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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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사랑의 뱀파이어적 단상

여름 장마철, 높은 습도에 방치했다간 자칫 눅눅해지기 쉬운 만화책을 쾌적하게 관리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1) 책장에서 만화책을 몽땅 꺼낸다. 2) 죄다 다시 읽는다. 끝!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소리와 함께 선풍기 앞에 누워 간간히 비빔면이나 만들어먹으며 만화책을 보는 일은 괴로운 여름을 나는 훌륭한 피서법이다.

2017-07-04 박수민



여름 장마철, 높은 습도에 방치했다간 자칫 눅눅해지기 쉬운 만화책을 쾌적하게 관리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① 책장에서 만화책을 몽땅 꺼낸다. ② 죄다 다시 읽는다. 끝!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소리와 함께 선풍기 앞에 누워 간간히 비빔면이나 만들어먹으며 만화책을 보는 일은 괴로운 여름을 나는 훌륭한 피서법이다. 냉장고 안에 쟁여놓은 캔맥주라도 있다면 금상첨화. 바람 불고 천둥번개가 요란히 치는 밤에는 특히 공포, 괴기 만화가 어울린다. 만화에 빠진 탓에 집이 침수되는 것조차 잊었다간 정말로 호러. 허나 더 가까운 공포는, 세상은 당신이 이렇게 뒹굴뒹굴 여름 내내 만화책 좀 보려는 걸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는 점. 제길, 일하러 가자.

100년도 못 살면서 매일의 일이 고달픈 인간의 삶은 ‘뱀파이어’에게 내려진 영생의 저주가 솔직히 부럽다. 해가 떠오르고 저무는 사이 노동의 시간 동안 어두운 관 속에서 쿨쿨 잤던 은밀한 족속들은, 어둠이 몰려들자 슬슬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그들 일족에게 걸려 흡혈귀가 되면 햇빛 아래 찬란한 인간 세상과는 작별이다. 마늘이 잔뜩 들어간 김치나 갈릭 치킨은커녕 식도락의 즐거움은 완전히 접어야 한다. 수상한 범죄자가 되거나 병원의 혈액보관실 등을 습격해서 인간의 신선한 피를 마시지 못하면 지독한 갈증의 고통과 함께 폭삭 늙어야하고, 그러다 ‘반 헬싱’스러운 정의구현 꼰대에게 들켜 가슴에 나무못이라도 박혔다간 죽어서 천국과 지옥 어느 곳에도 가지 못하고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곤혹스러운 핸디캡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같은 나이로 영원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 이건 너무 강력하게 매혹적인 장점이다.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Only Lovers Left Alive>(2013)에 나오는 뱀파이어들이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그들이 연쇄 납치 성범죄자나 자유연애 중독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물의 오랜 클리셰인 성적 욕망과 인간관계의 공포를 다루는 대신, 시간과 기억의 문제에 집중한 점이 독특했다. 영화에서 꾸며낸 불멸의 지루함은 현실의 필멸자인 관객의 시간을 되새기게 만든다. 이 영화 속 흡혈귀들은 남아도는 영생의 시간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수 세기의 세월 동안 집필에 몰두하여 엄청난 저작들을 남긴 ‘말로우(존 허트)’는 셰익스피어의 진짜 정체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자 과학자이며 골동품 악기 수집가인 ‘아담(톰 히들스턴)’은 그의 곡 여러 개를 모차르트 같은 위대한 음악가에게 하사했다. 그리고 ‘이브(틸다 스윈튼)’는 전 세계의 언어를 터득하여 세상에 나오는 거의 모든 책과 고서들을 읽으며 행간 뒤에 숨은 역사마다 자신들이 개입한 흔적을 짚어내길 즐긴다.


△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서 만화책 사러 일본에 가는 뱀파이어(거짓말)

사실 창작이란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세상에 뭔가를 남기고 싶어 하는 발버둥에서 오는 것이다. 자신을 표현하려는 아마추어적인 욕구가 모든 창작의 근본이다. 가장 뱀파이어답다고 할까, 영생에 걸맞은 선택을 한 것은 내 생각에 이브다. 골치 아픈 작가보다 여유로운 감상자가 되는 일이 훨씬 현명하니까. 편협한 작가의 세계는 좁지만 관대한 감상자의 세계는 무한히 넓다. 오랜 시간이 걸려 내 책 몇 권을 써내느니 이 세상의 모든 책을 읽는 게 훨씬 멋지지 않은가? 아시다시피, 창작과 감상은 언제나 시간이 모자란 일이다. 마감만 없다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마감을 못 지킨 글은 아무 쓸모도 없다. 언제부턴가 책장에 쌓인 책들은 독서의 속도를 추월했다. 아직 못 본 만화책은 너무 많고 영화는 말할 것도 없다. 게임마저 도전과제 100% 달성은커녕 포장도 뜯지 못했거나 라이브러리에 쌓인 타이틀만 넘쳐간다. 재미있다고 소문난 드라마는 자꾸만 계속 나온다. 모두 시간과 맞바꿔야 하는 일들이다.

