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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애니메이션역사사전 맛보기] 5편 : 1971~1980

1960년대 한국만화의 활기는 1970년대에도 이어져 한국만화는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한편으로는 저질문화라는 딱지를 안고 사는 빛과 어둠이 공존한 시대였다. 사전검열과 1966년 합동출판의 유통 독점은 대본서 만화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했으나 그럼에도 안착한 만화방 유통 구조는 꾸준히 만화가들을 양산해냈다. 이근철, 이우정, 이향원, 김기백, 박기준 등이 대본소 만화의 인기작가였다.

2014-11-28 김일태
한국만화애니메이션 10편 중 - 다섯 번째 글

5. 1971~1980 빛과 어둠의 시대, 명랑, 성인만화 전설의 시작 
 
1960년대 한국만화의 활기는 1970년대에도 이어져 한국만화는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한편으로는 저질문화라는 딱지를 안고 사는 빛과 어둠이 공존한 시대였다. 사전검열과 1966년 합동출판의 유통 독점은 대본서 만화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했으나 그럼에도 안착한 만화방 유통 구조는 꾸준히 만화가들을 양산해냈다. 이근철, 이우정, 이향원, 김기백, 박기준 등이 대본소 만화의 인기작가였다.

그러나 대표적 흥행은 잡지계 삼총사가 이끌었다.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 세 잡지는 한국만화 중심을 차지하고 신인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기성작가들에게는 인기 아동 만화를 만들어냈다. 일본식의 연재만화 -단행본- 타 매체로의 활용은 쉽지 않았지만 본격적인 잡지 연재만화 시대를 만들어냈다.

이 시대는 또 활발한 명랑만화 시대였다. <꺼벙이>는 많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슬랩스틱 개그로 인기를 끌었고 길창덕은 이에 힘입어 <순악질 여사>라는 전대미문의 성인을 위한 명랑만화도 연재했다. 그의 제자라 할 수 있는 신문수, 윤승운 등도 명랑만화에 진입해 <도깨비감투>, <요철발명왕> 같은 인기작들을 쏟아냈다.

엄혹한 탄압과 소재 제한에도 불구하고 70년대 특이사항이라면 성인만화가 서서히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한국만화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고우영은 독특하게 일간지 일일 연재만화로 사극에 풍자를 가미하여 인기를 끌었다. 1972년 <일간스포츠>에 등장한 임꺽정을 시작으로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의 고전은 특유의 익살과 해학과 맞물려 수많은 시민들에게 하루하루 비타민과 같은 역할을 했다. 또 다른 청춘극화의 새 장을 연 강철수는 1974년 <주간여성>에 실린 사랑의 낙서 를 시작으로 당대 최고의 히트를 기록하며 강철수표 청춘만화를 세상에 알렸다. 1972년 <선데이 서울> 의 고인돌(박수동)이 성인만화의 플러스, 알파 노릇을 톡톡히 했다.

80년대 한국만화계를 이끈 대형작가 허영만과 이현세도 70년대 무서운 신인으로 활발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0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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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한국 애니메이션

1950년대부터 등장한 TV로 인해 영화 산업은 세계적으로 타격을 입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도 애니메이션 영화가 위축되었다. 따라서 1960년대부터 제작 상영된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1970년대 초반까지 약세를 면치 못하다가 후반부터 점점 그 제작의 편수가 늘어나, 1987년 방송용 애니메이션이 나오기 전까지 상영된 편수는 평균 6작품 정도에 이른다.

1970년을 전후한 방송 애니메이션으로 국내 작품은 없다. KBS-TV, TBC-TV, MBC-TV는 해외에서 수입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을 매일 방송하였고 산업적으로는 1970년 중반부터 일본의 애니메이션 하청이 본격화 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다수 나오게 된다. 1971년 번개아텀, 철인007 등의 로봇물이 몇편 제작 상영되었고, 1972년 1작품, 1973년과 1974년, 1975년에는 작품이 한편도 없었다. 1976년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마징가Z>와 유사하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태권도를 가미하여 우리의 형식으로 탈바꿈한 태권 브이가 인기와 흥행몰이에 힙입어 13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 그 해에 극영화를 합친 흥행순위 2위에 오르면서 1977년 연이어 제작 상영된다.

한편, 1977년에는 MBC 라디오의 인기 어린이 드라마 마루치 아라치를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하였고, 1978년, 1979년 똘이 장군 시리즈에 이은 1979년 도깨비 감투 등은 어려운 애니메이션산업의 구조 속에서 나름대로 우리 색깔 찾기의 발걸음에 한 발자욱 나선 도약의 시도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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