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그래봐야 대략 20여년 정도) 만화잡지를 읽다보면 대부분이 장편으로 연재되는 작품들 가운데서 감초처럼 실린 단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신인작가들이 장편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숨을 고르기 위해 발표하거나 혹은 마감이 제때 이뤄지지 않은 연재작을 대신해 묻혀있던 원고가 대체용으로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런 단편만화가 주는 재미는 장편연재작들과는 좀 달랐다. 요컨대, 한정된 분량 속에 하나의 이야기를 완결해야 하기 때문에 구구절절한 사연들은 모두 제거되어 핵심만 드러났고, 작품을 보고 난후 깔끔함을 더해주는 반전은 필수였으며, 그로 인해 작품이 보여주는 주제의식 또한 단순하고 명확한 느낌이었다. 장편만화가 주인공의 운명과 사건의 정황을 낱낱이 보여줌으로써 그 맛을 알게 되기까지 진득하니 숙성의 기간이 요구되는 와인에 견주어진다면, 단편만화는 마치 더운 여름날 마시는 한 모금 탄산음료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깔끔함과 상쾌함이 있었던 것이다.
헌데, 최근 웹툰에서 진정한 단편의 맛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기획방향에 있어 캐릭터 중심의 연재만화와 서사 중심의 장편만화로 이분화 되면서 단편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이 매우 협소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방향은 캐릭터와 스토리라는 강점을 통해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고 있기에 작품의 생명력을 유지시키고 인지도를 확장시킨다는 측면에서 환영받을 만하다. 하지만 계속 와인만 마시다보면 어느 순간 다른 무언가가 당기는 것처럼, 캐릭터 위주의 연재만화와 서사 중심의 장편만화가 넘쳐나다 보니 단편만화의 톡 쏘는 청량감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단편연작 ‘판타지시티’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반가움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일 듯하다.
단편만화? 느낌 아니까!
‘판타지시티’는 상상마당과 스투닷컴 등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연재된 옴니버스 작품이다. 2009년 상상마당을 통해 연재된 시즌1의 경우 ‘Time은행’, ‘인권존중’, ‘일처다부제’, ‘미녀전단지’, ‘X-프로젝트’, ‘아이들의 도시’ 등 모두 여섯 개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2010년부터 2011년에 걸쳐 스투닷컴에 연재된 시즌2의 경우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를 비롯해 모두 열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었다. 옴니버스라고는 하지만, 한 명의 주인공이 여러 사건을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전혀 다른 주인공과 상황설정을 통해 ‘판타지’라는 하나의 테마를 그려내는 독특한 방식이다. 즉, 일관된 테마로 기획된 단편모음인 셈이다.
이러한 방식은 캐릭터 중심의 옴니버스(최근 웹툰에서 주류를 이루는 개그만화 형태)나 혹은 인물과 사건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장편만화에 비해 연재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매 회 다른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전혀 다른 사건이 다루어지며, 매회 다른 결말이 준비되어야 하니,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만큼 에너지 소모가 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독자들이 그 입장을 이해해주는 것도 아니다. 주간연재가 보편화되어 있는 최근의 상황 속에서 ‘다음 이야기 빨리 나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댓글을 적는 네티즌들의 성질 급한 정서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어느 누가 단편만화를 웹툰으로 발표하려고 하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판타지시티’는 꽤나 어려운, 기존 웹툰과는 차별화된 길을 선택한 셈이다. 단편이지만 하나의 테마를 중심에 둔 옴니버스 방식, 그것이 ‘판타지시티’가 선택한 방법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로부터 몇 가지 흥미로운 키워드들을 뽑아낼 수 있다. 