고, 진행하면서 예술역량과 현장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고 하지요. 지난 11월 26일 열렸던 ‘아이야, 만화랑 놀자 ? 어린이 만화의 흐름과 전망’을 시작으로 12월 3일 ‘웹툰, 현장의 소리를 듣다’, 12월 15일 ‘레터링, 타이포그래피, 캘리그래피를 통한 만화 속 문자 표현의 이해’, 12월 17일 ‘SF와 만화 ? 이 시대, 우리는 왜 SF를 이야기해야 하는가?’ 등이 이어졌습니다.
 
『BOGO』의 만화 토크 콘서트는 만화 자체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현 시점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이 어떻게 조명되고 있고 그 사이에서 만화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룬 것이 특징입니다. 어떤 이야기들이 나왔는지는 1차로 네 호를 발간할 예정인 무크지 지면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겠지요.
 
2. 웹툰 「독고」 , 청소년 폭력 단절 크라우드 펀딩
 
지난 11월 15일 클라우드 펀딩(여타 기업의 투자가 아니라 인터넷, SNS 이용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방식) 사이트 가운데 하나인 유캔펀딩에 만화와 관련해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올라왔습니다. 바로 웹툰 「독고」가 청소년 폭력 단절 응원을 위한 휴대폰 케이스 제작 프로젝트를 시작한 겁니다. (관련 링크 : http://http://gg.gg/nktq)
 
2012년 12월 스투닷컴에서 연재를 시작했던 학교 액션물 「독고」는 학교를 배경으로 주먹이 나오고 소위 일진이 나오지만 담고 있는 주제가 다소 독특한데요. 이야기 자체는 모범생이었던 일란성 쌍둥이 형 강후가 일진들에게 구타를 당해 사망하고 그 충격에 아버지가 사고로 죽고 어머니도 정신줄을 놓고 집을 나가면서 집안이 순식간에 초토화되자 양아치 기질이 있던 일란성 쌍둥이 동생이 형의 고등학교에 복학하여 형 행세를 하며 복수를 해 나갑니다. 작품이 독특한 건 이 과정에서 마땅히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다거나 강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을까 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학교 폭력과 왕따(집단 따돌림)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문제의 본질적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관해 묻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학교 폭력 문제에서 학교는 의지가 되어주긴 커녕 사례 자체를 덮으려 듦으로써 피해자가 되레 피해자를 소란을 피운 문제아로 낙인찍는 게 현실이고, 법 또한 여타 학교 폭력 및 장애인 집단 강간 사건에서 보여주었듯 피해를 막기는커녕 발생한 피해에 2차 가해를 더하고 있는 집 자식들의 경우 실제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독고」는 그러한 현실을 꼬집어내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결국 이 작품은 폭력을 미화할 생각도, 또 단순히 폭력 피해자들에게 자기만족에 가까운 복수 스토리로 쓰이고 말 생각도 없는 셈이죠.
 
「독고」의 두 작가와 만화 전문 엔터테인먼트 업체 투유엔터테인먼트는 이번 유캔펀딩 프로젝트를 통해 학교 폭력 피해 학생들을 돕겠다는 명분과 작품 소재를 관통하는 진정성을 증명하는 이미지 획득 등 다양한 효과를 꾀한 것으로 보입니다. 펀딩 참여 금액에 따라 바탕화면, 일러스트 엽서, 친필 사인 브로마이드 등이 제공되며 3만 원 이상부터 휴대폰 케이스가 함께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4만 원을 넣으면 휴대폰 케이스에 친필사인까지 들어갑니다. 모인 비용 가운데 기부자에 관한 각종 보상과 케이스 제작, 배송 비용을 제외한 전액은 청소년 관련 사회단체에 작가진과 후원자 이름으로 기부할 예정이라는군요.
 
