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2014 어도비 맥스콘퍼런스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와 어도비(Adobe)가 협업하여 상호 호환성 있는 소프트웨어 활용 가능성을 발표해 큰 눈길을 끌었다. 이로써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디자인 분야 전문가들의 작업환경이 다양해지는 계기가 될지 기대가 모이고 있다.
△ 2014 어도비맥스의 발표 장면
만화나 애니메이션 작업뿐만 아니라 디자인, 캐릭터, 영상편집 등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상업 콘텐츠는 컴퓨터(하드웨어)와 그래픽툴(소프트웨어)을 빼놓고 제작이 불가능하다. 과거 십여 년 전만 해도 만화를 그린다면 만화원고지와 잉크를 먼저 샀지만, 요즘 만화 지망생은 컴퓨터와 관련 소프트웨어, 그리고 주변기기 구매를 선호할 정도니 제작 환경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어도비에서 발표한 변화는 크게 ‘그래픽 프로그램간의 파일 호환성’과 ‘휴대용 기기와 작업용 기기(데스크톱 등)의 상호간 호환이 가능한 프로그램과 시스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이전 어도비시리즈와 어도비CS(Creative Suite)가 사용될 때는 같은 회사의 프로그램이지만 프로그램 간의 소스 호환성이나 작업파일 호환이 안 되거나 호환이 되더라도 에러 현상(색상변화와 파일 깨짐 현상 등)으로 작업자들에게 큰 불편함을 줬다. 특히 필자가 대학에서 수학할 당시 쓰였던 포토삽5 버전(CS버전 이전)을 예로 들면, 벡터이미지를 기반으로 하는 일러스트레이터나 플래시프로그램 등과의 이미지 호환은 불가능했으며, 브러시의 다양성도 떨어져 특히 일러스트나 삽화를 CG로 그리던 친구들은 그 한계를 페인터 등을 넘나들며 보완하곤 했다.
이후 발전된 CS가 차례차례 출시되면서 어도비는 2D그래픽, 영상, 웹, 3D 관련 타 소프트웨어를 합병하여 전문 디자이너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 앞에 Adobe가 붙기 시작했다. 사실 이 버전들은 현재도 현장에서 활발히 사용 중이며 10여 년 전과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한 호환성을 자랑한다. 여기에 더하여 2014년 6월 CC(Creative Cloud) 버전이 출시되었고, 영구소장 방식이 아닌 월정액 방식으로 다양한 추가 기능과 함께 사용 방법에 큰 변화가 온 것이다.
물론 사용 시스템이 바뀌면서 새로운 기능이 획기적으로 추가된 것도 많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번 발표에서 포토삽패밀리(포토삽, 스케치, 믹스, 모바일), 일러스트패밀리(일러스트레이터, 라인, 드로우), 영상(프리미어), CC 캡처 어플리케이션 등의 상호 호환과 ‘크리에이티브 프로필’이라는 접속 관리 시스템의 도입이다. 또한, 이런 통합?호환 시스템을 기반으로 모바일앱을 통해 휴대용 기기에서도 작업이 가능해져 하드웨어의 장벽이 낮아졌다.
가장 중요한 점은 “만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관련 콘텐츠 제작자의 작업환경이 얼마나 어떻게 바뀔까?”일 것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은 반반 즉, 이번 발표에서 쏟아진 새로운 정보와 시스템은 당장 절반 정도 실용성이 있을 것이라 본다. 왜냐하면 당장 CC가 국내 산업 현장에 바로 도입이 되려면 몇 년이 걸릴 것이고, 또한 그래서 CC의 획기적인 기능인 ‘크리에이티브 프로필’의 사용이 대규모로 이루어지기 힘들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자본력이 있는 회사나 학교는 발 빠르게 소프트웨어를 바꾸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필자의 모교인 Academy of Art University(AAU)는 2013년부터 어도비와 시스템 계약을 맺고 어도비 마스터팩(Adobe Master Pack, 어도비사의 모든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 패키지) 최신판을 학생에게 무상으로 제공했는데, 올해부터는 신제품의 출시에 따라 CC 패키지를 제공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학생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웹서비스를 하는 디자인계열 회사는 효과적인 공유와 활용을 할 수 있어 CC 시스템과 관련 주변 액세서리를 재빨리 구축하기도 한다.
