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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리스크 전략이 낳은 비극들

만화가 영화가 됐을 때, 성공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참한 실패 사례가 엄청나게 많다. [철인28호] 실사판, [와일드 세븐] 실사판, [독수리 오형제] 실사판, [내일의 죠] 실사판 등. 투입된 제작비를 미처 건지지 못하고, 원작의 위상에도 먹칠을 하는 대 실패작이 즐비하다.

2014-10-30 이현석


일본에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에 대한 불평이 많은데도 계속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한국에서는 인기 걸그룹 카라(KARA)에서 탈퇴한 강지영 씨가, 만화잡지 <소년 점프>의 인기 연재만화 ‘암살교실’의 영화에 출연이 결정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일본은 만화 왕국으로 유명하고, 그러니 높은 인기를 누린 우수한 만화 콘텐츠가 많이 존재한다. 이것을 2차 이용으로 영상화하는 시도는 이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철완 아톰의 실사 흑백 드라마가 1959년에 이미 등장했을 정도이니까, 굉장히 유구한 역사가 있는 전통인 셈이다.

△ [철완아톰]의 실사판. 1959년에 등장했다.

최근에도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 드라마 등의 영상화 시도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바람의 검심] 실사판, [은수저] 등이 2014년 이미 공개되었고, 한국의 만화팬들 사이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만화 [기생수]의 영화가 12월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전에 이미 공개된 [데르마에 로마에]나 [헬터스켈터] 실사판 공개와 히트 등은 이미 흔한 뉴스거리가 될 정도다. 곧 최근 일본 만화업계에서 가장 화제가 된 만화 [진격의 거인]도 일본 최고의 특수효과 전문 감독으로 말해지는 히구치 신지 감독의 연출로 내년 여름 개봉될 예정이다.

만화가 영화가 됐을 때, 성공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참한 실패 사례가 엄청나게 많다. [철인28호] 실사판, [와일드 세븐] 실사판, [독수리 오형제] 실사판, [내일의 죠] 실사판 등. 투입된 제작비를 미처 건지지 못하고, 원작의 위상에도 먹칠을 하는 대 실패작이 즐비하다. 한국에서도 어린 시절 즐겁게 봤던 애니메이션들이나 만화들이 실사화되어 동심이 파괴되었다는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일본 내부에서도 실패한 영화들이 성공한 영화들을 압도할 정도로 많다.


△ 실사 영화판 [기생수]

더구나 [은수저]나 [바람의 검심]과 같이 영상화에 대한 부담이 적은 경우는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철인28호] 같은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이나, [와일드 세븐]과 같은 과격한 총격의 바이크 액션, [독수리 오형제]와 같은 SF영상물에 거대한 자금이 계속 투입된다. 그리고 실패를 한다.
여기서 의문이 들 만도 하다. 이런 큰 리스크에도 왜 스케일 큰 만화와 스케일 큰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는 끊이지가 않는가?

그것은 비극적이게도, 이들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서이다.
일본은 영상물을 제작하고 배급하는 리스크가 큰 사업에 흔히 제작위원회 시스템을 통해서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가령 A라는 작품을 제작한다고 하자. 그럼 이런저런 투자회사들이 모여들어서 이 작품에 대해서 검토를 하고 얼마의 금액을 투자하고 회수되는지를 예측한다. 타당하다고 생각하면 일정 금액을 지불한다. 과거 거대 영화사처럼 한 편의 영화에 거대한 자본을 투입했다가, 예술혼에 불타는 감독의 독선이나 촬영 중에 스캔들을 일으킨 배우 덕분에 거금을 날리고 도산하는 위험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위험을 나눠가지는 것이니까. 이런 제작 위원회의 구성원들은 이런 판단을 할 근거가 필요해진다. 데이터가 필요해지는데, 이때 만화와 같은 원작물은 아주 좋은 근거자료가 된다. 통상 100만부 혹은 300만부가 더 팔리는 잡지의 인기 상위에 있던 작품이라는 등의 판단 데이터가 쉽게 제시되는 것이다.

한편 이것은 해외에서 한국의 웹툰을 홍보하고,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 등을 제안하는 경우에도 해당된다. 트래픽이 얼마나 발생하고, 추정 독자수가 얼마나 되는지 등의 데이터가 손쉽게 제시되고, 이는 각 투자 주체들을 설득하기 쉬운 재료가 된다.

이때 문제가 생긴다. 즉 원작을 알고 있는 원작 팬들의 비극이라고 하는 것이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제작위원회는 철저히 수치로 접근하거나 제3자를 통해 듣는 정보에 의존하는데, 정작 작품에 대해서는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작품에 대해서 알고 있는 독자들의 인식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탄생하거나, 왜 이런 시기에 이런 작품이 나와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작품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철저한 자본논리와 저리스크 제작 풍토가 낳은 비극적인 사례들이다.
필진이미지

이현석

레드세븐 대표
前 엘세븐 대표
前 스퀘어에닉스 만화 기획·편집자
만화스토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