첫 번째는 무엇보다 ‘판타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설은 허구라는 사실에 모든 이들이 동의하는 것처럼, 상상력의 산물인 만화 역시 기본적으로는 판타지에 기인한다는 점에 크게 이의를 제기할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판타지는 그리스어인 ‘판타시아(phantasia)’에서 유래하여 영상, 상상 등의 의미를 지니며, 장르적으로는 몽상적인 이야기에 초자연적 요소 등이 접목된 세계를 보여준다. 그렇게 본다면, 이 작품 ‘판타지시티’는 일단 제목에서부터 그 내용이 환상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환상의 세계가 동화나 신화 혹은 영웅담처럼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모습이 아니라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때로 그것은 악플, 사채 등과 같은 지독한 모습일 수 있고, 정신분열이나 임신중절 등과 같은 가슴 아픈 모습일 수도 있으며, 혹은 결혼이나 저축, 여자친구 등과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일 수도 있다. 또한 스펙쌓기나 물질만능주의처럼 최근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이슈가 되는 내용을 모티브로 삼기도 한다. 중요한 사실은 그러한 현실로부터 출발해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기발한 내용을 구성한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연예인으로서 자신의 인기를 위해 임신중절한 여주인공은 어른이 없는 아이들의 나라로 보내어지고, 연애에 젬병인 남주인공에게는 전단지 속의 여인을 걸어 나오게 만들어 여자친구를 선사한다. 하나같이 비현실적인 이야기이지만, 또한 하나같이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들이다. 현실을 통해 판타지를 그리고, 판타지를 통해 다시 현실을 비판한다. 그렇게 ‘판타지시티’에는 현실과 환상이 공존한다.
한편, 판타지와 현실이 교차되는 시점에 이르러 단편만화의 묘미, 즉 ‘반전’이 어김없이 준비되어 있다는 점 또한 놓칠 수 없다. 가령, ‘인권존중’ 편에서 주인공이 살인자라는 설정과 호텔 같은 교도소의 설정은 현실과 판타지로 교차한다. 즉, 사이코패스와 같은 살인자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를 반영한 것인 데 반해, 재소자의 인권존중을 위해 고급 침대와 TV 그리고 호텔 주방장의 요리 등이 재소자에게 제공되는 것은 그야말로 상상의 세계다. 나아가 정서교화를 목적으로 이성재소자와 소개팅을 주선해 결혼에 이르게 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 기발한 상상력으로 인해 실재적인 분노마저 일으키게 만든다. 하지만, 작품이 준비한 ‘반전’에 이르러서는 독자로 하여금 분노를 박수로 만들도록 하고 있다. 즉, 사랑했던 여인(실은 사이보그)과 자신의 아이가 죽음에 이르는 동안 주인공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인간적인 슬픔을 맛보게 되고, 그리고 나서도 마음대로 죽지 못하는 모습에서 ‘인권존중’의 반전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가져온 소재, 판타지한 연출 그리고 반전의 묘미로 구성되는 ‘판타지시티’의 여러 단편들이 지닌 또 다른 특징은 바로 ‘교훈’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아이들의 도시’에서 아이가 유산된 것인 줄 알았던 유미의 상처는 실은 연예인으로 인기를 지속하기 위해 임신중절을 했던 것으로 밝혀지게 되고 결국 그녀는 자신이 사는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결말을 맞이한다. 특정 연예인에 대한 기사마다 악플을 달던 ‘악플러’의 주인공 역시 도리어 스스로가 악플의 희생양이 됨으로써 인과응보의 과정을 보여준다. 돈의 노예가 되어 부인과 자식마저 버린 ‘The City’의 주인공에게도 죽음이라는 결말을 부여한다. 이를 통해 ‘판타지시티’가 그 내용은 판타지일지라도 그것이 지닌 의미는 매우 직설적임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선과 악의 대립으로부터 정의를 지켜내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메시지는 많은 캐릭터의 관계가 얽히는 장편에서는 보기 힘든, 그야말로 단편이 지닌 묘미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단순함이 그리고 변치 말아야 할 도덕률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반전을 통해 드러날 때 우리는 상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드라마? 잠시만요, 그 이유부터 알고 가실게요!
