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출판도시의 ‘미니멀’한 수많은 출판사 사옥들 중에서도 서해문집 사옥은 멋지다는 소문이 난 곳입니다. 서울 인사동의 쌈지길을 설계한 최문규 건축가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방송 CF와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네요.
‘한국의 만화 출판사를 찾아서’의 연재 종료 소식을 미리 전달 받고 마지막 순서를 어떻게 장식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습니다. 얼추 ‘만화 전문’ 타이틀이 붙은 곳은 대부분 찾아간 터라 그 이후부터는 탐방 대상에 대한 고민이 많았죠. 국내 유명 만화상 수상작을 배출한 곳을 찾아가기도 하고, 많은 작품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킨 곳을 찾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만화책을 다수 냈더라도 최근에도, 또 앞으로도 만화책을 출간할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 여부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많다 보니 쉽게 마지막 탐방 대상을 정할 수 없었죠. 그러던 중 우연히 책장에 꽂혀 있는 만화 책 한 권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난해 중반쯤 구입한 만화 <지슬>입니다. <지슬>하면, 제주 4.3 항쟁을 다룬 오멸 감독의 독립영화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만화 <지슬>은 바로 영화를 원작으로 그려진 작품입니다. 구입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출판사가 바로 ‘서해문집’이었습니다. 마침 기 들릴 작가의 <굿모닝 버마>도 떠올랐습니다. 2010년 ‘서울신문’ 지면에 이 작품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혹시나 해서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꺼내들었더니 펴낸 곳이 역시 서해문집이더군요. 여기에 최근 읽은 기사가 겹쳐졌습니다. 출판사들이 직접 선정한 2015년 출간 예정 주요 작품들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한 출판사가 프랑스의 국민 만화가 자크 타르디의 그래픽노블 <민중의 함성>(원제 Le cri du peuple)을 주요 작품으로 소개하더군요. 이 또한 서해문집. 이 정도 만화를 선보인 출판사라면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탐방 출판사로 서해문집을 선택했습니다.
3층 가운데 서해문집은 2층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1층과 3층은 다른 회사에 임대를 줬다고 합니다. 2층으로 가는 길목에 계단에 놓인 빈센트 반 고흐의 정물화가 눈에 띕니다, 2층 입구에 있는 ‘서해문집’과 ‘파란자전거’ 간판을 카메라에 담아 봤습니다. 살짝 아쉬운 점은 독자들을 위한 공간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전에는 있었다고 하네요. 또 이전에는 지하에 어린이책 아울렛 서점인 ‘비밀의 책방’이 큰 인기를 끌었었다고 하네요.
임경훈 편집부 차장이 서해문집이 그동안 선보인, 또 앞으로 선보일 만화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임 차장님이 들고 있는 책은 올해 나올 ‘민중의 함성’ 원서입니다. 왼쪽으로 역시 조만간 출간될 과학 교양만화 ‘아인슈타인의 별빛 여행’이 살짝 보이네요.
각설하고, 드넓은 책의 바다에서 등대 같은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서해문집과, 또 서해문집의 만화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파주출판도시에 있는 서해문집 사옥을 찾아간 것은 1월 중순이었습니다. 김흥식 대표와 임경훈 편집부 차장을 만나 수다를 나눴습니다.
서해문집은 1989년 출판사로 등록을 하고 이듬해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우리 선비들이 자신의 글을 다 모은 것을 문집이라고 내곤 했는데, 고전, 역사, 인문 관련 책을 다 모은다는 의미로 출판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엔 상당 기간 개점휴업 상태였다고 하네요. 김흥식 대표가 직장을 다니며 취미 삼아 출판 일을 했던 탓이 컸습니다. 2000년 초 직장을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출간 도서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합니다. 서해문집은 인문, 역사, 고전, 청소년 등이 주요 출판 분야인데요, 그동안 역사와 고전의 현대화, 대중화 작업에 매진해왔다는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김흥식 대표는 출판사 문을 연 이래 베스트셀러, 대박을 낸 적이 없다고 너털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만, 우리 고전을 새롭게 해석한 ‘오래된 책방’과 세계 고전을 새롭게 해석한 ‘서해클래식’ 같은 시리즈가 대표적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1999년 ‘파란자전거’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어린이 도서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신문이 하루하루 역사를 기록하는 것처럼, 시대의 역사를 기록해 물려줄 수 있는 책을 내는 게 목표라고 합니다.
