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되었다.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유해매체로 지정되면 표시의 의무, 포장의 의무, 표시, 포장 훼손금지, 구분과 격리 등을 해야 한다. 좀 쉽게 가 보자. 90년대 우리나라에는 《미스터블루》, 《투엔티세븐》, 《빅점프》라는 3개의 성인 격주간지와 《화이트》, 《마인》, 《나인》의 3개 성인 순정월간지가 있었다. 총 7개의 성인만화잡지가 있었던 것이다. 청소년보호법이 등장하면서 성인매체가 청소년유해매체가 되었다.
19금, 즉 성인매체는 어른들이 보는 만화다. 청소년유해매체는 청소년들에게 나쁜 만화다. 이건 아주 다른 의미다. 성인만화가 청소년에게 유해한 만화가 되어버리고, <19세미만구독불가>라는 붉은 딱지를 붙여서, 비닐로 포장한 다음에, 별도로 격리된(청소년과 성인 누구라도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분증을 보여줘야 하는) 곳에서 팔아야했다. 만약 이걸 위반하면 청소년보호법위반으로 사법처리 된다. 이렇게 되자, 만화를 판매하는 서점에서 성인만화는 아주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 서점 주인들은 매대에서 성인만화를 치워버렸다. 판로가 없는 성인만화잡지는, 폐간되고 말았다. 앞서 소개한 성인만화 잡지에는 이현세, 이두호, 허영만, 김동화, 황미나, 양영순, 윤태호, 김혜린, 신일숙, 박흥용 같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연재되고 있었다. 몇 개만 예를 들어 봐도 양영순은 <누들누드>로 《미스터블루》에서 데뷔했고, 윤태호도 <연씨별곡> 같은 만화로 《미스터블루》에서 이름을 알렸다. 세계에 수출되어 한국의 미를 알린 <황토빛 이야기>는 《투엔티세븐》에서 연재된 만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만화들이 많았다. 한 권 한 권 모두 보석같은 만화잡지였다. 성인만화잡지가 폐간되자, 성인만화도 사라졌다. 한국만화는 어른들을 위한 만화가 없는 완전 절름발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1997년 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무려 15년동안! 대한민국은 어른들을 위한 만화가 없는 나라가 된 것이다.
에이, 뭐 그러면 그냥 청소년에게 안 유해한 만화를 그리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당신! 그 뿐이 아니다. 성인만화잡지를 빼고, 성인만화를 뺀 서점에 또 다른 일이 벌어진다. 청소년유해매체 사냥에 광분한 이들이 청소년유해매체물 목록을 들고 서점에 간다. 청소년유해매체는 사후심의다. 책이 깔릴 시점이 아니라 깔리고 나서 결정된다. 알아서 19세미만 구독불가를 붙이지 않는다. 비슷하면, 서점에도 안 깔리니까. 앞 권이 괜찮았으면 그냥 간다. 그러다 걸리면 그 서점은 단지 만화책 한 권 때문에 청소년보호법을 위반하게 된다. 당장 금전적 손해가 온다.
서점에서 만화가 사라진다. 농담이 아니다. 그렇게 한국만화는 90년대의 황금기를 청소년보호법으로 인해 날려먹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아직 본론에 가지도 않았다. 창작의 자유가 본론이지만 이 이야기를 하면 식상하게 생각하므로 그냥 밥그릇부터 이야기했다.
창작의 자유, 청소년유해매체 판정은 당신의 밥그릇 문제다!
적용해 보자. 이번 방심위가 24개 작품에 대해 청소년유해매체로 판정을 냈다. 제대로 만화를 본 것도 아니고, 그냥 항의가 들어온 작품들을 적당히 골라(웹툰 독자들은 이번 사전 지정 작품들이 얼마나 성의없이 골랐는지를 잘 알고 있다)에 청소년유해매체로 사전판정해 공문을 돌린 것이다. 그 중에는 애초에 19세 이상 구독용으로 서비스되고 있는 작품도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작가들이 대대적으로 뭉쳐서 창작의 자유를 지켜내고, 1997년 체제를 끝장낸다면, 한국만화에 새로운 봄이 올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나는 연재가 바빠서, 뭐 어차피 내 만화는 19금이니까, 나도 뭐 19금 붙이고 연재하면 되니까, 라고 생각한다면...당신의 밥그릇은 사라진다.