12월 16일까지여서 이 글이 나가고 있을 때엔 이미 끝났을 듯합니다만, 「독고」의 이번 클라우드 펀딩은 몇 가지 중요한 지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클라우드 펀딩(또는 소셜 펀딩)으로 불리는 비용 조달 모델을 만화 작품 생존 자체가 아니라 목적을 둔 기획 이벤트로 확장했다는 점입니다. 만화나 일러스트레이션 등에서는 작품을 세상에 내어놓기 위한 방안으로 클라우드 펀딩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추세고, 만화를 원작으로 하였으나 소재 문제로 보이지 않는 압박을 받아 무산 위기에 처했던 「26년」이나 ‘팝픽 사태’로 통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노예계약 사태 때 소송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피해 작가들이 벌였던 ‘Picturize Your Future’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독고」의 휴대폰 케이스 프로젝트는 만화에서 클라우드 펀딩이 작가와 작품의 생존이라는 비장한 주제 외에도 쓰일 수 있구나 하는 점을 드러내놓고 보여주고 있는 사례입니다. 물론 학교 폭력 단절을 목표로 한다는 명분은 그 나름대로 비장하긴 합니다만 또 다른 궤로 읽어야 하겠지요.
 
또한 이 프로젝트는 폭력과 음란 등 끊임없이 시시비비의 대상이 되곤 하는 만화가 그릇된 사회적 시선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가에 관한 답 가운데 하나를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적극적인 기획에 따른 여론전을 획책하는 건 마치 “공격이 곧 최선의 방어”이자 ”선수필승”이라는 싸움의 격언을 보는 듯도 하네요. 하기에 따라서 무안하고 민망할 수도 있는 캠페인성 프로젝트입니다만 「독고」는 정면돌파를 선택한 듯합니다.
 
비단 이 문제가 아니라도 학교 폭력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중고교는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교 때 폭력은 만연해 있었고 쉬쉬하는 학교나 처벌조차 못하는 법 현실이나 지금과 크게 다를 건 없었습니다. 당연한 듯이 죄의식을 버리고 마땅히 차별과 폭력을 휘둘러도 되는 대상을 상정하게끔 하는 사회 구조와, 그런 사회 구조라도 굳이 자기 의지로 순응하고 만 사람들이 복합된 결과겠지요. 손을 어디서부터 댈 수 있을까에 관한 정답이 있을 턱은 없겠으나, 최소한 “싸우는 건 나빠요” “만화 같은 걸 봐서 애들이 따라하는 거예요” 따위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사회 구조만의 문제도 아니지만 반드시 개인의 문제만도 아닌 사안을 손쉽게 피해가기 위해 위정자들과 사회주도계층은 희생양을 곧잘 찾곤 하지요. 「독고」가 보여준 프로젝트도, 기실 “만화 보고 따라해서 애들이 이 지경이다”라는 식의 시선이 만연해하지 않고서는 굳이 이렇게까지 나오지 않아도 될 일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존재가, 우리 사회가 사회의 병폐에 해당하는 부분의 근본은커녕 부수 요인들에조차도 접근하지도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안타깝습니다.
 
3. 문화체육관광부의 심의제도 개선 의지와 사전검열을 획책하는 언론사들의 엇박자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진룡)가 11월 19일부터 뮤직비디오와 웹툰 심의제도 개선을 위한 업계 간담회를 연속해서 열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를 “창조경제의 핵심 분야인 문화·체육·관광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고, 기업 경영 여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추진하는 소극적(네거티브) 규제 방식 개선의 일환”이라 설명했는데요. 뮤직비디오와 관련해서는 11월 19일 관련 업계 주요 협·단체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뮤직비디오는 그렇다 치고, 웹툰은 11월 21일에 한국만화가협회, 우리만화연대, 한국만화스토리작가협회, 한국만화출판협회, 한국카툰협회, 한국만화연합,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가운데 정책간담회를 열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날 자리에서 만화계는 ‘심의’라는 단어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면서 이 말 대신 ‘자율규제’라는 용어를 사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하고 문체부는 이를 적극 검토하기로 한 데 이어 웹툰 뿐 아니라 만화 전체 심의제도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기로 합의하고 법적 근거 마련 및 규제 절차·기준 등을 마련하기 위해 앞으로 지속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나아가 웹툰 자율규제와 관련해서는 현재 웹툰 심의를 담당하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및 한국만화가협회와 함께 게임물 민간자율등급분류제도를 참고하여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개선방안을 구체화해 나갈 방침인데 만화 창작자의 의견을 중시해 내년 상반기까지 폭넓은 의견수렴을 거쳐 법·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관에서 만화를 ‘어떻게 진흥할 것인가’ 즉 산업적, 수치적 결과를 어떻게 낼 것인가가 아니라 관제 심의를 어떻게 현실과 업계 상황에 맞춰낼 것인가에 관해 ‘존중하는 입장’에서 풀어내려는 자세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무엇보다 만화계가 지난 2012년 초 격렬한 투쟁과 기민하고 영민한 여론전으로 일궈냈던 웹툰 자율심의가 심의기관의 업무협약 차원을 넘어 법제화를 위한 준비절차로까지 연결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일입니다. 게다가 웹툰 뿐 아니라 심의 기관이 각기 매체 특성에 따라 나뉘어 있는 만화 전반에 걸쳐 자율규제 논의를 확장해 가고 있다는 것도 좋습니다. 만화진흥법 초기 제정 논의 당시 작가 및 업계 차원의 자율규제에 관해 일부 작가들의 “누가 누구를 심의하느냐”라는 어리석은 오해가 횡행했던 걸 떠올리자면 당연하다는 듯 자율규제가 관제 심의에 대응하는 방어논리로 자리 잡혀 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죠.
 