편집부 사무실은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네요. 사무실 바깥 복도가 서가인 셈인데요. 서해문집에서 나온 만화책이 꽂혀있는 칸을 찍어봤습니다. 서해문집은 2006년부터 현재까지 28권의 만화책을 선보였습니다. ‘積書勝金(적서승금)’, 책을 쌓아놓는 게 금을 쌓아놓는 것보다 낫다는 글귀가 담긴 액자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서해문집이 만화를 처음 선보인 것은 2006년 입니다. 단발성이 아니라 시리즈로 기획됐습니다. 바로 ‘카툰클래식’입니다. 첫 작품은 <비글호에서 탄생한 종의 기원>. 찰스 다윈이 남긴 <비글호 항해기>와 <종의 기원>을 바탕으로 한 과학 교양 만화입니다. 다윈의 생애와 비글호 항해 과정에서 찾은 과학 지식, 진화론과 관련한 과학적 성과를 담았습니다. 해외 작품을 들여온 것이 아닙니다. 김흥식 대표가 개인적으로 꾸린 전문가 네트워크인 ‘기획집단 MOIM’에서 <비글호 항해기>와 <종의 기원>을 공부한 뒤 콘티를 짜는 데만 1년 이상 걸렸습니다.
MOIM의 기획 작품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과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 등 동서양 고전을 비롯해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서푼짜리 오페라’와 ‘갈릴레이의 생애’ 등 스펙트럼이 다양합니다. 김 대표는 특히 희곡의 만화화를 ‘인쇄된 연극’이라고 부르며 상당한 애착을 드러냈습니다. <서푼짜리 오페라> 같은 경우는 브레히트 학회로부터 그 수준을 인정받았을 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만화 출판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 서툴렀던 탓에 투여했던 노력과 정성에 견줘 나날이 높아지는 독자 눈높이를 따라잡기에는 작화 수준이 그리 빼어나지 못했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도 각색해 만화로 옮겼지만 작화의 퀄리티가 부족해 끝내 출간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비글호에서 탄생한 종의 기원>도 프랑스 쪽에서 저작권 문의를 해올 정도였는데 작화 문제로 결국 성사되지 못했답니다. 영화 ‘명량’의 흥행몰이에 힘입어 지난해 가을 출간된 <인문만화 징비록>도 이미 7년 전에 그려놨던 작품이라고 합니다. 김흥식 대표는 희곡이나 오페라의 고전들을 만화로 옮기고 싶은 생각은 여전하다고 눈을 빛냈습니다. 또 ‘예술의 역사’를 만화책으로 기획해 이미 콘티까지 짜놓은 상태지만 아직 이 프로젝트를 맡아줄 작가를 찾지 못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보면 작심하고 만화 출판에 나선 것으로 보이지만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고 김흥식 대표는 이야기 합니다.
“영상이 중요해진 시대가 아닙니까. 그동안 고전, 역사, 인문 분야 일반 서적을 많이 출간했는데, 만화를 통해 이러한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 곁으로 갖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만화를 보조 수단으로 삼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성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의욕만 앞서고 만화 출판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다는 점이 문제였죠.”
김 대표는 서해문집이 선보이는 만화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합니다.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시각이 강합니다. 인문학은 문과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인(人)+문학(文學)입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만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는 만화를 추구하다 보니까 만화가 어렵다, 일반적인 만화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곤 해요. 대중적인 관점에선 보면 어렵거나 거리가 먼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MOIM에서 기획한 책 외에는 해외 만화를 들여왔는데 클래식의 범주를 뛰어넘는 만화들이 하나 둘씩 포함되기 시작합니다. 1970년대 후반에 태어난 만화가가 자신의 미래까지 포함한 88년 인생 이야기를 그린 <내 얘기 좀 들어볼래?>, 캐나다 출신 만화가이자 애니메이터의 버마 체류기인 <굿모닝 버마>,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의 생애를 다룬 <검은 혁명가 맬컴 엑스> 등입니다. 다양한 분야가 섞이고 또 한 권 한 권의 특성이 달라지며 출판사 내에서는 카툰클래식의 정체성,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2012년 과학 만화 <꿀벌가문 족보제작 프로젝트>와 <눈썹진드기 우상탈출 프로젝트>를 끝으로 카툰클래식은 잠정 중단된 상태입니다. 재정비 시기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카툰클래식은 17권으로 잠시 멈춰 섰지만 서해문집의 만화 출판은 더 폭 넓고 다양하게 이어집니다.