웹툰은 트래픽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콘텐츠를 유료로 파는 것이 아니라 무료로 공개하고 대신 포털은 트래픽을 얻는다. 그런데 트래픽을 얻게 해 주는 웹툰이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된다. 항의가 들어온다. 자꾸 공문이 온다. 시끄럽다! 귀찮다!
청소년유해매체물이 되면 19금만 붙이면 끝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선 19세미만 구독불가라는 표시를 해야 한다. 나중에 책을 내고 19세미만 구독불가를 붙여야 한다. 현재 책으로 나온 <살인자o난감>이나 <증거>, <더 파이브> 같은 만화도 모두 19세미만 구독불가를 표시해야 한다. 청소년이 볼 수 있게 홍보도 할 수 없다. 청소년유해매체가 되면 로그인해 성인만 그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19세로 바뀌면 트래픽도 줄어든다. 앞서 말한대로 방심위의 웹툰 압박 이면에는 (어쩌면! 가설이다!) 포털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방심위의 청소년유해물 판정을 작가들이 고분고분 받아들인다면, 포털 입장에서는 구태여 귀찮게 위험한 만화를 연재할 필요가 있다. 없다. <주먹의 전설> 같은 청소년 폭력을 걱정하는 액션만화도, 수많은 상을 받은 <살인자o난감>도, 문화부장관상을 받은 <더 파이브>도 모두 구/태/여 무리하면서까지, 찍히면서까지, 피곤해하면서까지, 19세로 트래픽이 줄어들면서까지 연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투명하기를 원하는 포털은 청소년에게 유해한 만화를 연재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웹툰으로 그릴 수 있는 주제와 소재가 한정된다. 일상만화나 개그만화 아니면 전 연령이 볼 수 있는 착한만화들. 독자들은 웹툰이 시시해졌다고 욕한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또 다른 무료 콘텐츠를 찾아 떠날 것이다. 웹툰이 빈자리를 노리는 콘텐츠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고, 그 중 하나가 포털의 사랑을 받아 간택된다면 웹툰은 사라진다. 바로 당신의 밥그릇이 사라진다는 말이다. (아직 창작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다.) 2011년 2월 18일 만화계의 임시 대책회의가 있었다. 문제는 아직 많은 웹툰작가들이 심의의 부활과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자신의 일, 자기 밥그릇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1997년 체제를 겪었던 작가들은 이번 사태에, 비록 자신이 웹툰을 연재하지 않고 있어도, 많은 우려와 분노를 표했다. 그런데 막상 당사자들은 너무 조용하다. 연대와 저항이 없으면, 이번 사건은 저들의 의도대로 풀려갈 것이다.
2011년 2월 18일 만화계의 임시 대책회의가 있었다. 문제는 아직 많은 웹툰작가들이 심의의 부활과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자신의 일, 자기 밥그릇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1997년 체제를 겪었던 작가들은 이번 사태에, 비록 자신이 웹툰을 연재하지 않고 있어도, 많은 우려와 분노를 표했다. 그런데 막상 당사자들은 너무 조용하다. 연대와 저항이 없으면, 이번 사건은 저들의 의도대로 풀려갈 것이다.
웹툰이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되고, 조선일보의 열혈초 사태처럼 언론은 크게 확대할 것이며, 포털은 자유로운 웹툰 연재를 주저할 것이고, 어쩌면 웹툰 연재도 줄어들 수 있다. 뭐, 좀 센거 그리고 싶으면 19세로 그리지! 게다가 지금은 연재 때문에 너무 바빠. 이 정도로 생각해서 연대와 저항에 소극적이라면, 그래서 이번 사태에 대해 또 아무런 저항도 없이 만화단체에서 성명서 정도를 발표하고 끝낸다면 반복하지만 당신의 밥그릇이 사라진다.