그런데 정작 언론사들은 오히려 관의 이러한 전향적인 모습과는 정 반대 여론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먼저 지난 10월 23일 조선일보의 종합편성채널(종편)인 TV조선에서 「변태성행위까지 적나라한 성인만화…청소년에게 무방비 노출」이란 제목으로 내보낸 보도 내용을 보시죠.
 
"국내에 정식으로 발간된 만화책입니다. 성적 표현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변태적인 성행위를 하는 장면도 여과 없이 나옵니다. 또 다른 만화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접적인 성관계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성적인 암시가 들어있는 장면들이 가득합니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만화책입니다“
 
"이처럼 성인물이나 다름없는 내용이 들어있지만 이 책은 15세 이상이면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책을 볼 수 있는 나이를 정부기관 대신 출판사가 직접 결정하는 제도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15금(15세 미만은 구독 금지) 제한을 걸어놓은 만화에 성행위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변태스럽고, 자율적으로 심의를 거는 허점을 이용해서 애들을 농락하고 있단 이야기입니다. 현재 출판만화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사후심의를 진행하고 있고 출판사가 내용에 따라 일단 구독 연령 등급을 매깁니다. 법상으로 한국은 19세 미만 구독불가와 아닌 것만 있을 뿐이지만 자체적으로 15세 미만은 보지 말라는 정도를 달아두고 있지요. 19세 미만 구독불가는 정말 보기 싫은 빨간 딱지를 표지에 붙여야 하는 악법이 여전히 남아 있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그러합니다. 조선일보는 지금 이 부분을 문제 삼는 겁니다. 출판사 자율로 남겨두면 어쩌느냐는 것이죠. 심지어 보도 말미에 이르러서는 사전심의는 헌법21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네 하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사무국장의 말 뒤에 이게 허점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사후심의기 때문에 출판사가 먼저 찍고 나중에 결정나는 대로 조치를 하는 현 제도를 부정하는 발언은 곧 사전심의를 하라는 종용입니다. 이는 곧 대중매체 검열이고, 검열은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시대의 병폐입니다.
 
