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는 시마네 현의 마츠에시가, 시 안의 초등/중학교 도서관에서 한편의 만화를 열람하지 못하게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려다가, 각계의 반발이 일어나 이 조치를 철회하는 등 때아닌 미디어에 대한 국가의 태도에 대한 한바탕 논란에 휩싸여 있다. (정확하게는 초등/중학교에서는 교사의 허가를 받아 지도하에 열람하도록 되어 있으며 본인이 요청할 경우에 서고에서 꺼내서 열람하도록 되어 있다. 실질적인 열람금지 조치에 가깝다.) 논란의 핵심이 된 이 만화의 제목은 [맨발의 겐はだしのゲン]이다.

1973년부터 1년간, 주간 소년 점프 지면에 연재된 만화 [맨발의 겐]은 히로시마 출신인 작가 나카자와 케이지씨가 자신의 피폭 체험을 바탕으로 그린 만화다. (당시 작가는 중학생으로, 일본 화가였던 아버지와 누나, 동생을 잃었으며 본인도 원폭의 열선을 맞았지만, 기적적으로 생존했다. 당연히 본인은 원자폭탄 피폭자다.) 만화에서는 주인공 겐이 원폭으로 양친을 잃지만 굳세게 살아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만화가 서구 만화권에서조차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것에는, 오로지 그 현장에 있었던 장본인만이 말할 수 있는 처절한 전쟁/원자폭탄 피해/전후의 참담한 상황 묘사다. 미군이 투하한 원폭으로 인해서 살이 녹아내리면서 타죽는 민간인들의 처절한 묘사(특히 애니메이션 판에서 어머니에게 안겨있던 아기가 타죽는 묘사는 끔찍하다) 는, 어린시절 소년점프 지면에서 이 만화를 읽은 당시 어린이에게 큰 트라우마를 안겨줄 정도였다고 한다.
작가 나카자와는 단순히 자신의 체험을 리얼하게 다루는데 그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천황에게 전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금기를 어기고 "최고의 전쟁범죄자는 천황"이라는 묘사를 서슴치 않고 사용하거나, 중국에서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으며, 전후 일본의 지도부와 미군이 어떻게 일본 국민에게 만행을 저질렀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해냈다.
이 만화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도 당연한 찬반 양론이 격렬하게 부딪혀온 만화이며,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거의 사라지고 있는 지금 일본의 현실에서 더 큰 논쟁의 핵심이 되고 있는 작품이 되어가는 중이다.
작품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표면적으로 "정서적으로 취약한 어린이에게 이 만화에서 묘사되는 원폭피해 묘사나, 중국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전쟁범죄 묘사 등은 너무 적나라해서 트라우마를 안겨줄 소지가 있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시마네 현에서 이 만화에 대한 열람이 제한된 이유는 2012년 마츠에 시 의회에 나카지마 야스지라고하는 시민이, [맨발의 겐]을 도서관 등지에서 아이들이 볼 수 없게 해달라는 철거 청원을 내면서 부터이다.
이 철거 청원의 이유는, 원폭이 일본에 투하된 것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나 그러한 전쟁에 이르게 된 원인을 일본의 탓으로 돌리는 잘못된 역사적 관점이 다루어진 만화이기 때문이다...라고 쓰고 있다. 즉, 전쟁원인을 둘러싼 역사적 해석에 대한 것으로, 당시 일본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비판을 담아낸 이 만화는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진정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시의회가 받아들이고 실행되려한 것에 대해서 일본 전국의 여론이 들끓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 [맨발의 겐 중 - 눈 앞에서 겐의 아버지와 동생이 타죽는다]
하지만, 이 작품에 대한 일본의 전체적인 여론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와 [전쟁에 대한 기억이 점차 희석되어 가는 것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만화 [맨발의 겐]에 대한 열람제한 등의 규제에 대해서는 강한 반대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것은 반전을 주장해온 진보인사들에서 뿐만이 아니라, 아베 신조 내각의 강경보수 정치인인 이나다 토모미 행정개혁상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자세다. 인터넷에서의 여론도, 이전 에 니챤넬(한국의 디씨 인사이드등과 닮은 사이트)등지에서 맨발의 겐에 대해서 비판적/인터넷 극우적 여론이 만들어지던 것과는 상반되게, 이번 열람제한 조치에 대해서 비판이 잇따르고 서명운동까지 벌어지는 중이다.
여론을 통해서 이 작품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가자, 작품에 대한 구매 문의가 쇄도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이런 전쟁의 참상과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작품에 대해서 열람규제가 일어나는 것을 우경화의 한 예라고 첨예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여론의 행보라고 하겠다.
△ [멘발의 겐 중]
일본의 보수 우경화는, 아베 정권의 탄생과 더불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움직임이 일본 국민 전체의 의식에 기반한 것인지 아닌지는 이번 [맨발의 겐] 사태에서 힌트를 얻어볼 수 있다고 본다. 일본은 아직 자정의식과 균형감각을 상실한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더불어 한국도 일본의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전쟁 묘사에 대해서 조금 더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좌파 감독이자 일본의 현재 정치 상황에 대해서 비판적 자세를 견지한 [반딫불의 묘지]나 이번 [맨발의 겐]까지도, "일본은 피해자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식의 매도가 횡행하는 현실이다.
이런식의 일방적인 필터링은 한국에 있어서도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 일본 전체에서 전쟁에 대한 역사적인 인식이 옅어져가고 이에 대해서 분명한 반대의사와 반전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긍정적인 메세지를 보내주는 차분한 태도가 양국 관계에 있어서 이익이 될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