영화계의 경우 스크린쿼터를 조금 줄이겠다고 하자 모든 영화인들이 똘똘 뭉쳐 저지에 나섰다. 우리 만화계가 이번 사태에 똘똘 뭉쳐 이번 방심위 심의기도와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의 문제를 알리고 나아가, 1997년 체제의 문제를 공론화시켜 자율등급제를 가져온다면 웹툰 청소년유해매체물 사전통지가 한국만화 부활과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니 제발 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은 버리고, 바로 내 밥그릇이라 생각하고 전면에 나서자. 대대적인 총파업, 이번 문제를 널리 알리는 만화제작과 배포, 독자서명운동, 모든 웹툰에 상징물 부착, 만화 묘사와 폭력성과 선정성 문제에 대한 심포지움 개최 등으로 실천에 나서야 한다. 다시 한번 간곡하게 이건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내 밥그릇의 문제다. 지금 실천하면 내 밥그릇이 더 커진다. 하지만 지금 외면하면 내 밥그릇이 사라진다. 문제는 실천이다.
* 참조 청소년보호법 관련 조항
제14조(표시의무) ①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해서는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물임을 나타내는 표시(이하 "청소년유해표시"라 한다)를 하여야 한다.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청소년유해표시를 하여야 할 의무자, 청소년유해표시의 종류와 시기·방법 기타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15조(포장의무) ①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해서는 이를 포장하여야 한다. 다만, 매체물의 특성상 포장할 수 없는 것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포장을 하여야 할 매체물의 종류, 포장의무자, 포장방법 기타 포장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16조(표시·포장의훼손금지) 누구든지 제14조의 규정에 의한 청소년유해표시 및 제15조의 규정에 의한 포장을 훼손하여서는 아니된다.
제17조(판매금지등) ① 청소년유해매체물을 판매·대여·배포하거나 시청·관람·이용에 제공하고자 하는 자는 그 상대방의 연령을 확인하여야 하고, 청소년에게 이를 판매·대여·배포하거나 시청·관람·이용에 제공하여서는 아니된다. <개정 2001.5.24>
②제14조의 규정에 의하여 청소년유해표시를 하여야 할 매체물은 청소년유해표시가 되지 아니한 상태에서는 당해 매체물의 판매 또는 대여를 위하여 전시 또는 진열하여서는 아니된다.
③제15조의 규정에 의하여 포장을 하여야 할 매체물은 포장이 되지 아니한 상태에서는 당해 매체물의 판매 또는 대여를 위하여 전시 또는 진열하여서는 아니된다.
④청소년유해매체물의 판매금지 등에 관하여 기타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18조(구분·격리등) ① 청소년유해매체물은 이를 청소년에게 유통이 허용된 매체물과 구분·격리하지 아니하고서는 판매 또는 대여하기 위하여 전시 또는 진열하여서는 아니된다.
②청소년유해매체물로서 제7조제1호 또는 제6호에 해당하는 매체물은 자동기계장치 또는 무인판매장치에 의하여 유통할 목적으로 전시 또는 진열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1999.2.5>
1. 자동기계장치 또는 무인판매장치를 설치하는 자가 이를 이용한 청소년의 청소년유해매체물 구입행위 등을 제지할 수 있는 경우
2. 제2조제5호 가목의 청소년출입·고용금지업소안에 설치하는 경우
③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의한 매체물의 구분·격리 및 판매방법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19조(방송시간제한) 청소년유해매체물로서 제7조제5호에 해당하는 것과 제7조제7호에 해당하는 광고선전물중 방송을 이용하는 것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방송시간에는 이를 방송하여서는 아니된다. * 본 기사는 디지털 만화규장각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