이에 질세라 매일경제가 11월 13일 「19금 웹툰 인기인데…심의는 ‘자율’」이라는 제목으로 대상이 웹툰으로만 바뀌었지 조선일보와 똑같은 주장을 펼칩니다. 심의 주체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다르기는 한데, 매일경제는 현재 웹툰에 19금이 넘쳐나고 있으면서 업체 자율로 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라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와 매일경제의 기사가 매우 우려스러운 이유는 불과 1년 전에 언론이 만화에 저질렀던 폭거를 재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들은 2011년 말 한 학생이 학교 폭력 피해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자 게임을 원인으로 지목하다가 만화로 대상을 옮겨서 2012년 초반 내내 폭력적인 웹툰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을 획책한 바 있습니다. 그 당시 조선일보는 귀귀 작가의 「열혈초등학교」의 한 장면을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으며 “이 폭력 웹툰을 아십니까”라고 선동한 전례도 있습니다. 이 언론들의 부화뇌동에 부응해 한국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웹툰 20여 편을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했고, 만화계가 이에 극렬하게 저항하며 반대 여론을 만들어가는 데에 온 힘을 다 했죠. 그 결과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굴복 빛 철회, 웹툰 자율심의 쟁취입니다. 조선일보는 심지어 이 건으로 만화 관련 글을 써 온 어수웅 기자의 자성글을 싣기도 했었죠. 이게 불과 1년여 전 일입니다만, 이번엔 아예 이 자율심의를 부정하는 여론을 획책한 것도 모자라 사전 검열을 하라는 주문까지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 심의 강화와 법을 동원한 대중문화 검열 시도는 언제나 언론의 여론전을 등에 업고 시작해 왔습니다. 특정 사안을 빌미로 삼아 무엇이 문제고 이걸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면, 관은 이를 근거로 법적 조치를 취합니다.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회의원들도 부화뇌동하기는 매일반이어서, 1997년 만화탄압 사태를 빚은 청소년보호법(청보법) 제정과 2012~3년 들어 제2의 청소년보호법 역할을 하려 들고 있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도 국회의원들이 철저한 준비과정도 없이 특정 사건에 관한 분노 여론에 기대 제정했었죠. 그 결과는 대규모 탄압사태입니다. 언론이 순수하게 문제제기만을 위해 이런 기사를 쓰지도 않거니와, 드러난 대중문화 탄압 사태가 어떤 과정과 이해관계를 통해 탄생하는지를 보면 관의 필요와 언론의 사회지배문화에 관한 지형 구축 필요성 등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한데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번에 바로 그 심의에 관해 매우 전향적인 자세를 취했고, 비슷한 시기에 언론들은 관을 항하여 바로 그 심의를 독재 시대로 되돌려놓으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이를 언론과 문화관계부처의 입장차로 읽는 건 무리고, 청와대와 문화관계부처의 입장차가 생기고 있는 건 아닐지 지켜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아울러 대중문화에 전향적인 자세를 취한 임명직 관료의 자리 생명도 말입니다.
 
4. 민주통합당 유승희 의원·사단법인 오픈넷 주최 아청법 개정 토론회
 
2013년 12월 13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민주통합당 유승희 의원과 사단법인 오픈넷이 주최하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을 개정하기 위한 <진정한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만들기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는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의 주최로 열렸던 「아동음란물 규제, 어떻게 할 것인가?」(2012.11.12), 「표현의 자유와 만화산업 발전」(2012.12.7), 「아청법 2조5호, 범죄자 양산인가? 아동·청소년 보호인가?」 (2013.8.12) 등 세 차레 토론회에 이어 유승희 의원이 바톤을 이어받았습니다. 이는 최민희 의원의 현 소속 위원회가 아청법 통과에 직접적인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라는 점을 감안해 유승희 의원이 회기 내 개정안 발의와 통과를 위해 나선 셈인데요. 저 또한 만화계 입장을 이야기하기 위한 패널로 참석하였습니다.
 
이번 토론회의 제목은 <진정한 아동청소년 성 “보호”법 만들기 토론회>였고 부제가 ‘아동성범죄 근절 입법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피해자 양산 대책 마련’이었습니다. 지난 토론회들에서도 계속해서 다루어졌던 이야기들이었지만 법 제정 및 개정에 관하여는 토론회 개최가 발의 과정에서 필요한 절차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날 자리에서는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규제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가 「아청법의 ‘피해자들’ 및 현재 단속 상황」을,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아동포르노 규제에 대한 국제 및 해외법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관한 발제를 했습니다. 이어서 이동연 한예종 교수,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 고의수 여성가족부 아동·청소년보호과장, 이병귀 수사기획팀장 경찰청, 김소영 뱐호사 등이 연이어 토론문을 발표하였는데요.
 