하지만 CC라는 막강한 신제품 돌풍과 달리 3D게임, 애니메이션 제작사나 소규모 회사는 여전히 CS를 이용하고 있다. 이 점은 국내 현장에도 비슷한 이유인데, 안정성을 최우선 하는 현장 특성상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반응이다. 또 고가의 영구 상업용 패키지를 구매한 기업이 굳이 매달 지출이 필요한 CC로 갈아타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아직 국내는 불법적인 사용이 완벽하게 근절되지 않는 상황인데, 여기에 추가 비용을 들여가며 최신 버전을 선택할 적극적인 기업이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개인 작업자(프리랜서 외)나 학생은 활발한 사용 동향을 보이고 있다. 과거 일반 사용자용이든 학생용이든 패키지를 완전히 구매하려면 목돈이 들어갔다. 그나마 저렴하다는 학생용 CS마스터팩도 30만원대의 높은 구매 장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월 2~3만원 수준의 금액을 결제하면 사용이 가능한 CC의 시스템은 되려 개인 사용자의 접근성을 높였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과연 작업자가 실제로 CC의 휴대기기 호환 기능을 활용할지는 미지수다. 일단 만화, 캐릭터, 일러스트 등을 그리는 사용자는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이외에도 태블릿이라는 주변기기를 대다수 사용하고 있다. 전문가용 태블릿은 와콤이 거의 독점으로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데, 여기서 문제는 현재 전문가용 태블릿을 내장 기능을 100 활용할 수 있는 성능의 휴대용 기기(노트북 제외)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에 쏟아지고 있는 와콤 디지타이저 탭류가 있지 않으냐며 말할 순 있다. 하지만 실제 작업자들은 훌륭한 디지타이저 기능과 반대로 작업공간의 협소함과 저사양의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실제로 최근 제품군조차 정작 전문 작업자보다는 필기용이나 러프 스케치 정도로 사용되고 있어 어도비의 야심찬 CC 활용 가능성은 아직 시기상조로 보인다.

△ 와콤 타블렛 사용 모습
휴대기기의 사양 문제는 소프트웨어와 소스 구동에도 심각한 불편함을 일으킨다. 영상작업자, 3D 작업자는 특성상 고화질의 소스를 사용하기에 높은 사양의 하드웨어 시스템이 필수다. 한 예로 어도비에서 공개한 홍보영상에는 패드 제품을 통해 영상편집을 하는 장면이 나왔었다. 과연 휴대용 기기에서 영상편집이나 디자인 작업이 실제로 쓰임새가 있을까? 결론은 웹 스트리밍 서비스용 저화질 작업을 제외하고 고화질영상은커녕 PC 재생용 화질도 작업하긴 힘들어 보인다. 대부분의 탭, 패드 계열은 아톰 쿼드 계열 LP램을 탑재했기에 성능상 한계가 있다. 또한 작업의 특성상 넓은 모니터 환경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 탭, 패드 계열의 근본적인 한계 또한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보자면 휴대용 기기의 CC 사용은 포트폴리오, 작업 샘플링 재생장치 등 간단히 보여주기식 사용이 현실성 있어 보인다.
세간에는 CC의 모델이 어도비가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을 단절시키기 위한 맞춤 시스템이며 동시에 그들의 수익을 더욱 높일 수 있는 모델이라는 평도 있다. 사실 그래픽 제작 업종 등에서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는 거의 독과점이라 할 수 있는 수준이고, 그 가격 또한 만만치 않은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도입된 성능과 결제 시스템이 사용자의 도덕성을 올바르게 이끌 대안이긴 하지만 한편, 어도비를 평생 이용해야 할 사람에게 과연 이득인가 의문이 든다. 실제로 완전 팩을일시금으로 사는 것이 더 이득인 사용자도 다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영구소유 상품이 단종된 후에는 상품 선택의 여지가 없어 자칫 경쟁사가 없는 회사의 제품에 고객이 역으로 목을 매며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발표를 접하며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대기업 어도비의 신제품에 열광할 수 밖에 없는 사용자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당장 기술발전과 변화도 좋지만, 현재와 미래 상황을 고려해 도덕적이며 현명한 사용자가 돼야 함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