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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노동의 가치는 어디까지 인정받는가?

미국 방송인 노동조합 SAG-AFTRA의 성우조합과 유명 게임회사 간의 파업 대립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여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SAG-AFTRA는 성우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온·오프라인 행사와 홍보 영상을 배포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2017-06-26 오필정


미국 방송인 성우조합 vs. 게임회사, 2년 넘게 대립 지속


미국 방송인 노동조합 SAG-AFTRA의 성우조합과 유명 게임회사 간의 파업 대립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여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SAG-AFTRA는 성우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온·오프라인 행사와 홍보 영상을 배포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이들은 작년에 이어 지금까지 문제가 되었던 게임 제작사 및 퍼블리셔들과의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고 밝혔으며, 2016년 10월 파업을 개시한 이후 논란이 된 회사들과 계약갱신을 정지한 상태다. 현재까지 노조와 논쟁 중인 회사는 ‘일렉트로닉 아트 프로듀션’, ‘폴모사 인터렉티브’, ‘인섬니악 게임즈’, ‘테이크2 프로듀션’, ‘보이스워크 프로듀션’, ‘WB 게임즈’가 있다.



해당 사건은 약 2년 전, 게임 내 목소리 연기자와 스턴트 연기자의 노동환경 개선과 임금 인상을 이유로 시작되었다. SAG-AFTRA와 성우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수년간 게임제작 프로젝트 안에서 성우는 불공정한 처우를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참여 작품이 흥행할 시 추가지급 되는 러닝 개런티(보너스)에서 항상 제외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프로젝트의 비밀유지를 위해 오디션에 참여할 때는 물론 본 작업에 참여할 때도 게임정보와 전체적인 스토리, 캐릭터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채 단편적인 대사 스크립트만 공유했다고 한다. 여기에 비공개된 정보를 악용하여 성우 임금을 후려치기를 하는 등 정보의 불투명성과 악랄한 고용조건 사례를 파업 이유로 들었다. 또한, 게임 제작사는 목소리 보호를 위해 성우들의 녹음일정 및 녹음시간 조율 요청을 묵살해놨던 것으로 밝혀졌다.


게임 제작사 및 퍼블리셔들의 업계 관행은 SAG-AFTRA 및 유명 성우들의 인터뷰를 통해 과거에도 폭로됐다.

인기게임 ‘오버워치’의 윈스턴역으로 참여한 성우 크리스핀 프리먼(Crispin Freeman)은,

“저는 지금까지 게임회사와 일할 땐 어떤 프로젝트의 무슨 게임인지 알지 못한 상태로 일해 왔습니다. 회사는 녹음시간 제약 없이 캐릭터의 반복연기를 요구했습니다. 간혹 그들??게 내가 녹음하고 있는 게임이 어떤 작품인지 물으면, 그저 지난번과 같은 게임이라고 하면서 제 몸값을 낮췄습니다. 비디오 게임 제작 업계에서는 무척 흔한 일입니다.”

라고 2016년 11월 게임스팟(GAMESPOT)의 인터뷰에서 음성 연기자의 처우를 밝혔다.

또한, 성우조합의 협상 대표자인 성우 키스 팔리(Keythe Farley)는 여전히 조합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회사가 많다고 말하며, 파업 대상이 되는 게임프로젝트가 당분간은 줄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지금도 미국 성우들은 비디오 게임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성우조합은 해당 게임 업계에서 쓸 수 있는 음성작업 건수를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키스 팔리는 노조의 제약으로 인한 성우 노동기회 감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히며,

“당분간은 업계의 경기침체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연기자들이 광고, 애니메이션, 오디오 북, 내레이션, 프로모션 등에서도 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성우들은 비디오 게임 외 다른 분야에서도 일하는 연기자이기도 합니다. (중략)”

라고 말했다.

노조의 협상 리스트는 대다수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다. 특히 프로젝트의 투명성과 제약 없는 노동시간은 ‘착취 문화(culture of exploitation)’라는 단어를 노골적으로 사용할 만큼 공감을 얻고 있다.

하지만 성공보수 즉, 러닝 개런티에 관련해서는 여론이 나뉘었다. 왜냐하면, 게임의 장르와 콘셉트마다 흥행 포인트가 각기 다르고, 때에 따라서는 음성 연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게임회사들은 이와 관련해 러닝 개런티는 게임 개발자 및 프로그래머 즉, 게임 디자이너 중심으로 지급할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러닝 개런티 지급 범위’ 인식을 기준으로 본다면 노조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할리우드 및 방송가에서는 러닝 개런티가 발생할 시 감독, 배우는 물론 시나리오 작가, 스태프 등에게도 광범위하게 지급해왔기 때문이다. 하여 이런 의미에서 SAG-AFTRA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여전히 성우의 러닝 개런티 권한 여부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돈과 비정상적인 노동 착취라는 단어가 어우러져 발생한 이야기 중 하나였다. 특히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문화는 비단 창작업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계에서도 흔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자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SAG-AFTRA는 성우 또한 기계적인 ‘기술’을 뱉는 노동자가 아닌,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게임업계에 관철하려 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파업 주장은 2007년 할리우드 작가 파업과 비견되고 있으니, 업종을 떠나 창작 예술가의 권익 주장과 서로 맞닿아 있음을 시사했다.

SAG-AFTRA측은 현재도 언제든지 게임 업체와의 개별 재협상 여지를 열어놓고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으로 소수 아티스트의 권익을 위해 철저하게 단결하는 성우조합도 대단하지만, 한편으로는 SAG-AFTRA라는 거대 엔터테인먼트 제작자 단체가 지원사격을 해주는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상대적으로 작은 분야의 창작 권위와 권리 찾기를 위해 다 같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건을 접하며, 한국의 콘텐츠 업계 종사자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 북미 방송업계 종사자는 대부분 프리랜서 체계로 운영되며, 프로젝트당 몸값 계약과 세부 업무일정을 사전에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연기자의 경우 시즌1 작품이 흥행하면 시즌2의 계약에서 몸값을 올려 재계약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또한, 영화와 마찬가지로 TV 드라마, 스트리밍 엔터테인먼트에서도 러닝 개런티를 받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한국처럼 배우와 연기자를 구분하지 않고 일괄 액터(Actor)로 같이 취급하며, 성우(Voice Actor) 또한 같은 카테고리의 특화 분야로 인식하고 있다.
※ 미국 드라마·영화는 대부분 후시 녹음 시스템으로 제작된다. 하여, 일반 배우와 성우의 경계가 모호한 부분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