<환상거탑>은 <판타지 시티>의 내용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옴니버스 드라마다. 2013년 7월 17일부터 9월 4일까지 매주 수요일 밤 11시에 케이블 채널 tvN을 통해 방영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드라마의 극본을 담당한 두 명의 작가가 원작만화의 스토리를 담당했던 이들과 동일하다는 점이다. 즉, 원래 드라마 작가들이 스토리를 담당해 원작만화가 제작되었고, 몇 년 후 드라마로 제작된 사례인 것이다. 이는 만화와 타 장르의 크로스오버에 관한 본보기가 되는 것은 물론, 전략적 미디어믹스를 위한 기획 작품의 좋은 사례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만화로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이야기는 어디든 존재하며, 협업의 과정을 통해 그것을 발전시켰을 때 시너지 효과도 발생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만화가 드라마로 옮겨지는데 있어서 이 작품만의 독특한 측면도 있다. 우선, <환상거탑>으로 제목이 바뀐 부분이다. <환상거탑>은 <푸른거탑>의 후속작품으로 방영되었는데, <푸른거탑>의 경우 드라마 <하얀거탑>을 패러디하여 지은 제목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푸른거탑>이 ‘군디컬 드라마’라는 표제를 붙였던 것 역시 <하얀거탑>이 의학을 소재로 한 ‘메디컬드라마’였던 사실의 연속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푸른거탑>이라는 제목은 드라마로서 높은 인기를 모았던 <하얀거탑>의 아우라를 빌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반면, 그 내용과 구성에 있어서 <푸른거탑>은 <하얀거탑>의 그림자를 느낄 수도 없을 만큼 독립적이고 독창적이다. 군대에 얽힌 에피소드가 유쾌하게 그려지면서, 제목에서 느껴지는 패러디의 느낌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푸른거탑>이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을 불러 모아 높은 인기를 얻었다. <환상거탑> 역시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푸른거탑>의 후속작품으로서 ‘거탑’ 타이틀을 물려받긴 했지만, ‘환상’이라는 테마를 통해 독립성을 부여받았다. 또한, ‘판디컬 드라마’라는 표제로 수요일 밤 11시의 재미에 대한 책임을 승계 받았지만, ‘군디컬 드라마’가 보여준 웃음 대신 반전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시청자들을 설득시켰던 것이다. ‘판디컬 드라마 환상거탑’이 ‘군디컬 드라마 푸른거탑’의 연속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또 다른 상황은 <푸른거탑>의 작가 가운데 <환상거탑>에도 참여한 작가가 있다는 점이다. <환상거탑>은 김기호, 이광근 두 명의 작가가 극본을 담당했는데, 그 중 김기호는 <푸른거탑>에서도 극본을 담당한 바 있다. 게다가 <환상거탑>의 두 명의 작가는 애초에 <판타지시티>의 스토리를 담당했으니, <환상거탑>은 이래저래 여러 가지 사연을 지닌 드라마인 셈이다.
만화와 드라마, 서로 케어해주잖아!
2009년의 <판타지시티>와 2013년의 <환상거탑> 사이의 시간적 거리, 그러니까 만화가 발표되고 나서 드라마로 방영되기까지의 몇 년 사이의 시간은 원작에 대한 기억을 가물거리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만화 <판타지시티>를 보았던 독자들이라면 드라마 <환상거탑> 1화를 보고 난 후, 드라마가 만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1화로 방영된 ‘타임은행’과 ‘인권존중’ 두 개의 에피소드가 원작만화에 매우 충실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영 초기 ‘표절’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불거졌던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만큼, 마치 원작만화 자체가 드라마를 위한 콘티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대사와 연출 등에 있어서 원작과 매우 흡사하게 제작된 것이다.