가장 큰 흐름 가운데 하나는 과학 만화입니다.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을 다룬 <파인만>과 인류 첫 핵실험 역사를 다룬 <트리니티>, 제인 구달, 다이앤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 등 유인원 연구에 평생을 바친 세 여성 학자를 다룬 <유인원을 사랑한 세 여자>, 유전학 입문서인 <해답은 DNA> 등 꾸준히 과학 만화 출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만화 중에서도 가장 약한 부분이라는 판단에서입니다. 단순한 과학 교양 만화의 범주를 넘어 그래픽노블로 분류되는 작품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네요. 역사 쪽으로는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의 역사를 다룬 <워블리스>와 최초의, 그리고 비운의 북극 탐험가를 다룬 <빙벽>이 있습니다. 특히 <워블리스>의 경우, 자본의 국가인 미국에도 노동 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국내 노동운동의 대중화에 디딤돌을 놓고자 손해를 무릅쓰고 출간했다는 후문입니다. 판매를 고려하지 않고 낸 작품이 하나 더 있습니다. 2013년 용산 참사 4주기 즈음 출간한 <꽃피는 용산>입니다. 가게 철거를 막기 위해 망루에 올랐다가 옥살이를 하게 된 김재호 씨가 3년 9개월 동안 딸에게 보낸 만화 편지 400여 통을 묶은 책입니다. 서해문집 편집자가 책 관련 모임에 갔다가 이런 원고도 있다며 출판사로 가져왔고 그 즉시 출간을 결정했다고 하네요. 이밖에 최근 들어서 서해문집은 와 <비틀스의 작은 역사> 등 음악 만화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김흥식 대표님은 어렸을 때 임창 화백님의 ‘땡이’ 시리즈를 정말 좋아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내내 만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포스트 카툰클래식’ 시기에 가장 주목되는 작품은 바로 <지슬>입니다. 서해문집 만화의 새로운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분수령 같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서푼짜리 오페라> 등 정성을 기울인 작품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며 만화 출판에 대한 방향 전환을 모색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것이면서도 세계에도 통할 수 있는 작품을 기획해보자는 취지에서 작품을 찾다가 눈에 띈 것이 바로 영화 ‘지슬’이었다고 하네요. 한국 영화 최초로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기 이전의 일이랍니다.
프랑스에서 더 알려진 김금숙 작가가 비극적인 이야기를 수묵화로 펼쳐냈습니다. 서해문집은 처음으로 프로페셔널 한 만화가와 작업을 진행하며 국내 만화계에서 작품성도 인정받는 등 한껏 주목을 받았습니다. 김 작가는 지난해 찾아갔던 보리출판사에서 <꼬깽이>라는 어린이 창작 만화를 선보였죠. 특히 프랑스에서 16년 동안 살며 이희재 화백의 <간판스타>, 오세영 화백의 <부자의 그림일기> 등 우리 만화를 100권 이상 프랑스어로 번역해 널리 알렸습니다. 자전적인 작품 <아버지의 노래>를 현지에서 출간해 주목받기도 했죠. 지난해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진실을 알리는 ‘지지 않는 꽃’ 전시에 단편 <비밀>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지닌 김 작가 덕택에 <지슬>은 국내 출간 전에 프랑스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지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김흥식 대표의 눈이 한층 빛납니다.
“카툰클래식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우리나라 안에서만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와 교류할 수 있는 만화를 기획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품게 됐어요. 2010년~11년 즈음 윤곽을 잡았죠. 첫 결실이 <지슬>입니다. 아직 큰 성과는 내지 못했지만 꾸준히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김흥식 대표는 몇 년 전 1인 미디어 칼럼에서 도서관에 있어서는 안 되는 책의 종류 10가지를 꼽으며 그중 하나로 상업용 만화(정확하게는 상업적 목적으로만 만들어진 만화)를 언급했다가 만화계 일각의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팔릴 만한 만화를 내는 것을 지양한다는, 특히 저변을 넓히기 위해 깊이 있는 만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취지였는데 만화를 폄하하고 무시한다는 오해를 불러 논쟁이 일었습니다. 김 대표는 만화하면 대중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게 가볍게 여길 장르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는 또 이제껏 서해문집이 만화 출판을 이어온 과정이 만화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씨앗을 뿌려온 과정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200만 명이 지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청소년 쉼터에서 대부분 바리스타 교육을 하는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교육으로 바리스타가 100만 명이 생긴다고 상상해보세요. 만화 쪽도 마찬가지예요. 웹툰이 워낙 대세이다 보니 쏠림 현상이 일어나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만화의 저변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피상적이고 표피적인 만화가 아닌 깊이가 있는 만화로 지평을 넓혀야 합니다. 그런 작품이 없다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몇몇 작가들의 개인적인 시도가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이 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50년, 100년 뒤에 우리 후손들이 과거에 무슨 만화가 있었을까 돌이킬 때를 위해 시대를 읽을 수 있는 만화를 남겨야죠.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과학 만화, 역사학자들이 참여하는 역사 만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만화 창작자들이 먼저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기법을 익히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고전, 철학, 역사, 인문에 걸쳐 깊이를 쌓아야죠. 만화가 결코 가볍지 않고 진지하다는 인식이 쌓일 때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과학 만화, 역사학자들이 참여하는 역사 만화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화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는데 의미 있는 만화의 생존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저변이 확대되면 그만큼 더 많은 기회가 생기는 것 아니겠어요? 물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출판은 장사가 아니라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독자와 영합하기보다는 독자를 1m라도 10cm라도 견인하는 책을 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화 분야도 마찬가지고요. 출판사가 신경 써야 할 대목이지만 정책적인 뒷받침도 있어야 할 것 같네요.”