무한한 감상의 세계를 선택과 집중으로 축소하는 건 괴롭다.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고 우린 언제나 온갖 것들의 내용이 궁금하다. 노후 대책이라곤 없는 필자의 소망은 그저, 읽으려고 쌓아둔 책들과 보려는 영화들과 플레이하려는 게임들을 부디 최대한 거의 다 즐겨보고 죽는 것이다. 쓸 만한 작가가 되어 명성을 얻고 떼돈을 버는 것보다 실은 더 절실하다. 그러니 혹시 이 글을 본 뱀파이어가 계신다면 꼭 연락을 주시기 바란다. 소인은 귀하의 일족이 되길 강력히 희망하며 모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제일 좋아하는 주스도 토마토 주스라고요!

이렇듯 매력적인 존재인 뱀파이어가 나오는 창작물은 온갖 매체와 장르를 아울러 너무 많고 걸작과 수작만 꼽는다고 해도 열 손가락이 금방 모자라지만, 필자가 특히 사랑하며 최고로 치는 작품이 있다. <토마의 심장トーマの心臓>(1974)과 <11인이 있다! 11人いる!>(1975), 그리고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 残酷な神が支配する>(1992)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소녀만화계의 대모(大母) 하기오 모토(萩尾望都)의 걸작 만화 <포의 일족 ポーの一族>(1972)이다.

△ 하기오 모토 <포의 일족>
정은서 옮김, 세미콜론 2013

하기오 모토의 세계에서 인연이란 우연과 필연을 넘어 무서운 사건이고, 그래서 사랑은 영원한 저주다. 결코 만나선 안 될 사람들이 한순간 만나서 긴 시간 질긴 인연의 결계에 묶인다. 사랑하지 못하면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남지만, 사랑하면 극심한 고통의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이곳은 사랑의 망령에 시달리는, 살아있는 유령들의 세계다. <포의 일족>의 두 뱀파이어 소년 자신들과, 몇 백 년 세월을 지나는 동안 둘을 스쳐갔던 인간들 역시 마찬가지다.

1879년, 창백한 피부의 포츠넬 남작 부부가 역시 새하얀 피부의 오누이를 데리고 런던 시내로 이사를 온다. 그들은 사실 ‘뱀피네라(뱀파이어)’이고, 피를 얻기 위해 일족의 땅을 떠나 새로운 희생자를 물색하러 나온 것이다. 뱀피네라가 사는 방식은 사교계에 깜짝 등장하여 희생물을 손에 넣고, 조용히 사라져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길 반복하는 것. 나이를 먹지 않는 외모 탓에 한 곳에 정착하기란 불가능하다. 치명적 매력의 푸른 눈을 지닌 뱀피네라 소년 ‘에드거’는 그가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누이동생 ‘메리벨’의 몸 상태가 늘 걱정이다. <포의 일족>의 뱀피네라들은 피의 갈증보다는 일족에게서 받은 피의 농도가 평소의 건강을 좌우한다. 상대적으로 ‘옅은 피’를 가진 뱀피네라는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 친남매지만 일족의 계약을 한 시기와 상대가 다른 탓에, 메리벨이 집 안에 머물며 요양하는 동안 에드거는 바깥세상을 활보하고 명문가 자제를 위한 기숙사 학교의 통학생이 된다. 항상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에드거는 그 만큼이나 오만하고 도도한, 하지만 내면에 아픔을 숨긴 미소년 ‘앨런 트와일라잇’을 만난다.

△ 에드거와 앨런의 첫 만남 – 부자는 역시 말을 탄다

아아, 둘은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항상 고독한 존재는 서로를 알아본다. 메리벨에게 줄 신선한 피를 찾아 앨런에게 접근한 에드거, 앨런은 메리벨에게서 오래 전 죽은 약혼녀 ‘로자’의 얼굴을 떠올린다. 외모에서 기인한 운명, 인물의 외모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소녀만화의 심리적 토대이자 필수 요소이지만, 하기오 모토의 만화에서 외모란 인물이 향할 비극으로의 결착을 위한 중요한 복선이다. 에드거는 앨런에게 말한다. “얼굴이 닮았다는 건 인연이 있다는 증거야. 200년쯤 거슬러 올라가 보면 너와 나의 선조가 같은 집안 출신일지도 모르잖아?” 작중 이미 100년 이상을 살고 있는 주제에 농담처럼 내뱉는 에드거의 이 말은 사악하다. 우리가 사촌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앨런은 “설마”하고 사양하지만, “가능성은 있어. 원래 아담과 이브가 시초잖아?”라고 받아치는 에드거의 말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본래 인류란 두 사람이었다. 우리가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사랑을 나눌 때 ‘이 세상에 단 두 사람’이라는 감각은 얼마나 각별한가. 우리 둘, 당신과 나. 모든 숙명적 연애의 근원,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개념.