무엇보다 원작만화에서 보여주었던 독창적인 소재와 상상력은 드라마 제작에 있어 곧바로 다른 드라마와 구별되는 차별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판타지’로부터 변용되었을 ‘판디컬 드라마’라는 표제로부터 알 수 있듯이 <환상거탑>에게 있어서 두드러진 부분은 그야말로 ‘만화와 같은 상상력’이었으며, 그것을 드라마화할 수 있게 뒷받침해준 것은 또한 차별화된 기획력일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1) 20분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방식은 수십부작 연속극이 대세인 TV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구성이었으며, 2) 배다른 형제, 음모와 치정 등이 범벅된 기존의 정극이나 유머 코드 일색인 시트콤 등과는 다른 패턴, 즉 상상력을 극대화시킨 상황설정과 반전의 묘미를 드라마에 가져온 것은 가히 새로운 형식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3) 마지막으로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보여준 환상의 세계가 그것이 비록 상상력의 극대화를 통해 만들어진 허구이지만, 그러한 이야기의 바탕에는 지금의 현실이 담겨져 있음을 놓칠 수 없다. 즉, 판타지일지라도 범죄, 성형 등 사회적 이슈가 되는 문제들을 소재화 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을 통해 남녀간 연애나 부자들의 사생활 혹은 복잡한 불륜이 주요한 소재거리가 되는 일반 드라마보다 리얼리티 면에서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심정이다.
<판타지시티>가 발표된 매체가 유명 포털 사이트에 비해 지명도와 접근성이 낮은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그렇기 때문에 조회수에 얽매이지 않은, 보다 자유로운 상상력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3~4년 전에 발표된 원작만화가 있고, 드라마가 보여준 연출과 내용이 원작만화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 대해 ‘표절’이 언급된 것은 그만큼 원작만화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널리 알려지지 못했던 원작만화가 이처럼 드라마를 통해 새롭게 회자되는 것은 미디어믹스의 선순환 구조를 제대로 보여주는 셈이기도 하다. 행복한 공존, 만화와 드라마, 서로를 다독거리는 관계, 좋지 아니한가.
환상과 판타지 그리고 만화, 제대로 뿜기 위해
만화가 독자들에게 부여하는 만족감은 (영화나 소설의 경우처럼) 대체로 ‘판타지’에서 출발한다. 즉, 만화가 보여주는 세상이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 혹은 경험하기 힘든 것에 대한 대리만족을 주고 있는 셈이다. 이를 테면 사후 세계인 저승을 그린다거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왔다 갔다 한다거나 혹은 비디오 속의 미녀를 여자 친구로 만든다거나 하는 것들은 완벽한 판타지의 세계다. 또한, 현실에서 일어날 수도 있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 가령 로또에 당첨된다거나 무일푼 백수가 유명 연예인과 연인이 된다거나 하는 일들도 확률적으로 본다면 판타지와 다름없다. 하지만, 만화는 그러한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내가 하지 못한 혹은 내가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만화는 자유자재로 경험케 해준다. 그렇게 만화는 비현실적인 세계를 현실화시킴으로써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충족시킨다. 그렇게 만화는 욕망을 구체화시키고, 판타지를 작품으로 현실화시킨다.
‘판타지시티’는 제목에서도 나와 있듯이 그런 상상의 세계를 아예 대놓고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러 단편 속에 등장했던 수많은 욕망들, 이를 테면 여러 명의 이성을 연인으로 두고 싶은 마음(일처다부제)이나 미녀와 함께 살고 싶은 감정(미녀전단지)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Time 은행)하기도 하며, 인간의 감정을 약으로 제어하는 세상(X-프로젝트)을 그리기도 하고, 최고부자가 되는 꿈(The City)도 실현시킨다. 그리고 그러한 욕망은 ‘환상거탑’을 통해 영상화되면서 더욱 구체화된다. 하지만 욕망의 실현은 한순간이며, 그 실현의 방법이 정당하지 못할 경우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환상적이면 환상적일수록, 그 결말은 더욱 리얼일 수밖에 없음을 ‘판타지시티’가 독자에게, ‘환상거탑’이 시청자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