끝으로 앞으로 선보일 서해문집 만화들을 엿보는 시간을 갖기로 할까요?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서해문집은 올해 그래픽 노블 <민중의 함성>(원제 Le cri du peuple)을 선보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이런 만화를 내야한다는 소망을 담고 출간하는 작품이랍니다) 파리코뮌을 다룬 장 보트랭의 역사추리소설을 자크 타르디가 만화로 옮긴 작품입니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이 번역했습니다. 자크 타르디는 프랑스의 국민 만화가입니다. <포로수용소>(원제 Moi Rene Tardi, prisonnier de guerre, Stalag II B)가 지난해 9월 길찾기를 통해 그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죠. (지난해 여름 길찾기 탐방 때 출간 소식을 미리 전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얼마 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 훈장 수상을 거부해 화제가 된 적이 있죠? 피케티 교수보다 한 해 앞서 수상을 거부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타르디 작가였습니다.
이 외에도 흥미로운 작품들이 수두룩합니다. 타르디 작품 가운데 <민중의 함성> 외에도 제1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그것은 참호전이었다>(원제 Cetait la guerre des tranchees)와 <이 빌어먹을 전쟁!>(원제 Putain de Guerre!)의 저작권을 확보해 놓은 상태입니다. <지슬>과 같은 맥락에서 또 하나의 작품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국내 제작 다큐멘터리를 원작으로 한 <아이언 크로우즈>(Iron Crows)입니다. 방글라데시 남부의 항구도시 치타공에서 하루 1달러를 벌기 위해 목숨을 거는 선박해체 노동자들의 삶을 담은 작품입니다. 원작 다큐멘터리는 2009년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경쟁부문 대상을 받았습니다. 김예신 작가가 작화를 맡았습니다.
음악 만화도 이어집니다. 재즈 평론가이자 만화가인 남무성 작가의 <재즈 잇 업!> 개정판이 나올 예정입니다. 최근 록의 역사를 담은 <페인트 잇 록>을 완간한 남 작가가 원래 전공인 재즈의 역사를 그렸습니다. 원래 고려원에서 나왔고, 최근에는 ‘올 댓 재즈’로 업그레이드돼 네이버 웹툰으로 연재되기도 했죠. 또 영화 ‘인터스텔라’의 흥행과 맞물려 주목되는 작품도 있습니다. 과학 만화 <아인슈타인의 별빛 여행>(원제 Journey by Starlight)는 표지 시안까지 나왔다고 하네요.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노암 촘스키 교수와 하워드 진 교수를 다룬 인물 만화도 준비 중입니다.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서해문집의 만화 목록이 더욱 풍성해질 것 같네요. 김흥식 대표의 구애를 끝으로 이번 탐방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 만화계와 교류가 거의 없었어요. 꾸준히 기획하고 만화를 내다보면 소문이 나서 출판사 문을 두드리실 작가 분들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만화 쪽으로는 원고 투고가 없었어요. 지금까지 안 팔리는 만화만 내서 그런가 보다 싶기도 합니다. 하하하.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출판사지만 정말 만화에 대한 욕심은 많아요. 동학 농민 전쟁을 소재로 해외 유명 그래픽노블 못지않은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죠.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후기.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의뢰를 받고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첫 원 고를 작성한 지 벌써 1년 4개월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마지막 원고를 마무리하고 되돌아보니 아쉬운 점이 많네요. 만화책이 독자의 손에 전달돼 펼쳐지기까지 숨은 역할을 하고 있는 출판사 내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덥석 원고 청탁을 받아들였는데 전문적인 지식과 역량이 부족해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에 그치지 않았나 싶네요. 디지털만화규장각의 웹진 ‘만화Zine’을 사랑하는 분들의 넓은 이해를 뒤늦게 구합니다.
그동안 크고 작은 만화 관련 출판사 14곳을 다녀왔습니다. 국내외 만화를 대거 선보이며 국내 만화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곳에서부터 만화 전문은 아니지만 일 년에 한두 권 정도 좋은 작품으로 독자들과 꾸준히 만나는 곳에 이르기까지 좋은 기회를 얻어 두루 돌아다녀 본 것 같습니다. 저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만화에 대한 애정으로 따질 때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곳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탐방 목록을 살펴보면 ‘이 출판사는 왜 빠졌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저의 불찰로, 또 출판사 사정 때문에 아쉽게 탐방하지 못한 곳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새만화책과 시공사, 위즈덤하우스 등를 찾아가보지 못한 게 아쉽네요. 다음 기회를 기약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