하기오 모토의 만화는 ‘이 세상에 단 둘이서’라는 연애의 로맨틱한 정의를 가지고서 결국 관계의 폭력성까지 도달한다는 점에서 다른 보통의 순정만화와 격을 달리한다. 이성애든 동성애든 모든 관계의 내부에는 본질적인 폭력성이 있다. 두 사람 사이 사랑은 결코 동시에 시작하지 않는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먼저 내면에서 욕망하고 그래서 결국 접근한다. 당신과 내가 이 세상에 단 둘로만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과 마음은 한쪽의 일방적인 망상과 욕망일 수 있다. 누구도 서로를 동등하게 똑같은 정도로 사랑하지 못한다. 감정은 공평할 수 없기에, 한쪽은 더 사랑하고 다른 한쪽은 덜 사랑한다. 연애의 시작과 종말은 그래서 힘들고 아프고 종종 극도로 위험하다. 사랑은 상대를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사랑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흡혈귀에게 순순히 목을 내어주는 일이다! 에드거에게 “너랑 알게 되어 다행이야, 너에겐 뭐든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아.”라며 앨런이 마침내 마음을 열자, 목적을 이룬 에드거는 문득 속으로 이렇게 자신에게 묻는다. “그리고 넌 사랑하는 이를 또 그 발톱으로 찢어발길 셈인가?”

이 대사 이후 60페이지부터 64페이지까지(정발판 1권 기준)의 그림은 ‘포의 일족’ 챕터에서 가장 아름답고 섬뜩한 장면이다. 앨런의 목에 입술을 대는 에드거는 뱀피네라의 본 모습을 드러낸다. 놀란 앨런은 순간 그를 밀어낸다. “놀랄 것 없어. 아무것도 아니야.” 에드거는 말하지만, 앨런이 느끼는 그는 순수한 악이다. 마음을 받으면 육체를 가져가는 사랑. “달아나지 마, 아무 짓도 안 해.” 황망히 에드거를 바라보는 앨런은 본능적으로 성경 구절을 외운다. 다가오길 멈추는 에드거는 서서히 사라져버린다. 하기오 모토는 이 63페이지에서 사라지는 에드거의 얼굴을 그리지 않는다. 그것을 바라보는 앨런의 얼굴만을 그린다. 에드거는 인간이 아니고, 앨런만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슴이 찢어지는 쪽은 에드거가 아니라 앨런이기 때문이다.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주의…” 다음 구절을 외지 못하는 앨런은 굽이치는 바람 속 기울어진 나무에 매달려 고개를 떨구고 운다. 나는 이 장면의 압도적인 슬픔에 늘 가슴이 울컥한다. 받지 말아야 했던 지난 사랑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을 들쑤신다.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하는 집안에서 도망쳐 에드거를 찾는 앨런은 메리벨을 만난다. 창문을 열어 비바람에 흠뻑 젖은 그를 맞는 메리벨에게 앨런은 충동적으로 청혼을 한다. 그러자 앨런에게 메리벨이 답하는 말은 가슴을 뒤흔든다. “앨런! 우리랑 같이 멀리 갈 테야? …시간을 넘어서, 멀리 갈 테야?” 물론 뱀피네라의 운명과 일족의 저주를 암시하는 대사지만, 동시에 사랑이라는 감정의 모호함과 불분명성을 담고 있다. 사랑이란 어디론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멀리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다. 사랑의 감정에 몸과 마음을 맡겨 따라갔던 사람은 되돌아오더라도 온전한 상태일 수 없다. 몸은 돌아왔지만 마음은 금방 돌아오지 못한다. 사랑이 실패로 끝나면 인간은 무참히 파괴된다. 가슴에 뚫린 구멍은 긴 시간 쉽사리 아물지 않는다. 사랑은 유령처럼 모호하고 무서운 것이다. 영화 <시작은 키스! La delicatesse>(2011)에서 주인공 ‘마커스’(프랑수아 다미앙)는 ‘나탈리’(오드리 토투)의 충동적인 키스를 받자 그 자리에서 도망친다. 말 그대로 헐레벌떡 내달려서 도망치는 그가 그러는 이유는 이 사랑의 감정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즉, 살기위해서다! 사랑이 끝나버렸을 때, 처참하게 무너질 자신의 고통을 이미 알고 있기에 시작 지점에서 아예 도망쳐버린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한 장면치고는 의미심장한 장면이라 놀랐었다. 경험과 그로 인한 방어기제는 무섭다.