 
 
 
 
 
 
 
 
 
 
 
 
 
 
 
 
 
 
 
 
이미 세 차례 토론회가 진행되었던 터라 아청법 자체의 문제점과 개정 필요에 관하여는 이미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 나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번에는 구구절절한 과정을 처음부터 복기하기보다 현실적으로 개정 필요성을 역설하는 논조가 훨씬 더 강했던 것으로 봅니다. 법이 법인 이상 모호해선 안 되고, 그런 모호한 규정으로 창작을 통해 나오는 표현 자체를 규제해서도 안 되며, 이로 말미암아 피해자가 양산되어서도 안 된다. 이러한 상황 자체에 관해서는 큰 틀에서 동조가 이루어졌다 볼 수 있습니다. 수 차례 개정 반대 입장에 서서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동·청소년의 성에 피해를 입히는 데에 이용될 수 있는 매체에 제약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했던 탁틴내일의 이현숙 대표조차도 같은 맥락의 주장을 반복하였으되 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3차 토론에 이어 4차 토론에서도 경찰 측에서는 ‘우리는 법에 나온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라는 입장을 보였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입법부가 법을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에-라는 전제를 두고 있었다는 점인데 단속권자로서 온갖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입장에서의 고뇌가 묻어나는 대목이었습니다. 결국 이 법은 애초에 법 자체가 잘못 제작되어 범죄자를 제조하여 국가적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어느 쪽에서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죠. 이제 공은, 그리하여 다시 입법부로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개정 기회는 이제 내년 초 임시국회까지 해도 얼마 남지 않았지요. 위헌심판제청의 결과가 나오려면 한참 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빨라봐야 내년을 훌쩍 넘겨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결자해지 차원에서라도 입법부가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부디 ‘목적만 맞고 수단과 결과가 모두 잘못된’ 이 법이 취지에 맞는 법으로 재탄생하기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지 않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청소년보호법과 마찬가지로 업계 및 종사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안인 만큼 만화계에서도 관심을 계속 이어가야 하겠습니다.
 
 
■ 그 외 뉴스들
 
1. 한국콘텐츠진흥원이 12월 18일부터 19일까지 서울시 종로구에 자리한 인사아트센터와 서울아트쇼에서 제3회 한국만화원화전을 개최합니다. 전시 주제는 ‘컷 스틸러(Cut Stealer) ; 칸을 훔치는 사람들’입니다.
 
2. 유료 만화 웹진 레진코믹스가 연말까지 매출 14억을 내다보고 있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블로터, 「될성부른 글로벌 스타트업 모색한 5개월」, 2013.12.1) 만화로 이만한 돈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굉장히 주목할 만한 사례라 할 수 있겠는데, 11월 28일에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인터넷 진흥원 그리고 구글이 함께 진행한 ‘글로벌 K-스타트업’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는군요. 이제
 
3. 카카오가 SK플래닛의 T스토어를 인수할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일단은 양쪽이 부인하는 모습을 취했는데 이것이 루머일지 진짜일지는 두고봐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지요. 이 글이 공개되는 시점엔 결과가 나와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카카오 페이지로 콘텐츠 직접 판매 시장을 열려다 한 차례 실패하고 현재 전자책 시장의 파이를 잠식해 가고 있는 입장에서 비록 애플과 구글에는 밀려 있지만 국내 안드로이드폰 대상 콘텐츠 시장에서만큼은 일정 크기를 점하고 있는 티스토어를 집어삼키게 되면 모바일 콘텐츠 시장이 어떻게 요동칠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자연히 만화 쪽에도 영향이 있을 텐데요. 일단은 지켜볼 필요가 있는 뉴스입니다. 구체화되면 크게 다뤄볼 필요가 있겠지요.
 
4. 경남신문의 네 칸 시사만화 「거북이」의 김선학 작가님께서 2013년 12월 10일 돌아가셨습니다. 단일신문 최장 연재기록을 지니고 있는 「거북이」는 10일 새벽 별세로 채울 수 없었던 칸을 신문사 측에서 국화꽃 한 송이를 놓음으로써 9490회로 독자들에게 마지막을 알렸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필진이미지

서찬휘

* 만화 칼럼니스트. 
* 《키워드 오덕학》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덕립선언서》 등 저술.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와 백석문화대학교 출강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