△ 영화 <시작은 키스!>에서 여자 뱀파이어가 키스를 통해 인간 남자의 피를 빨고 있다(거짓말)

다시 <포의 일족>으로 돌아와서, 바람둥이 의사 클리포드가 포츠넬 남작 일가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는 참극으로 향한다. 이제 혼자 남은 에드거는 자신이 지켜주어야 할 대상이 없는 자유 속에서 살아갈 필요를 상실한다. 앨런 역시 최악의 상황에 혼자 고립되어 누군가 도와주길 바란다. 앨런에게 다시 나타난 에드거는 최후의 제안을 한다. “같이 가자. 혼자는 너무 외로워….”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의 본질은 외로움이다. 외톨이 소년은 또 다른 외톨이 소년의 손을 잡고, 하기오 모토의 펜 끝에서 바람으로 표현되는 시간의 흐름은 두 소년을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가 버린다. 앨런은 에드거에게 메리벨을 대신하는 존재가 되고, 에드거는 지켜야 할 사람이 생겼기에 또 다시 죽지 못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 에드거와 메리벨 – 남매는 민폐왕

이후 앨런이 1976년 런던으로 돌아와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3권의 마지막 챕터 ‘이디스’에 이르기까지 일족의 마지막 두 소년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멋진 에피소드가 많지만 역시 표제작인 1권의 첫 에피소드 ‘포의 일족’이 이 만화의 정수를 모두 담고 있다. 그래서 연재 발표순이 아니라 순서를 섞어 문고판 이후 복각판까지 단행본의 첫 이야기로 선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랑의 시작과 끝, 그리고 또 다른 시작에 이르는 모든 요소를 뱀파이어 이야기에 이토록 아름답게 담은 작품은 드물다.

게다가 하기오 모토는 뱀파이어들의 아름다움과 상호의존적인 그들 관계의 애틋함을 표현하기 위해 흡혈귀의 가장 대표적인 요소인 날카로운 송곳니를 과감히 제거했다. 신체에 상처를 내지 않고도 피를 빨아들이고 또 나누어준다는 이 만화만의 설정은, 특히 온갖 장르의 재생산이 많은 요즘에 장르의 관습에 갇히지 않는 상상력에 대한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가의 만력(漫力)이 불과 약관 23세에 만개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다. 경험 없이 장르 컨벤션적 지식이나 감각만으로는 결코 직조할 수 없는 이야기라서 더 그렇다. 아아, 대모님 당신은 대체.

△ <포의 일족> 최신작 ‘봄의 꿈’
월간 플라워스 2016 7월호와 2017 3월호의 표지
일본에선 7월 10일 ‘플라워 코믹스 스페셜’ 단행본이 나오는 모양 (제발 정발을!!)

칼럼을 쓰기 위해 일본 위키에서 <포의 일족>을 뒤적이다가 알게 된 정보로 글을 마무리한다. 마지막 에피소드 ‘이디스’로 대단히 여운 가득한 끝맺음을 했던 이 작품이 2016년 5월 연재 종료 40년 만에 신작이 발표된 것이다! 뭐라고?! 소학관의 월간 여성 만화지 ‘flowers’ 7월호에 새 에피소드 ‘봄의 꽃’ 단편이 수록되었다. 글을 쓰는 현재, 올해 3월에서 7월까지 연재가 이어진 모양인데, 본편을 사랑한 독자로서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으아, 정발은! 정발은 아직인가! 이래서 필자가 뱀파이어가 되고 싶은 거다. 오직 만화책을 보기위해 야간 발 비행기를 타고 조용히 도쿄에 내리는 선글라스 낀 수상한 사람이 되고 싶다. 캐리어에 70년대 일본 만화책을 넣고 귀신처럼 스르르, 어두운 거리를 돌아다니는 자가 되고 싶다.

무더운 여름의 어느 날, <포의 일족>을 읽다가 갑자기 가슴이 저만치 떨어지는 것 같은 한기를 느낀다면, 그것은 지나간 사랑의 유령이 잠시 당신 등을 어루만지다 지나간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때 격렬하고 충만했던 감정은 당사자인 인간들을 떠나서도 시간 저편의 기억 속에서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 사랑은 해가 지기 전 어스름처럼 모호하고, 망해서 없어지지만 그렇다고 한낱 환상은 아니다. 사랑은 분명히 존재했다. ‘이디스’의 마지막에서 백발의 노인이 된 “마법사” ‘존 어빈’은 에드거를 추억하며 혹여 그 모든 것이 실재하지 않은 환상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니다. 소년은 있었다. 아득한 너는 분명히 있었다. 사랑의 흔적은 아득하지만 그 감정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니 당신은 그 사실 하나 만큼은 안심해도 괜찮다.
필진이미지

박수민

만화평론가, 시나리오 작가
<탐독의 만화경>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